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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미 군의 열병식에 제국군 총사령관이 그거 입고선 열병을 받겠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는데 그걸 어떻게 물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실이 그 녀석이 흔치 않게 그 물건에 대해서는 강렬하게 가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걔가 우리 집에서나 막둥이 면한 밥돌이지만, 제국에서는 차기 후계자에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녀석이라고요. 근데 그걸 걔한테서 뺏어 오라고요? 양심 어디?
“불가능한 임무입니다. 혈태자는 이미 그것을 자신의 망토로 삼기로 결정하였단 말입니다.”
“그래도 해내야만 한다. 그것이 제국의 손에 넘어가서 그들의 것이 된다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한 것이 된단 말이다. 신성동맹에서 가장 강력한 입김을 가진 열강 중에 하나인 프랑스가 빛 바랜 푸른색으로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쟁 발발 사유가 될 수 있다. 색은 단순한 상징이 아닌 정치란 말이다.’
또 다시 색채의 정치학인가? 요하네스 의원의 설교를 좀 귀담아들을 걸 하는 후회마저 밀려왔다. 그리고, 시녀장님의 다급한 말은 이어졌다.
“거기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오를레앙 공의 입지를 생각해 보면 결코 이것은 우리 헝가리 측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이미 말했다시피 오를레앙 공은 프랑스 왕실의 유력한 왕위 후보다. 일각에서는 나약한 샤를 왕세자보다 오를레앙 공이 더 왕위에 어울린다는 평도 있을 정도지. 그리고, 그분의 부인이신 오를레앙 공비는 우리 헝가리 왕가의 인척인 펙스 아르파드가의 기셀라 공녀님이시다. 우리 주인이신 카밀라 공녀님과 거의 같은 위치를 가지신 분이지.
그런 기셀라 공비님과 결혼한 오를레앙 공 쟝은 신성동맹 내에서 친 헝가리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만약, 이번 기회에 그분이 제국이 소유하려던 천상의 푸른색을 탈취하여, 그것을 그분의 것으로 한다면? 아마도 프랑스 내에서 그가 왕위에 어울린다는 의견은 더 커질것이다. 프랑스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푸른색을 뛰어넘는 지고의 푸른색을 걸친 자는 그런 명성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우리 헝가리에도 불리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번에 반드시 그것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 천이 오를레앙 공과 공비에게 전달되지 않고 제국이 소유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큰 문책과 대가를 치뤄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그럴듯한 이유는 있다. 그것이 성사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그 불가능에는 왜 내가 도전해야 하는 거냐고요!!! 하지만 역시나 항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녀장님의 알현을 마친 나는 착찹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마침, 이번 일의 계기를 만든 두 웬수, 바실과 쿠타이가 일찍 들어와 있었다. 어흑, 그 망할 놈의 자초랑 지름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런 고생은 안하잖아!!! 그때 쿠타이가 나를 보며 반겼다.
“앗! 누나, 어서와. 저녁은 내가 차렸어.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는 좀 늦으신다고 하시니, 오늘은 바실 형이랑 같이 우리 셋이 저녁 먹으면 될 것 같아.”
“아, 그래··· 고맙구나. 이따 먹고 정리는 내가 할게. 응? 근데··· 태자님은 지금 뭐하세요?”
“아, 공녀님. 잠시 정신을 딴 곳에··· 이번에 맞추게 될 제국군 총사령관 예복의 망토 디자인을 보고 있었어요. 어휴, 다들 너무 멋져서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네요. 양이 겨우 2벌 밖에 못 만드는 천상의 푸른색이라고 하니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아, 마침 공녀님에게 선사될 드레스 디자인도 여기 있어요. 여기서 고르시면 될 것 같아요. 한번 보세요.”
아흑, 양심의 가책이··· 왠지 선물 사주겠다는 말에 들떠 있는 애한테서 사정이 있어서 빼앗겠다는 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황후 마마에게는 말씀드려봤자 말만 꼬일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당사자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무리 후계자의 권위니 뭐니 해도 본인이 사양하겠다면 황후 마마도 무리해서 그런 고가의 천상의 푸른색을 구매하려고 하진 않으시겠지. 그래서, 나는 양심의 가책을 억누르며 바실에게 운을 띄웠다.
“저, 태자 마마. 죄송하지만 한가지 제안을 드려도 될까요?”
“네! 뭐든 제안해 보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 어께가 좀 파인 것이 좋지만, 공녀님께서 원하시는 취향이 있으실 테니, 마음에 드시는 걸로 골라보세요.”
“아뇨,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것은 드레스 디자인이 아니라요··· 그 드레스를 만들 원단인 천상의 푸른색에 대한 것입니다. 좀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천상의 푸른색, 구매하지 않으시는 것이 어떨까요?”
나의 말에 바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표정은 명백하게 당혹스러움이었다.
“아니, 왜요? 저는 그 푸른색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살던 카르브나 지방에서 흑해와 맞닿은 하늘색처럼 선명하고 빛나서 저 색을 꼭 가지고 싶은데요. 그런데 공녀님께서는 그걸 그만두라고 하시다니···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요. 이유를 좀 설명해주실 수 없으실까요?”
나는 바실의 요구에 머리 속으로 생각하여 정리한 것을 이야기할 준비를 했다.
“거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휴, 어쩌다 보니 내가 이런 황당한 상황 모면을 위한 전담발표자가 되어가고 있냐? 왠지 크림에서의 삽질을 반복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첫번째 이유는 바로 제국이 가지고 있던 보라색의 전통입니다. 수쳔년을 이어온 보라색의 권위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제국이 가지는 권위와 계승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존에 이어져온 보라색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 이유는 천상의 푸른색이 가지는 가치입니다. 틀림없이 상서롭고 비할 바 없는 보석 같은 푸른색이라 그 가치가 무한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가격 또한 엄청나죠. 아직 제국에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고, 가난한 백성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런 초고가의 옷을 입는 것은 자칫 민심을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세번째 이유는 군의 충성과 관련있습니다. 오랫동안 포르피로게니타에게 충성했던 군의 열병식에 그들이 충성하던 보라색이 아닌 적성국 프랑스의 색인 푸른색을 입고 나타나신다면, 군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군의 기강을 확인하고 그들의 충성의 대상을 명확히 해주는 중요한 열병식에 입고 가실 옷으로 적성국의 푸른색은 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 이 정도면 설명은 충분하겠지? 이제 바실이 너는 내가 한 말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면 만사가···
“첫째, 그 전통의 티레니안 퍼플로 만들어진 보라색은 우리 동생이 제국에 가져온 자초로 인해 값어치가 떨어졌습니다. 색이 가지는 권위는 그 값어치에서도 기인하는데, 그 가치가 떨어진 보라색이 더 이상 황제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너무 흔한 색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그 권위의 무게가 줄어든 시점에서 정말로 제국의 권위를 주장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진 색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보입니다.
둘째, 시민들은 황실의 사치에 대한 탄식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색의 도입에 대해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어마마마께서 해오신 검약한 황실 살림 덕에 그 정도의 사치는 용인해줘도 된다는 반응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오랫동안 제국의 상징이던 색을 기존에 본적 없는 광휘가 도는 새로운 색으로 바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패션이고 유행이라고 하던가요? 지금으로서는 그 푸른색을 파기하는 것이 더 반발을 살 것 같습니다.
셋째, 제국군의 충성의 대상은 포르피로게니타가 아니라 군기 아퀼라와 제국 그 자체입니다. 저는 그들의 총사령관일 뿐 그들의 충성의 대상이 아닙니다. 군은 한 개인에 대해서 충성해서는 안됩니다. 군이 충성할 대상은 나라와 시민들이고, 황위 후계자라고 해도 한 개인이 보라색 권위를 통해 그들의 충성을 독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총사령관이 뭘 입던 그들의 충성의 대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총사령관이 파란색 입었다고 적군으로 착각하는 얼간이는 조기 전역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야! 너 바실이잖아. 이런 건 너답지 않아. 유치하고 한심··· 이 아니라, 진지하고 똑똑해! 그런 건 내가 아는 바실이 아니라고!!! 나는 예상치 못한 논리적인 바실의 반박에 할말을 잃어 버렸다. 우와, 이 자식 정말로 되게 파란 망토 입고 싶었나 보네. 나는 얘가 이 정도로 진지하게 뭔가에 열중하는 걸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고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얘가 그걸 가지려는 걸 막을 방법이 없잖아.
말문이 막힌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냈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문득 되게 유치한 방법 한가지가 떠올랐다. 어라? 이건 너무 방법이 유치한데. 이게 먹힐까? 지금 얘는 충동 구매가 아니라 진지하게 정치적인 고려까지 해서 파란 망토 입겠다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 밖에··· 나는 바실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하는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드린 제안을 반려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공녀님께서 이해해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은 태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지만··· 조금은 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군요.”
나의 말에 바실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네? 조금 아쉬움이 남으신다고요? 어떤 것 때문이신지요?”
그런 바실의 질문에 나는 조금 토라진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바실에게 말했다.
“저 개인적으로는 푸른색보다는 보라색을 좋아합니다. 하늘이나 바다에 흔해터진 파란색보다는 예로부터 고귀함의 상징인 보라색을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왔죠. 그래서, 이번에 황실에서 저에게 천상의 푸른색으로 옷을 맞춰주신다고 하실 때 내심 실망감마저 들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천상의 푸른색보다는 제국의 보라색을 하사 받을 수 있기를 더 선망하였거든요.”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그건 제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공녀님에게는 천상의 푸른색 대신에 티레니안 퍼플로 된 보라색 옷감을 드리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네? 어째서요? 보라색을 더 선호하신다면서요? 그런데 푸른색도 거절하시고, 보라색 마저 거절하신다니···”
“하아··· 태자님은 사람의 마음을 모르시는군요. 저는 그저 단순하게 보라색을 입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모르시겠어요? 저는 보라색을 태자님과 같이 페어로 입고 싶은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저희 둘이서 같은 보라색으로 옷을 맞춰입고 열병식에 참석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하하하··· 뭐, 그냥 그런 것이 병사들에게 약간의 호사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아··· 어울리지도 않는 끼부리는 것도 못해먹을 짓이네. 그리고, 내가 해놓고도 한심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색채의 정치학에 얽힌 이야기다. 그리고 바실은 그 정치적 이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택한 확고한 결론이고. 그런 바실한테 이런 한심하고 말같지도 않은 이유가 절대로 먹힐리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황제 폐하! 구매하신다면서요?!!! 제국의 새로운 색으로 태자께서 입고 열병식에 참석하신다면서요.”
“아니, 난들 어떻게 하라고. 당사자가 죽어도 보라색을 입겠다고, 천상의 푸른색은 필요없으니 가지고 꺼지라고 하잖아!!!”
···있구나!!! 야, 이··· 바실이 녀석아!!! 정말로 그 말 한마디에 대금만 안냈지 거의 구매 완료된 천상의 푸른색을 포기해버린 거야? 교역상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황제에게 항의를 했고, 황제는 생각치도 못하게 악덕 소비자가 된 죄로 교역상들에게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옷을 바실이 구매하는 일은 없었고, 제국 황실에서 구매를 거부하자, 제국 내 다른 유력자들도 감히 그것을 살 의도를 자제하는 바람에 교역상들은 제대로 바람맞아 버린 것이다.
결국, 교역상들은 다른 소소한 거래는 성사하였지만, 그들이 노렸던 가장 중요한 교역품인 천상의 푸른색은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채로 제국에 이를 갈며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이후 열병식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열병식에 참석한 병사들과 유력자들과 시민들은 거기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색을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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