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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군신이라는 이명, 절대로 아부하느라 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실은 확실하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바실은 300명의 오합지졸을 가지고도 때로는 과감하게, 그리고 때로는 교활하게 병사들을 운영하여 성을 향해 밀고 들어오는 조지아 해방군의 공세를 능수능란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피해조차도 거의 없이 말이다. 멀리서 보는 나조차도 경악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적군들은 대체 얼마나 경악스러운 상황일까? 여기저기 터지는 적들의 절규가 그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빌어먹을!!! 저 비겁한 자식에게 주여 저주를 내리소서!!! 이 제국의 겁쟁이 자식아!!! 남자답게 나와서 당당히 붙어보자! 뒤에서 깔짝깔짝 화살이나 날리고 왕궁을 파괴해서 피해나 입히지 말고 말이야!!! 우리 여왕님처럼 직접 나와 싸울 생각은 안하고 비겁하게 이게 무슨 짓이야!!! 네가 제국의 군신이라면 대군을 이끌고 정정당당하게 회전으로 승부를 해야지,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이게 무슨 만행이야?!!! 당장 우리 왕궁을 파괴하는 걸 그만둬!!! 크아아악!!!”
그 말 그대로였다. 바실의 방어전은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독하게 비겁하고 교활했다. 바실은 절대 근접 교전을 회피하고 성의 지형을 이용하여 적 병력에 병목 현상을 일으키거나, 고립시켜서 혼란에 빠진 상황으로 만들어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 공격도 원거리 공격이거나, 왕궁의 구조물을 마음대로 붕괴시키거나 파괴하는 방식을 동원하여 적을 경악에 빠뜨렸다. 조지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차없는 존엄한 왕궁 파손을 바실은 거리낌없이 저질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지아 해방군의 몫이었다.
그래서, 기세 등등하게 밀고 들어온 조지아 해방군은 어느새 사기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체첸의 주력을 미끼로 희생시켰다고는 해도, 다섯배나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왕궁 외궁에 진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입하는 족족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고. 거기다, 그들에게는 시간조차 부족했다. 당장이라도 체첸인들을 섬멸하러 추격나간 테마군이 트빌리시로 돌아오면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어 진다. 나는 처음에 절망적인 기분을 벗어나 안도의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해방군은 악이 받친 모양이었다. 갑자기 파상 공세로 진입을 시도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소강상태가 발생했다. 뭔가 폭풍 속의 고요와 같은 소강 상태가 잠시 이어지더니 갑자기 조지아 해방군 측이 외궁의 전 진입통로를 향해 일제 공격을 시작하였다. 최후의 총공세인가? 나는 적들의 일제 공격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공세는 강렬하지만, 그만큼 적도 다급하다는 의미겠지? 그리고 그런 흐름을 나와 마찬가지로 파악한 듯 바실은 외궁 건물을 종횡무진 달리면서 병사들을 지휘해서 밀려오는 공세를 침착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래, 이제 됐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였다. 나는 순간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어? 이건 뭐지?
뭔가··· 적군들에게 느껴지는 묘한 기분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뭐지? 뭔가 내가 알고 있던 해방군의 모습과 조금 다른 것이 느껴지는데? 그리고 이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타마르 여왕이 없다? 어째서인지 앙리가 추격한 미끼부대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왕궁을 공격하는 조지아 병사들 틈에서도 타마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정황상 가장 다급하게 공격을 독려해야 할 여왕이 보이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 이유를 깨닭을 수 있었다.
“꺄아아아악!!! 적군이다! 적군이 외궁에 이어진 벽을 타고 내궁으로 들어왔어. 다들 도망쳐!!!”
내가 올라온 첨탑 아래에서 내궁으로 피난한 피난민의 목소리로 짐작되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아래에 엄청난 비명소리가 연이어 울러퍼졌다. 나는 당장 첨탑 아래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내궁의 홀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도망치기 바쁜 노약자들과 여성들이었고, 그 뒤로 내궁의 좁은 창문을 적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식겁할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의 수는 십여명 남짓. 다들 내궁과 외궁에 연결된 좁은 통로와 성벽과 창문을 통과할 수 있는 체격이 작은 병사들만이 투입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체격은 작아도 다들 대단한 정예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높은 난간을 타고 내궁으로 통하는 벽을 기어올라 이곳으로 우회할 수 없었을테니깐.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좁은 창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그 사람, 타마르 여왕의 호위를 맡을 수 없었을테니깐 말이다. 나는 창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여왕을 보고 절망했다.
맙소사. 이제 다 틀렸다. 여왕은 바실의 방어를 우회해서 소수의 병력이지만 내궁으로 진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곳 내궁에 저들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트빌리시 왕궁 방어전은 실패했다. 타마르 여왕은 다시 한번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낸 것이었다. 그녀는 벽을 타고 오느라 지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전신 갑주를 입은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미소를 드리우며 내궁에 발을 디뎠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드디어 왕궁에 도착했군. 정말이지···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였도다. 바실 녀석, 어떻게 이렇게 교활한 방어전을. 내가 어린 시절부터 트빌리시 왕궁에 익숙해서 외벽을 타고 오는 샛길을 몰랐다면 정말 큰일 났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의 승리다. 병사들, 저들을 인질로 잡아라. 나는 우리 조지아의 깃발을 내궁의 첨탑에 꽂고 오겠다. 그리고 곧바로 외궁에서 버티고 있는 바실의 뒷통수를 친다. 서둘러!!!”
그리고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미 여기저기 흩어지며 도망치고 있던 여자들과 노약자들을 향해 병사들이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손에 가장 먼저 붙들린 것은··· 다름 아닌 이곳의 안주인 마리아 앙겔로스였다. 맙소사!!! 이 도움이 안되는 여자야!!! 지금 여기서 바실 다음으로 인질로 가치가 있는 당신이 제일 먼저 잡혀버리면 어떻게 해!!! 내가 그렇게 경악을 하는 사이에 병사들에게 붙들린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놓아주세요. 저는 마리아 콰지모도. 이 성의 안주인이자, 앙리 총독의 안사람입니다. 무례한 행동은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아이고!!! 이 아줌마야. 지금 상대방한테 그런 훈계가 통할리가 없잖아? 상황파악 좀 하라고. 그때 그녀가 앙리의 아내라는 걸 알아차린 병사들은 비열한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하! 당신이 바로 그 지옥의 꼽추 자식의 아내인가? 마누라는 정말로 반반한 것이 지상에 강림한 천사같다고 하더니 그 말은 사실이구만. 그 추악한 괴물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그 말씀 취소해 주세요!!! 제 남편은 추악한 괴물이 아닙니다. 제 부군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시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 말을 취소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취소 같은 소리 하네. 이봐, 아줌마. 가만히 있지 않으면 뭘 어쩔건데? 어차피, 그 자식은 우리 손에 갈기갈기 찢겨 죽을꺼야. 그 괴물 자식을 대신해서, 우리 손에 찢겨죽기라도 하겠다는 건··· 어? 어어어?!!! 이··· 이게 뭐야?!!!”
“······!!!”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마리아를 붙들고 앙리를 욕하던 병사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공격을 당한 당사자조차도 대체 자신의 몸에서 왜 피가 쏟구치는지 알수 없어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하는 순간, 연이어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던 옆에 병사 두명의 목에서도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그 연달아 벌어진 피분수를 일으킨 원인이, 조금 전 첫번째 병사의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이고, 그 단검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사람의 손에 의해 휘둘러졌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마··· 마리아 부인?!!!”
검을 휘두른 것은 놀랍게도 마리아 앙겔로스였다. 그녀는 그녀의 멱살을 잡고 자신과 앙리를 조롱하던 병사의 허리에 채워진 단검을 뽑아들고 망설이지 않고 그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곧바로 옆에 병사 두명도 공격을 가해버렸고.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공격에 나는 내 두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그러나 내가 경악하는 것보다도 마리아의 다음 동작이 더 빨랐다. 그녀가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조지아 병사 두명에게 돌진했다.
두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리아를 향해 그제서야 당황하여 칼을 뽑아들고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대한 방어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정면이 아니었다. 갑자기 발목을 틀어 측면에 기둥으로 몸을 날린 그녀는 벽에 장식된 장검을 쥐었다. 그리고 자세가 옆으로 돌린 시선을 쫓아오지 못하는 병사들의 측면을 기둥에서 내려오며 그대로 휘둘러 버렸다. 그 공격에 첫번째 병사가 피를 뿜으며 나자빠지고, 그 나자빠진 병사를 발로 차서 옆에 있는 병사에게 떠밀어 버린 마리아는, 자신에게 떠밀린 동료에게 당황하여 허둥대는 그 병사의 옆구리에 깊숙히 빼앗은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병사의 비명소리가 피분수와 함께 울려퍼졌다. 성벽을 타고 오느라 무거운 갑옷을 벗고 왔던 그들의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했고, 그런 그들에 대한 마리아의 예측불허의 공격은 그대로 유효하게 들어가 버렸다. 마리아는, 자신이 찔러넣은 단검을 비틀어 뽑아내고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병사를 발로 걷어찬 다음에 전신을 피갑칠을 하고선 돌아섰다. 한손에는 단검을, 다른 한손에는 장검을 들고 십자로 교차시킨 그녀는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 이름은 마리아 앙겔로스 콰지모도. 앙겔로스 황가의 마지막 황녀이며, 조지아 스트라테고스 앙리 콰지모토의 아내이다. 이곳은 제국이 하사한 내 남편의 테마이고, 나는 이곳의 안주인이니, 그 누구도 이곳에서 내 남편을 모욕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초대받지 않고, 빵과 소금을 먹지 못하고 들어온 자들, 주님은 용서하실지 몰라도, 나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눈을 잠시 부비부비.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이.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에 경악. 지금··· 저기 있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그 마리아 앙겔로스 맞아? 지난번에 거하게 많은 사람들 뒷목잡게 만든 변태 황녀 마리아 맞냐고?!!! 아니, 왜 여기서 저 언니가 어울리지도 않게 무쌍을 펼치고 있어? 나는 도무지 내가 아는 마리아와 도저히 매칭되지 않는 모습에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내가 그런 혼란에 빠져 있는 시간에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달려드는 병사들 세명을 더 죽였다.
상대방이 외벽을 타고 올 정도로 체격이 작고, 경무장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칼솜씨는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칼솜씨 이전에 적의 공격에 눈을 피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드는 호전성에 화려한 동작으로 시선을 빼앗고, 그러면서도 발놀림은 긴 드레스에 감춰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 뒤에 달려드는 전반적인 전투 능력 자체가 일반인의 수준을 아득히 상회했다. 그걸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미인은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절세 미인은 그 시대에 가장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 조건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저 여자는 되게 없어 보이지만, 일단은 절세 미인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일반인 이상의 신체 능력과 긴 리치를 아낌없이 활용해서 적을 공격하는 것에 상당히 능숙해 보였다. 뭐, 그래, 그렇다면 이해가 좀 되는··· 은 무슨 놈의 이해가 돼!!! 아니, 이게 대체 뭐야아아아!!! 저 여자 대체 뭐야? 나는 여전히 이해의 범위 밖에 있는 그녀의 만행에 절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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