165-2
“언덕 아래에서 기름항아리에 불을 붙일 불씨를 꺼낼 것이다. 궁수는 전원 고지대에서 조준 사격. 맞추지 않아도 좋아. 위협 사격으로 화망을 유지해.”
“트레뷰셋에 미리 세워둔 삼중 목책을 일으켜! 진입로는 서로 엇갈려서!”
“경기병대 일부는 팩스 성의 사격 거리까지 접근해. 굳이 공성을 할 필요는 없어. 거리를 유지해. 그것으로도 요격부대에게는 큰 부담이 될 테니.”
어두운 밤, 야습을 감행한 팩스군의 요격부대가 마주친 것은, 소수의 병력을 지휘하는 혈태자였다.
원래, 소수 병력의 효율적인 운영에 천재성을 발휘하는 바실답게, 한치의 빈틈도 없이 오합지졸의 공병대들을 지휘하여 야습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 기세가 하도 철두철미하여, 나마저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저 정도면 거의 죽을 위기에 몰렸던 트빌리시 방어전 이상의 진지한 지휘인데?
아니, 이게 저 정도로 진심으로 지휘할 일이야?
하지만, 바실의 눈은 진지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고, 그 서슬퍼런 기세에 운좋게 트레뷰셋에 근접한 병사도 공포에 질려 발걸음을 돌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이, 바실은 눈꼽만치의 피해도 공성병기에 가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팩스의 야습을 방어했다.
오죽하면, 그걸 본 마티마저도 감탄하며 박수를 치며···
“와! 대단해요. 저쪽도 공성병기 파괴에 진심인 모양인데, 접근 자체를 허용을 안하네요. 정말로 놀라운 지휘입니다.”
야, 그거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은 사실 너잖아. 지금 그걸 넋놓고 보면서 박수만 치면 어떻게 해?
아무튼, 그런 식으로 팩스의 야습을 통한 공성병기가 완성되기 전에 파괴하겠다는 의도는 바실의 강력한 의지 앞에 허망하게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후로도 몇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야습이 시도되었지만, 그 모든 것은 바실에게 간파되어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이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점차 공성병기는 그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나는 이제 슬슬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네? 팩스 성에 이 편지를 화살에 말아서 쏘아 넣으라고요? 팩스 영주 앞? 공녀님. 이건 대체···”
나의 호출에 불려나와 내가 건낸 편지를 받아든 마티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어휴. 이 얼빠진 양반아. 우리 집 머저리들이야 그렇다 쳐도, 당신까지 저 공성병기가 올라가는 것만 넋놓고 보고 있으면 안돼잖아?
나는 애써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티에게 말했다.
“만약을 대비한 플랜 B는 필요한 법이니깐요.
지금 제작하고 있는 공성병기의 위력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교전이 벌어지기 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을 회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한 항복 권유입니다. 이걸 팩스 성주에게 전달하여 주십시오.”
“하아··· 하지만. 어휴, 일단 알겠습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마티는 다소의 푸념을 숨기지 않고 편지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팩스성으로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접근한 궁수가 그 편지를 성벽 안으로 날려보냈다.
궁수에 대한 공격이 없던 것으로 봐서, 편지는 확실히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소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다. 당장, 주둔지 옆에 위치한 트레뷰셋 공사 현장이 이제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하루나 이틀, 그 정도면 저것이 가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완성된다.
그 웅장한 광경에 톨먼과 우리집 머저리들은 물론, 세게드에서 데려온 병사들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저 병기가 실전투입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저 성과 병기, 둘을 상쇄시키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나는 반드시 저것을 둘다 온전하게 손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팩스성에서 웅크리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팩스 성주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래서,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고, 이내 그 인내심은 보상받을 수 있었다.
“팩스성에서 전령이 온다. 쏘지마. 백기를 들고 있어. 사절인 모양이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그제서야 안도했다. 그래, 녀석이 미끼를 물었다.
잠시 후, 막사로 안내된 전령은 간단한 팩스 성주가 보낸 용건을 전달했다.
“양측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협상하고 싶다고?”
“네. 영주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령의 말에 우리 측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협상 제안에 당황한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리우며 나는 말했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2시간 후 거기서 만나뵙자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답변을 들은 전령은 서둘러 팩스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웅성거리는 우리 측 지도부에게 말했다.
“의외로 상대 측이 그렇게 막되먹은 건 아닌 모양입니다. 협상은 원한다니,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잠시 후, 우리는 팩스성의 원거리 공격거리 안쪽으로 진입해서, 우리 진영과 성의 중간 지점까지 들어갔다.
이미, 팩스 성주의 일행은 그곳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팩스 성주는 생각보다는 평범한 중년이었다. 팩스 시의 유지들이 하도 까서, 괴상한 악당을 기대했는데, 그냥저냥 평범하고 소심해 뵈는 중년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보다는 곁에 따르고 있는 상대편 진영의 2인자가 더 눈길이 갔다.
다부진 체격에 눈빛이 빛나고 거친 인상을 한 남자. 그리고, 우리 측 톨먼의 모습을 지긋이 노려보고 눈싸움을 피하지 않는 남자. 올렉이었다.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우리 측의 톨먼과 저쪽의 올렉은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살벌한 기세로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때는 일생의 친구였고, 지금 서로의 관계가 결렬된 상황에서는 경쟁자가 되어버린 두 남자.
대를 이어 일생을 바쳐서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이루기 위해 매진했고, 그로서 자기 분야에 대성한 업적을 세우고, 그것으로 경쟁했던 두 남자가 조우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불꽃튀는 긴장감에 어울려줄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작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팩스 성주와의 회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팩스 성주의 반응은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것이었다.
“호오. 그러니깐, 내 개인 명의의 토지는 당연히 보장해주고, 다만 영지로서 팩스의 권리만 포기하면, 반란에 가담한 것에 대해 추궁도 하지 않으시겠다?”
“물론, 순순히 항복하신다는 전제 하에서 입니다. 귀공의 투항은 향후 이번 반란에서 슬로슈 측에 가담한 영주들이 고민할 여지를 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측 필요에 의해서라도 당신의 사면은 책임지고 부다페스트의 왕실에서 받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측 병력을 대동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항복에 응할 경우 당신이 구축한 팩스 성에서 그대로 거주할 권리도 보장하겠습니다.”
팩스의 영주는 나의 제안에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사면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개인 재산을 보전해주고, 거기에 자기가 공들여 세운 팩스성에서 거주할 권한도 보장했다.
그가 바라던 것 이상의 조건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나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몇 년, 아니 몇십년이 걸려도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철옹성이 아무런 피해없이, 심지어는 원 소유주의 협조 아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우리 군은 향후 소대 병력만으로도 헝가리 남서부에서 무너지지 않을 강력한 세력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해볼 것이 없는 합리적인 협상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긴장했던 나와 팩스 영주는 어느새 하하호호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알겠습니다. 사실, 애초부터 저는 왕실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이렇게 된 것인데, 공녀가 주선을 잘해준다면 안심하고 왕실의 품으로 돌아가 계속 충성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귀공의 충성에 대해서, 저는 처음부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 측에 순순히 협조해주시는 점에서 우리가 귀공을 핍박할 이유가 없죠.
다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팩스성의 투항도 환영하고요.”
“죄인에 대해서 공녀의 이런 지극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이제, 더 이상 저 무시무시한 병기를 우리 측을 향해서 겨냥하고 제작하는 것은 그만 두시는 거겠죠?”
그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래, 그게 제일 걱정이겠지. 저 말도 안되는 크기의 트레뷰셋에서 날아올 탄환이 성벽을 때리는 것이.
나 역시 그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가까운 위치에서 보니, 더 무지막지한 방어력이 느껴지는 팩스성.
이곳에 그 어떤 흠집도 없이 고스란히 내 세력으로 편입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그에게 긍정적인 화답을 했다.
“당연하죠. 더 이상의 공성전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팩스 성에 대한 공성 작전은 종료하는 것으로···”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우리 진영에서 소리쳤다.
“안돼!!! 그럴수는 없소. 종료라니? 공성작전을 종료하다니. 이제 내일이면 발사가 가능한데, 지금에 와서 종료라니?”
톨먼이었다. 그는,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손마저 벌벌 떨며, 우리를 보고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을 본 나는 조금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에게 달래듯이 말했다.
“어휴. 톨먼 마스터. 지금까지 고생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완성의 목전에서 멈추는 것의 아쉬움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저 병기를 사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듯이 팩스 성주께서는 더 이상의 농성을 하지 않고, 우리 측에 귀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굳이 당신의 저 병기로 성을 공격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 아쉬움은 이해하지만, 그만 마음을 접으심이···”
“그럴수는 없소!!! 저걸 어떻게 만든 건데? 우리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그 오랜 시간을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여 시안을 만들었소.
그리고서도, 예산과 인력이 없어 구현하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겨우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소.
저것은 그냥 단순한 돌을 멀리 날리는 공성병기가 아니오. 남자들의 인생과 삶과 꿈이 담긴, 우리의 모든 것이란 말이요.
그런데, 그것을 완성을 목전에 두고선, 사용해 보지도 않고 제작을 중단한다고요? 공성작전 자체를 중단한다고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입니까? 같이 일한 동료들! 당신들은 저걸 받아들일 수 있소?”
그의 말에, 갑자기 우리 측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튀어나오듯이 소리친 사람이 있었다. 바실이었다.
“없어요!!! 저걸 무슨 고생을 하면서 만들었는데!!! 죽으면 죽었지, 한번도 쏴보지도 못하고 철수하고 해체할 수는 없습니다.”
야, 이··· 바실아!!! 너 갑자기 왜 이래? 너 이 시대 최고의 명장이잖아? 다른 사람도 아닌 니가 그런 망언을 하면? 그런데, 연이어 발언들이 터져나왔다.
“맞아요. 최소한 한번이라도 쏴야 직성이 풀리죠. 저걸 만들어 놓고 한번 쏴보지도 않고 철수한다고요? 그 악명높은 몽골군도 회회포 가지고 그러진 않았어요.”
얌마. 여기서도 유명한 양양공방전이 설마, 만들었으면 한번 쏴봐야 하는 이유로 벌어졌다는 거냐?
“내가 저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목재 하나하나 다 손으로 나르고, 이음새 다듬어서 공들여 만들었는데!!! 그걸 쏴보지도 않고 해체한다고? 난 그렇게 못해!!!”
근위대장 양반!!! 당신 요새 자꾸 퇴행하는 거 아니야? 멍청한 건 알지만 쟤들이랑 같은 수준으로 놀면 안되잖아!!!
그러나, 나의 당혹함과는 무관하게 우리 측에서는 다들 톨먼과 우리집 머저리들의 주장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동요가 저쪽으로 까지 전염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직감한 듯, 지금까지는 서로 노려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던 일생의 라이벌에게 톨먼이 소리쳤다.
“이봐! 올렉! 넌 그걸로 만족하는 거냐?”
“뭐? 톨먼, 이 자식··· 그게 무슨··· 얘기 못들었나? 강화하기로 위에서 결정했잖아?!!!”
“네 녀석은 그걸로 만족하냐고 물었다. 네 아버지와 네가 일생을 다 바쳐서 만들어낸 저 불멸의 철옹성.
그건 단순한 성이 아니야. 내가 일생을 친구로 여겼고, 동시에 라이벌로 인정했던, 너라는 남자가 네 인생을 담아 만든 시대의 걸작이다.
그 걸작을···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그 어떤 위기에도 던져지지 않고, 무전무패로 남는 그런 것이 네가 원한 것이냐?
올렉이라는 남자가!!! 내가 아는 그 더럽게 고집쎄고 독한 올렉이라는 개자식이!!! 그런 것에 만족하느냔 말이다!!!
그리고 여기, 내가 만든 내 아버지와 내 영혼이 담긴 걸작이 있다. 그건 무려 2천 파운드의 돌을 저기서 날려보내지.
아예 못봤자면 모를까? 넌 이미 그걸 봤다. 그리고 인식했지. 이것이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건 남자들의 승부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걸 붙어보지도 않고 끝내?
그걸, 너는 받아들일 수 있냐?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올렉에게 모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올렉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빌어먹을.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잖아!!! 너 이상으로 나 역시 내 인생을 건 걸작이다.
설령, 그것이 네놈의 무기를 맞고 박살이 나서, 뭉게져 버린다고 한들!!! 저걸 보고선, 피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지!!!”
“그래! 이 개자식아. 너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니깐, 우리 저거 한번 쏘자. 너희 저거 한번 맞아라.”
순간, 뿜을 뻔 했다. 뭐? 뭐라고? 겨우 그런 이유로 저걸 쏴야 한다고? 그리고, 그걸 곱게 맞으라고? 야, 이 미친!!!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리고, 뿜을 뻔한 것은 다행스럽게도 나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팩스 영주도 어이털린 얼굴로 입에서 뭔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환장하게도 우리 둘을 제외한 모두는 더 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올렉이 뒤를 돌아, 팩스성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얘들아. 우리 그냥 저거 한번 맞자. 너희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냐?”
뭐, 뭐라고? 야, 이 미친!!! 당신 성의 방어사령관이라며!!!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그래서 기겁을 하는데, 놀랍게도 더 경악하게 만드는 상황이 이어졌다. 바로, 그의 병사들의 반응이었다.
“그, 그러죠 뭐. 근데, 기왕에 맞을 거면··· 그냥 한방만 맞는 건 좀 아쉽고, 최대한 많이 맞아보면 어떨까요? 저 병기가 내구력이 닿을때까지 말입니다.”
“응? 그래도 괜찮겠냐? 내 기억이 맞다면, 대략 10방 정도면 병기 자체가 오버홀 해야 해서, 10발이 한계이긴 한데··· 그거 다 맞아도 괜찮겠냐?”
“어휴. 뭐 한번 맞죠 뭐. 솔직히, 2천 파운드가 넘는 돌이 날아와서, 우리 성벽 때리면 무슨 광경이 나올까 되게 궁금하기도 했는데. 한번 맞죠. 남자답게.”
그 말에 올렉은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톨먼과 우리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들었지? 우리 애들은 진짜 남자들이지. 저런 걸 보면 한번 맞아보고, 그걸 자기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
“하! 우리도 마찬가지다. 만들었으면 한번 쏴보고, 손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지.”
“톨먼!!!”
“올렉!!!”
“제대로 붙어보자!!!”
“물론이지! 결말을 내자!!!”
“오오오오오오오!!!!!!”
두 일생을 경쟁해온 친우이자 라이벌인, 두 남자의 선언에 모두가 다 열광했다. 두 사람만 빼고.
“야, 이씨!!! 누가 마음대로 맞아!!! 올렉! 네놈은 해고··· 아니, 무슨 짓이야? 이거 놔라! 이 놈들아!!!”
“누구 마음대로 저걸 부숴요?!!! 이미 협상 다 끝났는데!!! 당장 제작 멈추고, 해체를··· 엥? 쿠타이! 얌마! 놓지 못해!!!”
다음 날, 팩스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날아간다!!! 발사!!!”
“와! 날아온다. 충격에 대비해!!! 오오!!! 방향, 풍향 다 적절해! 2번 성벽으로 날아온다!!!”
‘콰과과과과광!!!’
“만세! 명중이다. 우와, 방금 봤어? 성은 물론이고, 대지까지 막 흔들려.”
“오오오··· 2천파운드 탄환이 정말로 하늘을 날아서 유성처럼 내려 꽃혔어. 죽인다. 이봐, 어서 2번 탄환 발사하라고 해!!!”
“발사 신호가 왔다. 어서 장전해! 곧바로 쏜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팩스의 시민들은 물론 성의 병사들은 모두 나와서, 저마다 언덕과 평야에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맥주와 와인을 들며 하늘을 날아가는 집채만한 바위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벽에 부딪쳐서, 어마어마한 구멍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고 소리치며 열광했다.
어느새, 대치하던 헝가리군과 팩스군은 경계도 없어졌다.
헝가리군의 관측병이 활짝 열린 성벽 위로 올라가서 신호하고 있었고, 팩스군의 병사가 깃발로 결과를 헝가리군 진지까지 달려와 알려주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그들이 이룬 시대의 걸작이 만든 위대한 비행과 그것이 만들어낸 장렬한 파괴에 전율했다.
놀랍게도, 어느샌가 라이벌로 대립하였다는 올렉과 톨먼은 서로 어께동무를 하고, 손에 맥주를 들고 들이키며 껄껄 웃었다.
마치, 중년의 아저씨가 아닌, 세상에 나갈 꿈을 품은 소년들처럼 해맑게 말이다.
그리고, 고정끈을 쳐서 발사하는 바실과, 조준하는 쿠타이와, 장전하는 안드로니쿠스의 얼굴에서도 환희가 가득했다.
팩스성이 7발, 8발을 넘어서게 맞으면서, 만신창이가 되고 성벽이 박살이 나고, 트레뷰셋도 지지대가 서서히 뒤틀리는 것을 보면서도,
올렉과 톨먼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시원하기 그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들이 만든 걸작의 파괴에 환희하고 만족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칭찬했다.
그것이 바로, 남자들의 세계라는 것을 입증하듯이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감금 비슷한 것을 당한 두 사람만 제외하고 말이다.
“안돼!!! 저거 더 무너지면 성으로의 기능이··· 아악!!! 방어탑이 날아갔어!!! 저걸 어째!!! 아악! 트레뷰셋 지지대가 휘고 있어!!! 저게 얼마짜린데!!!”
“차라리 내 눈을 파내 버려!!! 내가 어떻게 만든 성인데··· 으아아악!!! 내 침소가 날아간다. 내 귀중품들!!!”
나는 더 절규할 힘마저 잃고선 망연자실하게 박살이 난 성과 공성병기를 바라보았고,
우리 병사들은 너무나 유쾌한 표정으로 희희낙낙하며 말했다.
“와, 재밌었다. 이거, 내년에도 한번 더 할까?”
“오! 좋은 생각이야. 이렇게 하자고. 매년, 편을 나눠서 한쪽은 성벽을 쌓고, 한쪽은 공성병기를 만들어서 쏘는 축제를 열자. 내 생각 어때?”
“키아!!! 죽이는데? 남자라면 못참지. 나 당장 내년 축제 준비 바로 시작한다.”
그렇게, 팩스 방면 작전은,
두 사람만 환장하고, 팩스성은 만신창이가 되서 박살이 났고, 트레뷰셋은 10발을 쏘고 장렬히 붕괴하며···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아, 씨발. 진짜 집에 가고 싶다. 저거 온전히 가지고.
그리고, 그 후 팩스에서는 톨먼 가문과 올렉 가문의 주도 하에, 소문난 공성 축제가 매년 열렸고
이후 수백년간 전통이자 지방의 명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어흑, 뒷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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