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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냥 부다페스트로 하시죠. 마침, 저번에 뵈었던 대사관이 기존 제국군 주둔기지도 겸하고 있기도 하니 별다른 부가 업무 없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군의 재편성에 대해서 왕궁과도 빈번하게 오가며 논의를 드려야 하니 거리 상으로도 가깝고.
그러니, 제국 측 의견도 그곳을 선호하고 하니, 별다른 이견이 없으시다면 기존과 동일하게 부다페스트로 정하심이···”
“너 제 정신이니? 지금 제국군의 사령부를 왕궁에서 1시간 거리도 안되는 곳에 두겠다고?”
가장 상식적이고 일반론에 가까운 의견이 나오자마자 기각되어 버렸다. 나는 속에 다시 불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설득하려 노력하였다.
“헝가리군입니다. 어정쩡하게 시작하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정식 정규군이 될 군대입니다.
나중에 이 나라와 왕을 위해서 싸우게 될 군대의 사령부가 수도에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의견입니다.
예전에 진짜 제국군 타그마타가 주둔하던 시절에도 감수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냥 기존 주둔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유임하심이···”
“절대로 안된다!!! 지난번에 봤던 그 막되 먹은 거인들 때문에 아직도 잠을 설치신다더라.
그런 자들을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와 왕궁을 유린하고도 남을 지척에 두는 것은 결코 용납하실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신규로 편성될 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근본도 알수 없는 자들이 왕궁과 왕실을 위협할지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
그런 자들을 수도의 근교에 두는 것은 결코 용납하실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 부다페스트는 꿈도 꾸지 말거라.”
아이, 씨. 사령부가 멀리 있으면 왕궁 못 뒤집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번 되나 안되나 증명해 드려요?
어우, 속으로 되게 반역 마려운 것을 애써 인내했다. 역사 속에 신념을 가진 충신들이 왜 하루아침에 흑화하나 궁금했는데, 왠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는 날아가고, 나는 차선책들을 언급해야 했다.
“그럼 하는 수 없네요. 템즈로 하시죠. 수도와도 거리가 있고, 저희 측 영지이니 그나마 거기가 최선인···”
“거기도 안돼!”
“아니, 왜요? 템즈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요?”
“제국과 너무 가깝다. 바로 국경을 마주하고 제국령 세르비아 테마잖느냐? 안그래도 제국군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군대다.
그런데 제국 국경선 바로 앞에 그 총사령부를 둔다는 것은, 템즈가 사실상 제국령과 다름없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말이 헝가리군이지, 사실상 제국군 해외파견군과 마찬가지가 되겠지. 그것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마에 핏줄서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지금은 뭐 템즈가 그렇게 제국에서 자유롭냐?
레오 두카스가 마음만 먹으면··· 아니, 걔는 마음만 먹어도 무리고,
걔네 참모 중에 고위급도 아니고, 영관급 수준에서 언놈이 승진 욕심에 살짝 미치기만 해도 템즈는 일주일 안에 세르비아 테마에 점거될 것이다.
차라리, 헝가리 정규군과 총사령부가 거기 주둔해야 제국도 긴장을 하고 동맹국에 예의를 차리지.
그러나, 역시나 그런 상식적인 이야기는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지.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으로 생각해본 위치에 대해서 언급했다.
“제국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이 우려되신다면, 그럼 제국에서 가장 먼 곳은 어떻습니까?
쇼프론으로 하시죠. 거기라면 부다페스트와도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 있고, 제국과도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거기라면 군의 사령부로 적합한···”
“너 지금 미친 거 아니니? 쇼프론이라고? 어떻게 거기에 사령부를 만들 생각을 하느냐!!!”
“아니, 왜요? 말씀하신 고려 사항들 다 충족하고, 헝가리 서부에서 그래도 괜찮은 거점 도시인데.”
“신성로마제국과 국경 지역이지 않느냐!!! 신성동맹의 맞은 편에 제국군을 연상할 수 밖에 없는 정규군 사령부가 세워진다니!!!
신성동맹 측에서 그런 도발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들의 대군이 무력 도발에 대한 응징으로 일제히 헝가리 국경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것이 아니라면, 거긴 언급조차 하지 말거라.”
아니, 그거 막으라고 지금 만드는 것이 헝가리군이잖아요? 근데 거기다 두면 안된다고 하면 뭘 어쩌라는 거야?
특히나, 격렬한 시녀장님의 반응에서 나는 문득 회의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고 공주님. 이거 당신 의견입니까? 아오, 열받아.
그냥 율리아 년이 깽판칠 때 말리지 말걸 그랬나 봐.
나는 솟구치는 짜증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장소를 떠올리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북부의 니트라로 하시죠.
거기라면, 제국에도 멀고, 부다페스트와 거리도 있고, 신성동맹과도 적당히 떨어져 있고.
그곳이라면 만족하시겠군요. 거기로 하시겠습니까?”
“안돼.”
뭔가, 이 정도면 거의 습관성 부정적 반응이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드는 시녀장님의 반응이었다.
이제 나도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서, 소리치며 항의했다.
“거기는 또 왜 안되는 건데요!!! 아까 말씀하신 조건에 다 맞아 들어가는 곳이잖아요!!!”
“너 정말 몰라서 이러니? 거기는 슬로바키아인들의 중심지다.”
순간, 아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거기 그랬지. 시녀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헝가리 내부에서 북동부의 영주들이 중앙에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느냐?
애초에 그들은 헝가리 남서부에 거주하는 우리 마자르인들과 인종부터 다른 슬라브의 혈통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중앙에 반감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노골적으로 중앙을 적대시 하며 반기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그 계기는 지난번 십자군 전쟁이었지. 순식간에 헝가리가 통째로 제국에 유린된 것에 대해 그들은 방자하게도 왕실에 책임을 요구했다.
당연히 왕실은 그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수용할 이유가 없었지. 그래서, 그들의 불만은 지금 극에 달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중심지에 신규 편성되는 군대의 사령부를 두겠다고 하면, 누가 봐도 그걸 그들에 대한 탄압으로 볼 것이다. 내전을 원하느냐?”
쏘아붙이는 시녀장님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그나마, 이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지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녀장님의 인식에 대해서 탄식이 나왔다.
지적한 사항에 대해서, 제국 측에서도 동향 분석은 이미 완료되었다. 늦던 빠르던 내전은 반드시 터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어쩌면, 현 시점에서 헝가리군의 편성을 요구한 것은, 예견되는 북동부의 반란을 제국 측에서 미리 방지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사령부 소재지를 거기에 두지 않는 것만으로 저들을 자극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시녀장님의 인식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아오, 쓰바!!! 그럼 대체 어디다가 사령부 설치하라는 말이야!!!
어지간한 헝가리 내에 주요 거점들은 죄다 기각하고선 뭘 어쩌라는 거냐고요!!! 나는 그 울컥함을 담아 소리쳤다.
“그럼 대체 어디다가 설치하냐고요!!! 여기도 안된다. 저기도 안된다.
아무 곳도 안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윗분들이 기겁하시는 그 거인들은 대사관 옆에서 그냥 죽치고 머물거란 말입니다.
그 상황을 바라시는 겁니까?”
“좀 윗분들이 납득할 만한 곳을 말하라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동네고, 사령부를 둬도 큰 위협이나 문제가 되지 않을 그런 어리버리한 곳이 그렇게 없냐?”
아니, 그런 곳이 대체 어디냐고요? 군사령부 소재지를 무슨 시골 깡촌에다가 막 던지라는 겁니까?
시골 농노들의 개간지가 아니라, 군사령부라고요. 군사령부!!! 그걸 그런 식으로 정하라고 하면 누가 납득하냐고요?!!!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나는 힘이 없고, 눈물을 머금고 그런 말도 안되는 동네를 머리 속에서 뒤졌다.
시골 깡촌. 시골 깡촌. 뭔가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곳. 어휴, 대체 그런 곳이 어디냐고?
내 머리 속에 당장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나도, 제국 인질 생활 덕에 이것저것 책으로만 지식을 배웠지, 정작 헝가리에서 가본 곳은 많지가 않다고.
이번에 부다페스트도 처음 와봤고, 우리 부모님이 템즈로 이주하신 이후 평생 템즈 토박이였는데. 그러니 다른 곳은 아는 곳이··· 응?
그런데,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부모님 젊은 시절, 템즈가 아니라 다른 곳에 살았었다고.
템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쪽에 어느 지역에 사시다가, 아르파드 왕가와 앙주 왕가가 내전을 벌이던 시기에, 승리한 공작님 영지로 강제 이주되었고 했다.
원래 고향은 앙주 왕가를 지지하던 영주 덕에 쑥밭이 되고,
그곳에 사는 영민들은 일종의 전리품처럼 승자인 아르파드 가문에 넘어가, 그 영지 중에 하나인 템즈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했었지.
지금도 그 지역은 사람들이 살기는 하지만, 농사가 잘 안되는 불모지대 취급을 받아 벽지로 여겨진다고 들었다.
거기라면 어떨까? 의외로, 시녀장님이 요구하는 조건에는··· 어라? 의외로 다 들어맞어?
제국, 신성동맹, 수도와의 거리도 적절하고, 북동부와도 거리가 있고. 거기다가 딱히 마찰을 벌이거나 문제가 생길 기존 세력도 없어 보이고.
너무 깡촌에 불모지라는 것이 문제인데, 되려 이 부분은 위에서는 바라는 부분이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방금 떠올린 선택지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생각되었다. 당장, 이 의미없는 이야기도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거기 이름이 뭐였더라? 아! 기억났다.
“세게드(Szeged)는 어떨까요?”
“응? 세게드? 흐음··· 세게드라. 그나마 조금은 괜찮은 선택지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알았다. 세게드를 거점으로 정해도 될지, 윗분들에게 의사를 여쭤보고 오도록 하겠다. 조금 기다리거라.”
그렇게, 시녀장님이 방을 나서고 나는 진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뭔가 모든 것이 다 넌더리가 나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세게드는 위에서도 마지못한 척은 하겠지만 최종 결정은 되지 싶다.
겨우 한걸음. 내딛는 것이 아주 진을 빼는 것이 앞으로 시간들이 지독하게 막막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일단, 오늘은 사소한 거 하나 겨우 통과되었다는 것에 만족하자.
제국 측에서는 시골 깡촌에 잡은 것에 어이없음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더 이상 내 알바가 아니다. 나 시켰으면 닥치고 내 맘대로 하게 냅둬!!!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 앞으로 우리 거점이 될 그 깡촌에 탄식이 나왔다. 거기, 포장도로나 있을까?
그날 오후, 시녀장님은 최종적으로 세게드로 정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윗분들의 의사를 전해주셨고, 그것으로 사령부 소재지는 결정되었다.
일단은 그냥 쉬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정계와 인연없는 깡촌의 삶이 어쩌면 속편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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