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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에, 홀이 술렁였다. 그리고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할말을 잃은 듯 그 누구도 차마 나서서 말하지 못했다. 그들 중에서 오직 크림의 귀족들만이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실의 표정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바실은 뭔가 넋이 빠진 사람처럼 더듬더리며 나에게 물었다.
“어째서··· 대체 어째서 그런 일을···?”
그리고 그의 말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 정신차려라, 카밀라. 이제부터 실수하면 큰일 난다. 정신 바짝 차리고 행동해야 해. 내가 살길은 오로지 그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의 불안함을 억누르며 최대한 호쾌하게 소리쳤다.
“그보다 먼저, 감축드립니다. 바실레이오스 황제 폐하.”
“네? 감축드린다고요? 뭘요?”
나는 당황하여 묻는 바실에게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크게 축하하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이번에 해내신 위대한 업적이죠. 그리고 그로 인해 폐하께서 얻게 되실 찬란한 영광에 대한 감축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폐하께서는 세가지 큰 것과 세가지 작은 것을 한꺼번에 얻으셨습니다. 이를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나의 말에 바실과 홀에 사람들은 더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실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공녀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습니다. 세가지 큰 것과 세가지 작은 것이요? 대체··· 그게 뭔가요?”
바실이 나에게 묻자 나는 손을 내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나씩 설명드리죠. 우선 첫번째 큰 것으로 폐하께서는 이번 일을 통하여 폐하께서 이 제국의 황제임을 스스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모인 유목 민족들의 원로들과 무사들을 보니 폐하께서 제가 기대한대로 성공적으로 그들을 달래시고 제국의 백성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겠군요. 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이시옵니까? 수많은 병사들과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저 뒤에서 고고하게 상황을 전망하였다면 쉽고 간단히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래서는 고작 일개 장군의 자격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몰려오는 수많은 백성들을 힘이 아닌 지혜와 덕과 용기로 다가가, 그들의 신뢰를 얻고 포용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것. 싸우지 않고도 위엄과 권위로 그들을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황제의 자격입니다. 주님께서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예수를 보내시고, 통치를 위해 이 땅에 황제를 내리셨으니, 수많은 백성들이 스스로 굴복하여 섬기기를 결정한 자. 그것이 곧 주님이 정하신 이 땅을 지배하는 자, 황제의 자격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스스로 그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바로 하늘의 인정을 받은 진정한 황제로 거듭나셨습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 말에 안드로니쿠스 근위대장이 말했다.
“자, 잠시만요. 공녀. 태자 마마는 이미 황제십니다. 엄연한 제국의 공동 황제십니다. 그 황제 폐하에게 겨우 그런 이유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목숨이 갈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몰았다고요?”
나는 그런 근위대장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사납게 소리쳤다.
“황제란 대체 무엇입니까? 아비 잘 만나서 거대한 제국을 자격도 없으면서, 상속세도 안내고 날로 먹는 건 황제가 아닙니다. 개새끼지. 황제란 스스로 황제가 되는 자만이 오직 황제이고, 스스로의 제국을 세우는 자만이 황제인 것입니다. 정통 후계자니 혈통이니 하는 이야기는 개 접붙이는 곳에서나 늘어 놓으시죠. 적어도 제가 섬기기에 마땅하다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숙여 복종할 황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 힘이 아니라 덕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자. 혈통이 아닌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 그것만이 나 카밀라의 섬김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정한 황제라 생각합니다.”
나의 말에 근위대장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더 할말은 없어 보였다. 그저 입만 딱벌리고 뻐끔거릴 뿐. 그래서,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두번째 큰 것으로 폐하께서는 사람을 얻으셨습니다. 여기 보이는 초원의 백성들. 한때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을 섬기며 지상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던 몽골 울루스를 건국한 전사들의 후예들. 수많은 방백들과 군주들이 다들 굴복시키려고 하거나, 혹은 포섭하려 하였으나 가질 수 없었던 자들. 그런 이들이 지금 모두 폐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강대한 힘의 위압이나 달콤한 재화의 유혹이 아닌, 오로지 인덕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간 폐하에게 마치 자식이 부모를 따르듯 스스로 백성이 되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한때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던 자들이 스스로 섬긴 황제십니다. 마치, 과거 몽골 울루스를 이끌었던 푸른 늑대 칭기즈칸처럼 말입니다. 감히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칭기즈칸을 따라 대륙을 누비던 전사들이 스스로 따르기로 결정한 새로운 군주가 바로 로마의 황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역대 그 어떤 간웅들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해내신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 폐하는 새로운 자격을 얻게 되셨습니다.”
초원의 백성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본인들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하며, 서로를 당황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말한 새로운 자격이란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바실이 물었다.
“새로운 자격이라고요? 그··· 그게 뭔가요?”
“로마의 백성이 섬기는 자가 로마의 황제라면, 초원의 백성이 섬기는 자는 곧 초원의 칸이겠죠. 축하드립니다. 폐하. 이제 폐하께서는 초원의 백성들의 칸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로마의 황제이시죠. 지금 여기에 동방과 서방의 두 제국을 통합하는 위대한 단 하나의 황제가 탄생하였습니다. 하늘 아래 황제는 오직 하나. 이제부터 초원의 백성들의 섬김을 받는 황제께서는 초원의 칸을 겸하십니다. 이제부터 저 하늘 아래 지상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황제만이 모든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과거 서로마와 동로마의 통합 황제 따위는 소소한 이야기는 내던져 버리시옵소서. 이제부터 폐하는 동방과 서방 모든 대지의 단 하나의 하늘의 뜻과 백성의 섬김을 받은 황제십니다. 그것이 바로 폐하가 얻은 새로운 자격이옵니다. 오오오... 주님께서 축복하시어 이 땅에 오로지 단 한명의 황제를 내려보내시니 이는 곧 그분이 그분의 아들을 보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과 다르지 않도다. 주여, 그대의 황제에게 기름을 부으사 그 존귀함을 축복하소서.“
나의 말에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입을 딱 벌리고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나의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할말을 잃고 어이가 없어진 표정이었다. 무리도 아니지. 나도 지금 내가 뭔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으니깐.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자괴감을 느낄 상황이 아니다. 정신차릴 틈을 주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지금은 황당하면 황당할수록, 어이없으면 어이없을수록 나에게 유리하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번째 큰 것으로 폐하께서는 동방의 거대한 영토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자고로, 대지의 주인은 그 땅에 사는 백성들. 그 백성들이 섬기는 군주는 그 대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극동의 저편에서 광활한 초원을 모두 정복하고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발을 디뎠던 초원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그 광대한 영토에 백성이며, 그곳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섬김을 받는 폐하께서는... 그들의 칸으로서 그들이 살던 영역을 다스릴 권리가 있으십니다.
지중해 연안에 국한된 로마의 영역을 넘어, 저 광활한 영토가 바로 폐하의 영역(데쥬레 : De jure)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입니까? 이스칸다르가 해내었나요? 카이사르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나요? 유럽이 시작된 이래 그 어떤 위대한 정복자도 해내지 못한 광대한 영토의 권리를 손에 넣고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폐하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확장군주가 되셨습니다. 이는 거의 몽골 울루스를 세운 칭기즈칸에 비견할 업적이옵니다.
물론, 지금 그 영토는 폐하의 손에 있지 않고, 권리가 없는 자들의 손에 점거당해 있죠. 하지만, 그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자신들의 실책을 깨닭을 것입니다. 땅이란 곳 그 주인에게 귀속되고, 그 주인을 추방한 시점에서 그들은 고작 불법점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는 지금 폐하의 품에 안긴 저 초원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뿌리내리게 하여, 폐하의 백성으로 만들고 그들의 힘을 키워 원래 그들이 가졌어야 할 그 땅을 손에 넣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의 주인들에게 그것을 돌려주어 저들의 칭송과 순종을 듣는 것이 폐하께서 하셔야 할 의무이지 맞이하실 미래의 확정된 사실입니다.“
나의 말에 그들의 눈은 더 황당하게 변했다. 그리고 일제히 시선을 벽에 지도로 집중. 그리고 내가 말한 수준이 정말로 현실화 될 경우 지도에서 보라색으로 칠해질 영역을 대충 상상해 보더니 경악하고 말았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은 물론 귀순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자들마저도 황당해하며, ‘야, 저거 우리가 나중에 다시 되찾는 거였어?’ 라며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말을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에게 감축드린, 폐하가 이번 일을 통해 얻으신 큰 것 세가지입니다. 황제의 자격에 대한 하늘의 뜻, 위대한 제국을 세웠던 백성들의 순종. 칸의 영역인 광활한 대지의 권리. 함축하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그 세가지를 폐하는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내셨나이다. 그러니 어찌 이를 감축드리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2천년 로마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인지의 저편에 발을 디디신 위대한 황제 폐하시여. 그 거룩한 이름은 바실레이오스 카르브나십니다.”
그리고 나는 마치, 무슨 성경에서 기적을 목격한 선지자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벌리고, 마치 바실이 너무나 빛나 눈이 부신다는 듯이 감격한 표정으로 환희했다. 그러자, 내 기세에 얼떨결에 몇몇 예니체리와 유목민족들은 얼떨결에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분위기 좋아. 이대로 슬그머니 묻고 가면 최선이긴 한데... 그런데 그때 내 기대를 깨는 발언이 있었다. 요하네스 의원이었다.
“자... 잠시만요. 일단 공녀께서 하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 저는 공녀의 말에 전율할 지경입니다. 대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였던건지 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군요. 지금 말하신 것들... 그것이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야망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공학적으로 지독할 정도로 정교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에 저는 혼절할 정도였습니다. 그 스케일이 너무 커서 공녀께서 평소에 하시던 것처럼 그림자에 숨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을 취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진의를 자기 입으로 모두의 앞에서 밝히셔야 정도라니...”
“훗... 나의 정적이시여. 항상 이야기드리지만, 좀더 긴장하고 분발해주셔야 합니다. 시시한 적은 저를 지루하게 하죠. 저는 지루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답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나는, 적성에도 안맞고 항상 이야기 한적도 없지만, 뭔가 의회의 수장과 권력 투쟁을 벌이는 요부 흉내를 내며 그에게 비아냥대었다. 그리고 그것을 받듯이 요하네스 의원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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