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
‘퍼어어어어억!!!’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거룩하신 성녀님의 말씀이 현실에 구현된 것이었다.
내려치느라 허리를 숙인 호컴의 품으로 파고든 에스텔의 주먹이 깔끔하게 호컴의 턱에 명중하고 위로 고개를 날려버린 것이었다.
뭐, 뭐야? 이 미친 상황은?!!!!!! 그러나, 보고도 믿기지 않는 그 상황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몸에 두르고 있던 수도복을 벗어던진 에스텔.
그녀는 속에 짧은 상의와 반바지만 입고, 늘씬하면서도 제대로 잡힌 근육으로 둘러쌓인 몸으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갈긴 덕에 휘청거리는 호컴의 다리에 로우킥을 후려갈겼다.
‘퍼어어어어억!!!’ “크아아아아악!!!”
호컴의 비명이 울려퍼졌고, 그러거나 말거나 에스텔의 공격은 사정없이 하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첫인상에 곧바로 성녀라고 착각했던 그녀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경악해서 성녀님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성녀님은···
“좋아! 레프트! 라이트! 쉴새없이 밀어붙여. 스텝을 멈추지 마. 철저하게 아웃레인지에서 카운터 위주로 움직여. 그렇지!!!”
“서, 성녀님!!! 지금 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응? 뭐하긴 뭐해? 주님의 재판장에서 열성적으로 변호하는 것을 감상하는 중이지.
그래, 이거지, 이거야. 나이 들어서 현역 은퇴하고 쳐박혔더니 심심했는데, 오랜만에 현역 시절 생각나는 라운드를 보니 짜릿하구만.
와, 씨 한대 땡기네. 야, 너 혹시 불있냐?”
“뭐, 뭐라고요? 불? 갑자기 불은 왜? 에엥??? 그거 담배 아니에요? 신대륙에서 근래에 발견되었다는 그 귀한 거? 그게 왜 성녀님 손에?”
“왜는 왜야? 한대 빨려고 꺼냈으니 내 손에 있지. 불 없으면 말고. 내가 붙이고 말지.
쓰읍. 후아아아··· 한대 빠니깐 아주 찌릿하니 좋네. 나중에 너 황궁가면 니키랑 유도한테 좀 전해라. 이거 죽이니깐, 자주자주 좀 상납하라고.
오, 나의 주님. 이런 죽이는 걸 왜 그 먼 신대륙에 꿍쳐두고 계셨어요? 어린 양 삔또 상하게시리.”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이 분은 대체 누구신가?
나는 결국 참을 수가 없어서 그녀에게 항의하듯 소리쳤다.
“내전기 혼란스러운 세상을 홀로 구원하며 다니시고, 죄인들을 회개하시키신 그 기적을 행하신 분이 당신이라고요?
아니, 성녀님 이런 분이셨어요? 이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아는 사실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당신 정말 아가사 성녀 맞아?”
“얘가 슬슬 말 튼다? 나 아가사 맞거든. 그리고 기적 행한 것도 맞고. 죄인들 회개시킨 것도 맞어.
야, 기적이 별거냐? 사람이 그냥 아래턱이 박살나서 죽 밖에 못먹고, 그 죽 떠먹여주면 다들 마음이 착해지고 신앙심이 깊어지기 마련이야.
혼란한 세상에 거시기 빳빳하게 세우고 설치는 놈들, 아래턱과 거시기 중에 하나 고르라고 한 다음에 잘 돌봐주니 애들이 착해지데.
그리고 그 사실에 감동먹은 교구에서 제발 자기네 교회에는 오지 말라고 하면서, 딱히 바라진 않았는데 성녀로 만장일치로 시성해주더라.
지들이 봐도 진짜 인간말종들 어버버거리는 것이 되게 신기했나봐. 나 사칭한 거 아니다.”
“아니, 잠깐만요!!! 대체 그게 뭐에요?
그럼 설마, 그 내전기에 활약하고 다닌 것이, 주님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감화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주먹을 날리고 다닌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에요? 당신, 아카이아 출신이라면서요? 성산 아토스가 있는 그 아카이아 출신!!!”
“아카이아 맞는데, 아카이아가 아토스산만 있니? 그 이전에 거기는 원래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다른 걸로 유명한 곳이었지.”
“뭐, 뭐요? 그게 뭔데요?”
“판크라치온.”
“뭐, 뭐라고요? 파, 판크라치온?!!!”
판크라치온. 고대 그리스의 종합 격투술. 권투와 레슬링의 조상으로 여겨지며, 제대로 배우면 사람하나 잡는 건 순식간이라는 뭐 그런 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저주를 퍼부으며, 이 도무지 말도 안되는 매칭 상황에 어이를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러면··· 설마 안나 황녀의 여정에 동행했을 때, 하셨던 일이 일행의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주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켰지. 적들이 다 박살나면 마음이 안정되잖아? 그리고 주님의 뜻도 전했고. 내가 몇놈을 개종시키고 두라초로 간지 아냐?
암튼, 무슬림 해적 새끼들은 다들 패야 말을 들어. 개종은 안해도 상관없는데, 좀 안맞고 말들으면 안되나?”
어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어리석은 나년아. 믿을 걸 믿었어야지. 황제랑 같이 놀던 성녀가 정상일리가 없잖아?
어이없게 명쾌해지는 상황에 나는 깊은 절망감과 허망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기대한 위대한 진실이 겨우 이 정도였어?
그리고, 그 여정 마치고 어디 은거해서, 남의 땅에 불법점거하고 제자 키우다가 지금 이렇게 맞짱뜨는 거라고?
젠장할!!! 존나게 명쾌하고 깔끔하다!!! 모든 일이 다 맞아떨어지네. 꼭 그렇게까지 명쾌했어야 했냐?!!!
그렇게 내가 절규하는 사이에도 재판은 이어지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에스텔의 우세로.
“크허어어어억!!!”
“안돼!!! 호컴, 정신차려!!! 완력으로 팔을 떼어내!!!”
조합 사람들의 절규어린 응원은 호컴에게 닿지 않았다.
로우킥으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 호컴의 등뒤로 달려든 에스텔은 그 가는 팔로 호컴의 목을 졸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팔을 떼어내지 못한 호컴은 서서히 눈커플이 뒤집어지며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축 늘어졌다. 기절해 버린 것이었다. 그 순간, 공동체에서는 환호성이, 조합에서는 절규가 울려퍼졌다.
“만세!!! 에스텔 언니가 해냈어!!!”
“이건 말도 안돼!!! 지금까지 당한 것이 얼만데!!! 또 이렇게 당해?!!!”
나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조합장을 보고선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이봐요! 우리 쪽이 좀 황당한 것이 맞기는 한데, 그래도 댁이 그런 말할 입장은 아니잖아요? 비겁하게 챔피언들한테 약이나 탄 주제에.”
“뭐? 무슨 약? 우리가 무슨 약을 타?”
“당신들이 탔잖아요? 지금 우리 쪽 남자들 다들 설사하고 난리난 거 당신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요?”
“이봐!!! 언제 댁들 우리가 준거 먹은 적 있어? 죄다 거기서 처먹어 놓고선, 왜 우리한테 말도 안되는 생떼야?”
응? 이게 무슨 말이야? 생떼라고? 근데··· 그러고 보니, 사실 저쪽에서 뭔가 해꼬지를 하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없기는 하네.
먹을 것은 죄다 공동체에서 준 것만 먹었고. 공동체에는 조합 사람들은 없었을텐데. 그리고 명백하게 조합장의 표정이 뜬금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재판을 관전하던 공동체 여자들이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어라? 설마 우리 공동체 특산 기운나게 하는 버섯이 탈이 난건가?”
“아! 그런 모양이다. 그게 먹으면 좀 활기가 넘치지만, 내성이 약한 사람이 먹으면 설사하잖아.
우리야 평소에도 자주 먹으니 괜찮지만 손님들은 좀 버거웠었나?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대결에 나갈 챔피언들이셨는데, 설마 그것도 못견딜까봐? 괜찮은 거··· 맞지?”
에엥? 뭐, 뭐라고? 뭐를 먹여? 기운이 나게 하는 버섯?
나는 갑작스럽게 폭주하는 정보에 정신이 어질해서 뭐라고 대응할 생각도 바로 나지 않았다.
대신, 소리친 것은 조합장이었다.
“이 망할 년들아!!! 그거 처먹고 버티는 건 너희들 같은 상식에서 벗어난 것들이나 가능하지!!!
그게 정상인들이 가능할 법 하냐? 이 민폐덩어리 계집들아!!! 솔직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까놓고 말해서 내가 오죽하면 이런 짓까지 하냐!!!
신사적으로 점거한 땅 돌려달라고 했더니, 툭하면 주먹질이나 해서 조합 사람들 내쫓고!!!
툭하면 경작지에서 몰래 수확물이나 물자 털어가고. 그리고, 밤이 되면 몰래 광부 숙소에 들이닥쳐서, 잘생긴 총각 광부들 보쌈해가는 거, 이제 더는 못참아!!!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더는 우리도 못참아!!! 재판이고 나발이고, 한판 붙어!!!”
그러자, 얼굴과 몸을 수도복으로 가린 그녀들도 지지않고 소리치며 대꾸했다.
“뭐래? 붙잡아 갈때는 좋다고 희죽거리면서 잡혀와 놓구선, 새벽에 기빨린다고 튀다가 김빠지게 한 것이 누군데!!!
입맛 버린 건 우리 쪽이거든!!! 그리고, 지들이 질 것 같으니깐, 대표 보내서 결투 재판으로 어거지 쓰려다 지니깐 생때부리는 것이 누군데!!!
그래, 바라던 바다! 붙어! 애초에 이렇게 갔어야 했어!!! 얘들아! 옷벗고 달려들어!!!”
“네! 언니!!! 야호! 오늘 이기는 년 전리품은 광부 총각이다!!!”
나는 보았다. 멀리서 청순하게 수도복으로 전신을 감싸고 얼굴마저 가린 그녀들.
더러운 속세의 위협에서 피신해 은둔하며 청빈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수도회의 여인들. 그녀들이 일제히 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보기좋은 근육 미녀들이 주먹에 너클을 끼고 조합의 남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멍한 표정으로 성녀에게 물었다.
“수도회라면서요?”
“수도회? 아니, 그냥 공동체. 우린 한번도 우리가 수도회라고 한 적이 없는데? 여긴 아가사 수도회가 아니라 아가사 공동체.”
“무슨 공동체인데요?”
“체육공동체. 몰라? 원래 우리 아카이아는 올림픽의 성지였단다.”
할말을 잃었다. 그러니깐, 저거 무기만 안들었다 뿐이지, 산속에 살고, 지나가던 행인 털어먹으니깐··· 그냥 근육질 여자 산적단이네.
아아아악!!! 이게 뭐냐고!!! 대체 이게 뭐야!!!!
나의 절규는 조합의 광부들과 공동체 여인들의 격한 몸대화에 묻혀 아스라히 사라져갔다.
그렇게, 성녀의 행방을 찾는 위대한 발걸음은 격한 난투극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날 밤 상당수의 조합 광부들은 허리가 나가서 기어서 하산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성녀는 세게드로 임하는 것에 동의하셨다. 제자 에스텔과 함께 말이다. 물론 단기 조건이었지만 효과는 충분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농노병들은 더 이상 사제들의 태업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고, 교구 사제들도 왠지 모르게 더 이상 태업을 고수하지 않고 성실해졌다.
왜인지는 모른다. 알지만 그냥 모르는 것으로 원만하게 합의했다.
공동체는 존속되었다. 성녀가 떠난 이후, 이제는 눈치볼 것도 없이 그냥 체육공동체가 되었고, 조합은 적당히 상납금을 주고선 토지 사용을 양해받았다.
그리고, 웃프게도 나중에 대다수의 광부와 공동체 여인들은 혼인을 해서, 나중에는 딱히 공동체가 아닌 광산 마을로 자연스럽게 변모했다고 전해진다.
이럴꺼면 애초에 재판은 왜 한거야?
그리고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나는 전에 만났던 두라초의 정보상 양반에게 그토록 알고 싶던 과거의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진실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어라? 니키 쪽 아가씨 아녀? 오늘은 또 왜? 응? 그냥 지나가다 들렸는데, 전에 내가 말한 아가사 성녀의 속바지가 뭔지 궁금하다고?
아, 그거···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약속은 지켜줬으면 하는 일이라서. 사연은 이래.
언젠가, 아가사랑 우리 조직이 무슨 마찰이 있어서, 그 할매가 뚜껑이 열린 적이 있었어.
그 기세가 하도 흉흉해서, 중재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니키가 적당하겠다는 의견이 있었지. 그래서, 의뢰를 했고, 니키가 흔쾌히 동의했지.
근데, 그 자식이 중재는 커녕 겁나 깐죽거리다가, 아가사 할매를 더 열받게 만들었어.
그래서, 눈깔 뒤집힌 아가사가 니키한테 제대로 붙자고 말했고, 니키는 건들거리면서 그러자고 하더라고.
다들 니키가 찢겨 죽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여유만만했지, 그리고 대결이 시작되었는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어.
그녀가 대결할 때 입던 속바지가 흘러내린 거야. 녀석이 아마 허리줄을 끓어놓은 모양이지?
그래서, 황급하게 바지 붙들다가, 니키가 휘두른 의자에 맞고 나뒹굴어졌고, 니키 녀석은 승리를 선언하고 도주했지.
그리고, 정신차린 아가사가 반드시 자기 손으로 찢어 죽인다고 소리치며 니키를 잡으러 다녔어.
그 자식은 우리 조직에 어그로 끌어준 대가를 요구했고, 우리는 이를 갈면서 지불하고 절대로 아가사 앞에서 우리 조직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
뭐, 그랬던 이야기야. 그 새끼 아직 안 찢어졌지? 근데, 아가씨 왜 그렇게 머리아픈 표정이야?”
어후. 이 망할 놈의 카르브나 황조에는 도무지 제대로 된 놈이 없어!!!
하지만, 정말로 속에 열불이 나는 것은 돌아오는 여정에 내 일행이란 놈들이 한 말 때문이었다.
쿠타이가 말했다.
“근데, 누나도 우리랑 같은 거 먹었는데, 누나 혼자만 멀쩡해?”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왜 나는 멀쩡하지?”
정말로 놀랐다. 그러고 보니 나도 먹었는데, 왜 나는 멀쩡해?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율리아가 명쾌하게 정리하며 매도했다.
“저 망할 년 위장이 그 공동체 정신나간 년들이랑 똑같은 수준인가 보지.”
“아, 그러셔? 그래, 네가 그러니깐 갑자기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생각나네. 어디, 팔라이올로구스의 자존심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번 시험해보자. 배 딱대!”
“아아아아아악!!! 싫어!!! 이런 짓은 우스타샤에서도 안당해 봤다고!!! 응기이이이잇!!!!!!”
이젠 우리가 뭘 찾으러 온 건 지도 모르겠다. 아, 디러. 율리아 이 망할 년아. 손에 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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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 아쉽지만 다시 비정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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