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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미친 황제는 카르브나의 농노 출신이라던데, 마찬가지로 비루한 태생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라도 있었던 걸까?”
“오라버니, 황제는 비루한 것이지 눈이 먼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원래 하루아침에 벼락출세한 근본없는 자들이 미색은 더 탐욕을 부리기 마련이죠.
제국의 내궁에 미모의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이런 걸 취할리가요?”
어, 음. 없어요. 일단, 내궁에 체류하는 여자는 총 2.5명이고요,
그 중에 한명은 합법적으로 취했고, 반명은 의붓아들, 아니 의붓 딸인가? 아무튼 생리적으로 절대 무리고.
남는 건 저 하나인데, 저랑 와인은 같이 깠어도, 뭘 취하고 자시고는 안했는데요?
황궁에 도끼 잘 쓰는 예쁘고 살벌한 언니가 하나 있어서리···
뭔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본국에서 인식하고 있는, 제국에 대한 실제와의 간극 덕분에 머리가 어질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제국과 황제에 대한 폄하로 조금 기분이 좋아진 걸까? 왕은 조금 기분이 풀린 듯한 투로 말했다.
“그 미치광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정상인이 가늠할 수 있을리가 있겠느냐?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한 것 같군. 무슨 의도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미치광이는 우리 눈앞에 겨누고 있던 칼을 물렸다.
그리고 대신에 우리가 심은 저 아이에게 어이없는 감투를 씌워서 우리에게 돌려보냈지. 그것이 우리에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그런 왕의 말을 왕세자가 받았다.
“우리를 모욕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비할 바가 없지만, 동시에 그가 저지른 실수에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입이다.
어찌되었건 이 모욕감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한동안 우리의 목을 옥죄던 제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그들이 목줄이라 여긴 지푸라기만을 남기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미친 황제에게 조소를 보내며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리고 그것을 다시 마고가 받았다.
“확실히, 그건 조금 안도할 부분이긴 하군요. 저런 느슨한 목줄을 믿고 우리를 풀어주다니.
이것으로 신성동맹 측에도 우리가 다시 그쪽으로 돌아설 여지가 있다는 것을 믿고, 우리와의 연계를 강화할 수는 있을 겁니다.
물론, 복잡한 사정들이 있기는 하더라도, 이제 다시 헝가리가 제국을 벗어나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공작님은 그제서야 자기가 할말 이 그거라는 듯 나서며 말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우야 어찌되었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보십시오. 부다페스트를 압박하던 제국군이 철수하였습니다.
이제야 겨우 그들의 압박에서 벗어나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죠.
물론 그것에 대가로 좀 어이없는 조건이 딸려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결과에 대한 공로를 생각해 주십시오.
제국이 물러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압박에서 숨통이 트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모든 헝가리인들이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제 작은 독단이 생각치도 못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나중에 오늘의 결정을 후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생각치도 못하게 발언한 사람이 있었다.
“제국을 얕보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다시 집중되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이 미친 나년아.
아오, 이 망한 놈의 주둥이. 또 왜 난리야? 얼마전에 그 난리를 치고 죽을 뻔하고서도 아직 정신을 못차렸냐?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기에는 너무 도가 지나쳤다.
이 사람들··· 제국을 얕봐도 너무 얕본다. 그래서는 안된다고요. 경험자로서 이야기하건데, 그럼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요.
나는 내가 직접 느껴서 더 확실하게 각인된 그들의 허술하지만 무시무시한 저력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충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물론 분위기는 좋은 상황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고.
공작님과 시녀장님이 사색이 되서 손사래를 치는 사이,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마고 공주였다.
“뭐라고? 지금 네가 감히 뭐라고 했느냐? 뭐? 제국을 얕보지 말라고?”
“그, 그렇습니다. 그들이 떠난 것을 기뻐히심은 알겠으나, 그들을 얕보셔는 안됩니다. 그건 정말, 위험한··· 컥!!! 컥컥컥!”
순간 목이 매이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마고 공주가 손으로 내 턱 대신에 목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분노한 얼굴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을 내멸면 서로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하지만, 그런 스윗한 분위기가 아닌 분노한 얼굴로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누가 너에게 감히 발언을 허락하였더냐? 건방진 것 같으니.
네가 제국에 다녀오더니 윗사람을 모시는 법을 다 잊은 모양이구나. 감히,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지도 못할 이에게 대꾸를 하다니.
지금, 네가 처한 처지와 입장을 망각하였더냐?”
“켁켁, 저는··· 진심어린 조언을··· 드린 겁니다.
그들을··· 그들을 얕보지 마시옵소서. 결코, 그들은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자칫 큰일이···”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은 바로 네 녀석이겠지.
지금 감히 어느 안중이라고, 그 터진 입을 계속 나불거리느냐? 진짜인 카밀라도 내 앞에서는 예법을 갖춰야 할 것을.
감히 카밀라의 대역인 하녀가 지금 내게 대꾸를 해? 네가 정말 정신이 나간 모양이로구나.
지금 네가 이러는 것은, 틀림없이 그 동안 머물던 제국의 위세를 믿고 마치 네가 진짜라도 된 양 착각한 탓이겠지.
그리고, 네가 요사스러운 짓을 해서 제국에 얻어낸 자리를 마치 너의 것인 것처럼 생각한 모양이고.
착각하지 말아라. 너는 아무리 네가 발버둥쳐도 하녀일 뿐이고, 그런 네가 감히 여기서 허락도 없이 말할 자유는 없다.”
목이 졸려도 저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머리 속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흑막인 것은 맞지만 묘하게 유능할 거라는 생각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권위 의식이야 귀족이면 어쩔 수 없더라도, 너무 단편적인 반응이다.
차라리 쥬노가 소름 끼치지만 훨씬 더 상식적인 어른이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라즐로 공작은 성품이 유하셔서 너의 그런 만행을 두고 보고, 벌하려 하지 않은 모양이시지만, 나는 다르다.
국왕 폐하 앞에서 감히 주제도 모르고 망발을 내뱉은 불손함. 그 버릇을 똑똑히 고쳐주도록 하마.”
나는 노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내 목줄기에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마고 공주를 보며, 숨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제기랄. 나는 반항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정말로 진심어린 마음에서 충고한 거라고요.
하지만, 그런 내 말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물리적으로도 목줄기가 졸려 나는 켁켁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기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다들 팔짱을 끼고, 마고가 뭔지 모르지만 나를 벌하려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조국이고 동포지만 남보다도 더 멀고 차갑게 느껴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젠장, 누구라도 좋으니 이 빌어먹을 상황을 끝내줘!!! 숨막혀 죽겠단 말이야. 그런데 그때였다.
“아니, 여기는 출입을 금하는, 크아아악!!!”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 소람에 마고의 시선도 문으로 향한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과과과광!!!!!!’
“크아아아악!!!”
문짝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부숴져 산산히 흩어졌다.
그리고, 그 문짝과 같이 문 밖에 있던 아르파드 근위대원 일부가 방안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졌다. 이, 이게 무슨?
그러나 경악할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나는 문짝의 먼지 틈에서 나타난 사람을 보고 경악했다.
뭐, 뭐야?!!! 왜 네가 여기서 나와?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공작님이셨다.
“히이익!!! 저, 저 사람은···? 제, 제국의 파라코이모메노스?”
그랬다. 율리아였다. 이 망할 년이 문짝을 박살내 버리고, 근위대원들을 안으로 내던져버리고 방안으로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놀랍게도 내가 평소에 드잡이질 하던 그 웬수나, 여기에 오면서 후드를 눌러쓰고 변장했던 모습이나, 바실에게 애교떨던 여장이 아니었다.
리키스카의 수장이자 황궁의 파라코이모메노스에 걸맞는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검보라색 궁중 예복을 걸친
보기만 해도 위압감과 요사스러움이 한눈에 느껴지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이 미친 지지배가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야? 나는 익숙치 않은 그 웬수의 정식 복장에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공작님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셨나 보다. 공작님과 시녀장님은 그 모습을 보더니, 사색이 되서 새파랗게 질렸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황궁에서 두 사람이 저 녀석을 본 모습은 저 차림이었었지?
그리고 나서 겪은 고초를 생각해 보면 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래서, 두 사람이 얼어붙은 사이에 나서서 소리친 것은 이슈트반 왕자였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허락도 없이 이런 만행을!!! 헉!”
이슈트반 왕세자는 순간 율리아와 베일 너머로 시선을 마주치고 숨을 멈췄다.
지독하게 요사스럽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녀의 위압감에 그는 말을 잃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율리아는 중성적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위대하신 로마 제국의 황제이신, 니케포루스 카르브나 폐하의 명을 받들어, 황궁을 다스리는 제국의 환관장, 파라코이모메노스다.
지금 이곳에 지엄하신 황제 폐하와 제국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있다 하여, 내가 직접 벌하러 왔노라.”
그 녀석의 말에 순간, 왕과 왕세자가 긴장했다. 그리고, 내 목을 쥔 마고 공주도 손에 힘을 빼고 조금 얼어붙은 반응을 보였다.
뭔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율리아의 존재는 지독하게 위협적이었고, 그가 말한 제국의 뜻을 거스리는 자라는 말에 사람들이 다들 제 발 저린 모습이었다.
나 역시도 황망하여 뭐라 반응할 생가도 못하는데, 그때 녀석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나와 마고를 본 그 녀석이 성큼성큼 마치 한대 칠 것 같은 기세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녀석의 기세를 본 마고 공주가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녀석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고 녀석이 가까워지자 마고가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아앗?!!!”
‘짜아아아아악!!!!!!’
순간, 마고의 눈에서 어이가 없다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더 어이없는 건 바로 나였다.
왜냐하면, 녀석이 다가와 손을 들어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긴 사람은, 바로 마고가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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