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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마리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분노로 미쳐 날뛰던 타마르는 갑자기 급우호적인 자세로 제국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그녀에 대한 신원보증인으로는 앙리와 마리아 부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난항을 겪던 타마르의 향후 처우와 전후 처리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타마르는 여왕의 자리를 유지하고선 트빌리시에서 앙리의 보호감찰 하에 체류. 그리고 조지아의 행정과 인사에 대해서는 일부 군관구를 제외하고선 어느 정도의 자치권과 의결권을 부여. 앙리는 조지아 해방군을 흡수한 테마군을 가지고 조지아의 스트라테고스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고, 관할 지역을 캅카스 산맥 동쪽의 체첸과 알라니아까지 포함함. 결론적으로, 제국이 최초에 원했던 조지아 온건파와 타협하여 절반 정도 자치권을 부여하고, 군사력에 대해서만 테마가 담당하는 식으로 결합된 제국령의 형태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건 결과적인 이야기였고, 갑작스러운 타마르 여왕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 우리 측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특히 바실은 더 심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네요? 지금 타마르 여왕이 왜 저러시는 거죠? 아니, 마리아 부인이 대체 뭘 어떻게 하셨길래 저런 심경의 변화를 보이시는 건지···”
그리고 그런 바실의 의문에 대해서 대신 대답한 것은 바로 요하네스 의원이었다.
“훗, 조지아 여왕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한수 아래의 추태를 보여주었지만, 자기 신변을 보장하는 것에는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군요. 여왕으로서는 실격이지만, 개인으로서 자기 보신에는 정말 뛰어난 자질입니다.”
“네엣?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지금 저게 의도적으로 저런 선택을 하신 거라고요? 뭐에 씌이시거나 되게 험한 짓을 당하거나 하신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로 말입니까?”
“물론이죠.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지금 여왕에게 있어서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포지션이 바로 저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는 이번 조지아 전쟁에서 조국을 완벽하게 말아먹었습니다. 체첸인들을 동원하여 조국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수도에 불을 지르고 왕궁을 공격했죠. 그로 인해 조지아인들의 상당수에게 반감을 사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리수를 둬서라도 전쟁에 이겼다면 모두 무마되었겠지만, 전쟁마저도 참패했죠. 전군의 전력을 상실하고, 본거지까지 되려 제국에 빼앗긴 부정할 수 없는 참패입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조지아 해방 전쟁에서 더 이상 상징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무시하기에는 그녀가 가진 이름값과 혈통의 가치가 너무 비싸죠. 과거 조지아를 제국으로 만들었던 타마르 여왕의 이름을 이어받은 그녀가 가진 무게감은 의외로 무능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죠. 그래서,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한 조지아인들에게는 반감을 살지라도 아직 전반적인 조지아에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그녀는 타마르의 후계자이자 자신들의 여왕이죠. 그런 그녀가 가지는 가치는 결국 그녀를 지독하게 위험하게 만들 뿐이죠. 힘없는 상징성은 많은 이들이 탐내서 손을 뻗칠 수 있는 방치된 과실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가치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게 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그것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앙리 콰지모도입니다. 원래, 전쟁에서 포로는 자신을 포로로 잡은 상대에 의지로 처우가 결정되는 것이 관례지요. 그러니, 그녀가 패배한 후 앙리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렇게 그녀가 앙리 콰지모도의 포로가 된다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할말이 생깁니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한때 트빌리시까지 진격하였으나 결국 힘의 역부족으로 패배한 여왕. 그래서, 자신은 타국의 침입자인 추악한 괴물의 노리개로 전락한다. 수치스러운 삶에 미련이 없어 목숨을 끓으려 하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 괴물에 손에 박해당할 백성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 괴물의 노리개로 희생되는 대신에, 조국의 백성들에게는 자치와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여왕은 수치를 감수한다. 키야!!! 이 무슨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까?
유치하고 한심한 이야기지만 백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좋아하죠. 그들은 다들 눈물을 쏟으며, 해방전쟁을 말아먹은 과오는 잊고, 조국과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한 그녀를 추앙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으로 자치와 안전을 보장받은 그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과도한 저항 활동을 중단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반감을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제국이 신변 보호를 하고 있는 그녀를 해꼬지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제국의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입니다. 앙리는 아직도 제국군 내부에서 경계의 대상이죠. 능력은 인정하지만 믿기에는 불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그런 앙리이기에 조지아의 여왕을 잡아먹은 만행에 대해서 제국군은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죠. 다른 지휘관이라면 상당한 문제가 있을 행동입니다. 하지만 앙리니깐 그러고도 남는다는 식으로 개인의 만행으로 면피할 수 있죠. 그리고 다른 사람이라면 행여나 조지아를 기반으로 제국 내에 권력을 위협할 권신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앙리라면 문제없습니다. 안 그래도 경계의 대상인 앙리는 조지아 여왕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되려 견제만 더 당할 우려가 크죠. 그것은 결국 앙리로 하여금 오히려 더 제국군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이번 한수를 통해서, 자신이 조지아 전쟁에서 저지른 과오를 묻어버리고, 신변에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왕위도 유지하고 군사권을 제외한 자치권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었죠. 현재 여왕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그저, 지옥의 꼽추의 외모와 수모에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죠. 정말로 뛰어난 처신과 자기 보신입니다. 자질면에서는 글러먹었지만 제 살길 찾는 것에는 정말이지 존경을 금치 못하겠군요. 대단한 여자입니다.”
정말로··· 눈 한번 질끈 감은 거 맞아? 왠지 눈 까뒤집고, 도망치는 앙리 바지 가랑이 붙들고 다녔을 것 같은데? 나는 왠지 사색이 되서 두 여자한테 도망다니는 앙리를 멀리서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되게 납득이 가는 요하네스 의원의 말에 바실은 감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무슨 뜻으로 그렇게 하셨는지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겠습니다. 저로서는 감히 흉내도 내기 힘든 고도의 정치적 행보셨던 것이군요. 하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감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조지아 전선이 예상치 못한 형태지만 종결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 황당한 결과에 대해 마냥 안도해도 되는 건지 감이 오질 않네요. 뭔가, 너무 허망한 결말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 왔을 때 해도, 타마르 여왕께서 그녀의 이름과 같은 삶을 살리라는 예언이 있었다고 해서, 만만치 않은 사투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모든 조지아 인들에게 그 예언은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며, 다시 한번 타마르 여왕의 전성기가 시작되리라 생각했었다죠. 그래서 저도 상당히 강적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과정은 사투를 벌였지만, 결과는 좀 허망하긴 하네요. 역시, 예언이라는 것은 신빙성이 없는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것일까요?”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울프스턴 경이었다. 그가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응? 그런 예언이 있었던가? 그것 참, 흥미로운 예언이구만. 자신의 이름을 가진 자의 삶을 살게 될 운명이라. 근데, 말이야··· 그 예언에서 가리키는 사람이 그 선대 타마르 여왕이 맞는 건가? 다른 사람일 수는 없는 건가?”
“다른 사람? 그게 무슨 소린가? 조지아에서 타마르라는 이름은 도저히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어려운데···”
요하네스 의원의 대답에 울프스턴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치도 못한 것을 대답했다.
“그 타마르라는 이름 말이야. 그거, 성경에 나오는 다말에서 따온 것 아니야?”
그의 말에 우리 모두는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다말? 나는 갑작스러운 울프스턴의 말에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성경에 그런 사람이 나오던가? 그리고 이 멍멍이는 그런 걸 또 어떻게 아는 거야? 그런 의문에 이 양반은 ‘ 나 대학 다니는 남자야. 왜 이래?’ 라며 대꾸. 그래서 일단 궁금해진 우리는 성경을 펼쳐서 뒤져보았다. 아! 확실히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다말이라는 여성은 두명. 창세기와 사무엘기에서 각각 등장했다. 그래서 조금 내용을 읽어봤는데··· 나는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사무엘기에서 나오는 다말은 다윗왕의 딸로 예루살렘의 공주다. 그녀는 이복오빠인 암논 왕자의 문병을 갔다가, 암논 왕자에게 추행을 당한다. 그래서 분노한 친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도주하고, 나중에 다윗의 용서를 받고 돌아오는데 나중에는 결국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하려다 사망한다. 깨알같이 자기 딸 이름을 여동생 이름인 다말로 지은 것은 덤. 아무튼,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다지만 예루살렘 왕국의 콩가루 내전의 시발점이 되셨던 분이더라.
창세기에서 나오는 다말은 야곱의 아들 유다의 며느리다. 원래 유다의 아들 엘과 결혼했는데, 엘이 죽자 엘의 동생 오난과 재혼한다. 하지만 형사취수제로 인해 다말이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죽은 형 엘의 자식이 되는 것을 싫어한 오난은 질외사정으로 피임을 하다가 주님의 천벌을 받아 죽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자위를 뜻하는 오나니즘의 유래가 된 것은 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과부가 된 다말은 소박맞고 친정에 보내지는데, 그에 앙심을 품었는지 그녀는 창녀로 변장을 하고선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을 해서 아이를 가진다. 그래서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해피엔딩··· 은 무슨 놈의 해피엔딩!!!
대체 이게 뭐야!!! 본인들은 좀 억울하겠지만 왜 인생들이 다들 이 모양인 겨!!! 그리고 타마르라는 이름의 유래가 이거였었어? 우와, 되게 용한 점쟁이였네. 에라이, 예언자 양반, 성경 꺼라!!!
그렇게, 예언의 실체를 접한 우리들이 뒷목을 잡는 것으로 조지아 전선의 평정은 완료되었다. 며칠 후 콘스탄틴노플의 부콜레온 황궁에는 이번 평정에 대한 상징적인 보고로 조지아 와인이 황제의 어전에 도착하였고, 우리의 황제는 그것을 샤일록 재무관으로부터 받아들고 보면서 매우 흡족하게 반응하였다고 한다.
“후후후··· 조지아의 소요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군. 그 진압의 상징으로 보낸 조지아 와인이라. 짐은 실로 만족스럽도다. 하지만, 그 발칙한 조지아인들에게는 조금 더 굴욕을 안겨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제국에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황제가 직접 그들을 욕보여 제국의 두려움을 보여주도록 하겠노라.”
“폐하께서 직접 그들을 능멸하시겠다고요? 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후후후··· 재무관은 듣고 놀라지 말도록. 이 와인 까면 나오는 코르크 바닥, 평소처럼 핡아먹지 않고 그냥 버려 버리겠다. 어떤가? 놈들에게 지독하게 치욕적으로 받아들여지겠지? 우하하하하!!!”
“아, 네··· 착한 능멸 인정합니다.”
“이 양반아! 아깝게 코르크 뚜껑을 버리긴 왜 버려!!! 재활용하지 못해!!!”
결말은 황제가 황후 마마에게 등짝 맞는 걸로 훈훈하게 끝났다나 뭐라나? 아오, 생각해보면 댁 같은 양반이 제국의 황제라는 시점에서 이미 제국의 적성국들에게 지독한 모욕이야. 댁은 그냥 숨만 쉬어도 살아있는 능멸이라고. 그렇게 나는 유치찬란한 황제의 소식에 뒷목을 잡았다. 그러나, 정말로 뒷목을 잡을 일은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중에 알게 된 요하네스 의원의 조지아 전선 고문단 보고서와 관련된 일을 들은 다음이었다.
“요하네스 의원님.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조지아 전선에 참관한 고문단이 제출한 의회 보고서··· 여기 담긴 내용이 정말 사실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데요? 서두부터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조지아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카밀라 공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 공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략의 집대성이라고요? 대체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전쟁에서 공녀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한 적이 없는데요?”
“의원 동료 제군들··· 부디 시선을 넓게 보고, 인지의 저편을 추론하도록 하게. 그리고 항상 모호한 과정에 속지 말고 결과에서 궁극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를 주시하여야 하네. 그렇지 않다면 황제가 키운 저 정치적 괴물의 드레스 한자락조차 따라잡지 못하게 될 것이야. 이번 조지아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에서 제국은 타마르 여왕을 압도하였지. 예언의 여왕이라 불리며, 군략과 책략은 물론 전투실력과 정치적 감각마저도 당대의 영웅이라 불리던 여왕은 제국에 무참하게 처발려 버렸어.
그녀는 전략에서 앙리 콰지모도에게 완패했지. 앙리는 결론적으로 해방군에 대한 조지아인들의 반감을 끌어내고 느슨한 보안체계를 역이용해서 조지아 해방군을 완벽하게 유린했어. 그녀는 전술에서 태자님에게 완패했네. 다섯배나 되는 병력으로 하인과 부상병에 밀려 공성에 실패했지. 그것도 조지아 중심부 트빌리시 왕궁에서 말이야. 그녀는 책략에서 울프스턴에게 완패했지. 울프스턴은 캅카스 산맥을 넘어 그녀의 본거지인 체첸과 알라니아를 점령했어. 군사적으로 그녀는 완벽하게 참패했지. 그런 여왕의 참패는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야.
앙리가 세르비아에서 검증된 반란 진압 솔루션을 시험해서 사용한 것은 정말 그의 생각이었을까? 태자 마마로 하여금 적진에서 전설적인 승리를 만들어 제국의 군신의 신화를 다시 쓴 것이 우연히 벌어졌을까? 북방의 늑대들이 적진에 예상치 못한 기습을 한 것이 정말 실수였을까? 공교롭게도, 그 세명에게 강력한 정치적 조언을 건낼 수 있는 황실의 챔피언이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그걸 우연이라고 치부한다면 뭔가 자신의 지적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마리아 앙겔로스의 결혼과 칠디르 전투의 전개를 기억하게. 이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저 윗선의 강력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결과니깐..”
“허억!!! 그···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뭔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복잡했던 조지아 전쟁의 현장에서, 그 모든 순간에 그녀가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었군요. 실제 현장에서는 한걸음 뒤에 서서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관조하면서··· 이것은 절대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순조롭게 풀려버리는 군요. 맙소사, 갑자기 소름이 돋는 것 같군요.”
“그리고 한가지 더, 타마르를 체포한 현장에서도 그녀가 있었지. 조용히 그림자에 숨어서 트빌리시의 안주인이 여왕을 때려잡는 것을 종용하고 있었던 거야. 아마도, 그때의 그녀는 상당히 사악한 미소로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여왕을 비웃고 있었을거야. 입가를 부채로 가리면서 말이야. 자신이 파둔 함정에 걸린 사자를 자칭하는 아기 고양이가 진짜 사자의 손에 뭉게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웃겼을까? 그래, 이 모든 것은 사실 공녀가 시건방진 조지아의 여왕을 그저 재미삼아 가지고 논 것에 불과해.
감히, 조지아의 정통 여왕임을 내세워 제국에 반기를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실 태자에게 추파를 보내며 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여왕의 행동은 황실과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기 짝이 없었겠지. 그래서, 그녀는 작업에 들어간 거야. 자기 밥그릇에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철부지를 직접 손봐주기로 한거지. 겸사겸사, 그녀를 통해서 제국에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목적도 겸해서 말이야.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략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지.
제국은 조지아의 안정과 더불어 영토를 체첸과 알라니아까지 확장했어. 카스피해까지 제국의 영역이 확장되었지. 그리고 조지아는 이제 제국의 얌전한 우등생이 될거야. 이번 전쟁으로 인해 해방군의 기세는 꺽였고, 제국에 우호적인 기류가 대세를 차지하게 되겠지. 그로 인해 조지아는 제국에 안정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될거야. 그리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서 사람들도 얻은 것이 많아. 바실 태자는 다시 한번 제국의 군신으로서의 위엄을 트빌리시에서 보여주었지. 그의 인상깊은 활약에 조지아인들은 저항의지를 접을 것이고 제국에서는 태자의 명성에 한줄을 더 추가하게 되었지.
베오울프도 다시 한번 명성을 추가했지. 캅카스 산맥도 막지 못한 늑대들의 전설을 그 지방에서 오랫동안 공포로 남게 되겠지. 그리고 앙리도 상당히 재미를 봤지. 조지아 여왕을 자기 배밑에 깔았으니 이보다 더한 업적이 있을까? 그래, 처음부터 공녀에게 여왕 따위는 황실이 기르던 광견에게 주려고 했던 개먹이에 불과했던 거야.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트빌리시의 안주인의 손을 빌어서 뒷탈없이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설계가 아득히 인간의 인지 영역을 넘어서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지.”
“맙소사···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거죠? 그 모든 것이 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이 뭔지 알아? 놀랍게도 그녀는, 그 모든 공작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고문단으로 파견된 나와 우리 일행들이 눈에 불을 키고 주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단, 한번도 자신이 개입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고 모든 공작을 완성했다는 거야. 그녀 특유의 황실에 부담이 될 정치적 책임을 면피하려는 철저하고 완벽한 증거 소각이었지. 나는 두렵다는 생각마저 들더군. 대체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그 일들을 해낼 수가 있었을까? 정말이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아.”
야, 이 멍청한 놈아!!! 아무것도 안했으니 아무도 모르지!!! 난 정말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했단 말이야!!! 이제는 식상하다는 소리마저 들리는 시녀장님 지시도 없었다고! 그냥 난 거기서 멍때리고 서있기만 하고,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날뛰다가 한바탕 개판이 벌어진 것 뿐이라고. 거기에 왜 나를 개입시켜!!! 난 정말 옆에서 그냥 서있기만 했다고. 이제는 숨만 쉬어도 흑막이냐?!!! 하지만, 그런 나의 분노는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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