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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순간,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안그러면 살짝 짧은 비명이 터져나올지도 몰랐으니깐.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르게 저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더 들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뒤로 뒷걸음질쳐서 바실의 집무실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결국 파견과 관련된 상의를 바실과 하지 못하고 황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한동안 나는 가능하면 집에서도 바실과 마주치지 않았고, 관련된 보고는 전부 서면으로 제출했다. 왠지 모르게··· 바실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예상치 못한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캅카스의 암사자. 자신의 이름과 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 예언받은 약속의 여왕. 그리고··· 바실의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존재. 나는 내가 모르는 모습의 바실이 말한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뭔가 정리되지 못한 기분으로 조지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흑해를 가로질러 조지아로 향하는 항해 중에도 나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그저 말없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살짝, 내 건강을 우려하는 바실에게 괜찮다고 거짓말을 말하며 나는 여러가지로 복잡한 생각에 빠졌다. 아마도··· 현재 제국 측에서 희망하는 대로 타마르 여왕이 조지아의 나머지 영토를 가지고 제국에 귀순하게 된다면, 아마도 제국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결말일 것이다. 캅카스는 안정적인 제국의 영역이 될 것이고, 든든한 황실의 직할 영지가 되겠지. 그리고 조지아에서도 과거의 일을 강경파와 앙리 콰지모토의 과오로 묻어버리고 제국 내부에 전화위복의 세력 확장이 가능해질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을 할 당사자인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곧 만나게 될 예정이다. 물론, 두 나라가 서로의 명운을 걸고 하는 협상이라 간단히 결정될 일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그 협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타결된다면? 그 후에 나의 입지는 애매하게 될 것이다. 같은 패전국의 전리품이라고 해도, 공녀와 여왕은 같은 입장일 수 없다. 그리고, 반려가 결정된 후계자에게 전례없는 여성 자문관, 그것도 군부에 소속된 존재는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집으로 돌려보내지게 될까나? 나는 어쩌면 너무나 바라던 소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현될 경우 그 여파가 엄청나게 될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헝가리의 공녀 카밀라로서 처할 정치적 입장보다, 가짜 공녀인 하녀 아그네로서 느끼는 바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더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답없는 고민을 하는 사이 어느새 배는 조지아의 항구 바투미에 도착했고, 순식간에 일행은 목적지인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나는, 일단 마음 속의 고민을 잠시 접고 눈앞에 처한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제서야, 처음 방문한 트빌리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콘스탄틴노플과 비교하면 좀 미안하지만 아담하고 소박한 도시였다. 쿠라강 연안에 위치한 도시는 캅카스 지역에 흔치 않게 험준한 산악 지역이 아닌 평탄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물론, 옛 조지아 왕궁은 그래도 언덕 위에 세워지긴 했지만.
나는, 서로 죽이 맞아서 잡담을 하며 흥미롭게 주변을 돌아보는 울프스턴 경과 요하네스 의원을 뒤로 하고, 좀 긴장한 모습의 바실과 함께 옛 왕궁이었던 현 트빌리시 총독부 건물로 입성했다. 그리고, 총독부의 회의실을 겸한 홀에서는 예의 흉측한 얼굴과 비틀린 모습의 앙리 콰지모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나를 보며 사나운 미소를 드리우면서 말이다. 나는, 안그래도 머리 속이 복잡한데, 그 와중에 잠시 망각했던 내 악연을 보며 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어서 오십시오, 바실 공동 황제 폐하. 조지아 테마 스트라테고스, 앙리 콰지모토가 경례드립니다. 조지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조지아 총독. 그 동안 조지아를 점령 후 수성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지아의 소요에 대해서는 다소 유감스럽군요. 물론,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만, 저는 가급적 그대가 막강한 적을 섬멸하는 능력만큼, 정복한 영토를 안정시키는 일도 유능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죠. 이번 조지아의 소요에 대해서 본국에서는 여러가지로 그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 사령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외교적 해결을 하자는 명분은 세웠지만 제가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총독의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패전에 대해서도요.”
항상 공손한 바실 치고는 상당히 강한 질책이다. 하지만 무리도 아닌 것이, 실제로 제국 군부와 의회의 분위기는 이번 조지아의 소요에 대한 원인으로 앙리의 실정을 지적하고 있었다. 칠디르 전투 이후 왠지 모르게 열받은 분노를 애꿋은 조지아인들에게 풀어버렸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조지아의 흡수대신에 반발을 유도했다는 중론이다. 실제로, 그는 트빌리시 점령 이후 각 영토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강압적인 방식을 취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것은 조기에 조지아 전역을 장악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체첸에서 타마르 여왕이 봉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유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이후에도 조지아의 반란에 대해서 본국이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갔다. 전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을 타마르 여왕의 군대에 여러 차례 패전을 겪은 것이었다. 특히나, 이곳에 오는 도중에 벌어진 다섯번째 패전에 대해서는 병력 손실이 상당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 병력 손실에 대해서 바실도 이번만은 상당히 진지한 태도로 앙리에게 추궁을 하였다.
바실의 그런 추궁에 어지간한 장성들이라면 쩔쩔매며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앙리는 태연했다. 앙리는 왠지 모르게 나를 한번 보고 잔인한 미소를 한번 씨익 드리워진 다음에 느긋하게 대답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요? 패전 이래봤자, 조지아인들이 같은 조지아인들을 쳐죽인 것 아닙니까? 동족끼리 서로 쳐죽이게 해서 반란의 명분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방식. 이미 세르비아에서 어느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어 확실하게 검증된 반란 진압 방식 아닙니까? 왜 거기는 되고, 여기는 안되죠? 레오 두카스는 조각 미남이고, 앙리 콰지모토는 추악한 괴물이라서?”
이 자식이··· 지금 네가 말한 어느 누군가가 바로 나냐? 앙리는 노골적으로 나를 주시하며, 바실이 꺼낸 추궁에 대해 오히려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외모까지 들먹이며 말하는 앙리의 태도에 되려 바실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앙리 경.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그대의 외모를 두고 차별대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공동 황제께서 저를 의식해서 더 과하게 질책하셔야 하는 입장도 이해하고요. 아마도, 조지아에서 상당한 뇌물이 우회적인 경로를 통해 의회와 군부의 트집쟁이들에게 들어간 모양입니다. 뭐, 무리도 아니죠. 우리의 적은, 자신을 과거 조지아의 영광을 이끌었던 타마르의 후계라고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공동 황제 폐하와의 동군연합을 통한 분쟁 해소는 논하는 쌍년이죠.
자기가 자화자찬하는 것처럼 군략과 책략에 능하고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뛰어난 적입니다. 그러니, 무력을 통한 해방 전쟁을 수행하면서 투트랙으로 우회적인 화해의 교섭도 병행하고 있죠. 그리고 몇몇 제국의 얼빠진 병신들은 그런 당근에 살짝 홀린 상태고 말입니다.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그 빌어먹을 년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 막 던진 공수표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 계략에 넘어가셔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모든 계집년들을 경계하십시오. 그것들은 모두 남자를 속이고 파멸시키죠.”
이 새끼가 정말··· 노골적으로 나 보면서 그딴 소리 씨부리지 말라고. 그리고 바실도 곤란해 하고 있잖아. 하지만, 지옥의 꼽추는 그런 분위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현재 조지아 해방전쟁의 진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진압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발등에 붙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향후 벌어질 반란의 싹을 완전히 제거하고, 더 이상 그들이 제국에 반기를 들 여력과 이유를 상실하게 해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서 더 말할 것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벌어진 연이은 패전을 예시로 들며 이곳의 정황이 불리하다고 주장하겠죠? 하지만, 그것마저도 모두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연이은 패전이 계획에 포함된 것이라고요? 말씀만 들으면 이 상황이 지난번 칠디르 전투의 복기라고 주장하시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칠디르 전역에서는 퇴각이 빈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군 피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바로 그게 포인트입니다. 많은 사상자. 네, 지적하신 그대로입니다.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죠. 다름아닌 조지아인들로 말입니다.”
“······!!!”
제법 살벌한 이야기에 바실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앙리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번 칠디르 전투에서 제국군은 3만에 가까운 조지아군 포로를 잡았죠. 뭐, 정확히 표현하자면 잡았다기 보다는 호수에 빠진걸 건져서 구해줬다는 표현이 맞겠지만요. 아무튼, 그 덕분에 제국군은 생각치도 못한 포로 3만명이 생겼고, 조지아는 그 사이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송환될 곳이 사라진 포로들은 그대로 제국군의 수중에 남겨졌죠. 그들 중에서 병사로 써먹지 못할 수준 미달의 징집병 2만명은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고, 남은 1만명 정도를 조지아 테마군으로 재편성하였습니다.
뭐, 집에 보내지 않은 놈들이라고 해도 정예라고 하긴 민망한 수준이죠. 겨우 머리수나 채우는 것이 고작인 패잔병들이고, 대부분 과거 조지아 강경파의 병사들이어서 충성심도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차라리 전원 처분해버리는 것이 후일을 위해 바람직하지만, 이번 전쟁 덕분에 놈들도 쓸모가 생겼죠. 바로, 자칭 조지아 여왕이라는 계집의 군대를 상대로 한 화살받이로 쓸만하더군요. 이미 들으셨겠지만, 해방군이란 놈들이 봉기한 근거지는 체첸의 그로즈니입니다.
그곳은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를 사카트로밸리라고 부르는 조지아인들과 무관한 체첸인들의 땅이죠. 물론, 체첸은 과거 조지아의 전성기때 병합되어 조지아의 영역이지만 민족으로서는 이방인들이죠. 그래서, 비주류가 된 조지아 온건파들이 그곳으로 밀려나기도 했고, 강경파들의 영지가 제국에 병합되는 와중에도 전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타마르는 그들 체첸인들에게 상당한 대가를 약속하고 봉기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년의 약은 수법은 현재 시점에서 대단히 기묘한 구도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때 앙리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요하네스 의원이었다.
“조지아 해방을 선언한 여왕이, 실제로는 체첸인들을 이끌고 동족인 조지아인들을 유린한다? 지금 그런 상황을 만들었단 말인가?”
“아, 요하네스 의원인가? 정확해.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원하는 그림이 바로 그거였고, 거의 오차없이 현실에 구현되었지.”
앙리의 자신만만한 말에 바실과 울프스턴을 비롯한 파견군의 장교들은 다들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이, 무슨 사악하기 그지없는··· 앙리의 말이 다시 바실에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희희낙낙하더군요. 몇번 져주니깐 당장이라도 트빌리시를 탈환하고 조지아를 해방하리라 생각한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이내 자신이 섬멸시킨 적들이 바로 같은 조지아인들이라는 사실에 당황하였죠. 하지만, 그래도 공세를 둔화시킬 수는 없었죠. 망설이면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니깐요. 그래서, 주저하면서도 계속 공세에 나섰고, 그 결과로 수많은 조지아인들의 시체의 산을 만들었죠. 대단한 여왕 아닙니까? 아마도, 즉위하기도 전에 가장 많은 백성을 학살한 군주로 조지아 역사에 남을 것 같더군요.
덕분에 상황은 패전이 이어졌지만, 흐름은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군 측은 진격하는 방침은 변경하지 않았지만 그 속도에는 완급을 조절하고 있죠. 그리고, 더 이상의 승전이 향후 목적을 달성한 이후 더 큰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약은 수를 쓰기 시작하더군요. 그것이 바로, 현재 제국에 돌고 있는 조지아에 대한 관대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냐는 등의 개소리와 동군연합을 통한 외교적 해법 같은 망상이죠. 이런 개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저쪽이 진격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현재 이곳의 테마군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제국의 개가 되서 조지아 해방군의 공적이 된 놈들. 놈들에게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습니다. 해방군이 승리하면, 놈들은 동족을 배신하고 제국에 복무한 배신자로 처분당할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죠. 거기다 그것을 증명하듯 조지아의 여왕은 전장에서 조우한 자신들을 체첸인들을 몰아 자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모지리들이 죽고 그나마 쓸만한 놈들만 살아남았죠. 그래서 점점 병력들은 정예화 되고 신뢰할 만하게 되었습니다.
연달은 패전을 겪으면서, 놈들은 더 이상 타마르를 자신들의 여왕이 아닌 적으로 생각하고 싸울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제국에 잘보이기 위해 꼬리를 흔들고 있죠.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오면 해방군에 반격을 가해 반드시 이번 전쟁을 제국의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패전을 겪으면 겪을수록 우리 측에 유리하고 적에게 불리한 상황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전황입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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