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
나는 물끄러미 나를 보고 조금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보는 병사들의 면면을 살폈다.
장비를 지급하기는 했지만, 고급은 아닌지라 여전히 허름하고 낡은 경량 군복. 그리고 장비 규격은 맞춰줬어도 개인 휴대품이 더 많은 무장 상태.
면면도 보아하니, 제대로 된 병사보다는 그저 순박한 농부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 농민들이었다.
지난번 수해에서 같이 뒹굴면서, 그나마 망치랑 낫을 들면 좀 믿음직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울프스턴 대장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이런 악의적인 훈련에 자기 새끼들 못보낸다고 나에게도 으름장을 놓았겠지.
차라리 그의 핑계를 대고 발을 뺄걸 그랬나? 하지만 무리수였다.
나는 그의 증언처럼 여전히 전력으로 든든함 보다는 불안함이 가득한 그들을, 잔혹하게도 조롱의 무대 위에 내미는 당사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더 잔인한 것은 그런 나의 의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눈빛은 의외로 기대감이 가득해 보였다.
“조금, 두근두근 거립니다. 밖에 나가면, 국왕 폐하와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보려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거죠?”
“여기 부다페스트는 소문으로 듣던 것 이상이었어요. 훈련 잘 마치고, 혹시 가능하시면 자유시간을 좀 주실 수 없을까요? 가족들 선물을 사고 싶은데.”
“오오··· 드디어, 우리를 모두 다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거죠? 어떡하지? 막, 가슴이 뛰어요. 평생, 땅만 일굴 운명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이번에 차출되어 올라온 것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도 없이, 도리어 자부심이 가득했던 것이다.
나는 순간, 이 양반들이 전에 미리 하달한 지침을 까먹은 것아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 근위대에 방어는 괜찮지만, 적극적인 공세는 취하지 말라고 했던 거요? 네, 당연히 알고 있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체 높으신 집안의 도련님들에게 저희가 어떻게 감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니깐요.”
“어차피 그들도 아군이잖아요? 아군의 공격 훈련의 상대를 하는 거죠? 지는 쪽 대응군은 자신 있습니다. 연기도 리얼하게 할 자신 있어요.”
속이 쓰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아오. 이 한심한 양반들아. 당신들은 지금 조롱당하는 자리에 내몰리는 거라고.
자신감을 내보일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워 해야 정상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내 입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뭔가 나에게 열정적으로 역할을 보여주려는 듯한 그들을 보며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밖에서 나오라는 신호로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것을 들은 병사들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저희들의 모습을 위에서 지켜봐 주세요.”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손을 흔들어 준 후 대기장소를 빠져나와 관객석으로 올라갔다.
관객석에서 나름 한쪽 구석에 마련된 내 자리에서는 멀지만 대충 훈련장의 중심에 도열한 우리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략 수는 1천여명. 현재 세게드 병력에서 손이 노는 빨리 차출가능한 인력만 불러서, 정예라고는 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 덕에 대다수는 작업이나 군둔에 최우선으로 투입되지 않는 예비역 수준의 2선 병사들이 다수였다.
그래도, 저렇게 모아놓으니 좀 기세가 있기는 하구나. 나름 오와 열도 맞추고.
울프스턴 경이 보면, 우리 새끼들 이제 걸음마 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하지만, 그런 기분은 잠시였다.
“오오오!!! 저걸 봐. 아르파드 근위대다!”
“우와. 다들 화려하고 기세가 대단해. 그리고 젊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훈련장으로 아르파드 근위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존에 운영되던 1군이 아닌, 이슈트반 왕세자의 주도 하에 최근 귀국한 귀족가 자제들로 신규 편성된 근위 2군단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젋고 이상적인 체격이었고, 장비도 번쩍번쩍하게 빛이 나는 고급들로 갖추고 있었다.
병력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천여명으로 동수를 맞췄지만, 그 기세는 우리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번 칠디르 전투에서 바실이 데리고 왔던 타그마타 캐타프랙터 부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앙리도 그들 병력을 조지아군 몇만과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했었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어딜 봐도 상대가 안되어 보이는, 농노군과 근위대의 대결. 그것을 자랑스럽게 헝가리의 모든 고위층이 모인 자리에서 선보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관한 것으로 보이는 이슈트반 왕세자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단상 위에 나타나서 소리쳤다.
“오늘, 여기 모인 모든 헝가리의 왕실 사람들과 귀빈들이 보는 앞에서, 두 군대의 모의 전투 훈련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훈련이니 살상을 가하지 않게, 무기는 목검으로 한정하고, 필요 이상의 강한 타격은 금지하지만,
그래도 다시 부활한 우리 헝가리군의 기상을 담아 서로 최선을 다해, 부끄럽지 않은 전투를 여기 모인 모든 분들에게 보여주도록 하길 바랍니다.
두 부대의 개전을 선언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이슈트반 왕세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켜보던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나는 관객석에서 조금 떨어진, 왕과 슬로슈가 자리한 최고 귀빈석을 올려다 보았다. 이슈트반 국왕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고, 마고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슬로슈는 별다른 반응없이 자리에 앉아 훈련장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체크하겠다는 듯이.
그리고, 훈련장에서 서로 양쪽 끝에 도열한 부대는 진형을 갖추고, 서로에게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관객들은 긴장된 얼굴로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주여, 다 저의 비열함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디 기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큰 부상이 없이 마무리 되기를···
잠시 후, 나는 내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그리고, 그 환한 밤에 어울리듯이, 부다페스트 왕궁의 연회장에서는 흥겨운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왕실에서 주관하여 마련한, 홀과 야외의 연회장에서는 여기저기 헝가리 귀족들이 오가며,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연회를 달구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을 흥겨워 보였고, 상당한 고양감이 넘쳐 보였다.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취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서로 얘기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거기서 그저 조용히 구석에서 티내지 않게 숙이고 있어야 했던 일행은 나와 마티 밖에 없지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는 이유도 납득은 되었다.
그것은, 내 옆을 지나가는 어느 배나온 귀족의 건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건배!!! 오늘 훈련에서 멋지게 활약한 아르파드 근위대 2군에게 영광이 있으라!
그리고, 오늘 우측에서 깃발을 들고, 대항군을 발로 걷어차고, 적진에 깃발을 꽂은 기수가 누구인지 보았소? 바로 내 아들이올시다!!!
캬하하하!!! 오늘 적의 좌익을 점거하고, 버티는 놈들을 죄다 물리친 우리 아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와하하하!!! 우리도 보았소. 귀공의 멋진 자제의 활약에 건배하리다.”
주님께서는 되게 직설적으로 기도를 접수하고, 업무 처리를 진행해 버리셨다.
내가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어도, 거 기적 좀 내려주시면 어디가 덧나시나? 그리고 큰 부상이 없게 해달라고 했다고, 작은 부상은 오지게 많이 만들고.
이 양반아! 당신이 무슨 그리스 시대 기계장치의 신도 아니고, 일을 왜 이렇게 기계적으로 처리해!!!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부대는 대차게 박살이 났다. 그것도 우스꽝스러운 수준으로.
애초에 상대가 될 수가 없는 전투였다. 인원을 동수로 맞추고, 무기를 목검으로 한정했어도, 여기는 미리 공세를 취하지 말라고 엄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에 비해, 근위대 2군 녀석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침없이 무기를 마구 휘둘렀다.
그들은 관객석에서 보고 있는, 왕실과 자신들의 상관들과 가족들에게, 자신의 무용의 출중함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개전 신호가 울리자마자, 녀석들은 무서운 기세로 우리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목검을 거의 죽일듯이 내리쳤고,
그 기세에 우리 병사들은 겨우겨우 목검과 방패를 들고 막으며, 서로에게 밀집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작할 때는 서로 길게 도열했던 진이, 순식간에 우리는 웅크리고 뭉친 모습이 되었고, 근위대는 우리를 둘러싼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었다.
그러자, 기세가 더 오른 근위대는 양측의 거점을 점거하고, 고의적으로 최종 거점은 방관하고선, 병사들을 때려잡는 것에 몰두했다.
모의 전투가 아닌, 사실상의 집단 구타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몰려서 뭉쳐버린 우리 병사들은 그런 포위 공격에 더 밀집해서 뭉쳤고, 그래서 그걸 끌어내서 패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런, 뭉쳐 있다가 끌려나와 두들겨 맞는 모습은, 병사들에게는 비극이었지만, 관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희극이 되었다.
그 꼴 사납게 얻어 터지는 모습에, 관객석에서 폭소가 쉴새 없이 울려퍼졌던 것이다.
더 이상, 군사 훈련이라는 것에 의미는 없었고, 그것은 일방적인 코믹액션 코메디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얻어터지던 중에 갑자기 도주하듯이, 깃발을 들고 적진으로 달려나간 병사가 했던 행동도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만세! 최종 거점에 아군기를 꽂았다. 우리 거점은 아직이지? 그럼, 이걸로 우리가 승리···
어? 아아악!!! 잠시만요. 깃발을 꽂으면 잠시 훈련 중지가 규칙··· 아악!!!”
“멍청아! 지금 그딴 것이 어딨냐? 이미 니들 다 패잔병이거든!!! 잠자코 처맞아!!!”
“아악!!! 아아아악!!! 훈련 중지! 훈련 중지!!! 아아아악!!!”
훈련은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 때리던 근위대가 지치고 나서야,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다.
훈련장에는 엉망진창으로 얻어터져서 나뒹굴어진 우리 병사들과, 그들을 뒤로 하고 목검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관객석에 손을 흔드는 근위대가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대성공이었다. 왜냐고? 그야, 극히 소수의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가 다 기뻐했으니깐.
근위대에 가족을 보낸 귀국한 귀족들은 마치 오늘의 승리를, 제국에 대한 승전처럼 기뻐하며 자신들의 가족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딱히 근위대와 무관하더라도,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왕실과 귀족들도 흡족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훈련이 끝나고 그들은 모두 기뻐했고, 연이어 벌어진 파티에서 마치 그들은 승전 축하연이라도 되는 듯 흥겨운 기분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건 전혀 의외의 사람, 그에게도 나름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오늘 훈련을 참관해 보니, 왕실의 근위대의 기상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현격한 수준이더군요.”
“으응? 진심인가? 호오. 슬로슈, 다른 사람도 아닌 그대가 우리 아르파드 근위대에 그런 찬사를 보내다니, 이거 영광이로군.”
왕의 옆에 앉아 있던 슬로슈에게, 오늘 훈련의 감상을 누군가 물어보자, 그는 의외로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말에 감동한 듯 보이던 이슈트반 왕세자에게 마고 공주가 핀잔을 던졌다.
“오라버니. 저 북방의 야수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마세요.
대체, 무슨 수작이지? 아르파드 근위대라면 물어뜯고 싶어 안달인 것이 그대 아니었던가?”
“확실히, 내 숙부와 형님이 돌아가신 것이, 근위대가 우리 슬로바키아군을 앙주가의 정면에 방치한 탓이 크기는 해도···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을 가지고, 무슨 수작을 부리거나 농담을 할 생각은 없소.
정말로 기대 이상이요. 다들, 서유럽에서 망명하던 시절에 나름 군사훈련과 참관을 경험했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개인전투에 유능하고, 체력과 밀집전투에 강한 면모들을 보였소.
그리고, 신속하게 진형을 변환하여 적을 포위하고 각개격파하여, 전쟁의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하고, 그것이 병사 하나하나까지 익숙하더군요.
과거의 앙주 병력에 쩔쩔 매던 아르파드 근위대가 아니었소.
그 동안, 제국에게 사실상 종속국으로 지내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그걸 오히려 군의 재건에 기회로 삼다니.
이 북방의 야수도 이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소.
이런 기적적인 성과를 낸 국왕 폐하와 이슈트반 왕세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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