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
아보니의 상황은 그리고 나서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무슨 소리야? 아보니 성안에서 내분이 발생한 것 같다고? 내부에 교전이 벌어진 상황이 정찰되었어?”
“베르크의 딸, 마리아와 그의 부하들이 성문으로 필사적으로 빠져나와 북쪽 솔노크시로 도주하는 상황이 목격되었다고?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뭐? 성 내부의 쇼의 모친인 큰마님과 엘렌이 사람들을 모아 지난번 메란과 교전을 벌이다, 병력을 손실한 베르크 병사들을 역습해?
그래서, 그들이 필사적으로 마리아만 호위해서 아보니 성에서 도주했다?”
“그렇다면, 상황은 혼란스럽지만 일단 아보니성은 쇼의 세력이 확보했다는 의미군. 쇼를 보내서 성에 입성하자.”
“뭐라고? 성에 간 쇼가 또 공격을 당했다고?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뭐, 뭐라고? 공격을 가한 사람이 다름 아닌··· 쇼의 모친이라고?
그게 무슨 미친 전개야? 뭐라고? 쇼의 모친이 사실은 친모가 아니라 선대 영주가 평민 출신 중에 들인 후처였어?”
“하지만, 후처라고 해도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쇼를 공격하는···? 뭐라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큰마님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고?
그래서, 그 자식에게 아보니성을 물려주고 싶다고, 쇼를 건너뛰고 우리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직접 항복하겠다고 했다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이거 우리가 독단으로 판단하기가 너무 애매한 상황인데?”
“잠깐만, 그러면 지금 쇼는 친모는 아니어도, 평생 어머니라 생각한 사람에게 배신당한 거야? 이봐!!! 쇼가 자살하려는 거 말려!!!”
“대장!!!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있어. 지금, 아보니 성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큰마님이 밀던 숨겨진 자식이 밝혀졌어.
누구냐고? 듣고 기겁하지 마. 엘렌이야!!! 엘렌이 바로 큰마님의 숨겨진 자식이었던 거야!!!”
“뭐, 뭐라고? 그럼 쇼와 엘렌은 남매 사이였던 거야? 엘렌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히익!!! 알고 있었다고?
성벽 위에 뭔가 흑화한 모습으로 검은 복장으로 나타나서 권리를 요구해? 미··· 미쳤다! 이 전개 뭐임?
그러면 설마, 지난번에 쇼에게 화살을 쏜 범인도 설마? 헉!!! 엘렌이었다고? 정말로 엘렌이었단 말이야? 으아악!!! 말도 안돼. 나 오늘부터 엘렌파 탈퇴다!!!”
“잠시만, 그러면··· 사실 우리가 악녀라고 생각한 마리아는?
서··· 설마, 그럼 그녀는 모함과 오해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묵묵히 쇼를 위해, 성을 지키고 안주인으로 행동한 현모양처?
지금, 마리아는 어디 있어?”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마리아가 솔노크에 도착하지 않았어? 중간에 행방이 묘연해? 어서, 흔적을 찾아!!!
허억!!! 그녀의 도주 경로에서 토스첵군을 봤다는 목격담이 있었다고? 그렇다면, 설마··· 그녀가 메란의 손에 넘어간 거야?”
“지금까지 우울증에 빠져 자포자기하던 쇼가 갑자기 발끈해서 일어섰어. 장인을 만나야겠다고 도와달래?
어떻게 해야하냐고? 이 멍청아!!! 당연히 만나게 해줘야지. 안그러면 다음 전개가 안이어지잖아!!!”
“와, 씨. 나 어제 베르크와 쇼의 만나는 장면 보고 엄마 죽은 이후 처음으로 울었어.
일생을 쇼의 아버지와 절친으로, 그의 부탁을 받고 쇼를 친아들처럼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걸 믿고 오만해질 것을 걱정해, 일부러 힘든 과업을 요구했고.
전부 다, 나중에 자기 다음으로 솔노크를 이끌 맹주가 될 쇼의 미래를 위해, 내키지 않는 엄한 교육을 한 거였다니?”
“나도 그거 보고 펑펑 울었잖아. 두 남자가 서로 울면서, 난 당신이 미웠다고, 그런데 나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면 어쩌냐는 말에 나 못참겠더라.
그래, 이거지. 이거야. 로맨스도 좋지만, 사실 이런 남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와야 제 맛이지.
이제 서로 화해한 쇼와 베르크가 힘을 합쳐서, 마리아를 납치해간 메란과 아보니성을 점거한 엘렌에게 반격을 시작하겠지? 우와, 나 떨려.”
“충격 전개!!!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던 우사츠 주교가 등장했어? 뭐지? 아군이야? 적군이야? 저 의미심장한 미소와 두리뭉실한 이야기는 뭐야?
대체 무슨 역할을 하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왜 제압에 신중할 것을 권하는 거야?
뭐라고? 아보니성의 큰마님이 성벽 위에서 엘렌이랑 이야기를 나눈다고? 과거 이야기야? 오오!!! 회상편 나온다.”
“와, 씨! 작가님 반전에 제대로 뒷통수 맞고 갑니다. 나 도저히 못믿겠어. 엘렌의 친부가 사실을··· 우사츠 주교였다고?
젊은 시절에 큰마님과 우사츠 주교는 이미 수십년의 미래를 감안한 원대한 야망을 품고 솔노크에 왔다는 말 사실이냐? 와, 씨. 전개 미쳤다.”
“봤어? 봤어? 엘렌이 차갑게 주교에게 ‘당신이 내 아버지군요. 납득했습니다.’ 겁나 쿨하게 대사치는 거. 와, 씨. 엘렌 쩔어. 나 다시 엘렌파 한다.
그리고 주교도 카리스마 짱! ‘과연 내 딸이다. 주님도 성자도 방백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라.’ 성직자가 주님 무시하는 거 실화냐?”
“뭐라고? 토스첵 영지에서 마리아가 메란을 부상입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뭐? 포로로 잡혀있지만, 회유를 권하는 메란의 제의를 거부하던 마리아에게··· 메란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차라리 죽이라고 칼을 줬다고?
그리고 그 칼로 가슴을 베었는데, 출혈을 흘리고 쓰러진 메란에게 결국 결정타를 입히지 못해? 왜?”
“아니, 너 지금까지 뭘 봤냐? 저거봐! 메란의 목에 걸린 목걸이. 어린 시절에 마리아가 선물해준 어머니의 유품이던 십자가잖아.
메란은 아직까지 그걸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어. 잠깐만, 그런데 그럼 메란이 답례로 마리아에게 선물해 준 여성용 나이프는?”
“허억!!! 저게 왜 엘렌의 손에? 맙소사, 마리아가 성에서 탈출할 때 그걸 놔두고 갔구나. 설마, 저걸 엘렌이? 안돼. 정말로 안돼!!! 그건 아니야.
그러지마! 그걸 쇼에게 보내서, 오해사게 하면 안돼!!! 그건 너무 사악하잖아?
이제서야 쇼가 겨우 마리아의 진심을 이해했는데. 거기서 그러는 건 아니지!!! 아악! 저 망할 엘렌··· 어라? 뒤로 숨겼어? 대체 왜?”
“오오오!!! 열광하라! 엘렌파의 부활이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사실, 엘렌은 진심으로는 쇼를 해꼬지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자신이 친모를 막았다가는, 친모가 자신을 배제하고 거사를 행할 것 같아서, 오히려 쇼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반에 가담하고, 위악을 가장한 거였어.”
“난,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지난번 흑화해서 검은 옷 입고 나왔을 때, 한쪽 장갑만 흰색인거 기억하지?
그게 사실은 내면에 갈등하고 있거나, 혹은 저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복선이었다고. 그래, 믿고 있었다고, 엘렌! 엘렌 코인 떡상한다!!!”
거기까지 상황을 보고받은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며 보고서를 덮었다.
아니, 애초에 이거 보고서는 맞냐? 연극 대본이나 관람객 리뷰 모음집이 아니라? 어흑,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울분이 울컥!!!
그리고, 나는 보고서를 제출하고서도, 시선은 여전히 아보니성에 가있는 울프스턴을 보고 말했다.
“울프스턴 대장님.”
“네, 공녀님. 말씀하십··· 뭐라고? 엘렌이 쇼랑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우와!!! 오늘밤 절대 본방사수다.
아, 실례했습니다. 계속 하시죠.”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가 지끈. 하지만 억지로 참고 말했다.
“지금 소대 병력만 투입해도 2시간이면 함락하고도 남을 저 허접하기 그지없는 아보니 성을 앞에 두고···
무려 2주간 베오울프 연대 전체가 돈좌된 사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공녀님. 이건 좀 이해해 주셔야 해요. 공녀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점령지에 자비를 베풀고 현지에 가장 마찰이 없는 방향으로 작전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현지인들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인데, 상황을 보셨다시피 이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모든 상황이 순간순간 다 흥미진진··· 아니, 복잡해서 그냥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요.”
아아아아악!!! 내 마음 속에 비명이 울려퍼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라고!!!
현지의 이해와 협조를 개뿔이!!! 그냥 눈앞에 벌어진 막장 드라마가 존나 재밌어서, 그거 직관하고 싶어서 여기서 뭉게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나는 그제서야 작전 직전에 마티가 했던 우려의 말이 떠올랐다.
“아뇨, 제 말은··· 민심이 이반된다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현지 상황에 익숙치 못한 부대가 공교로운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그런 우려입니다.”
공교로운 상황이··· 무슨 보급이 끊기거나, 방어진이 견고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눈앞에 상황이 그냥 존나 재밌어서 도저히 눈을 뗄수가 없더라, 뭐 그런 의미였던 거야? 나는 다시 한번 격한 경련을 느꼈다.
제국군 아욱실리아 소속 베오울프 연대.
노르만의 늑대들로 그 무시무시한 강함을 자랑하고, 단순히 힘만 쎈 것이 아닌 지혜와 지식도 출중하여 제국의 식자들도 감탄하게 만드는 완전체.
그렇다. 그들은 너무 완벽했다.
무식한 야만인이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밀고 들어갔을 그 상황에서, 그들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했고 그것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어느 우화 속 일화처럼,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수만의 대군이 아닌, 입담좋은 음유시인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조국 헝가리의 어느 지방에서 벌어진,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할 막장 드라마에 빠져서 작전 전개의 의지를 상실하고 돈좌되어 버렸던 것이다.
솔노크의 막장 드라마가 서유럽 최강의 용병대였던 노르만의 늑대들을 저지했다. 야, 이씨!!! 이게 말이 돼?!!!
그리고 그 상황에 뭔가 감탄한 마티 경이 뭔가 하늘을 우러르며 말했다.
“보이십니까? 우리 헝가리를 건국하신 초대 아르파드 대공님. 우리 헝가리의 위대한 문화의 승리입니다.”
야, 이 미친 놈아!!! 이게 무슨 문화의 승리야!!! 그냥 작전 망한 거지!!! 이제 어쩔꺼야? 지금, 우리는 드라마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반란 진압하러 왔다고!!!
그리고, 그것도 나름 의미 부여 만땅했던 헝가리 상비군의 첫 작전이고, 내가 주도한 첫 작전이란 말이야!!!
근데, 지금 이 상황으로 돈좌되서 2주를 지체하고 앉아 있으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프스턴에게 소리쳤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울프스턴 경, 이미 2주!!! 2주가 지체되었단 말입니다!!!”
“그러게요. 이제 1쿨 끝나려면 얼마 남지도 않았네요. 아쉬워라.”
“1쿨이 대체 뭔데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어라? 1쿨 아니었어요? 한번에 전체 공개였어요? 그거 선행분 어디가면 살 수 있죠? 지금 당장 가입하러···”
“아아아악!!! 알아듣지 못할 말은 집어치우세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가십니까?
작전이 돈좌되었다고요!!! 작전이!!! 지금 이 상황을 저는 연합사 규정에 의거해서, 제국 본국에도 보고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거 어떻게 감당하라고 이런 태업과 만행을!!!”
그런데, 그때 나의 말을 들은 울프스턴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뭔가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 안그래도 얘기드리려고 했는데, 정규 보고 외에 작전 중 수시 보고로, 이미 제국 본국에 현황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공식 답변이 어제 왔더라고요. 제국군 총사령관 명의입니다. 읽어보시죠.”
제국군 총사령관? 그러면··· 바실? 히이이익!!! 나는 기겁하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평소에 현장 판단을 존중하는 바실이 흔치 않게, 보고서에 답장을 보냈다. 얘도 이 미친 상황에 대해서 심각성을 깨닭은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는 순둥순둥해도 의외로 빡치면 차분하게 미친 짓을 하는 바실을 떠올리며 오한을 느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보고서를 받아 펼쳐본 나는 더 큰 절망에 무너져야 했다.
‘제가 갈때까지 무조건 현장 보존. 딱 기다리세요. 본방 직관하러 바로 갑니다.’
다 틀렸어. 이 놈의 제국이고, 헝가리고··· 우하하하하! 다들 미쳤어.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주저앉아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 빌어먹을 세상 웃기라도 하자.
비바! 헝가리. 비바! H 드라마! 자랑스러운 내 조국이로다. 우하하하!!!
그해, 헝가리군이 솔노크로 진격하여 전선을 형성하니, 솔노크의 방백과 영주가 나와서 군세를 막아서더라.
이에 공녀가 이르되, 아군의 군세가 약하여, 내 노르만의 늑대로 피해없이 저들을 치리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마티가 가로되, 저 땅에 사람과 인연이 심히 복잡하여, 외지에 온 병사들로 사뭇 곤경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하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
그리하여, 노르만의 늑대들이 처음에 승리하고 그곳의 영주를 사로잡아 항복을 권하나
솔노크 사람 베르크, 아보니 사람, 엘렌, 토스첵 사람 메란이 이에 응하지 않고, 상황이 어려워지고 병사들이 감히 그들을 치지 못하더라.
이에 공녀가 와서 탄식하며 가로되, 내 사병들아 내일 저들을 총공격하라 하였으나,
병사들이 이르되, 본방사수를 방해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하여 거부하니, 이에 많은 자들이 그곳에 기다리며 결말이 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더라.
그리고, 공녀가 탄식하며 가로되, 외지의 사람이 현지의 상황을 모르고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크게 깨닭았다 하더라.
--------------------------------------------------------------------------------------------------------------------------------------------------
??? : 드라마 한편 다 봤네.
??? : 아니! 결말이 안났잖아!!! 그래서 쇼는 누구랑 이어지는데?
(정말로 지인에게 받은 질문입니다.)
Commen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