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전에 공조하자고 했던 것, 빚독촉이라도 할 생각이야?”
“빚독촉은 개뿔이!!! 야, 대체 이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상황이 종료가 안되는 거야?”
“뭐? 상황이 종료가 안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공작 다 끝났잖아? 그 뚱땡이 정치적 생명 끝났잖아? 근데 뭐가 종료가 안되었다는 건데?”
“종료 안됐어!!! 상황이 종료가 되려면, 당연히 그 상황에 투입한 요원이 복귀를 해야 하잖아!!! 복귀 안했어! 셀레나가 지금 리키스카로 귀환하지 않고 있다고.”
율리아의 말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 싸가지 없는 애가 리키스카에 귀환을 안했다고? 그게 대체 뭔 소리야? 그러고 보니, 계속 패티우스의 동향에만 신경을 쓰다 정작 투입한 요원의 행방은 관심을 안가졌네. 근데, 당연히 지시받은 대로 목표를 확보하고 임무를 달성했으면, 귀환해야 하는 요원이 본대 복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대체, 무슨 일이지? 설마··· 그 공작에 뒤를 밟혀서 어딘가에 붙잡혀 간 건가? 그럼 큰일이잖아.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일에 나까지 엮인 것도 다 들통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설마, 어딘가에 체포된 거야? 그 아이 지금 어딨는데 복귀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자기 집에.”
“엥? 뭐라고?”
“자기 하숙집에 있다고. 그리고 그 집에 그 뚱땡이랑 같이 있단 말이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계획이랑 완전히 틀리잖아!!!”
율리아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뚱땡이가 왜 거기서 나와?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그래서, 뭔가 분개해서 방방 뛰는 율리아를 진정시킨 다음에 좀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율리아의 말에 따르면, 정확하게 패티우스가 요하네스 계파에서 제명된 시점에서 셀레나에게는 패티우스를 뻥 차버리고선 복귀하라는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셀레나도 동의했고. 근데, 그 일이 있고 나서 패티우스를 뻥 차버리러 간 셀레나로부터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소문해보니 머물고 있는 곳은 자기 하숙집. 그리고 거기 놀랍게도 갈곳이 없어진 패티우스도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황해서 서둘러 경위를 확인하려고 하였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동네북이 된 패티우스를 만만하게 보고 손을 보려는 사람들은 제노스 일가를 제외하고도 많았고, 거기에 요하네스 계파도 사람들을 동원하여 리키스카의 움직임에 경계를 하고 있던 터라 근접해서 확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셀레나의 이상 행동에 대해서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나는 직면한 뜬금없는 상황에 날뛰는 율리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째··· 일이 너무 쉽게 진행이 되더라. 그리고 그에게 일단 리키스카에서 접근하는 것이 좀 애매하다면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은 내가 가서 상황을 파악해 보면 되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율리아는 좀 고민하더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도 변장하고 동행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율리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베일을 쓰고선 셀레나의 거처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상당히 남루한 황도 성벽 외곽에 있는 슬럼가였다. 그리고 의외로 그녀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집을 나온 그녀와 딱 마주쳤으니깐.
“어라? 율리아 언니? 여긴 왠 일이셔?”
“여긴 왠 일이냐니?!!! 지금 그런 말이 잘도 나오는 구나. 너야 말로 왜 여기 있는 건데? 리키스카에서 내린 복귀 명령을 잊었느냐?”
“아, 그거? 안 잊었지. 내가 무슨 치매 걸릴 나이도 아니고. 근데, 미안. 나 복귀 못하겠어. 안 돌아갈래.”
율리아의 눈이 뒤집히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와··· 그토록 보고 싶은 광경을 생각치도 못하게 쉽게 보네. 그래서, 뭔가 격노해서 뒤집어지려는 율리아를 잠시 뒤로 밀쳐내고 내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에게 물었다.
“셀레나 양. 지금 그게 무슨 말이죠? 리키스카로 복귀를 못하겠다고요? 그게 그렇게 장난처럼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리고, 수소문해보니 지금 타겟이었던 패티우스 의원과 같이 있는 모양인데··· 대체 무슨 경위가 생긴 건지 설명을 좀 해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녀가 머리를 좀 긁적이며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냥 돈 많고 권력 있는 속물 뚱땡이 하나 꼬셔서 털어먹으면 되는 일이라면서? 그 말 그대로더라고. 그래서, 실력 발휘해서 신나게 털어먹었지. 그 뚱땡이가 나한테 홀려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제대로 말이야. 덕분에 이것저것 잔뜩 손에 넣었지. 그 뚱땡이 정말로 나한테 완전히 빠져서 간도 빼줄 기세더라고. 그리고 막판에 지시한대로 본처랑 한판 뜨는 것도 제대로 했고 말이야.
킥킥킥··· 그 아줌마 겁나 타격감 좋던데. 덕분에 그 뚱땡이 오빠 완전히 망하는 것도 실시간으로 잘 확인했지. 뭐, 흔한 가게 호구들의 결말이었지. 그래서, 슬슬 마무리 할 생각을 하려는데 마침 복귀 명령도 떨어져서 깔끔하게 손털고 가려고 마지막으로 그 뚱땡이를 정리하러 갔지. 뭐, 적당히 이제 개털이 된 댁한테 관심없으니 그만 꺼져 달라고 하고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어.”
“아니, 근데 왜···? 그렇게 했는데 아직 같이 붙어 있는 건데요?”
“돌발 상황이 터졌어. 개털이 된 뚱땡이 오빠 만나러 간 자리에서 뭔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전처의 처가에서 보낸 건달들이 덮쳤어. 뭐, 듣자하니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거의 며칠에 한번씩은 방문하는 불청객들이신 모양이더구만. 근데, 그 날은 마침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거지. 그 건달들 아마 나를 발견할 경우 같이 손보라는 의뢰를 받았나 보더라고. 그래서, 그 자식들 나도 해꼬지 하려고 달려들더라. 덕분에 그 자식들한테 험한 꼴 당하려는 찰라에 뚱땡이 오빠가 나를 끌어안고선 엎드려 버렸어. 그리고 두들겨 패는 놈들의 공격을 죄다 자기 몸으로 막으면서 날 보호하더라고.
생각치도 못한 뚱땡이 오빠의 행동에 내가 다 황당하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그 오빠가 피떡이 되도록 처맞으면서도 날 지켜준 덕분에 나는 별 탈없이 무사할 수 있었지. 그리고 수도 경비대원들이 와서 녀석들이 달아나고 나서도 내 걱정만 하더라고. 하, 그 꼴을 보니 사람이 잔인해지기 참 그렇더라. 그래도 받은 지시가 있으니 하는 수 없이 준비해둔 말을 했지. 이제 개털이 된 댁한테 더는 볼일이 없다고. 더는 가게로 찾아오지 말라고. 그 말 하려고 왔다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그 오빠 그냥 멍하니 있더라고. 화를 내던 낙심을 하던 뭔가 할 생각도 안하고 그냥 멍하니 있더라고.
그래서, 할말 다했으니 이제 그만 가겠다고 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그때 오빠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우더니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라고요? 그게 뭔데요?”
나는 순간 긴장했다. 그의 입에서 군부의 공작이나 리키스카의 음모를 알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가 했다는 말은 정말로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 동안 고마웠다고. 그리고 난리통에 신발이 없어졌는데, 맨발로 가면 발 아프니 자기 신발 신고 가라고 하더라고.”
“뭐··· 뭐라고요?”
머저리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머저리인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니, 자기 털어먹고 패가망신 시킨 꽃뱀이 이실직고 하고 단물 빠졌으니 사라지란 말을 했는데 그걸 듣고도 저렇게 반응했다고? 세상에 호구도 이런 호구가 있을 줄이야. 우리 집 바실이를 능가하는 호구였네. 근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셀레나의 표정이 묘하게 복잡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응? 이건 또 무슨 반응? 그녀가 말했다.
“하! 겁나 병신 같은 호구 새끼.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더라. 근데, 웃기는 것이··· 발걸음도 안떨어지더라. 그게 뭐라고. 그 머저리가 지껄인 등신 짓거리가 뭐라고 갑자기 훅 들어오데. 그래서, 어이가 없어서 물어봤지. 그렇데 다 나한테 털어주고선 갈 곳은 있냐고? 없다더라고. 그래서 그랬어. 등신같이 꽃뱀한테 털리고 꼴 좋다고 말이야. 그 말에 시무룩해지는 오빠한테 이어서 말했지. 지금까지는 나한테 퍼줬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퍼주겠다고. 신발 필요없으니 오빠가 신고, 대신에 나 업어서 우리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어. 그리고, 앞으론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어. 그렇게 된 거야.”
셀레나의 말은 일목요연했다. 아, 그렇게 된 거구나··· 라고 납득할 수가 있겠냐!!! 나는 뭔가 마지막에 삐긋해진 공작의 결말에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돼지 꼬시라고 보낸 꽃뱀이, 도리어 돼지한테 먹혔어? 그리고 그런 나의 황당함은 율리아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율리아가 소리쳤다.
“이 미친 년아!!! 그걸 말이라고 하고 앉아 있어? 지금 이 일이 장난이야? 내가 말했지? 일은 예전에 창관과 비슷해도, 이제부터는 너희들은 유흥가의 작부가 아니라, 제국의 그림자를 책임지는 비밀 요원들이라고!!! 근데, 첫 파견나간 임무에서 타겟에게 홀랑 넘어갔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앉아 있어? 어흑!!! 뒷목이!!! 셀레나 요원!!! 지금, 리키스카의 수장으로 정식으로 통고한다. 지금, 즉시 타겟에서 떨어져서 본대로 복귀해라. 지금이라도 복귀하면 그간의 과실은 묻지 않겠다. 하지만, 복귀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지금 즉시 복귀해!!!”
“싫어.”
황실 정보조직 수장의 무시무시한 통고에도 불구하고 셀레나는 짧고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그 의사 표현에 결국 율리아는 뒷목을 쥐고 휘청거렸고, 살다보니 내가 얘를 부축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셀레나의 말이 이어졌다.
“나, 안돌아가. 이제 나 저 뚱땡이 오빠랑 같이 살거야. 가게도 안나갈거야. 그리고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리키스카인지 뭔지도 그만 둘래. 퇴직금 달라는 소리는 안할 테니, 그냥 보내줘. 나 이제 저 오빠 챙겨야 해.”
“지금, 네가 내 말이 장난으로 들리나 본데!!! 네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내가 곱게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하느냐? 리키스카가 탈주한 요원을 손볼 사람도 없는 허술한 조직으로 보이냐? 당장 현장 요원들을 불러서 널 강제로···”
율리아는 흥분해서 격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을 끊고 셀레나가 말했다.
“함 해보셔. 무슨 결과가 나오는지 기대가 되네. 내가 우리 뚱땡이 오빠한테 얘기해 뒀거든. 내가 반나절 이상 사라지면, 그때는 내가 숨겨두고 그 장소를 오빠한테만 알려준 편지를 찾아서 읽으라고. 거기, 내 소재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을거라고 말이야. 거기 구구절절히 적어 놨어. 내 신상과 언니 신상과 우리 조직에 대해서 말이야. 우리 뚱땡이 오빠 정치 생명은 끊어졌어도 아직 의원은 의원이지?
제국 의회의 현역 의원에게 황실 첩보 조직이 공작을 벌여 실각을 시켰다는 증거와 증언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난 바보라서 잘 모르겠는데, 전에 언니가 시킨 요원 수업에 따르면··· 그 경우, 황실은 그 관련성을 부인하고 독단 행동을 벌인 주동자의 입을 강제로 막아버린다고 했던가? 그러니 언니가 선택하셔. 언니가 입막음 당할래? 아니면 내가 조용히 입다물고 퇴직할까?”
“······!!!!!!”
우와, 대단해. 정말로 1군으로 올릴 인재는 맞았구나. 말이 경박해서 잘 몰랐는데, 야무진 것이 아주 요원 수업은 제대로 배웠네. 정황 상 황실에서 입막음을 한다는 것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하는 것일리 없지. 자기 퇴직 조건으로 리키스카를 작살내버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리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말에 율리아의 표정은 하얗게 질렸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격하게 소리쳤다.
“네가 그런 짓을 하고선 뭘 얻을 수 있는데!!! 리키스카에서는 너는 최고의 레이디이자 최고의 요원이 될 수 있지만, 여길 떠나는 순간 너는 그냥 끈 떨어진 연의 짐덩이에 불과해! 라구사 시궁창에 버려진 고아 출신인 네가 그런 일을 하지 않고선 무엇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하이고··· 걱정도 팔자다. 남이사. 신경 끄셔. 내가 어디 가서 주방에서 일을 해서라도 저 오빠 먹여살릴 거니깐 그런 걱정 하덜 마셔. 남동생한테 애증 품고 여기저기 잡다한 잡놈들 끌어들여서, 거하게 사고친 언니처럼만 할까?”
“야, 이 씨!!!!!! 커헉!!!!”
결국, 율리아는 뒷목 쥐고 나자빠졌다. 난감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 처지지만 묘하게 통쾌하네. 율리아 잡는 천적이 여기 있었네. 자기 말처럼 톡톡 튀는 애가, 너무 심하게 튀어서 주인 턱에 어퍼컷 날릴 정도로 튀어오르는 걸 보면서 나는 복잡한 심정을 느꼈다. 아무튼, 그렇게 셀레나는 얘기를 마무리하고 발걸음을 돌렸고, 율리아는 격분해서 날뛰었고,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공작의 마무리는 완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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