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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부대로부터 크림 테마 본부에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뭐라고요? 그들 유목민족들이 하루 정도 초원에서 체류를 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크림을 향해서 남진을 시작했다고요?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바실 태자님과 바랑기안 근위대라고요?!!!”
나를 비롯한 크림의 귀족들은 생각치도 못한 소식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타이투스를 비롯한 일부 크림의 귀족들은 내심 거기서 바실의 목만 돌아오기를 기대했었는지 약간의 실망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이내 도저히 정황 파악이 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았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여기 크림에 있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죽은 목숨일지도 모른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의 바실의 동향에 대해서도 나는 정찰병들이 보고한 결과와 나중에 전해들은 정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바실의 동향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원래 여러분들이 향하던 크림을 향해서 우리와 동행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드네프르강 남쪽은 영유권이 불명확하여 제국군의 왕래가 빈번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아직 킵차크 영역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안전하게 제국으로 귀순하기 위해서는 원래 목적지였던 크림으로 이동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루 정도 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부족하기 그지 없지만 급한 환자들과 노약자들에게 식량이 배급되었다면 이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바실의 말에 퉁기스 장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의 의사와 무관하게 크림은 우리 유목민족들의 합류를 결코 반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오랜 시간 우리는 킵차크의 병사로 그들과 싸웠던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폐하께서 저희를 먼저 찾아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몰살시킬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자들이 과연 저희들을 보고 순순히 크림 라인의 성문을 열어줄까요?”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바실은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순히 열지 않는다면, 열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야겠죠.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저 폐하께서 명하시는 것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곧 출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무리 중에서 제국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먼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측에 귀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상당히 많은가요?”
“전체 무리의 약 2할 정도입니다. 그들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생각과 여러가지 이유는 있기 마련이니깐요. 억지로 합류시켜서 나중에 제국에 우환이 되느니, 지금 여기서 결별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퉁기스 장로의 말을 곁에 있던 쿠타이가 받았다.
“장로님. 그들에게 많이 남진 않았지만, 일행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과 말들을 최대한 많이 줘서 보내십시오. 그 대신에 가는 행선지를 우리와 겹치지 않게 크림이 아닌 동쪽으로 향하라고 부탁하세요. 어차피 귀순을 거부한 사람들 대부분은 옛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거나, 혹은 초원의 빈 땅에 새로운 땅을 점거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니 크게 거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좋게 돌려보내는 것이 앞으로 우리도 그렇고 제국에도 이로울 것입니다.”
“음. 그래.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가능한한 가진 것들을 그들에게 많이 넘겨줘서 불만이 없도록 하마. 네가 마침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구나. 그래, 그러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좋겠지.”
그 모습을 본 바실은 쿠타이의 영특함에 조금 흐믓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같은 길을 가기를 거부한 이들을 보내야 하는 퉁기스 장로에게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저 역시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가져온 보급 물자도 일부 넘겨줘서 그들을 보내도록 하죠. 다들 같은 마음이면 좋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요. 이런저런 일로 고민이 많으시겠군요. 하아아··· 그러고 보니 남의 일처럼 얘기할 것도 아니군요. 이제, 여러분은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니 그것은 곧 저의 고민이기도 하군요.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이것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크림으로 가야한다고 의사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저 역시도 감히 가늠하기가 어렵군요. 그리고, 제 입으로 여러분들을 보호할 것이라 약속하였지만 제국에서 당장 여러분들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우려스럽구요. 아마도, 모두가 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여러분을 대하지는 않겠죠? 저는 그것이 고민입니다.
행여나 이 모든 일을 저의 독단으로 규정하고 제국이 여러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거나, 의식주의 제공을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어찌해야 할지 솔직히 말해 답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곳으로 가는 여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아··· 그것도 다 따지고 보면 제가 불민한 탓이겠죠. 제가 조금만 더 정치적인 부분에 현명함을 가졌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그렇게 말하며 바실은 지금 옆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퉁기스 장로는 바실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저희들로 인해 큰 짐을 떠안으신 것에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제국에서도 상황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듯 하군요. 그리고, 폐하께서 짊어지셔야 할 여러가지 고난에 대해서 짐작이 갈 듯 합니다. 근데, 처음부터 여쭤보아야 할 질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는 어째서 그 초원에서 소수의 병력만을 대동하고 저희와 조우하신 것인지요? 저희 입장에서는 대군을 이끌고 오시지 않은 폐하의 담대하심에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만, 저희를 회유하실 뜻이셨다면 굳이 그렇게 위험하게 소수의 병력만으로 오실 필요는 없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요?”
그러자 바실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바실을 대신하여 안드로니쿠스가 이야기 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어떻게 된거냐 하면...”
그리고 안드로니쿠스는 그들이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경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을 듣던 퉁기스를 비롯한 장로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조심스럽게 바실에게 말했다.
“폐하.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저희가 듣기로는 지금 폐하께서는 뭔가 상당히 악의적인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저희가 비록 무지한 초원의 백성이오나 먹은 나이가 있어 사람들의 일은 조금 압니다. 폐하의 인덕과 저희의 상황이 절묘히 맞아들어 다행스럽게도 폐하의 안위가 보존될 수 있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초원 위에서 저희는 누군지도 모르고 눈앞에 나타난 폐하의 일행을 섬멸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어쩌면 저희들의 손을 빌어 폐하를 해하고자 했을지도 모르는 흉측한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장로들의 말에 쿠타이가 그의 스승을 보며 말했다.
“아, 스승님. 이런 것이 바로 차도살인지계라고 하셨죠? 말로만 들었을때는 막연했는데, 실제로 체감해보니 무시무시하네요. 폐하. 이런 무시무시한 계략을 세운 자가 누구인가요? 폐하에게 저희들이라는 죽음의 장소로 갈것을 제안한 사람이 누군입니까? 여기서 이유와 동기를 가진 사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이 계획을 실행하려 폐하의 손에 건낸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러자, 바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할말을 잃었다. 왜냐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받아들여 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실은 고개를 돌려 요하네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실의 시선을 받은 요하네스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의 말에 오류가 없습니다. 뭔가,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일이 그녀에게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도 함부로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였든 그 의도가 폐하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다는 사실 밖에는···”
그러자, 제국의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초원의 백성들도 긴장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한참 후, 바실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단은,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확인해 보는 수 밖에 없겠죠. 일단은··· 남쪽으로 가도록 합시다. 지금, 그곳으로 빨리 가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생긴 것 같으니깐요.”
그리고, 바실의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각 부대와 부족들은 숙영을 마치고 이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드네프르강 남단의 초원에서는 거대한 유목민족들의 물결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물결은 곧바로 남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행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제국과 킵차크의 국경선인 크림 라인의 장벽에 도달했다. 제법 굳건한 장성과 장성 외곽의 요새 성채들이 철통 같은 기세로 크림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바실은 대열에 정지를 명하고 바랑기안 근위대와 같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바실이 다가오자 성벽에서 눈앞에 거대한 사람의 물결에 경악하던 크림 라인 수비대는 더 경악했다. 그들은 얼마전 그곳의 관문을 통해 나섰던 바실의 모습을 보고 마치 귀신을 본듯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태··· 태자 마마? 어떻게 여기에?”
“그렇다. 크림 라인 수비대여. 내가 귀환하였다. 어서, 관문을 열어라.”
바실의 지나치게 차가운 말투와 그 요구에 그들은 기겁했다. 그래서, 그들이 황급하게 소리쳤다.
“그럴수는 없습니다. 저 뒤에 있는 적들의 거대한 무리는 대체 무엇입니까? 저들을 두고 함부로 성벽을 열수는 없습니다. 저희들은 크림을 지키기 위해 크림라인의 수비를 테마 본부로부터 명받았습니다. 아무리 태자 마마의 명령이시라고 해도, 본부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관문을 열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바실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마치 마음 속에 불안과 우려는 누군가 쏟아부을 상대라도 필요한 것처럼. 그가 말했다.
“아니, 너희들은 관문을 열어야 한다. 지금부터 너희들의 명령권자는 크림 테마가 아닌 제국군 총사령관이니깐. 현 시간부로 크림 사태의 위기 수준을 기존의 테마군 대응 수준에서 통합군 대응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저 뒤에 있는 자들은, 킵차크를 탈출하여 제국의 품에 안긴 자들. 나는 그들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들은 이제 제국의 백성이다. 이제 크림 사태는 몰려오는 이민족을 장벽에서 격퇴하는 작전이 아닌, 제국으로 도망치는 저들 제국의 백성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테마군이 감히 감당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현 시간부로 지금의 상황은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직접 통합군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명령권자는 테마가 아닌 바로 나다. 지금, 당장 관문을 열어라. 어명이자, 군령이다. 만약, 너희들이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을 제국군 최고사령관에 대한 항명이자, 공동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징은 내가 직접 바로 진행할 것이다. 내가 직접 지휘하는 공성전을 너희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더 지껄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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