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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여러명의 지휘관들이 남아서 작전을 조율하고 전략을 의논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고 조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그나마 조금 익숙한 인물, 타이투스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나를 본 타이투스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여전히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당신은 태자 마마와 같이 온 콘스탄틴노플의 카밀라 공녀 아니시오? 이곳에 어쩐 일이시오? 이곳은 군의 통제구역이오. 당신이 태자 마마의 인사자문관이라는 건 전해 들어 알고 있지만 허락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소. 어서, 나가시오.”
“후후후. 명백한 홀대시군요. 조금 서운하려고 하네요. 저는, 오늘 여기에 윗분의 뜻을 가지고 여러분을 만나뵙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자 온 것인데 말입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이대로 돌아가도 상관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그들이 반응했다. 타이투스를 비롯한 크림 귀족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일제히 나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타이투스가 말했다.
“태자가 우리를 떠보라고 하던가?”
“응? 갑자기 여기서 왜 태자 마마가 나오시죠? 전 태자 마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그야, 당연한 것 아니오. 당신은 지금 군부에서 태자의 참모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는, 황제의 사람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황제의 명을 받아 차기 후계자의 감시역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는 헝가리가 황제 폐하에게 보낸 공녀이고, 황제의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
갑자기 그들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번져나갔다. 그리고 나의 발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특히 강조해서 말한 여러분과 같이라는 포인트에서 대단히 놀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제, 여러분께서 조금은 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잠시 자리를 옮기시죠. 보는 눈이 많은 곳은 여러분들도 불편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기 딱 좋은 시간이니깐요.”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내 앞에 차려진 예상 밖의 호화 만찬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우와, 이거 바실한테 했던 거랑 하늘과 땅 차이잖아? 그리고 그들은 나를 만찬의 상석에 안내하고 다들 둘러앉아 나를 주시하였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 내가 생각한 작전을 정리했다. 내가 생각한 작전의 개요는 이랬다. 요하네스 의원의 말대로라면, 이들 크림의 귀족들은 바실에게는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황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 생각을 단서로 던진 미끼를 그들이 물었고, 그것으로 사실 확정.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바실이 아닌 황제의 측근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슬그머니 그들을 충동질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놈들이 바실에 대해 가진 반감을 확인하고 적절한 수준으로 충동질해서 적당한 말썽을 일으킨다면, 그것으로 임무는 완성된다. 그리고, 의외로 바실에게 큰 타격이 될 상황을 최소한으로 축소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음, 그래. 이게 바로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판을 깔아주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크림의 여러분들의 노고를 결코 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향에서 도망쳐 고난의 도피 생활을 하던 크림에서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호의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황위에 오르던 시기에 여러분들이 든든한 근위 세력으로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황좌에 시체로 나뒹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계시고요. 황제께서는 여러분의 그런 노고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폐하의 입으로서 여러분에게 그분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면서도 참 오글거린다. 이 개념없는 크림 귀족들이 카르브나 황가와 제국 중흥에 딱히 한 것이 뭐가 있다고. 그리고 내가 아는 황제도 그들에 대한 반응은 참 단순해서···
‘크림. 아, 거기? 날씨 무지하게 추워서 유도가 고생했음. 근데, 호구들이라 조금만 비위 맞춰주면 간도 빼올 수 있음. 진짜임.’
하지만, 그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맞겠지? 그리고 그런 나의 발언에 크림의 귀족들의 얼굴에서는 환희와 실망감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신중한 모습으로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뭐, 지금 우리 크림이 제국에서 받고 있는 홀대가 황제 폐하의 뜻이 아님은 충분히 알고 있소.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우리를 아끼신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그대가 꺼내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의구심이 남을 수 밖에 없소. 아마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카르브나 황가의 근위 세력이었던 우리 크림이 현재 제국군의 중추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실 태자의 독단적인 인선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뭐, 솔직히 부정하지는 않겠소. 우리는 바실 태자에게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소. 하지만, 그것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입장이지. 황제께서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신다고 하여도, 우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실 태자에게 당한 모욕과 수치를 수용하실 수는 없을 것 아니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고, 나중에 그 후계자가 황제가 되면 그런 선대의 자비마저도 무시하고 르호보암이 전갈로 치듯이 우리를 치겠죠.
우리는 그것이 억울하고 한탄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오. 최소한 태자께서 황제의 우리를 헤아리는 마음의 반의 반절만 고려해 주셨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들이 무능해서 군의 요직을 맡지 못했으면서 말은 잘해요. 하지만 일단은 맞장구 쳐주도록 하자.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솔깃할 이야기도 풀어놓을 타이밍이고.
“여러분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저를 여러분에게 보내셔서 이렇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느끼시는 우려도 충분히 납득할 만합니다. 확실히, 현재 군을 장악하고 계신 태자께서는 군의 인사를 독단적으로 행하고 계시죠. 그리고 혁혁한 무공으로 군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계신 태자가 나중에 황제가 되실 경우, 그 독단이 더 통제할 수 없음도 충분히 우려가 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가장 큰 우려를 하고 계시는 것은 다름 아닌 황제 폐하십니다.”
“으응? 황제 폐하시라고요?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 폐하께서 지금 태자의 독단에 대해 우려를 하고 계시다고요?”
슬슬 미끼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흑막의 요부 같은 표정 연기를 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왜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제국의 적성국들에게 혈태자란 이름으로 불리며 신화적인 명성을 쌓아올린 제국의 군신. 콘스탄틴노플에서는 위대한 신화의 재현에 열광하겠지만,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불편한 존재도 없죠.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고, 제국을 중흥의 길로 만들어낸 황제 폐하의 공로는 잊혀지고, 오로지 태자의 이름만이 세상에 오르내리며 지금보다 미래가 더 나을 것을 확신하는 지금의 분위기. 이것이 황제 폐하에게 정녕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하, 하지만··· 태자는 현재 황제 폐하의 유일한 후계자신데···”
“원래,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전례도 있지 않습니까? 4황제의 시대를 종식시킨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적자인 크리스푸스가 어떻게 되었지요? 상황 되게 비슷하지 않나요? 제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내전을 종식시킨 황제.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거둬 내전 종식에 마침표를 찍은 확정된 후계자. 상식적으로는 다음 황제는 확고부동하게 크리스푸스가 되었어야 맞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처참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폐하의 심중이 어떤 것인지를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으신가 싶습니다만.”
나의 설명에 그들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하듯이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태자가 저지르고 있는 독단에 대해서 깊이 불편함을 느끼시고,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견제를 고려하고 계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입니까?”
“황제 폐하의 뜻으로, 태자의 감시역으로 붙어있는 제가 인증하는 확고부동한 사실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나의 말에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마치 무슨 광명이라도 찾은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에 대한 경계가 눈녹듯이 사라졌다.
“하하하, 그럼 그렇지. 황제께서 우리를 그렇게 홀대하실리가 없다고 내가 그랬잖아. 이건 다 태자의 독단이었어.”
“아무렴, 우리가 누구인가? 이번 카르브나 황조 성립에 가장 큰 기반이 된 것이 우리 크림인데, 그걸 무시할 사람은 없지.”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를 다시 신경쓰실 생각으로 황제께서 은밀히 특사를 보내셨으니 다행이군. 좋아, 그럼 태자의 측근이 아닌 황제의 특사에 대한 대접은 조금 달라져야 마땅하겠지. 여봐라!!! 음식을 다시 내와라.”
그리고 갑자기 만찬은 방금 전과 수준을 달리하는 호화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동방에서 온 진귀한 음식과 향신료가 즐비한 그 만찬은 마치 크림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황제와 태자에 대한 온도 차이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말에 그들은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분위기가 상당히 화기애애한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타이투스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원만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좀더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받은 공작을 실행할 미끼를 던졌다.
“이렇게 극진한 환대를 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께서 보셨다면 틀림없이 크림의 여러분들의 충성심에 감동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고민이 많으신 황제 폐하셔서 이런 좋은 소식만 가져다 드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응? 황제께서 최근 그리 근심이 많으십니까? 근래에 듣기로는 본국에서는 모든 일들이 다 순조로운 듯이 보이던데요? 물론, 신임 내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나 종교 갈등이 심각하다는 정도는 들어봤지만, 대외 전쟁이나 내부적인 큰 불안은 다 원만하게 해결하고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표면상으로는 그렇죠. 제국은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제국군은 강건하죠. 그 모든 것은 다 태자의 영웅적인 군사적 성공에 기인한 것이죠. 제국의 시민들은 열광하고 있습니다. 젊고 유능한 후계자가 보여준, 짦은 시간 내에 제국의 영역이 거의 2배로 늘어난 신화적인 업적을. 그러면서 기대하고 있죠. 지금, 태자의 신분으로도 저리 엄청난 업적을 세운 태자가 나중에 황제가 된다면 더 큰 영광을 제국에 안겨줄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시기가 조금 더 빨리오면 좋지 않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으음··· 그런 일이··· 과연, 황제께서 고심이 크실 만도 하군요.”
나의 말에 크림의 귀족들은 납득할 것 같다는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에 콘스탄틴노플의 한 시민이 했다는 이야기가 문득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니케포루스 그 새끼는 물러나면 안돼. 지가 감히 누구 맘대로 도망가? 외상값 다 갚을 때까진 절대 못가.”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음 속으로 ‘아, 씨··· 종신 확정이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 잠시 잡생각을 접어두고. 나는 뭔가 좀더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무너져가는 제국을 붙들어 세운 황제 폐하의 노고는 까맣게 잊혀지고, 저마다 태자가 가져오는 전쟁의 승리에 취해 도를 넘어서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죠. 그로 인해 폐하의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아아아··· 가여우신 우리 황제 폐하. 제국의 구원자께서 전장의 폭군에게 밀려 그 업적의 빛이 바래시고 이제는 황위마저 위협을 받으시다니. 진정, 우리 폐하를 위해 일어설 지혜롭고 뜻있는 자는 없는 것일까요? ”
나의 말에 크림의 귀족들은 저마다 뭔가 가슴 속에 불타는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람이라는 듯이 가슴을 펴고 씩씩거렸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침착해 보이는 그들의 필두, 타이투스는 조금 차분한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다.
“제국의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군요. 오랫동안 우리 크림이 본국을 외면한 것이 큰 불찰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뭔가 우리 크림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하지만, 조금 의문은 남는 군요. 현재 본국의 여론이 그 정도라면 차라리 태자에 대해서, 황제께서 직접 손을 쓰시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보아하니 먼저 선을 넘은 것은 태자 쪽으로 보이는데요. 아무리 태자의 위광이 강해도 아직 제국의 황제 폐하는 그분이 아니십니까?
“네, 좋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태자는 그런 여론을 타고는 있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런 여론에 대해 자신의 뜻을 소명한 바 없습니다. 약간의 빌미라도 있으면 그걸 근기로 손을 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태자는 그 선을 넘지 않고 관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분이 없습니다. 거기다, 태자는 이미 아시다시피 제국군 최고사령관입니다.
자칫 섣불리 손을 썼다가는 어마어마한 제국군 전체가 황궁을 향해 진격하는 일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태자에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죠.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는 것도 답은 아닙니다. 태자 본인은 자신의 뜻을 소명하지 않고 있지만, 태자의 주변에서 부추기는 자들이 붙게 된다면? 그리고 그들이 실수를 가장해 선제 도발을 감행하여 일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제국은 눈깜짝할 사이에 황좌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크림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죠.”
나의 말에 타이투스는 강한 긴장감을 보였다. 그리고 뭔가 상상을 하고선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지도, 지가 좀전에 바실에게 한 짓이 나중에 그렇게 되면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떠올린 모양이지.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고조시킨 위기감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침 하늘의 도움이신지 그런 태자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 지금의 전시 상황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금의 상황이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라니? 어··· 서, 설마?”
“짐작하신 모양이시군요. 맞습니다. 지금 태자는 흔치 않게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제국군의 영역이 아닌, 황제 폐하에게 충성하는 테마군의 중심에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오합지졸이지만 상당한 수의 유목민족들이 몰려들고 있어, 지금은 엄청난 농성전을 준비해야 하는 전시 상황이죠. 그리고 그 상황의 통제는 전적으로 여러분 현지 지휘관들의 손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의견을 모아주시는 가에 따라서··· 태자께서 기존에 명성에 흠이 가는, 조금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갑자기 통합군 체계로 대응하려던 제국군의 방침이 테마군 대응으로 전환된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확실히 엄청 신속하게 대응 수위가 조절되기는 했지만··· 그럼, 그것도 그 분께서?”
“폐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크림의 여러분이 가진 충심의 발현을. 그리고, 제위를 위협하는 후계자에게 적당히 겸손함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를. 이제 그분의 의중은 다 전해 드렸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최적의 상황이 주어졌구요. 이제 결정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자아···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의 말이 떨어지자 크림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그리고 그들은 열심히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로 다시 없을 기회. 그리고 뭔가 불순한 의도에 대한 윗선의 암묵적인 허락.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로 수위를 정해야 할지 모를 대응 방법과 그것이 자신들에게 미칠 여파에 대해서 그들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들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쪽 구석으로 몰려가 쑥덕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논의를 마친 그들은 나에게 돌아와 대답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결론을 내었습니다. 크림은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심에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바라시는 일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공작 성공.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했던 공작 중에서 가장 날로 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일이 마무리 되었다. 그래, 바실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일단은 이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 적당히 바실을 애먹이는 상황이 필요할 것 같다. 누나가 미안해, 막둥아. 그래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충신의 귀감이시로군요. 크림이 자랑스럽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태자의 독단에 대해서, 크림이 적당히 손을 볼지 생각해 본 계획을 저에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그런데 그 전에··· 한가지 공녀에게 요청사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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