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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항상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부콜레온 황궁 후원에 위치한 카르브나 황실 일가의 자택의 아침도 그런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실, 얼른 일어나서 아침 먹지 못해!!! 그리고 당신도 식탁에서 관보 보지 말라고 했잖아!!!”
“아웅, 엄마··· 나 요새 대외 전략배치 변경으로 맨날 야근인데···”
“아니, 올해는 롯데리우스팀 우승 한번 할 것 같은 분석 기사 나왔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두 황제를 쥐어박는 황후 마마의 모습이 강대한 제국의 고귀한 황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그냥 서민 가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이제는 그다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에 조금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먼저 식사를 마친 황실 가족의 막내가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문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늦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수업 잘하고 오려무나. 그리고, 바실, 너도 좀 쿠타이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없냐?!!!”
“아우, 엄마. 쟤는 수업시간이 지금이니 어쩔 수 없이 지금 나가는 거지만, 나는 아직 출근 시간 남았다고요.”
“태자님, 근데 저희도 군부에 출근시간 좀 아슬아슬 합니다. 오늘 중요 브리핑이 있다고 했으니, 서둘러 주심이···”
“거봐! 카밀라도 그러잖아. 어휴, 어떻게 된 애가 카르브나 살 때부터 느려 터져가지고··· 쟤를 어디다 쓰나 몰라.”
제국의 적성국들에게 소리보다 빠르다는 전술 기동으로, 특히 더 두려움의 존재인 분의 속도가, 황후 마마는 영 마뜩치 못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쓴웃음을 지었고, 그러다 내 심기를 긁는 누군가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야, 아침 좀 제대로 챙겨라. 식단이 이게 뭐냐? 어디 간에 기별이나 가겠냐? 그리고 음식 수준들 하고는, 쯧쯧쯧··· 바실, 차라리 출근하는 길에 우리 리키스카 거리에 레스토랑에서 들려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니? 최고의 만찬으로 준비하라고 할게. 이런 헝가리 시골 냄새 폴폴 나는 음식보단 그것이 더 제국의 최고 존엄에게 어울리지 않겠어?”
“하하하··· 형님, 말씀은 고맙지만 정중히 거절할게요. 저번처럼 제 무릎 위에 앉아서 손으로 하나하나 먹여주시는 봉사는 영 부담스럽네요.”
“이 망할 년아!!! 아침부터 한판 붙을 생각 아니면, 음식에 시비털지 말고 당장 리키스카로 꺼져!!! 그리고, 뭐라고 했어? 시골 냄새 폴폴 나는 헝가리 요리? 그게 마음에 안들면 쳐먹지 마!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매번 억지로 황실 가족의 아침 식사에 숟가락 하나 얹어져 끼어드는 건데? 네년 쳐먹일 건 없다고!!!”
“거, 나까지 포함한 인원 수 맞춰서 플레이팅해 놓고선 더럽게 떽떽 거리네. 감사한 줄 알라고. 고귀한 팔라이올로구스의 마지막 후예가 헝가리 깡촌 음식, 그나마 아까워서 먹어주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야, 계란 더 없냐?”
계란 대신에 국자가 날아갔고, 그걸 공중에서 낚아채고 반격하고, 나는 또 그걸 도마로 막고··· 쿠타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어디가서 사전 대본없이 즉석 공연을 해도 위화감이 없을 합이 짝짝 맞는 난투전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황실의 두 사용인들이 난투를 벌이는 사이, 정작 황제의 절실한 부탁은 기각되었다.
“저기, 커피 한잔만 더··· 음, 둘다 안들리는가 보구나. 그래, 내가 알아서 따라서 마시마.”
황제가 무시되었지만, 딱히 그것에 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우면서도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황실 가족의 아침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고, 나는 서둘러 바실과 같이 군부로 출근길에 나섰다. 가는 길에 바실은 아직도 조금 졸린 눈을 부비며 푸념하듯이 말했다.
“한동안 제국 내부적으로는 큰 일이 없어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는 사이 대외 정세의 흐름이 심상치가 않네요. 하아, 덕분에··· 너무 피곤해요. 그냥 다같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지내면 안되는 걸까요? 덕분에 괜히 뭘 할수도 없는데 신경만 곤두세우는 보고만 올라오고. 의미없는 회의만 길어지고.”
“다들 폐하만을 보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위기가 다가올수록 진지한 태도를 보이셔야 합니다.”
나는 손수건으로 그의 눈꼽을 떼어주며 말했고, 그런 나의 말에 바실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공녀님이 딱히 당부하지 않으셔도 책임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공녀님에게 가볍게 부리는 응석에 불과하고, 머리속으로는 계속 그러한 변화하는 정세에 대한 우려가 꽉 채워져 있죠. 그러니, 공녀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조금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 응석을 조금은 받아주세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드려야죠. 그리고, 저 역시도 제가 태자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런 나의 말에 바실은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표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살짝 얼굴을 붉히고 웃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동정은 맘대로 가져가지 마세요.”
“#$@#%#%@!!!!! 태자님!!! 그건 정말로 그때 제가 아니었다고 몇번을!!!”
바실은 웃었고,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군부에 도착했다. 군부에서는 이미 대회의실에 고위 장교들이 분주하게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개별적으로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실이 입장하자 그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예를 표했고, 바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자 원래 예정대로 군부의 대외 정세 분석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뭔가, 아침에 익숙한 시간을 일상으로 보내고 온 것과는 달리, 대외 정세의 흐름은 상당히 복잡한 흐름으로 격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가장 상징적인 의미가 되는 사건이 보고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가 반포한 금인칙서가 그들 내부적으로 오랜 진통을 겪은 끝에 승인되었습니다.”
군부의 대외 분석 담당자들의 보고에 장성급들은 물론 고위 장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대체 뭔지 몰라 멀뚱거리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듯 분석 담당자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번 금인칙서의 내용은 현재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던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들의 자격과 권리를 정립하고, 그들을 통해 선출되던 황제의 선출 규칙을 명문화 한 것입니다. 얼핏 보면 별다른 특이할 것이 없는, 봉건 영주들에 의해 주먹구구 식으로 운영되던 국가 통치 체계를 성문화하여 그 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강력한 세력을 가진 선제후들을 명문화 해서 그들의 권력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권을 약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 자체의 통합된 힘을 약화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이번 금인칙서의 발효를 통해서 카를 4세는 어마어마한 황권과 신성로마제국 자체의 저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 제국과 대치하고 있는 신성동맹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결과적으로 우리 제국에게 있어 결코 유리할 것이 없는 방향으로 흐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번 사건은 신성동맹과 제국의 관계마저도 초월하여 전세계적인 동향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뭐, 뭐라고? 그게 대체 뭔데 그런 영향까지 예측된다는 거야? 분석관들의 말에 바실은 계속 해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그들은 회의장에 커다란 지도를 가리키며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현재 신성로마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카를 4세는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이고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입니다. 현재, 제국의 유력한 실력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교황 역시도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주교령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황권에 대한 교권의 간섭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금인칙서의 발효는 그러한 카를 4세의 권력을 압박하는 두개의 가문과 교황의 간섭을 제한하는 결과를 발생시켰습니다.
우선, 향후 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는 성직 선제후 3명에 주교령 영주로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대주교로 고정시켰죠. 그리고 그것은 바꿔말하면 그들 대주교들에게 실질적인 세속 영주와 다르지 않은 자격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제 교황은 기존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성직자를 서임하는 방식을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에 개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교황의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영향력의 감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 선제후에는 자신의 영지인 보헤미아와 작센, 브란덴부르크, 팔츠의 4명으로 고정하였습니다.
얼핏보면 별다른 것이 없는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실력자들을 선제후로 선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는 엄청난 자신의 정적 배제가 들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 선제후의 명단에는 오스트리아와 슈바벤을 장악하고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없습니다. 그토록 강력한 세력을 가진 합스부르크가 정작 선제후 명단에는 배제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비텔스바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제후의 명단에는 바이에른도 빠졌습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에 2명의 선제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게도 강대한 바이에른 대신에 다소 약한 팔츠가 비텔스바흐의 이름으로 선제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핏보면 이 금인칙서는 선제후의 권리와 자격을 명시하여 존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헤미아를 근거지로 한 룩셈부르크 가문이 정적과 교권을 배제하고 신성로마제국의 황권을 강력하게 강화한 것입니다.”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긴장된 기분이 들었다.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이라면··· 용공자님의 가문? 그러니, 따지고 보면 카밀라 공녀님의 시댁이다. 헝가리에서 하녀로 살던 시절에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공녀님 시집가려던 용공자님의 가문이 보통 가문이 아니긴 했구나. 전에 머리로는 알았지만 잘 실감이 나지 않다가 저렇게 들으니 묘하게 그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때 문득 바실이 분석관에게 질문했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에서 그런 흐름이 성사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비텔스바흐와 합스부르크도 바보가 아닐텐데, 그런 현재의 황제의 음모에 잠자코 수용하였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좋은 질문이십니다, 폐하. 한때, 제국군 정보분석팀에서는 그런 황권 강화를 도모하는 카를 4세의 행보에 반발한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제기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희망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그러한 결과가 도리어 신성로마제국의 황권 강화로 이어져 버렸죠. 그것은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합스부르크와 비텔스바흐가 머저리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입지가 현재 룩셈부르크에 대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참사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룩셈부르크 황가에 대항할 수 없을 수준으로 정치적 입지가 떨어진 참사? 어? 그건···”
바실은 그 말에 잠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내 알아차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그 시선을 나에게 보냈다. 응? 나를 왜? 에엥? 바실 뿐만 아니라 다른 군의 간부들도 다 왜 나를 봐? 그때, 그 이유를 알아차릴 설명을 분석관이 말하였다.
“맞습니다. 베니스 전쟁입니다. 지난번 이탈리아 전역에서 벌어지고 제국이 대승을 거둔 베니스 전쟁의 여파가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균형을 흔들었습니다. 그 전쟁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방침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비텔스바흐는 그런 그들의 방침을 무시하고 편법으로 자국의 부대를 용병대로 파견하는 형식으로 베니스 측에 지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리에서 공포공의 술안주가 되었죠. 그 이후 이어진 졸전의 결과와 베니스의 멸망에 대해 바이에른은 책임을 벗어나기 어려운 입장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도 그 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컸습니다. 오스트리아에 위치하여 북이탈리아에 영향력을 구사하고 있던 합스부르크는 이번 전쟁의 여파로 그곳들이 제국령으로 편입됨에 따라 상당한 영역의 영향력을 상실하였죠. 그리고 베니스의 몰락도 무시할 수 없는 여파였습니다. 베니스는 합스부르크의 가장 유력한 경제적 후원자였죠. 그들은 그런 경제적 후원을 대가로 이탈리아에서의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고 베니스의 이권을 보장하여 주었습니다. 그런 강력한 경제적 지원을 해주던 베니스의 멸망은 합스부르크의 경제적, 정치적 역량을 추락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었죠.
그 결과, 합스부르크는 명목상의 선제후 자리 한석도 얻지 못하는 심각한 수준으로 타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한 두 유력 가문의 몰락은 상대적으로 현재 신성로마제국의 황실인 룩셈부르크 가문의 위상을 치솟게 만들었죠. 그래서, 이번 금인칙서의 발효에 대해 두 가문은 강한 반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베니스 전쟁으로 인한 결과로 기인한 것입니다.”
전에 시녀장님이 말씀하셨던, 베니스가 망해도 신성동맹 내부에서는 도리어 채권이 디폴트되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던 건가? 아악,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거야. 그 전쟁이 이런 생각치도 못한 여파를 남기다니. 그리고, 왜 그 상황에 대해서 나를 봐? 그거 다 바리의 뚱땡이가 저지른 거라고. 책임을 묻고 싶다면 그 인간한테 물어. 괜히 나를 무슨 경외하는 눈빛으로 우러러 보지 말라고. 그렇게 내가 짜증이 나려는 상황에서 바실의 말이 이어졌다.
“납득이 가는 상황이군요. 그렇다면, 이번 금인칙서를 통해서 황권을 강화한 카를 4세의 다음 행보는··· 틀림없이 우리 제국에 대한 강경 대응이겠군요.”
바실의 말에 모두가 술렁였다. 그리고 나도 당황했다. 으응? 신성로마제국이 지금 우리를 향해 강경한 움직임으로 나올 거라고?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거의 전쟁을 말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바실의 갑작스러운 말에 분석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폐하.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인칙서를 통한 카를 4세의 황권 강화는 목적 달성이 아닌 단순한 과정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금인칙서를 통해 선제후의 자격을 제한하고, 경쟁 가문들을 물먹였다고 해도··· 여전히 신성로마제국의 황권은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과정에서 호되게 당한 합스부르크와 비텔스바흐는 어떤 식으로든 반격을 할 생각을 할 것이고요. 그런 그들의 반격에 제동을 걸고, 좀더 확실한 황권을 구축하기 위해 카를 4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있는 수단은 바로··· 전쟁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신성동맹 내부에서 다소 온건파로 인지되던 신성로마제국이 이제부터는 가장 강경한 입장에서 우리 제국을 압박할 것이고, 그리 오래지 않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대외 전략을 수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우리가 지금까지 조우했던 국지전과는 전혀 다른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전쟁이 될 것이라는 우려스러운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석에 대한 근거에 대해서, 지도를 보면서 하나씩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기를 보시지요.”
그가 가리킨 곳은 발트해 연안, 폴란드 북쪽의 해안 지역이였다. 폴란드와 색깔을 달리하는, 폴란드의 영역이 아닌 저 지역은···
“튜튼기사단령입니다. 이번 금인칙서의 발효에 발맞추어 가장 먼저 그 발효를 지지한 성명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튜튼 기사단입니다. 튜튼 기사단은 이번에 강력해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위를 이용하여 폴란드와 러시아에서의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속셈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신성로마제국 입장에서도 손해볼 것이 없는 입장이죠. 카를 4세는 그들에게 지원을 보내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폴란드와 러시아, 리투아니아 일대를 세력권으로 넣으면··· 우리 제국은 가장 취약한 동북 방면에서 튜튼기사단의 정예와 조우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동유럽과 페르시아에 크게 칠해진 영역을 번갈아 가리켰다.
“몽골의 후예들 역시도 이번 금인칙서의 발효에 대해 축하한다는 사절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근에 대립하던 두 칸국, 킵차크칸국과 일칸국이 종전 조약을 맺었습니다. 같은 무슬림끼리의 대립은 옳지 않다는 그들 내부의 이맘들의 설득을 통해 성사된 결과라고 하더군요. 최근, 카자크를 우리 제국에 추방한 그들은 무슬림 원리주의 일파들이 득세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들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은 우리 제국 내부에 카르브나 칙령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얻은 무슬림들을 이단자로 규정하고 성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추방한 카자크인들과 같이 쓸어버려야 한다고 그들의 칸을 부추기고 있죠. 그러한 그들 무슬림 연합의 결속에 대해서 가장 반기는 쪽 역시 신성로마제국입니다. 암묵적으로 논의되던 신성동맹과 무슬림연합의 대 제국 노선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기정 사실로 인정을 하고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두개의 칸국과 레반트의 난립한 독립군벌들, 그리고 맘루크와 북아프리카의 해적들을 고려한다면 현재 제국의 영역은 양면 정도가 아닌, 동서남북에 포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카를 4세가 있고, 그의 변모한 강경 노선은 그런 전선에 동시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바실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신성동맹 내부에서의 알력은 어떤가요? 그들 내부에서도 복잡한 생각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말씀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군요. 신성동맹 내부에서 항상 신성로마제국을 견제하는 프랑스의 입장을 문의하신 것이죠? 유감스럽지만 그들 역시도 지금 무소불위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카를 4세에 제동을 거는 대항마로서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카를 4세는 한때 친 프랑스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지원하다가 큰 피해를 입은 이후 그는 프랑스에 큰 실망을 하고 노선을 갈아탔죠. 그리고 신성로마제국 내부에서 황권을 확보한 다음에 프랑스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가하였는데, 그런 그의 대응에 프랑스 측은 대부분 당하기 일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프랑스 측의 상황이 조금 불안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푸와티에에서 대 참패를 겪은 이후 아키텐을 완벽하게 상실한 것을 기억하시죠? 그 사건 이후 현재 프랑스는 신성동맹 내부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입장이 아닙니다. 지금, 그 사람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허덕일 지경이니깐요. 그러니, 카를 4세는 프랑스의 견제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것입니다. 여차하면, 지금 아키텐에 있는 그 사람에게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도, 프랑스를 엿먹이는 것은 충분한 상황이니깐 말입니다.”
“아아··· 그렇군요. 거기 그가 있었죠. 아키텐공, 유럽 최강의 명장이 거기 있었네요. 잠시 잊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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