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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한 내용이지만··· 사실 몰다우 전선은 여러 차례 승전보를 거두고 활발한 정복 작업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부에서는 다소 관심이 떨어지는 지역이죠. 무리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제국의 최우선 관심지역은 신성동맹과 마주한 크로아티아, 일칸국과 무슬림 제후국들과 마주한 아나톨리아 동부, 그리고 복잡한 정치적 관계가 맞물린 이탈리아가 될 수 밖에 없겠죠. 같은 최전방이라고 해도, 다소 위기 수위가 낮고 오랫동안 제국령이 아니었던 왈라키아와 몰다우의 동북방면은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군부에서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왈라키아 테마군은 넘치도록 충분한 본국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그 흐름을 타고 상승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군부와 행정부의 이해를 넘어 제국의 모든 시민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런 제국의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좀더 받을 수 있도록, 경과보고서를 다소 과장되고 낮은 수준으로 만들어서 보냈는데··· 너무 그것에 몰입하다 보니,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도무지 보고서라고 하기도 민망한 물건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렌필드 시종장의 꾸중을 단단히 듣고서야 비로서 잘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낸 보고서에 대해서, 결코 제국 군부와 황실을 기만하거나 하찮게 봐서 그런 것을 적은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발송되는 보고서에 대해서는 공녀님께서 경고하신 바와 같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제대로 된 보고서의 양식을 갖추어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적하신 것과 같은 조잡한 형식의 보고서가 제출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마음 속으로 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확실히, 사람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면 제국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사람도 드물지. 나름 변방의 군주로서 관심을 끌기 위해 흥미 위주로 수준을 낮춰 쓴 보고서를 올리고, 그걸로 시민들에게 흥보까지 해야 했다는 점에서 얼마나 이 양반이 열심히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고, 그에 대해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생각해 보면··· 당대에 전설로 남은 양반도 문체는 이 양반이랑 도찐개찐이잖아. 근데 그걸 보고 본받으라며 다그치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봐도, 내가 심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심정을 담아 말했다.
“보고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해주신다면, 진심으로 대공님에게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셨던 문체를 절필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 제가 드리기는 외람된 말일지는 몰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제가 문제로 여겼던 것은, 공문서가 가지는 신뢰성에 대함이었지, 대공이 원하시던 동북방면에 대한 관심을 끄는 일까지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쓰셨던 글, 이미 황도에서는 많은 팬들이 있고 그것을 통해 왈라키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취지의 글이 사라지는 것도 온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고서와 별개로, 군사 기밀이 없는 범위에서 그런 글을 쓰시는 것이라면 괜찮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그게 딱히 누구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 글로 인해 소외된 감정을 많이 느낄 왈라키아와 몰다우에 황도의 관심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니깐요. 그리고, 황도에 있는 많은 팬들··· 공동 황제 폐하를 비롯한 다른 이들도 대공님의 저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그만두시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업무와 구분된 영역에서 쓰시는 사적인 글이라면 얼마든지 용인되고 환영받을 것입니다.”
나의 말에 대공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서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아··· 다행이군요. 공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그런 글은 업무와 구분하여 쓰도록 하지요. 그리고, 제 글을 이곳 황도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의욕이 생기는 군요. 갑자기 마구 창작 의욕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신 공녀님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그런 창작 활동에 대해서도 좀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좋은 생각이시라 사료됩니다.”
네가 하는 창작이라면··· 그 유치찬란한 것들? 왠지 렌필드 경의 비명이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마음 속으로는 말리고 싶었지만 업무와 구분하여 하겠다는 일에 대해서 내가 개입할 것은 아니지. 그리고, 어차피 앞으로 보고서만 제대로 제출된다면 내가 상관할 바는 없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그의 말에 동의하고 알현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나를 보면서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가지만 더 공녀님의 의향을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몰다우 전선의 기록과 무관하게··· 제가 요새 여가 삼아 쓰고 있는 글이 있습니다. 바로, 제 자서전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말년에 한꺼번에 몰아서 쓰느니, 젊은 시절부터 미리미리 틈틈히 기록을 해서 나중에 편하게 정리하려고 하는데··· 그, 자서전의 문체와 전개는 제게 익숙한 방식으로 써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전반적인 이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제 소견을 주관적으로 담아서 써도 괜찮을까요?”
그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서전? 그야 뭐 어떻게 쓰던 자기 마음이지. 유치찬란하게 써도 누구한테 폐를 끼칠 것도 아닌데, 그걸 왜 굳이 나한테 물어봐? 가장 창피한 것은 본인과 본인 지인들이 고작일텐데. 그리고 어차피 자서전이면 자기 얘기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뭘 어떻게 쓰던 자기 마음이지. 내가 상관할 바는 없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당연하죠. 대공님의 자서전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대공님의 생각과 마음을 담으시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굳이 저에게 물으실 필요도 없이 당연한 말이라 생각합니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 공녀님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심히 돌아가시길···”
그렇게, 왈라키아 대공과의 알현은 끝났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로 그의 약속대로 군사보고서는 정상적인 양식으로 황도에 제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필드 경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군부의 보고서와 별개로 황도의 서점에서는 인기 시리스, ‘몰다우는 쇠퇴하였습니다.’ 속편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군사 보고서에 들어가는 기밀을 삭제하고, 거기에 좀더 과장이 보태지자 내용이 더 재밌어 졌다는 반응이라나. 그래서, 렌필드 경은 황도에 보고를 할 때 마다 지독한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뱀파이어 세자매 변신 안한다고!!! 속성 변신이랑 합체기는 또 뭐야? 대공님, 타타르인들의 뼈로 만든 오르간 친적 없어!!! 오르간을 어떻게 사람 뼈로 만들어? 뭐? 내가 몇번째 부활했냐고? 안죽었어!!! 부활은 무슨 개뿔의 부활!!! 뭐? 이모탈 속성 얻은 거냐고? 그런 거 없다고, 이 미친 놈들아!!! 제발 그만 좀 해!!! 왈라키아도 사람 사는 동네라고!!! 그건 대체 어디의 생지옥이냐!!! 대공님, 제발 좀 그만 하라고요!!!”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도 그저 멀리서 그를 위해 성호를 그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황도를 잠시 떠들썩하게 했던 고문서 귀환 사건과 문체 반정과 몰다우 전선 보고서의 일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머리 속에 떠올리지 않고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차피, 나랑은 이제 무관해진 일들이니깐. 아아··· 제발 저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로 다시는 엮이지 말기를···
그리고 수백년 후
“오오오!!! 교수님, 드디어 발견하였습니다.”
“응? 무엇을 말인가? 서··· 설마!!!”
“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번에 황궁 비밀서고에서 지정된 봉인시간을 넘기고 개봉된 봉인함에서 나온 그 문서. 바로, 왈라키아 대공의 자서전이었습니다. 격동기에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그것이 실제하였습니다.”
“오오오!!! 이는 정녕 주님의 은총이로다. 드디어, 우리는 마주하게 되었군. 베일에 휩쌓인 공녀의 모습에 대해서 말이야. 공적인 기록은 많지만, 당시 사적인 기록은 희귀하여 개인적인 면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그녀에 대해, 유일하게 개인적인 관점에서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그 문서. 이미 사라져서 환상의 문서로만 불리워지던 그것이 실제하였어. 오오오··· 주여 감사하나이다. 어서, 펼쳐보게. 지금 나는 미치도록 궁금하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 나는 당장 읽어보고 싶네. 어서!!!”
“알겠습니다. 읽겠습니다.”
그리고 조교는 낡은 자서전의 책장을 넘기고 그것을 읽었다.
“크큭, 이슬람의 검. 그 자의 기술을 적에게 돌려주어라. 히메리우스여··· 그대를 사람잡는 어부로 쓰겠노라. 사막 위로 배를 몰아라!!!”
“크로스카운터!!! 커헉!!! 더블 KO인가? 늑대, 이 자식··· 만만치 않구나. 너, 내 동료가 되라!”
“내가 보낸 계집 맛이 어떻더냐? 지옥의 꼽추여. 네 등에 달라붙은 그 서큐버스의 대가로 네 영혼과 지혜를 내놓아라. 크하하하!!!”
“파티를 시작하죠. 나의 친애하는 시스터, 쥬노. 가서 접시를 준비하세요. 재료는 불가리아인들의 두개골이에요. 니케포루스는 땔깜으로 써도 괜찮아요. 하루면 충분하겠죠? 우아하고, 품위있게··· 그리고 저속하고, 잔혹하게!!! 굽기는 미디움 레어가 좋아요.”
“오오오!!! 이겨내요. 용사여, 눈을 뜨세요. 어서 정신을 차리고 우리들을 위해 일어서 주세요.”
“황후 마마··· 들리십니까? 제가 마마를 위해 올리는 환희의 노래입니다. 20만 베니스인의 단발마로 연주한 최고의 화음으로 당신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겠습니다.”
“크큭!!! 7대 악마들아. 내가 너희들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리노니··· 이곳이 너희들의 판데모니움이며, 너희의 주인이 우리의 여주인 릴리스니라. 복종하라!!!”
“여기 모인 모든 신을 섬기는 자들아. 서로 죽여라. 전쟁이다!!! 서로 맞붙어서, 목숨을 걸고 너희들의 신앙과 교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라!!! 크하하하하!!!”
“오오오··· 나의 섬김을 받는 황제시여. 그대에게 하늘과 땅과 사람을 바치오니··· 나의 주군께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리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잠시, 연구실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
“······!!!”
그리고 교수는 말했다.
“조교수.”
“네, 교수님.”
“덮자.”
“네.”
“봉인함에 똑똑히 기록하게. 앞으로 500년 더 봉인 지정. 개봉 시 강한 주의와 비장한 각오를 요함.”
“후손들이여··· 비겁한 우리들을 용서하라···”
그렇게, 당대의 인물에 가장 근접한 사료로 여겨지는 비밀의 문서는, 두 사람에게 심각한 정신 오염을 준 후 다시 미래를 기약하며 기나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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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중에 하나는 실제로 했던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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