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2
“못난 놈. 지금 꼴이 그게 뭐냐?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구나. 고작, 이런 꼬락서니가 되려고 네 정치 생명까지 네 손으로 끊어먹고 여기까지 온 거냐? 미련하고 한심한 놈 같으니. 제노스 가문에서 나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일어서라. 한번만 더 기회를 줄테니. 더 이상 미련한 짓은 여기서 그만두고 나를 따라 황도로 돌아가자. 의원 직은 무리겠지만 계파 총무로 복귀시켜 줄 테니 이만 돌아가자.”
묘하게도 그의 말에서는 질책보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요하네스의 말에 패티우스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대답했다.
“선배 말은 고맙지만··· 됐소. 나는 안갈랍니다. 여기 있을 거요.”
“이 자식이 정말!!! 대체 언제까지 여기서 미련한 바보짓이나 하고 앉아있을 것이냐?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일이 아니냐? 이곳의 권리는 제노스 가문에 있단 말이다. 그러니, 네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결말은 달라지지 않아. 그리고, 애초에 네가 이런 일을 당한 것도 다 네가 저지른 과실 때문임을 모르지는 않겠지? 멀쩡한 아내를 버리고, 젊은 작부랑 바람이 나는 것을 누가 좋게 봐주리라 생각하느냐? 지금 너에게는 이 일을 해결할 힘이 없다. 그저 답이 없는 일에 억지를 부리고 버티고 있을 뿐이란 말이다. 너는 그냥, 너의 의지랑 무관하게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하는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느냐?”
“아뇨. 틀리지 않죠. 답이 없을 일이고. 내가 저지른 과오고. 나는 선배 말처럼 시킨 것만 하는 것도 겨우 하는 그런 놈이 맞소.”
요하네스는 그런 패티우스의 대답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에 패티우스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말이오. 답이 없는 일인 것은 맞는데··· 원래, 우리 정치가란 족속들은 그런 답 없는 일을 답 내는 것이 본업 아니요? 선배가 항상 그랬잖소. 정치가란 미친 세상에 제일 모자란 것들이 모여서 답없는 일에 매달려서 어떻게든 답을 내는 쇼를 하는 것. 그게 정치라면서요? 그게 정치가라면서요? 그럼, 내가 하는 짓도 따지고 보면 선배 말대로 제대로 해야 할 일 하는 것 아니요? 사람이 우째 쉬운 일만 하고 사나. 말도 안되고, 터무니 없고, 답이 없어도··· 그래서 질 것이 뻔해도 어떻게든 쌩쇼를 해서라도 막거나 해내려는 것이 정치가지. 그런 거 아니었소?”
“뭐··· 뭐라고?”
“그리고, 내가 저지른 과오 맞지. 나 밖에서 젊은 기집애랑 놀아나고 마누라 버린 개새끼 맞지. 그러니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 해도 할말은 없지. 근데··· 나 그렇게 손가락질 받아도 지금 사는 것이 전에 마누라랑 사는 것보다도 훨씬 행복합디다. 말로만 정계 거물의원이지, 맨날 처가에서 사람 취급도 안해주는 꼭두각시 취급 당하고 살다가, 별것도 아닌 일만 가지고도 고맙다고 하고, 나랑 같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고, 거지 같이 살아도 나는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랑 살아보니··· 죽어도 예전처럼은 못살겠수다. 내가 세상 모두에게 욕먹는 한이 있어도, 자신있게 얘기하는데··· 지금 얘가 내 조강지처고, 전처년은 내 피빨아먹는 꽃뱀이외다.”
“······”
빗속에서 패티우스는 뭔가 담아둔 듯한 말들을 요하네스에게 쏟아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요하네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패티우스의 말은 더 이어졌다.
“그리고, 선배가 말한 대로··· 나 무능하고 한심한 놈 맞소. 내 의지 없이 누가 시킨 것만 겨우 해내는 것이 고작인 놈이 맞소. 그래서, 군에 있을 때도 내전 중에 명령 계통 혼선으로 남들 다들 자기 병력 아끼려고 도주하는 동안, 혼자서만 미련하게 버티다가 패전만 거듭했었지. 그리고 의회에서도 선배가 시키는 대로만 발의하고 선배 의견에 거수기나 했었고.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요. 지금 내가 뭘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요. 저 사람들이 해달랍디다. 슬럼가를 허물어 버리는 개발, 자기들은 역부족이니 나보고 좀 막아달랍니다. 그래서, 나 여기서 버티고 선거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지만··· 내가 워낙에 한심하고 미련한 놈이라서··· 겨우 할 줄 아는 건 남들이 시키는 것 밖에 할줄 몰라서. 그러니깐 그 정도의 일마저도 못한다고 할 수는 없으니깐. 그러니깐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겨우겨우 하고 있는 것 뿐이요. 그게 전부요. 그러니깐··· 나는 못갑니다. 나 일으켜 세우고 싶으면··· 저 뒤에 사람들한테 물어봐주쇼. 나 그만 일어서서 가도 되는지. 된다고 하면 그때 일어서리다. 근데, 그 전에는··· 나는 여기 있을 거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패티우스의 말은 선명하게 모두에게 들렸다. 그의 뒤에 모여든 군중들 틈 사이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다 소리를 죽였고, 그 광경은 너무나도 장엄한 기운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참 후··· 그 침묵을 깬 것은 요하네스의 탄식이었다.
“하! 이 등신 같은 놈.”
“등신 같은 놈이라··· 미안하외다. 선배.”
“미안한 줄은 아냐? 이 등신 같은 자식아? 평생 뒤치닥꺼리나 해줘야 할 후배라고 생각한 놈이··· 뜬금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정치가로 각성을 하네.”
“뭐? 뭐라고요?”
“그래. 그거다. 그게 바로 정치다. 그리고 네가 바로 정치가고. 한없이 등신 같고 모자란 것이 정치고, 그걸 해내는 한심한 것들이 진짜 정치가다.”
그렇게 말한 요하네스는 갑자기 우산을 접어 집어던지고 비를 맞으며 패티우스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발로 그를 툭치며 말했다.
“좀 비켜봐, 임마. 쫄쫄 굶었어도 여전히 뚱뚱해서 옆에 자리도 안 나는 구만.”
“서··· 선배? 지금 뭐하는?”
그리고 그와 동일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 더 있었다. 제노스 가의 용역들이었다, 그들이 소리쳤다.
“요하네스 의원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왜 거기에 앉으시는···?”
“.아아··· 그렇게 됐수다. 나는 이제 여기 붙을랍니다. 제노스 가의 당주에게 토시 하나 안틀리게 전해주쇼. 중재는 개뿔이. 황실도 감히 손대지 못하는 제국 의회 의원이 니들 지방 토호들한테는 개좆으로 보이냐? 의회는 항상 시민들의 편이다. 꼬우면 한판 붙던가. 이렇게 말이요.”
용역들의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에 지적이고 고고한 요하네스 답지 않은 거친 말투에 그들 제노스 가의 사람들은 다들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요하네스는 뒤에서 어리둥절하는 패티우스의 군중들에게도 소리쳤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니코메데이아의 시민 여러분. 좀더 일찌 와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저의 자랑스러운 후배 패티우스 의원이 이곳의 상황을 잘 버텨낸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이제부터는 패티우스 외에 우리 의회의 모든 의원들이 당신들의 편이니깐.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서, 불합리한 일을 무도하게 저지른다면 그건 정의와 도덕이 아니죠. 우리는 그것에 맞아 싸울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군중들에게서 함성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것을 본 요하네스가 소리쳤다.
“환호를 받을 사람은 따로 있죠. 다들 외칩시다. 지금 이곳 니코메데이아에서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해 고초를 겪은 그 사람의 이름을!!!”
“패티우스! 패티우스! 패티우스!!!”
사람들은 다들 일제히 패티우스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그 기세가 가뿐하게 맞은 편에 있는 철거 용역들을 압도할 지경이었다. 뭐··· 뭐야? 이거.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에 없었잖아. 그런데 그 황당함에 나는 잠시 실수를 저질렀다. 비에 젖어 두른 베일이 흘러내린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러다··· 사람들을 선동하던 요하네스와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히익!!! 그러나 놀란 것은 요하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를 보고 믿어지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고··· 공녀? 당신이 왜 여기에? 설마, 이 모든 것이 전부···”
으아아악!!! 큰일 났다. 모조리 들통나게 생긴···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요하네스의 눈빛이 빛났다. 그리고 뭔가 떠올렸다는 듯이 갑자기 달려와 내 팔목을 잡고 군중들 앞으로 끌고 왔다. 으아아악!!!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당황하며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때··· 그가 소리쳤다.
“니코메데이아의 시민 여러분!!! 보시오!!! 여기 카밀라 공녀가 왔소. 황제의 특사가 왔단 말입니다. 황제의 특사가 제노스 가문이 아닌 그대들을 방문하였소. 의회 뿐만 아니라, 황제 폐하도 그대들의 편이오.”
“네? 뭐··· 뭐라고요?”
그런데 순간, 나는 당황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강렬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에,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사고가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답은 정해졌고, 나는 말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 망할··· 나는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뭔가 기다렸다는 듯이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황제의 특사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명을 전합니다. 나의 시민들이여··· 불의에 무릎꿇지 말지어다. 짐이 그대들의 뒤에 있노라.”
그 말이 결정타였다.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오오오!!! 그렇군. 황제 폐하께서도 저 비열한 제노스 가문이 아닌 우리들의 편이었어. 황제 폐하, 만세!!!”
“제노스 가문이여 물러가라!!! 더 이상 니코메데이아는 너희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공녀 만세! 요하네스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그리고 우리들의 영웅 패티우스 만만세!!!!!”
내가 뭐라고 얘기할 틈도 없이, 상황은 급격하게 결론지어져 버렸다. 군중들은 격하게 흥분하며 빗속에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준 의회와 황실을 칭송하고, 자신들의 영웅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리고, 나의 등장을 본 제노스가의 용역들은 마치 무슨 진압군이라도 만난 반란군처럼 비명을 지르고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빗속에서 무너져가는 슬럼가와 얻어터진 패티우스로 인해 삭막하기 그지 없던 그곳은, 마치 축제의 중심이라도 된 듯이 사람들의 환호와 환성에 요란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들은 모두다 즐거워 했으며,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였다. 그리고 그 승리는 얼마 후 결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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