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
그가 박차고 달려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그에게 사격했다. 그 사격에 대해서 그는 예상치 못한 대응을 했다. 자신이 들고 있던 장검을 내가 쏘기도 전에 나에게 투척한 것이다. 검이 날아오자, 나는 당황하여 크로스보우를 들어 방어자세를 취했고, 덕분에 첫발은 크게 빗나갔다. 그리고 크로스보우의 몸통에 그 장검이 박혔다. 나는 곧 그것을 뒤로 던지고 보조 크로스보우를 들었다. 그런데, 달려오던 녀석의 다음 대응은 놀랍게도, 들고 있던 나머지 단검마저 투척한 것이었다. 이 새끼, 미친 건가? 그것까지 던지면 비무장이잖아!!!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장검보다 작은 단검은 나에게 파고들어 왔고, 그 단검은 생각치도 못한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바로, 보조 크로스보우의 시위를 끊어버린 것이다. 크로스보우가 크게 튕겨지며 내 손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나와 그 녀석은 동시에 비무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승리를 장담했다. 나에게는 내 무기를 장전해줄 수호천사가 있다. 그리고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틈에 장전된 주력 크로스보우를 나에게 건냈고, 나는 그것을 녀석에게 겨누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어? 어어어!!!”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 그 녀석이 던진 장검. 아직도 박혀 있는 그것이 크로스보우의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발사한 쿼렐은 의미없이 땅바닥을 향해 발사됐다. 나는, 당황하여 힘을 주고 크로스보우를 고쳐 잡았다. 아직이다. 아직 기회는 있어. 루카가 쿼렐을 쏘면 이건 불편한 둔기라고 했지? 그래, 나에게는 아직 둔기가 있다. 놈이 비무장인 것과는 달리 나에게는 둔기가 있으니, 이걸로 놈을 가격하면···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경악했다. 놈이 비무장이 아니었다.
놈의 손에 검이 들려 있었다. 방금 전 쓰러뜨린 루카가 떨어뜨린 검. 저 자식은 달려오면서 바닥에 떨어진 그 검을 주워서 다시 무장을 한 것이다. 설마, 이걸 노리고 양손에 무기를 다 투척한 거야? 파격적인 발상에 놀라는 것과 동시에 놈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고, 나의 크로스보우는 박살이 나서 산산히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뒤로 나뒹굴어졌고, 승부는 갈렸다. 그 자식은 얄밉게도 빈틈조차 주지 않았다. 4번째 쿼렐을 보조 크로스보우에 장전하려던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고, 바닥에 떨어진 무기가 될 것들을 죄다 발로 차서 뒤로 밀어내면서 말했다.
“낯이 익었다 했는데, 이제야 기억이 나는 군요. 그때 거기서 도망치지 않고 유일하게 쿼렐을 두발 날렸던 병사. 당신이었군요. 율리아노스 형님이 암기 사용하시는 것을 보고 조금 연습해 둔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요. 자, 이것으로 승부는 갈렸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쿼렐을 두 번 날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나 그런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그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손을 피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고, 나와 같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나는 벼랑에서 보이는 바다를 보며 절망적인 기분을 느꼈다. 이제··· 끝이다. 더는 달아날 곳도 없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그녀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원치 않는 것은 나보다 그녀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양팔을 벌리고 내 앞에서 그를 막아서듯 버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공녀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아요. 나를 데려가고 싶다면 차라리 여기서 몸을 던져서 죽겠어요.”
“당신은 기억을 잃었습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당신은 이런 곳에서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혼란스러운 상황에 꿈을 꾸고 있는 것 뿐입니다.”
“아뇨. 꿈이라면 차라리 거기가 꿈이겠죠. 아직도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 기억으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죠. 그래서, 나는 내가 머물 새로운 집을 찾았어요. 바로 여기, 이 사람의 옆이 그곳이에요. 나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아요. 그러니, 나를 데려가고 싶다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신 뿐일 거에요. 나는 겨우 돌아온 내 집에서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에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뒤를 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바실. 여기까지인 모양이에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 가야 한다면 차라리 저 절벽으로 가겠어요. 이런 저를 용서하세요.”
“아그네··· 미안하다고 하지 말아요. 그리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제가 함께 할거에요. 그 어디라도··· 영원히 함께. 제가 당신의 집이 되어드리겠어요.”
나는 몸을 일으켜서 그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벼랑 끝에 섰다. 우리의 각오는 확고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그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가 깊은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공녀님. 당신은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당신이 가진 지위와 신분, 그리고 당신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 그런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그를 따라가서···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것은 결코 쉽지도 달콤하지만도 않은 고난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정말로 당신은 감당할 수 있습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뒤로 하고 그런 망각 속의 행복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제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것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 거에요. 주님에게 맹세코 그럴겁니다. 저는 이미··· 이 분의 여자입니다. 그러니, 제가 후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에요.”
그녀의 말에 바실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내가 기억하던 그 순박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초탈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말했다.
“거기 위험하니 내려오세요. 안잡아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요.”
“그··· 그걸 어떻게 믿고···”
“당신을 죽음으로 내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떠난 다음에 내려와도 상관없고요. 네, 포기하도록 하죠. 제 쪽에서. 아마도, 공녀님께서는 돌아가실 집을 찾으신 것처럼 보이는 군요. 그런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기서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해두죠.”
그의 말에 우리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을? 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아그네에게 복잡한 심정을 많이 담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마리오와 약속한 밀항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왠지 허탈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우리를 못본 척하고 있는 그를 피해 슬슬 옆으로 그를 지나쳤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약속대로 우리를 못본 척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지나치고 나서야 나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닭았다. 그래서, 서둘러 달아나려고 하는데 그때 그가 갑자기 뭔가 말했다.
“잠시만요.”
“······!!!”
뭐지? 설마 우리를 속이고 자살을 못하게 한 건가?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우리 앞에 작은 자루가 하나 내던져졌다. 이··· 이건?
“운이 안좋은 날이네요. 찾으러 온 사람은 사라지고, 먼 바다만 보고 있는데··· 마침, 가져온 경비까지 잃어버리다니 말입니다. 어머니가 들으시면 잔소리를 한참 하실 일이겠죠. 그래도, 그것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서 새출발을 하는 것에 요긴하게 사용된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가 던진 돈자루를 보고 경악했다. 노미스마 금화? 작은 자루지만 상당한 거액이다. 이걸 우리한테 주는 거라고? 나는 순간 그의 호의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보더니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당신은 제게 중요한 분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희들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리고, 이런 호의와 축복을 해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부디, 당신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수호천사가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물끄러미 그녀를 보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도 손을 내밀었고, 그 손등에 그가 키스하며 말했다.
“그 동안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부디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공녀님.”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나도 그에게 고개를 크게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고, 그는 말없이 손을 흔들어 줬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을 뒤로 하고···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약간 늦었지만 마리오는 별짓을 다해서 밀항선의 출발을 지연시키고 있었고, 우리의 도착을 보자 반겼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하마터면 먼저 출발할 뻔 했잖아!!! 그래도 무사히 왔다니 다행이다. 아, 그리고 그쪽이 바실이 말한 그 아가씨···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리오라고 합니다. 근데, 우와··· 이렇게 미인이실 줄이야. 바실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요. 으응? 아얏!!! 아악, 클라라!!! 왜 꼬집어!!!”
“헤벌쭉거리는 거 집어치우지 못해? 너는 이제부터 내가 확실하게 관리할거니깐, 단단히 각오해. 만나서 반가워요. 클라라에요.”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그네에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훗, 그럼 그럴까? 자! 출발하자. 바실, 어서 타. 언제 루카 패거리가 들이닥칠지 몰라. 뭐? 루카 일당이 박살났다고?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뭐? 그 퍼브에 왔던 시골 청년 같은 사람이? 뭐야? 정작 루카를 죽인 것은··· 아그네라고?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은 그런 얘기할 틈이 없어. 일단 출발해야 하니 배를 타. 자세한 것은 티노섬 가는 길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지금은 배를 타라고.”
그렇게 우리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밀항선을 탈 수 있었다. 항상, 돌아가기가 망설여지던 고향 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기분으로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내 친구과, 그의 연인, 제법 묵직한 자금,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만을 사랑해주는 나의 연인이 함께 있다. 그것을 생각하니 항상 돌아가기 꺼려지던 고향으로 가는 길이 마음이 설레였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배가 조금 전 우리가 있었던 해안 절벽을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 위에 바실은 여전히 서있었다. 그가 우리를 알아보았는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갑판 위에서 본 나와 아그네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 모습은 어둠이 내려앉으며 멀어져 갔다. 마치, 우리의 과거의 시간과 작별하듯이. 그리고 아그네가 내 팔에 팔짱을 끼고 머리를 가슴에 묻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고향인 티노 섬은··· 어떤 곳인가요?”
“글쌔요. 작은 섬이죠. 조용하고 한적하고··· 그래서 지겨워서 뛰쳐나왔는데, 지금은 왠지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네요.”
“좋은 느낌이네요. 거기라면, 아무런 싫은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아요. 고마워요··· 바실. 그리고···”
“그리고···?”
“사랑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자, 이제부터는 즐거운 것만 생각하도록 하죠. 뭐가 좋을까요? 우리들의 결혼식?”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그리고 나와 그녀는 갑판에서 키스하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우리의 미래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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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질 공녀는 집에 좀 가고 싶다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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