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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아찔하기 그지 없었다. 나도 어지간하면 창문으로 탈출할 생각을 안해 봤을까? 그러나 높이나 구조를 보고 조기에 포기했던 것을 지금 갑자기 준비할 겨를도 없이 내려가야 하니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을 휘청거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작은 요철만 존재하는 구조는 한눈 팔았다가는 즉사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바실과 근위대장은 내가 붙들고 가는 아슬아슬한 경로를 잘 따라왔지만, 가는 와중에 종종 부는 바람과 디딜 곳이 없는 루트에서 나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몇번이고 넘겨야 했다. 아아악!!! 대체, 왜 내가 여기서 이런 짓을 해야만 하는 거야? 나 대신에 진짜 카밀라 공녀님이 오셨으면 이런 일 안시켰을 거잖아!!! 대체 왜 나는 저 개념없는 공동 황제의 혈육 찾기에 동원되서 이런 안해도 될 짓을 해야만 하는 거냐!!! 그런 생각이 사무치게 들고, 중간중간에 경로가 막막할 때 마다 밀려오는 분노에 나는 빡쳐서 근위대장을 보며 소리쳤다.
“아아악!!! 이 모든 것은 전부 태자님 때문이야!!! 근위대장님! 바실, 이 개자식아!!! 라고 소리쳐도 괜찮아요?”
“안돼!”
“왜요! 이 와중에 황족 모독죄라도 적용하실 거에요?”
“아니. 황족 모독이 아니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저 자식이 개자식인 건 맞지만 없는 곳에서 소리쳐.”
“우와. 형이랑 공녀님은 여유가 있으시구나. 그럼 그 기세를 몰아 서둘러 내려가죠.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깐요. 그리고, 슬슬 들킨 것 같으니깐.”
그렇게, 나와 근위대장이 바실에 대한 성토의 비명을 지르며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바실은 느긋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리고 바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말로 밑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뭐, 뭐야? 벽에 저 놈들은? 맙소사, 경비가 줄은 틈에 저 녀석들이 창문을 통해 탈출했어!!!”
“어서, 두목과 조직에 알려. 증원을 불러와. 그리고 어서 올라가서 놈들을 잡아!!! 두목이 알면 우린 다 죽어!!!”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우리는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난간을 내려오는 속도를 더 높였다. 다행스럽게도 종탑의 높이는 높았고, 중간에 창문들이 별로 없어 우리를 중간에 떨구거나 잡을 방법은 없었다. 내려오는 것이 죽을 것 같은 난이도가 녀석들에게는 잡는 것도 죽을 정도로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속도를 높여 벽을 붙잡고 내려갔고, 어느새 종탑에 붙은 수도원 지붕이 가까워지자 누가 말할 필요도 없이 동시에 지붕위로 벽을 박차고 황급하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땅바닥에 던진 계란 꼴이 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 바실이 소리쳤다.
“수고하셨어요, 공녀님. 그리고 달려요. 여긴 녀석들이 추격할 수 있어요. 아앗! 벌써 나타났다. 저쪽으로 달려요!!!”
“저 자식들 잡아!!! 거기 서라!!!”
죽을 위기를 넘기고 종탑을 탈출해서 수도원 지붕에 도착 하자마자, 저 너머에서 문이 열리고 우스타샤의 행동대원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 바실이 가리킨 곳으로 달렸다. 그가 가리킨 곳은 수도원과 인접한 건물들의 옥상에 연결된 밧줄이었다. 아마 평소에 축제 장식을 하거나 짐을 옮기는 용도로 쓰는 것으로 보이는 밧줄은 수도원의 반대편 건물로 연결되어 있었다. 라구사 시가지에는 대체적으로 3-4층 정도 높이의 빌라 건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건물들이 옥상과 옥상으로 밧줄이나 난간 등으로 연결된 곳이 많았던 것이다. 바실이 소리쳤다.
“줄을 잡고 건너가요. 수도원만 벗어나면 주택과 상업 건물들은 간격이 좁아서 뛰어서 도망칠 수 있어요.”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틈도 없이 뒤에서 달려오는 추격을 피해 줄에 매달려 건너편 건물 옥상으로 건너갔다. 바실이 가장 먼저, 그리고 나와 근위대장 순서였다. 그래서 약간 내리막으로 드리워진 밧줄을 타고 바실이 먼저 건너편 건물로 건너갔고, 그리고 내가 밧줄에 매달려서 넘어갔다. 그리고 근위대장이 줄에 매달린 순간 우스타샤가 아슬아슬하게 도달했다.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직 근위대장은 건너오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건 근위대장도 알고 있었다. 근위대장은 우리가 건너온 수도원 난간에 도달한 우스타샤가 밧줄로 뒤따라 오려는 것을 보자, 잠시 망설이더니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바실, 밧줄을 끊어!!!”
뭐? 뭐라고? 그런데 그때 바실은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곧바로 도착한 옥상에 연결된 밧줄의 고정 고리를 풀어버렸다. 그리고 줄이 풀어지자 마자 거기 매달린 근위대장과 우스타샤는 바닥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콰다다당!!’
우스타샤의 행동대원들은 대부분 돌바닥에 나뒹굴며 나자빠졌다. 그리고 근위대장은 풀려진 밧줄의 반동으로 허공을 질주하다 타이밍 좋게 수도원 뒷편의 건초더미로 몸을 던졌고, 낙법을 취하며 땅바닥에 아찔하게 착지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우스타샤 행동대원들처럼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그걸 증명하듯이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대로 자신을 추격하다 돌바닥에 내팽겨쳐져서 나자빠진 우스타샤 행동대원들의 무기를 빼앗아 무장하고 우리를 보면서 소리쳤다.
“난 괜찮아. 곧 올라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런데 그때 저 너머 수도원의 문이 열리며 우스타샤의 행동대원들이 나왔고, 저 너머 골목에서도 수십명의 한덩치 하고 험악한 인상의 행동대원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바실이 근위대장에게 소리쳤다.
“형, 여긴 괜찮으니 올라오지마. 그대로 몸을 피해!!! 그리고 렉터궁으로 가! 지금 당장 가에타니 렉터를 만나서 신분을 밝히고, 혼란을 겪고 있는 라구사군의 진압을 지시해줘. 지금 그게 더 급해. 나는 나대로 몸을 피할 테니 어서 가!!!”
안드로니쿠스는 바실의 말에 당황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있는 옥상으로 향하는 길 쪽에서도 우스타샤의 지원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그는 빠른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소리치며 달려갔다.
“절대로 잡히지 마!!! 내가 라구사 병력을 이끌고 구하러 올 때까지 공녀와 같이 도망쳐!!!”
그리고 렉터궁으로 달려가는 그를 향해 일군의 사람들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근위대장을 보면서 황망한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겨우 탈출을 하긴 했지만 아직 우스타샤가 수백명도 넘게 깔린 상황에서 가장 든든한 전력을 저렇게 따로 보내면 어떻게 하라고.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바실이 근위대장에게 지시한 사항 역시 타당했다. 그래서 당황하는 찰라, 저 너머에서 우스타샤가 소리쳤다.
“저 옥상 위에 도망친 놈들이 있어. 저 덩치는 베니스와 카탈루냐 놈들에게 맡기고 저 옥상 위로 올라가! 어서!!!”
맙소사. 부상당한 놈들이 소리치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다. 그리고 함성 소리와 함께 놈들이 우리가 있는 옥상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경악해서 소리쳤다.
“맙소사. 태자님, 어서 도망쳐야 해요!!! 어서 놈들의 눈을 피해서 숨지 않으면 안돼요!!! 움직여요.”
“일단, 놈들이 몰려오니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긴 해야 할 것 같군요. 근데···”
그리고 바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을 했다.
“왜 숨어야 하죠? 저는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얘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속에 불이 올라오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소리쳤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세요. 보이지 않으세요? 놈들이 밀려오잖아요. 하나하나가 다 뒷세계에서 흉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주먹하는 놈들밖에 안보인다고요. 그것도 수백명이나 우리를 향해 달려오잖아요. 그걸 숨지 않고 버티시면 혼자서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절대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지금은 도망쳐야 해요. 그러지 않고 다시 포로로 잡히면 우린 정말 끝장이에요.”
나의 다급한 지적에 바실은 묘하게 밝은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공녀님. 세가지 실수를 정정해 드리죠. 첫째, 확실히 체격이나 무장이 험상궂은 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근데, 전 별로 안무서워요. 만약, 비실비실하고 순박한 얼굴로 칼자루에 느릿하게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갈 거에요. 근데 그런 분들은 안보이네요. 제 경험상 그런 분들이 전쟁터에서 가장 적을 많이 죽이거든요. 저렇게 화려한 분들은 되려 죽는 쪽이죠. 뒷세계에서는 통하는지 모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냥 민간인이죠.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훈련 받지 않은 민간인은 수백명이어도 그냥 민간인일 뿐이에요.”
뭐··· 뭐라고? 나는 바실의 자기 말처럼 느긋한 태도에 당황하였다. 바실은 옥상 위를 아슬아슬하게 이동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장대나 고리 등을 주어 모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둘째, 저 혼자서 감당 안해요. 그리고 저쪽은 수백명이 아니에요. 저는 바보 아니에요. 전력이 열세인 상태로 싸우는 바보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금부터 녀석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나갈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상황은 1 대 수백이 아니라, 2 대 1, 1, 1, 1······ 인 상황이죠. 우리 전력이 저들의 두배 군요. 충분히 해볼만한 싸움이에요.”
야, 잠깐만. 뭐라고? 우리가 2 라고? 그거 너랑··· 나를 말하는 거냐?!!! 야 임마!!! 나를 왜 전력으로 치냐! 누구 맘대로!!! 그러나 바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셋째, 방어할 생각 없습니다. 방어는 제가 아니라 저쪽에서 해야죠. 저는 공격할 거에요. 숨어서 놈들의 공격을 피해 다니거나, 방어하다가 둘러 쌓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부터 제가 직접 우스타샤를 공격할 겁니다. 지금 이곳 라구사 여기저기서 선동을 하며 이 모든 일을 벌인 근원. 저는 그들을 공격해서 진압할 겁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이 모든 일을 벌인 형님을 잡을 겁니다.”
나는 얼핏 들으면 제 정신이 아닌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바실의 말에 할말을 잃었다. 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혼자서 지금 저 수많은 우스타샤의 어께들을 죄다 때려 잡겠다고? 님 도르신? 하지만 그것을 입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말이 어쩌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그런 말도 안되는 전쟁터의 신화를 진짜로 구현해 낸 제국의 군신이니깐. 그리고 바실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공녀님. 이제 반격의 시간입니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실은 달렸고 나도 그를 따라 달렸다. 그가 건너편 건물로 점프하자 나도 호흡을 맞춰서 건물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하늘을 달렸고, 라구사에서는 나중에 신화로 남은 전설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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