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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율리아는 처음으로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 부분은 아마도 저 모략가에게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율리아의 계획대로 흘러갔을 법도 한데 왜 상황이 이렇게 됐지? 순간, 나는 답을 알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 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근위대장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황제에게 직보해야 할 사안을, 그보다 먼저 나에게 상의해 버리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구나. 따지고 보면 내가 제국에 어이없이 인질로 온 거랑 같은 이유였네.
나는 순간 혈압이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며 근위대장을 째려봤다. 근위대장은 어리둥절. 아오, 이 개념없는 불머리야!!! 네가 모든 일의 원흉이잖아!!! 나는 그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일단 필사적으로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뭔가 상황이 조금 미묘하다. 지금까지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다시 없을 최악의 상황이자,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저 요사스러운 괴물의 계략에 의해 의도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악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의외로 이 상황이 저쪽의 의도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뭔가 거대한 흑막의 우두머리처럼 보였던 율리아도 그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 저것은 그저 우스타샤만을 장악했을 뿐이고, 카탈루냐 전우회와 베니스 저항군은 별개이다. 세 조직이 뭔가 제국의 복수를 위해 힘을 합친 것은 틀림없고, 그걸 율리아가 주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의사결정은 삼자 합의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뭐, 동맹이란 이름으로 모인 자들의 흔한 상황이지.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생각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당장, 우리 헝가리가 신성동맹에게 그런 꼴을 당했으니깐. 우리 윗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을 못버리고 미련을 가진 모양이지만, 동맹은 의례 그런 것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뭔가, 우리가 살아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해라, 아그네!!! 그런데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율리아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물론 계획의 흐름과는 다소 상이한 전개가 이뤄졌지만,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더 좋은 상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혈태자를 후순위로 미뤘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국의 군사력의 정점을 우선 제거하려다, 역습을 당할 것을 우려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닙니까? 뒤로 미루어둔 위험 요소를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거사를 좀더 앞당길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제국의 공동 황제가 우리 손에 떨어지지 않았소? 지금 성공을 논하기에는 위험 변수가 너무 많아졌소. 경우에 따라 일이 틀어졌을 경우 모든 것을 뒤집어 써줄 가에타니 렉터도, 제국의 공동 황제가 온 시점에서는 쉽게 그것만으로 넘어갈 수 없게 되버린 것 아니오? 이건 명백한 돌발 상황이란 말이오. 우리가 복수를 위해 힘을 합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 가능성이나 위험성이 높아진 일을 감정적으로 뛰어들 수는 없소.”
“그 부분에 대한 우려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기밀의 유출과 실패 가능성. 그 두가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죠.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애초에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국에 대한 복수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지금 우리 눈앞에 그 직접적인 제국의 복수의 대상이 결박당한 모습으로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실 것입니까? 다잡은 복수의 대상과 거의 다 온 거사의 성공을 앞두고 망설이실 것입니까? 우리의 초심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전부 우리의 복수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도 눈앞에 대성공이 돌발상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망설임이 있으시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더 시간을 끌 이유도 없겠죠. 마침, 여러분들이 모인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첫번째 복수를 실행에 옮기도록 합시다. 우리의 자격과 동료와 조국을 앗아간 제국의 무력의 정점. 혈태자에게 우리의 복수를 실천에 옮기고 그것을 다시 한번 거사에 결의를 다지는 기회로 만들도록 하시죠.”
그렇게 말한 율리아는 칼을 높이 들고 내려 찍으려는 듯이 칼끝을 아래로 바실에게 향했다. 그것을 본 나는 더는 망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닭았다. 이제는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푸하하하!!! 뭐야, 이거? 여기, 알고 보니 제국에 대한 복수자 사교 모임이었나? 그렇다면 나도 좀 끼워주지 않겠나?”
“······!!!” “······!!!” “······!!!”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집중되었다. 율리아와 우스타샤, 카탈루냐 전우회, 베니스 저항군은 물론, 바실과 안드로니쿠스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런 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힘내라 내 두뇌야!!! 크림에서 혹사시킨 것 미안하지만 한번만 더 힘내줘!!! 안 그러면 우리 다 죽어!!! 일단 살고 보자. 그리고 그런 나의 돌발적인 발언에 오랜 침묵을 깨고 말한 것은 카탈루냐 전우회 쪽 사람이었다.
“이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 이전에 너 누구야?”
그리고 그런 그 남자의 말에 율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같이 포로로 잡힌 혈태자의 일행일 뿐입니다. 저 여자의 헛소리는 무시하시죠. 이봐. 밖으로 끌어...”
“내 이름은 카밀라 아르파드. 위대한 헝가리 아르파드 왕실의 혈통이자, 템즈의 꽃으로 불리운 자다. 그리고, 미로크슈에서 참패한 조국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제국에 인질로 보내진 공녀다. 지금 여기서 나보다 더 제국에 대해 명백한 복수의 자격이 있는 자가 더 있을까? 아마도, 너희들도 한번쯤 내 이름을 멀리서 소문으로나마 들어봤으리라 생각하는데?”
나의 말에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헝가리에서 전에 제국에 항복의 표시로 보낸 공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근데 그 공녀가 왜 여기 있지? 원래 공녀들은 황궁 내궁에서 지내야 하는 것 아닌가?”
뭐야, 이거? 나름 제국에서 살면서 뒷목 잡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에 대한 소문이 대외적으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건가? 어라, 이러면 곤란한데. 내 신분에 대해서 저 사람들이 전혀 모르면 설득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소리쳤다.
“아앗!!! 기억났어. 얼마 전 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 저 사람 제국에서 엄청난 여파를 남긴 사람이야. 틀림없이···”
“후후후, 그래. 나에 대한 그 소문들 어느 정도는 들어본 모양이군.”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황도에서 오징어 혁명 났을 때,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혼자만 오징어 처먹다가 구속된 여자야. 틀림없이 이름이 카밀라라고 했어.”
야!!! 왜 하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오징어야!!! 다른 것들 더 대단한 것들 많잖아!!! 이놈의 오징어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절규하는 사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웅성거렸다.
“다들 오징어를 못먹어 고통받는 상황에서 혼자만 보란듯이 오징어를 먹었다고? 우와··· 되게 나빴다. 그런 파렴치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일단 개념없는 고위 귀족 영애가 맞긴 한 모양이군.”
“아냐. 아까 전에 자신이 제국에 조국의 복수를 할 이유가 있다고 했잖아. 설마 오징어로 제국에 복수한 거냐?”
그만해, 이 미친 놈들아!!!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이 나를 제법 헝가리에서 보내진 거물급 인사로 인식시키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잠시 소강 상태가 지나고 나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튼 뭔가 제국에 복수를 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빼놓으면 섭섭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여기, 그 누구보다도 제국에 대한 복수의 이유가 있는 사람을 앞에다 두고 말이야.”
“뭐야? 지금 우리 쪽에 붙겠다는 말인가? 태자의 측근으로 이곳에 와서 잡힌 상황에서, 혼자 자기 목숨이라도 챙겨보려고?”
나의 말에 대해서 바실과 안드로니쿠스는 심하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내 앞에 불한당들은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불편한 시선들을 감수하며 최대한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 노력하며 말했다.
“너희 쪽에 붙어? 그럴리가? 꿈도 야무지시군. 내가 왜 이제 곧 죽을 망령들과 댄스 스텝을 밟을거라고 생각하지? 동기도 방법도 어설프기 그지 없는 한심한 복수자들이여. 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희가 하려는 행동의 결과가 너무 뻔하고, 그것이 너무나 비참해서 슬픔을 가눌수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다.”
나의 말에 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율리아가 서둘러 말했다.
“무시해도 좋은 헛소리입니다. 허세가 섞인 모역을 귀담아 듣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율리아를 제외한 두 세력은 그렇게 나의 말을 간단히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설명해봐. 뭐가 한심한 복수라는 것이냐? 그리고 무슨 결말이 보인다는 거지? 지금 제국에 공녀로 보내져 황궁에 빌붙어 사는 계집이 감히 우리의 복수를 논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 황궁에 빌붙어서 연명하는 공녀.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우리 조국은 패전했다. 그래서 굴욕적이게도 나는 제국에 인질로 보내졌지. 그리고 조국은 군사력의 통제권을 제국에 빼앗겼지. 무력과 여자를 빼앗긴 나라. 그건 그냥 망한 거지. 이것은 명백한 복수의 사유다. 그래서, 그 일의 가장 중심에 있는 당사자인 나에게는 제국에 대한 복수의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마음 속에 품고선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성사시켰지”
“어떻게? 오징어로?”
“아냐!!! 오징어는 그만 좀 말하라고!!! 그건, 바로 제국을 번영시키는 것이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그들의 의문이 오답을 내기 전에 말을 이어갔다.
“제국으로 하여금 나와 우리 조국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나와 우리 조국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나는 비록 미약하지만 제국의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막대한 득이 되는 일을 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그들에게 가한 복수였노라. 그로 인해, 제국은 지금 나와 우리 조국을 인질과 종속국이 아닌, 측근과 동맹국으로 대하고 있지.
내가 너희들처럼 저열하게 복수할 마음을 먹었다면, 나에게 그럴 기회는 무한하게 있었다. 내가 제국의 두명의 황제의 등에 칼을 꽂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지. 왜냐하면 그것은 복수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큰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저열하기 때문이지. 복수의 대상으로부터 도리어 존경과 경의를 받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가 추구하는 우아한 복수이니라.”
“우와··· 공녀님 대단해. 뭔가 있어 보여요.”
순간, 튀어나온 바실의 한심한 말에 좌중이 다시 침묵. 뭔가 다들 되게 한심한 눈으로 바실을 바라보고, 바실이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나는 뒷목을 잡고 싶지만 결박되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틍스러워 하며 애써 수습하려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 했다.
“아무튼, 진정한 복수란 함은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완벽하게 한쪽의 일방적인 가해로만 끝내야 진정 의미가 있는 거겠지. 화가 난다고 해서 당장 눈앞에 대상에 해꼬지를 해놓구선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수백배로 치르면 그것이 무슨 복수지? 그냥 괴팍한 자살이나 자해가 아닌가? 그것이 너희가 추구하는 결말이라면, 복수의 선배로서 한심하다고 밖에 해줄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그저 괴팍한 자살에 불과하다고?”
“부정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던 거 계속하시지. 저 남창년이 복수라는 이름으로 혈태자의 목에 피를 뿌리는 짓거리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도록 해. 오늘 하루 정도는 뭔가 큰 복수한 기분으로 축배를 들 수 있겠지. 내일을 포기한 대가로 마시는 술맛은 각별할거야. 그리고 내일부터 제국의 복수를 한번 직접 감당해 봐. 다른 사람도 아닌 제국의 차기 후계자가 죽었어. 그 후계자는 제국군의 정점이자 모두의 존경을 받는 불세출의 군신이었지. 그리고 황제는 살아있고. 너희가 하려는 거사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담하건데 수십만 제국군이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너희들을 토막내려고 혈안이 될거다.
너희는 물론 너희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까지 죄다 조각을 내서 널어둘 것이다. 단순한 복수심에서만이 아니라, 복수를 달성한 자에게 어쩌면 떨어질지 모르는 다음 제위를 위해서라도 광분해서 달려들 것이다. 수십만 정예 제국군에게 살아있는 현상금 자루가 되서 보내는 남은 여생은 아마도 지루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자아··· 계속해봐. 말리지 않을 테니 아까 하던 혈태자 살해를 계속 해봐. 저 암내 풍기는 남창의 소망을 이뤄줘. 그리고 그것을 먼산 보듯 옆에서 지켜보라고. 자신과 일가 친척이 몰살당해도, 어느 창부 년의 소망이 더 중요하다면 어쩌겠어? 그렇게 해줘야 남자지.
아, 근데 가능하면 혈태자를 손본 다음에 나도 좀 죽여주길 바래. 우리 헝가리는 괜히 여기 있다가 니들이랑 한패로 몰려 된통 당하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 꼭 나도 태자님과 같이 죽여줘. 정중하게 그리고 간절히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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