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2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이번에는 시녀장님의 저런 반응에 대해 약간의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 같아도 명백하게 외세의 개입으로 구성되는 군대의 수장 자리에 누구를 앉혀야 한다고 하면, 저렇게 경기 일으키겠어. 음, 그렇고 말고.
근데, 문제는··· 그래도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씁쓸하게 느끼며 되도록 설득하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석으로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 저들이 어느 말 잘듣는 귀화한 제국 장교 하나를 다시 헝가리인으로 귀화시키고, 그를 지명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처사에 대해서 수용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히 수용 못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럼, 누군가를 지명하기는 하셔야 합니다.”
“누가, 그 독이 든 성배를 마시려 하겠느냐? 차라리 저번처럼 네가 선택지를 정해서 올려라.”
“지역은 가능해도, 사람은 무립니다. 당장, 저는 귀족 가는 물론이고, 왕가에 어떤 분이 계신지도 잘 모른단 말입니다.
잊으셨나 본데, 저 그냥 공녀님 잔심부름하는 몸종이었고, 그나마도 한동안 제국에 인질로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템즈에 머물던 시절에도 공녀님과 마찬가지로 외부에 노출되거나, 다른 귀족분들을 만나뵈었던 적도 없고요.”
시녀장님이 뒷목과 머리를 쥐어 뜯으셨다. 와우, 내 직업병 쓰루 패스! 근데, 왜 유쾌하진 않고 같이 홧병나지?
나는 김에 쐐기를 박듯이 시녀장님에게 말했다.
“거기다가, 거기 선발하면 안될 사람의 조건도 한두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
“유능해도 안되죠?”
“당연하지. 그 놈이 왕실에 무슨 흉측한 마음을 먹을 줄 알고.”
“무능해도 안되죠?”
“그래. 그러다가 제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라고 요구라도 하면···”
“친 제국 성향이어도 안되죠?”
“물론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친 신성동맹도 좀 곤란한 거 아닙니까?”
“적당히 신성동맹 측에 우호적이어야 하지만, 너무 과하면 과거 앙주 왕가 같은 놈이 나올 수도 있으니···”
“슬로바키아인은 안되죠?”
“당연하다! 놈들이 바로 그 군대로 부다페스트를 치는 꼴을 보고 싶으냐?”
“그렇다고 마자르인도 안되잖아요?”
“신성동맹에서 자신들에게 칼을 든 자가 우리 동포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왕족은 안되죠?”
“아르파드 일족이 신성동맹 손에 갈리는 것을 보고 싶더냐? 왕가의 군대는 아르파드 근위대면 족하다.”
“고위 귀족도 안되잖아요?”
“그 놈들이 군을 등에 업고 왕실을 업신 여기는 꼴은 죽어도 못보지.”
“그렇다고, 하급 귀족이나, 용병 출신, 하층민 출신도 안되지 않습니까?”
“그 천한 놈들이 헝가리군의 사령관이라고?!!!”
거기까지 들은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여기서 사람이어도 안되고, 사람이 아니어도 안될 것이라는 답을 받아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납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살짝 들었던 연민이 날아가버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것을 이번만은 웃으며 시녀장님에게 다시 토스했다.
“네, 그러니깐 그 조건에 맞는 사람 지명해 주십시오.”
“아아아아악!!! 그런 말도 안되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
절규하는 시녀장님을 보면서, 왠지 이번만은 통쾌하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기둥 너머 그림자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것 같은, 마고 공주도 왠지 모르게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들었고.
사람들이 이래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다 하청에 넘기는구나. 살짝 납득해버린 하루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해야 할 고민거리를 흔치 않게, 시녀장님에게 떠넘긴 다음에, 시간엄수도 하셔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고 접견을 마쳤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왕실에서는 며칠동안 대소동이 벌어졌다고 들었다.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모아놓고, 그 자리에 앉혀도 무방한 인간을 검증하느라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어휴. 그걸 보며 내가 하던 고생 떠넘긴 것에 쌤통이란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한심하다는 한숨도 나왔다.
제국에서 잘 정리된 인사카드를 하나씩 보면서, 나 혼자서 충분히 선임할 수 있었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네. 집에 왔는데, 다시 떠나고 싶다.
아무튼 그런 소동을 한참을 벌이고 나서, 며칠 후 나에게 방문을 요청하는 통보가 왔다.
“헝가리군 사령관으로 왕실 측이 추천할 사람이 결정되었다.”
“아, 그런가요? 다행이군요. 조건이 워낙 까다로우셔서, 저는 적합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래도 추천자가 나왔다니 다행입니다. 누군가요?”
솔직히, 되게 신기했다. 아니, 저걸 다 통과하는 신기한 놈이 있다고?
어떤 놈인지 면상이나 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물어본 내 질문에 시녀장님은 바로 즉답하셨고, 그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삼돌이 마티다.”
“네?”
“삼돌이 마티라고.”
“······”
그게 뭐야? 먹는 거냐? 템즈공이라던가, 트랜신 백작이라든가 하는 작위가 안나오는 것까진 이해를 하겠다.
하지만, 시녀장님 말만 들어서는 이게 대체, 사람인지부터 조금 의심스러운 명칭에 나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시녀장님의 설명이 이어지셨다.
“윗분들께서는 추천에 큰 고민을 하셔야 했다. 전에 말한대로, 이것저것 안되는 조건들을 다 제외해보니 어디 마땅한 놈이 있어야지.
그래서, 최대한 그 조건에 맞는 인사들을 찾아보고, 양보할 조건들은 양보하다 보니 남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인가요? 조금은 설명을 해주셔야···”
“그 자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먼저 그의 부친의 시절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원래, 그 집안은 트랜실바니아의 호족 출신 집안이었지. 근데, 너도 알다시피 트랜실바니아는 왈라키아와의 접경 지역이고, 국경 분쟁이 빈번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의 부친은 그 분쟁에 참전하며 가문을 일으켰는데, 그러다 왈라키아가 상당히 우세한 상황에서 종전을 맞은 적이 있었지.
그때, 왈라키아에게 점거된 후네 지방이 넘어가면서, 그 집안도 통째로 왈라키아에 넘어가게 되었지.
그래서, 제법 긴 시간 왈라키아의 호족으로 지내다가, 지위도 높아 졌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불가리아의 독립으로 왈라키아가 고립되자 그곳도 혼란스러워졌지.
그때, 상당수의 후네 지방의 마자르 계열 호족들이 다시 헝가리로 이주했는데, 그의 집안도 그때 돌아왔었다.”
“자, 잠시만요. 그러면 지금 왈라키아가 제국 북동부 요충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람은 마자르인이지만 한때 제국인이기도 했다는 말이네요.”
시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시고 설명을 이어가셨다.
“그래. 억지로 말하자면 제국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근본없는 집안이지.
하지만, 헝가리는 당시 귀국한 마자르 호족들을 정책적으로 우대했고, 특히 군사 관련 인사들에게 작위를 높여주었지. 그때 그 집안도 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왕가였던 앙주 왕실에 의해, 헝가리 서북방면에 주로 배치되었다.
프랑스 계열이지만, 신성동맹과 척을 지는 입장이었던 당시 앙주 왕실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서북쪽의 신성로마제국이었거든.
그의 부친은 그곳에서 부임해서 지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국경 너머 신성로마제국의 보헤미아에서 농민 반란이 벌어진 거지.
그 상황에 대해 헝가리 내부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런데 소수 의견으로 그 농민 반란 진압에 참여하자는 의견이 있었지.
부담스러운 신성로마제국이니깐, 차라리 그들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 나중을 생각해서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당시 헝가리의 서북방면의 제후들이 대거 병력을 몰고 보헤미아에 진입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실에서도 그런 우리의 개입을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안도했지.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뇨? 너무 조기에 농민반란이 진압되었나요?”
“아니, 졌다.”
“네··· 네?!!! 뭐라고요?”
“우리가 졌다. 예상치 못한 농민반군의 저항이 너무 강렬했지. 덕분에 우리는 참패하고, 그들 부자는 반군의 포로가 되었지.”
아흑, 눈물이··· 아니, 아무리 허접하다고 해도, 영주들의 사병이 농민반군한테 진 거야? 그리고 포로까지 되고?
대체, 얼마나 무능하면 저래? 서서히 추천인에 대한 윤곽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시녀장님의 말씀은 이어지셨다.
“어이없게도 단순한 포로가 된 수준이 아니었지. 그들 부자는 오히려 반군에 회유되어 적군의 장교로 활동하는 이적행위까지 저질렀지.
뭐, 그의 부친의 주장에 의하면 반군지도자에게 아들인 마티가 인질로 잡혀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그들 부자는 반군에 가담해서 활약했고, 신성로마제국이 악에 바쳐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 다시 도주하듯이 헝가리로 도망쳐 돌아왔지.”
“어휴··· 그걸 곱게 돌아오게 뒀어요?”
“당연히 안그랬지. 그들은 여러가지 죄목으로 체포되어 북서부에 트랜신 영지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뭐, 귀족임을 감안하여 투옥이 아닌 연금에 가까웠지만 사실상 수감생활이나 다름없었지. 그런데, 트랜신에서 지내던 얼마 후 거기서도 소동이 벌어졌지.
바로 당시 앙주 왕가와 우리 아르파드 왕실과의 내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아아··· 이건 대충 알겠네요. 트랜신 측이 아마 앙주 측에 붙었던 모양이네요?
“그래. 하지만, 트랜신 백작은 단순히 앙주 측에 붙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개인 행실에 말이 많았고, 영민들에게도 여론이 안좋았지.
그래서, 백작이 처형되고, 그들 일족은 망명하거나 혹은 수도원에 보내졌다.
그리고 공석이 된 트랜신 영지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지. 그곳은 너도 알다시피 서북쪽 국경에 니트라와 멀지 않은 슬로바키아인들의 땅과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선대 영주가 저지른 일로 영민들의 반응도 안좋아, 슬로바키아인들의 거점에 가까워, 신성로마제국과도 가까워···
이래저래, 맡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지. 그래서, 그곳에서 구금생활을 하던 그들 부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지.
다시 헝가리를 장악한 우리 아르파드 왕실 입장에서는, 출신은 애매하지만 그래도 앙주 측에 붙은 선대에게 구금당했던 그들은 우리 측 사람으로 보였지.
그래서, 그의 부친에게 트랜신 영지의 권리를 주고 그곳에서 뿌리내리게 하였지.
그리고, 그렇게 얻어 걸린 영지에서 조용히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얼마 후 그의 부친이 사망하게 된다.”
“무슨 일이었죠? 병환이 있으셨나요?”
“반란이었다.”
“네? 바, 반란이요?”
“그래. 농민 반란이었다. 아르파드 왕실이 초기에 뿌리내릴 때, 정국이 혼란스러워 헝가리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빈번했지.”
“아니, 설마··· 그럼 그 반란을 이용해서 자기가 뭔가 야심을 품었던 건가요?”
“차라리 그랬으면 무시할 수준도 아니었겠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용되었다.”
“고, 고용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용이라니?”
“말 그대로 고용되었다고. 농민반란 측에 고용이 된거다. 예전에 신성로마제국에서 포로생활 할 때 나름 농민반란에 가담했던 이력이 있었잖느냐?
그걸 기억한 농민반군들이 다들 자기네 반란을 지휘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에 고용이 되었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어서 정말. 덕분에 고용된 반군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당연히 오합지졸인 농민군들이 제대로 싸울 수 없고, 되려 자기들끼리 내분을 벌였지.
그 내분의 과정에서 마침 전염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서 그걸 만류하다가, 결국 쓰러져 사망하고 말았지.
병사라기 보다는 홧병에 가까운 죽음이었지. 그리고 그의 사망으로 농민반란을 흐지부지되었지.
마침, 신성동맹 측의 십자군 결성도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어서, 왕실은 남겨진 아들 마티에게 책임을 강하게 묻지 않았지.
그리고 한동안 잊혀졌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헝가리 내부의 인사들을 검토하면서 다시 검증하게 되었지.
불안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현재로서는 그 망할 자리에 가장 추천 할만한 인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잠시 쓰루패스했던 뒷목걸림이 다시 스파이크를 맞고 나한테 날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