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2
막사에는 잠시나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아니, 그렇게 느낀 건 나 뿐인가?
아직 저 삼돌이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반응이었고, 바실도 멀뚱한 표정으로 갸웃거리고 있었고, 율리아는 뭔가 되게 느긋했다.
녀석은 성별을 알아보기 힘든 그 요사스러운 복장으로 얼굴에 베일을 두르고 선정적인 모습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녀석이 삼돌이를 보며 말했다.
“그대가 이번에 카밀라 위원장이 선임한 헝가리군의 총사령관 후보자입니까?”
“아, 아··· 네. 그렇습니다. 후네도아라의 마티아스라고···”
“자기 소개는 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깐. 어쩌면 당신 본인보다도 더 당신에 대해서 더 잘 알지도 모르겠군요.”
순간, 나는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녀석의 손에 들린 고급진 서류 뭉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궁중 서류로 보이지만, 실용을 강조하는 황후마마는 저런 거 안쓰신다. 저건, 틀림없이 리키스카의 첩보 보고서일 것이다.
이 망할 기집애. 리키스카의 대외 정보력을 이용해서 미리 사찰을 했던거냐?
나는 의외로 주도면밀한 녀석의 행보에 놀랐고, 대내 정보기관으로만 여겼던 리키스카의 유능함에 더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망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굳이 리키스카 수준이 아니더라도 대충 수소문만 해도 이 녀석의 한심함은 금방 탄로날 것이다.
그런데, 저 정도 두께로 조사를 진행했다면? 깔 것은 무궁무진하겠지. 저 년, 오늘 작정하고 나 까려고 온 거다.
녀석은 그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녀석의 묘한 색기어린 살기에 움츠러드는 마티에게 끈적이게 말했다.
“황실의 수족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다루는 입장에 있다보면, 아무래도 듣는 소리가 많기 마련이죠.
개중에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밖에 없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소문도 있기 마련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중대한 사안에도 그런 소리가 들리더군요.
뭔가, 믿음직한 우방의 강건한 군사지도자가 아닌, 정치적 타산으로 결격의 인사가 배정되었다는 뭐 그런 소문 말이죠.
저는 황궁에서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뜻을 받드는 자로서, 그리고 내궁의 소유물들의 관리자로서
이런 소문을 그저 뜬소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입장이죠. 그래서, 약간의 경위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공식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런 소문에 대해서, 후보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 저는···”
그때 나는 녀석의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고결하신 황궁의 파라코이모메노스시여. 황명을 받드는 막중한 책임을 진 그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오나, 우리 조국의 명운을 짊어지고 황폐해진 대지에 새로운 주축이 될 신생 헝가리군의 사령관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영원히 우방이 될 우리 헝가리 왕실이 특별히 추천한 인재입니다.”
“네, 누가요? 제가요?”
입닥쳐 이 머저리야!!! 나는 다시 한번 위가 쓰리는 기분을 느꼈다. 답이 없는 놈이지만, 지금은 녀석을 어떻게든 변호해야 해.
저 자식이 정말로 우리 왕실이 개도 안먹을 쓰레기를 보낸 것이 탄로나면 망한다고.
근데 어떻게? 그걸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오만 원망과 한탄이 솟구쳤다. 그리고 동시에 말도 안되는 개드립이 머리 속에서 튀어다녔고.
그리고, 그런 나의 돌출행동에 율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카밀라 공녀. 아니, 지금은 진중의 일로 논의하고 있으니, 공녀가 아닌 위원장으로 대우하죠. 카밀라 위원장.
지금 그대는 이곳에 온 총사령관 후보자가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군요. 그 말이 맞나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저의 명예와 우리 아르파드 왕실의 이름을 걸고, 이 사람은 우리 헝가리가 지명한 우리의 적을 상대할 대적자입니다.”
“그대는 그렇게 말하지만, 왠지 우리는 그것을 덮어놓고 믿을 수가 없군요.
왜냐하면 우리 측에는 그것을 부정하는 많은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것들을 그대는 변론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신의 뜻으로 그 중상모략을 논파하고, 이 사람이 우리에게 주님이 보내주신 대리자임을 증명하겠나이다.
바로, 우리의 주인 앞에서 말입니다. 그분이 인정하신다면 환관장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시리라 사료됩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내가 말하고도 좀 낯뜨겁지만, 바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율리아는 불쾌하게 받았다.
그러니깐, 이런 말이다. 저 삼돌이는 정체를 모르지만, 우리랑 같이 있는 저 길치한테 검증받으면 될 거 아니냐? 쟤보다 군사에 뛰어난 사람 있냐고?
전문성이나 지위나 충분히 의사결정할 수 있으니, 쟤한테서 인정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자, 율리아는 베일 너머로도 느껴지는, 짜증이 확 나는 분위기로 말없이 나에게 대화를 걸었다.
‘이 망할 년아. 너 지금 뭐하자는 거냐? 저 삼돌이는 대체 뭐야? 왜 저런 걸 여기다 끌어들이는데?’
‘남이사. 내가 뭘 하든 뭔 상관이야? 우리 집 길치가 괜찮다고 하면 그만이잖아? 괜한 시비털지 말고 적당히 하고 꺼지시지?’
‘너 전부터 좀 많이 수상하거든? 전에 마고랑도 찐하게 놀아나더니, 이번에는 왜 청탁 인사야? 너 진짜 동족들이랑 붙어 먹으려는 거 아니야?’
‘쓰발, 내가 붙어먹던, 비벼먹던 네가 뭔 상관이야? 불만있으면 아가리 털어서 반박해보던가?’
‘하! 그래, 씨바. 붙어보자.’
그리고, 공이 울렸다. 녀석과 나의 배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좀 뜬금없이 재판 형식이었다.
녀석이 검사. 내가 변호사. 삼돌이가 피고인. 길치가 판사다. 그래서, 판사와 피고인은 영문도 모르고 말려든 재판 결투가 시작되었다.
“듣자하니, 출신 성분도 애매한 뜨내기 출신이라 하더군요. 마자르인 인지도 불확실한 사람을 헝가리군의 총사령관으로 선임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의 집안은 왈라키아 후네 지방 출신입니다. 바로 현재 제국령인 왈라키아 말입니다.
네, 말씀하신대로 헝가리인이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따지자면 지역 연고를 따져서 제국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동맹군 사령관에 제국인이 선임되는 것이 불만이라는 말입니까?”
내 말에 바실은 머리를 긁적이며 끄덕. 앗싸, 1승. 하지만 율리아의 공격은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집안이 너무 빈번하게 여러 국가를 전전했던 것을 상기하십시오.
후네 지방에서 연고를 두지 않고, 헝가리와 신성동맹을 오가며 전전한 사람을 무슨 수로 신뢰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향토사학자를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총사령관을 선발하는 겁니다.
다양한 국가에서의 군사 경험은 장점으로 봐야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죠. 우리는 지금 흔치 않은 적성국 교리를 아는 인재를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참전이 다 무엇을 위함 이었습니까? 다 신성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농민반란에 합류한 거 아닙니까?
지금 우리는 거짓 로마 황제의 뒷통수를 까고 오신 흔치 않은 분을 모셨단 말입니다.”
삼돌이는 ‘내가?’ 라는 표정으로 갸웃. 바실도 비슷하게 갸웃거리지만 일단 인정. 2승!
“심약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중대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본인의 개인적인 일도 보호자의 조언을 구하고 휘말리던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주도적으로 군을 통솔할 수는 있는 겁니까?”
“집에서는 가장의 뜻을 따르고, 전장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회에서는 대모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입니까?
우리 헝가리에서는 그런 성실한 청년을, 뭣도 없는 주제에 불만만 많아서 자기 아버지랑 동생을 잡으려고 달려드는 개자식보다 더 높게 칩니다.”
“누구··· 콕 집어서 얘기하는 것 같군요. 그래도 따를만한 사람을 따라야 납득을 할 거 아닙니까?
농민 반란 같은 오합지졸들의 전쟁에나 개입하고 다닌 사람들에게 휘말리다니. 그 사람들은 따를 사람이 아니라 넘어서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오오··· 이 무슨 잔혹한 말을. 멍청한 부모면 유능한 자식이 무시하고 마음대로 넘어가도 된다는 말인가요?
우리 불쌍하신 황제 폐하. 당신의 파라코이모메노스가 혈태자님에게 폐하를 제치고 황위에 오를 것을 종용할 듯 보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아니, 그게 무슨!!!”
하지만, 율리아는 격분했음에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실이 손으로 X자를 그리고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3승!
와, 재밌네. 남한테 역적 누명 뒤집어 씌우기. 근데, 내가 어거지로 우기긴 했지만 솔직히 나도 왠지 저러는 것이 합리적이지 싶은데. 뭐, 사소한 일은 넘어가고.
그런데, 너무 몰아붙였나 보다. 녀석이 제대로 작정하고 덤비기 시작했다. 나도 몰랐던 정보를 가지고.
“아아, 네 뭐 좋습니다. 아주 좋은 자식에, 좋은 제자에, 좋은 피후견인이라고 칩시다. 근데, 좋은 상속자는 못된 모양이더군요.
아니, 좋은 상속인을 못뒀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사령관의 선임은, 단순히 편성될 군의 통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부대의 편성 능력도 중요합니다.
당장은, 선임될 사령관의 전력 자산을 토대로 부대를 충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깐요.
그래서, 현재 후보자가 보유한 전력 자산은, 앞으로 구성될 헝가리군의 구조까지도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진 자산들, 아직 젊은 친구니 그가 물려받은 자산들이 참 볼만하더군요.
그걸 하나씩 검토해 보도록 하죠. 우선, 트랜신의 대모께서 물려주신 병력이 참 가관이더군요. 메이드 3백명. 이거 뭡니까?”
순간, 머리가 어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메이드 3백명? 아니, 쓰바. 트랜신 백작은 뭐하는 놈이길래 메이드를 3백명이나 데리고 있어?
녀석이 내민 서류에 따르면, 정말로 병력은 극소수에 눈에 확 띄는 건 메이드 3백명이 떡하니 기재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헝가리 왕궁에서도 메이드를 3백명이나 굴리진 않겠다. 여기 백작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병사는 간곳 없고 메이드만 3백이야?!!!
예상치 못한 기습 질문에 내가 삐질거리는 사이에 녀석이 우물쭈물하며 설명하려 했다.
“그, 그게··· 트랜신은 워낙에 분쟁이 많았던 지역이라 남자들이 많이 죽어서, 집안에 남자를 잃은 여자들을 메이드로 채용하신···”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건가요?”
나는 녀석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다시 나섰다. 입 다물어, 이 자식아. 판을 더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나는 변명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설명할 말이 잘 안떠오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뭔가 남자들의 로망 같은 상황을 어거지로 전쟁에 끼워맞춰야 했다. 아오!!!
“앞으로 우리 헝가리군의 의무연대와 지원연대가 될 부대를 폄하하지 말아주시죠.”
“뭐, 뭐라고요? 의무연대와 지원연대?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제국이야 인력이 넘쳐나니깐 전문적인 의무병 교육을 받은 의사들로 구성된 아포세카리 연대를 구성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 헝가리는 의사는 커녕 전투병으로 쓸 남자들도 부족하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 대안으로 의무병과를 운영하려면 여자들을 쓸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 영주의 하녀로 일한 메이드는 가장 직무 적합성이 높겠죠.”
“그런 이유로 무슨 목적으로 뽑은건지 알수도 없는 메이드를 3백명이나?”
“의무병의 구성비가 높은 것이 불만이라면, 콘스탄틴노플로 가서 갈레노스 의무총감에게 한번 의견을 받아보시죠.
그분 성품을 생각하면 싸대기 맞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지금이 다치면 그냥 죽게 내팽겨치는 야만의 시대도 아니고, 의무병 비율이 높은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애초에, 제국이 헝가리에 요구한 동맹의 자격이 제국과 유사한 수준의 교리 운영이 가능한 군대 아니었습니까? 우린 그걸 따랐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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