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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뭐야? 왜 생각치도 못한 시녀장님 입에서 칭찬 비스므리한 이야기가 나와?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범람 관련 대응에 대해서는, 결과에 대해 왕실에서도 의외로 세게드의 군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셨다.
의외로 고질적인 문제지만 지금까지 지방 영주들이 해결하지 못하던 부분을, 생각치도 못하게 조기에 수습해서 현지 민심이 좋아졌다고 하더구나.
덕분에 올해 수확도 생각보다 괜찮을 것으로 예상되고.”
“아!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의외네요.
저는 하도 그들을 제국을 등에 엎은 눈엣가시로 여기셔서, 이번에도 험한 소리를 들으리라 생각했는데요.”
“뭐, 여전히 그들이 탐탁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최근에 왕실의 사정도 이전과는 좀 달라졌다.
그런 환경의 변화가 조금은 인식의 차이도 만들기 마련이지.”
“사정이 바뀌었다고요? 뭐가요?”
“응? 너도 알지 않느냐? 바로 근위 2군단이 창설 되었지 않느냐?”
시녀장님의 말을 듣고, 나는 그제서야 왕실의 분위기와 반응이 변화한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협정이 예상치 못한 영향력을 발생시켰다.
콘스탄틴노플 협정 이후, 동맹국으로 격상된 헝가리는 마뜩치 못한 헝가리군의 편성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 반 제국 성향의 망명 세력들이 대거 귀국하는 빈틈이 생겼고, 왕실은 그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친위 세력을 구성하였다.
왕실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아르파드 왕가는 기존의 친위 전력을 2배로 늘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지독하게 경멸했던 헝가리군에 대해서도, 어찌되었던 예산을 헝가리 왕실과 정부가 책임지고 관할하는 시점에서 자기들의 관할이었다.
우리가 너무 강하면, 제국을 등에 업은 비수로 보이겠지만, 우리는 너무 취약했다.
왕실의 입장에서 보면, 신의 한수로 생각할 삼돌이 마티와 그의 교리에 따라 소집된 농노군은 어떻게 봐도 수준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 바로 지난번 수해였다.
참관하러 온 그들의 입장에서는, 진흙탕을 구르는 그들이 토목 공사에는 쓸만해 보이지만, 병사로서는 수준 이하로 확신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수준 이하가 맞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위협이 되지 않고, 시키는 궂은 일을 묵묵히 하는 우리들을, 예전처럼 경계할 이유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거기에 수해의 피해가 감소해, 영주와 지주들이 만족했고, 수확량이 늘어 세입도 늘어나는 걸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여전히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왕실이 우릴 감당할만큼 강해지고, 그래서 크게 보면 생각보다는 써먹을만 하다는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
군대로서가 아니라, 하인으로서 말이다.
실질적인 무력은 자기 의지대로 부릴 수 있는 아르파드 근위대가 담당하고, 그걸 보조하고 시중드는 하인군으로 괜찮다는 의견이었다.
그걸 들으면서, 나는 그 사실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라의 이름을 걸고 편성한 군대를 도련님 군대가 하기 싫어하는 그런 잡일시키고 시중드는 일에 써먹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런 관점이라도 좋으니 나와 제국이 요구한 헝가리군를 그럭저럭 수용하는 편이 나은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다른 생각으로는, 솔직히 까놓고 말해 현재 편성하고 있는 헝가리군의 전력에 대해 왕실이 의외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울프스턴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우리 애들은 말이죠, 곱게 커서 그런 험한 일 못해요. 아직 실전에 나가서 사람 죽이고, 집단으로 두들겨 패고 그런 거 무리라고요.
그러니, 그런 일이 있으면 애들 보호자인 저한테 얘기하시라고요. 괜히 착한 우리 애들 건드리지 말고.”
교관이 아니라 엄마냐? 아닌게 아니라, 배식할 때 나름 제국에서 배운 교양이랍시고 앞치마까지 두르고 배식하는 걸 보면 그게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말없이 절규하고 싶었다. 전력 강화에 태업을 하면서, 왕실에 거슬리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군대잖아!!!
군대라면 당연히 실전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건 뭐 토목공사나 대민지원에만 익숙하고, 둔전지의 농사짓는 일에 적성을 보이면 어쩌자는 거야?!!!
오죽하면, 판데모니움 행정부의 재무부서에서 이런 말을 할까?
‘뭐? 군대가 흑자가 난다고? 어떻게? 둔전지 수확량이 급여랑 군수물자를 사용하고도 남아? 그게 말이 돼?’
여기서는 된다 카더라. 이걸로 두가지 사실이 증명된다.
이것들이 얼마나 입대 조건으로 제공된 토지에 의욕이 넘쳤는지. 그리고 얼마나 군대로서 할일 보다는 잡기에 매진하고 있는지.
내가 괜히 모래자루에 화풀이를 하면서 날뛴 것이 아니라니깐.
그런 생각을 하니, 깨질 것을 각오하고 왔다가, 되려 인정 비슷한 것을 받았지만, 크게 기쁘지가 않아졌다.
그래서, 탄식을 하고 있는데, 시녀장님의 말씀이 이어지셨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나름 만족하신 듯 하시다. 예상치 못한 아르파드 근위대의 증강으로 헝가리 내부의 왕권을 무력으로 압도할 수 있게 되셨다.
그리고 의도대로 전력은 약하지만 나름 토목과 부역에 쓸만한 군대가 마련되었다.
왕실은 그걸 근위대의 지원과 다른 잡다한 일에 편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지. 왕실로서는 생각치도 못한 군사적 영향력을 손에 넣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로 인해 예전에는 다소 고자세를 취하던 유력한 영주들이, 최근에 왕실에 저자세로 입장을 전환하고 있다.
군사적 영향력이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쇄 반응에 대해, 국왕께서도 내색은 안하셨지만 나름 기뻐하시는 모양이더라.
이슈트반 왕세자님과 마고 공주님을 크게 치하하셨다고 하더구나.”
의도가 썩은 것과 자기는 정작 아무것도 안한 것은 둘째치고, 아니 그런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감사는 나한테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입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전에 황제가 말했던 그 말. 그것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요하네스 정도로 과대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전쟁이 단순히 자신만이 아닌 주변에 많은 것에 영향을 끼치며 세상을 움직이는 것임은 사실이다.
어쩌면, 사소하게 시작된 나의 귀국과 헝가리군의 편성이 어쩌면 그런 거대한 세상의 움직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일까?
헝가리군이야 여전히 한심하지만, 그로 인해 야기된 아르파드 근위대의 증강과 아르파드 왕실의 정치적 입지 확대.
그것을 보며 나는 그 말이 단순히 주정뱅이의 넋두리로만 보기에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그 원리에 입각해서 이번 일이 영향을 미치게 될 다른 부분에 대한 의견과 입장도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신성동맹 측의 반응이 어떠냐고?”
“네. 사실 헝가리군의 편성에 가장 우려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 아니었습니까?
신성동맹 측에서 우리 헝가리를 제국과 한패로 여기고, 군사력 증강에 대해 그에 준하는 대응을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입장은 없었나요?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양측에서 어디든 의견은 있지 싶은데요?”
“좋은 지적이구나. 그래,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 신성동맹 측은 아르파드 왕실에게 깊은 유감과 우려를 드러내고 있었지.
하지만, 나름 마고 공주님께서 외가의 라인을 통해 신성동맹의 상층부에 의견 전달이 진행되었다.
제국의 주도하에 편성되는 군대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전력은 수준 이하이고, 오히려 친 신성동맹 입장의 근위대가 더 증강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지.
그리고, 편성되는 군대에 대해서도 그 통제권을 아르파드 왕실이 쥐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지난번 홍수 사태에, 관련된 왕실이 지시한 부역작업을 헝가리군이 동원되어 수행하는 것을 그쪽 밀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그 광경에 만족했다.
그리고 나서, 신성동맹 측에서는 우리 왕실에 대해 신뢰와 안도의 언질을 보냈다. 이 또한 왕실에서는 큰 업적으로 기뻐하고 계신다.”
이 말에는 나도 상당히 놀랐다. 어째, 저 언덕 너머에서 화려한 막사를 치고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해 현장에 마고 공주가 근위대랑 왜 나오셨나 했는데, 그때 거기에 신성동맹 측에 밀사들이 동행했던 거야?
그리고 그들이 우려하던 제국의 주도하에 편성된 군대가 진흙탕에 구르는 것을 목격하고?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수완이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교활한 수준이겠지.
나는 지난 번에 좀 허술한 모습을 봐서 살짝 저평가했던 마고 공주의 무서움을 새삼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 머리 위에서 노셨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신성동맹에서는 지금까지 가졌던 우려를 접고, 안심할 수 있었겠군요. 다행입니다.”
“그래.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그들은 우리 측에 우리가 추진한 전력 재건을 축하하며, 오래지 않아 다시 같은 파티에서 보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희소식이지. 미로크슈 이후, 전력이 궤멸되었다고 판단되었던 우리 헝가리를 이제 나름 힘을 갖춘 열강으로 보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충분한 힘과 자격을 갖추면 다시 정식으로 같은 편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이제서야 겨우 원래의 입지를 찾은 것 같다.”
어어··· 이건 내가 좀 제동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쬐끔 강해졌다고, 제국이 약해진 건 아니잖아요?
방금 말한 그거 실제로 실행에 옮기면, 지금 세게드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는 그 녀석이 뚜껑 뒤집어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요? 저 그거 감당 못해요.
하지만, 대놓고 말했다가는 또 무슨 제국 앞잡이라고 지랄을 하실지 몰라, 나는 우회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아··· 그 또한 감축드립니다. 하지만, 그걸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 좋지 싶습니다.
신성동맹 측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충분한 자격과 힘을 가진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국의 시선이 멀지 않으니, 그 일은 나중으로 미루시고 지금은 일단 내부의 안정을 다지며 기다리심이 어떠실지요?”
나는 그런 우려에 쓴소리를 한마디 듣지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래. 그건 굳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윗분들도 공감하시는 사항이다.
확실히 우리가 원래의 위치를 되찾는 것은 아직 무리지. 그건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고, 신성동맹 측도 인지하고 있는 일이다.
실제로, 신성동맹 측의 밀사는 이번 헝가리의 전력 증가에 대해 우리가 언급하지 않길 원했던 질문을 했다더구나.”
“원하지 않았던 질문이요? 그게 뭔가요?”
“이번 전력 증강이 내부적으로는 북부의 위협에 대한 대응도 겸하고 있는지를 물었다고 하더라.”
“북부의 위협이요? 아··· 설마? 슬로바키아인들?”
“그래. 맞다. 전력 증강은 제국과 헝가리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바로, 북방의 땅에서 움크리고, 왕실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그 자도 하고 있다.
북부 대공, 어버 가문의 당주, 슬로슈 어버가 세력을 결집하고, 그 시선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전쟁의 수레바퀴를 떠올렸다. 젠장할. 이거 정말 한번 구르기 시작하니 오만가지 것들을 다 끌어들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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