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
제국에서 도착한 두통의 편지를 보고 나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그 편지는 이번에 헝가리 왕실에서 명령한, 제국의 개입을 배제하고 헝가리 상비군만으로 반란을 진압하겠다는 의견 전달에 대한 답장이었다.
한통은 제국군 최고사령관으로부터, 다른 한통은 제국의회 군사위원회로부터. 간단히 말해 바실과 요하네스에게 답변이 왔다는 거다.
내심, 나는 지금의 환장할 상황에 대해서, 어느 놈이든 좋으니 그건 좀 아니니깐 제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답변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우선 바실의 편지만 보면, 뭔가 깊은 우려와 지금의 상황에 대한 위로 같은 쓰잘데기 없는 것들 다 걷어내고 결론만 말하면,
‘공녀님께서 친히 상비군을 동원해 슬로슈를 잡으시겠다니, 그 의견을 존중하고 앞으로 헝가리군이 보여줄 활약이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국군은, 이 문제를 헝가리 내부의 일로서, 헝가리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존중하여, 요청하신 바와 같이 개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전쟁의 영역이 헝가리 국경선을 넘어 제국으로까지 번진다면, 그때는 저희도 해당 영역에서 참전할 것을 양해바랍니다.
부디 제국에서 보여주신 바와 같이, 헝가리에서 공녀님의 마법과도 같은 솜씨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친애하는 당신의 바실이.’
야, 이 망할 자식아!!! 내가 너랑 하루이틀 본 사이가 아닌데!!! 내가 네 속옷 빨아준 것도 몇백벌인데!!!
그 정도면 말을 안해도, 대충 알아서, 제국군 정예 수십만명 정도 몰아서 밀고 들어와야 정상이잖아!!! 내가 꼭 말을 해야 알아듣냐고!!!
슬로슈가 내 모가지 잘라서 축구하기 시작하며 대충 공 찾으러 올거냐?
나는 살짝 기대했던, 공지 사항을 무시하고 개입해주길 바랬던 바실의 수긍에 열불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나마 무난했다. 정말로 열받는 것은 제국의회 군사위원회에서 온 회신이였다. 명의는 패티우스였지만, 쓴놈은 요하네스가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연합사령부와 무관한 헝가리군의 단독 작전을 승인하지만, 명시된 목표 이상의 확전은 동의하지 않겠소. 이를 명심하시오.’
뭔 개소리야!!! 명시된 목표 이상의 확전 금지? 명시된 목표는 슬로슈 진압인데, 그 이상의 확전이 대체 뭐야? 좀 알아먹을 수 있게 말해라.
그리고,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이에 대해서 제국의회 군사위원회에서는 이런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선배! 헝가리에서 급보입니다. 슬로바키아인들의 맹주인 슬로슈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반란에 마자르 유력 지방 영주들이 동조했고요. 그래서, 근위2군이 궤멸되었는데, 이에 대해서 공녀가 진압에 나섰다고 합니다.
근데, 제국의 개입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이 도착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맙소사.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 이제서야 포석이 끝난 건가? 그녀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어.”
“네? 행동에 나선 것은 공녀가 아니라, 슬로슈··· 에엥? 선배, 설마 그럼 지금 이 상황이 전부···”
“이 친구야. 이미 제국에서 여러 번 겪고선 새삼스럽게 왜 이러나? 이건 모두 그녀가 짠 판이야.
자네는 이게 모두 우연이라 생각하나? 제국의 침공 때도 숨을 죽이던, 슬로바키아의 야수가 반란에 나서고, 그 기세에 아르파드 근위2군이 전멸했어.
그리고, 그 사건에 너무 오래 고인 마자르의 영주들이 죄다 개입했어.
헝가리의 무력을 구성하는 4개의 세력, 그 중에 1개가 반파되고, 2개가 뭉쳤고, 나머지 1개가 그 2개를 진압하겠다고 하고 있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야. 저 1개가 2개를 진압하면 상황은 어찌되지?”
“그러면··· 히이익!!! 헝가리에는 그 2개를 진압한 1개와 반쪽짜리만 남게 되죠. 그럼 그 1개가 나머지 절반을?”
“먹을지, 안을지, 버릴지··· 그건 아직 알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이 상황을 경계해야 해. 그녀가 다시 판의 주도권을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것의 끝에 그녀가 바라던 설계가 나오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그 결과는 결코 쉽게 감당할 것이 아니야.
그러니, 그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과한 행동에 적당한 제동을 걸 필요는 있겠지. 회신을 작성하게. 그 취지를 담아서 말이야.”
고향에 귀국해서, 애들 쥐어터지는 것 보고 속태웠는데, 알고보니 내가 흑막?
야, 이씨!!! 제목이 이 따위면 왈라키아 대공이 책으로 내도 팔리지도 않겠다.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 빌어먹을 망상의 끝에 우리가 슬로슈한테 박살이 나는 결말은 천사백만개 중에 하나도 없는 거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한심한 오합지졸들이 만신창이가 되야 정상이잖아!!!
하지만, 그런 나의 절규와 무관하게 제국에서는 그런 우리의 단독 진압에 대한 의사를 존중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환장할!!!
결국, 결론적으로 제국은 개입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혼자 저 미친 북방의 야수를 때려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 태세는··· 의외로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병력 전원에게 장비 점검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라고 지시해. 무기는 물론, 보급품과 지원 장비들도 모조리.”
“본진 방어는 세게드에 휴양객들이 해줄 테니, 전원 출격으로 준비하고, 둔전하는 곳을 가족들에게 인계하라고 전해. 전에 수해 지원자들은 정찰 미팅 참석하고.”
“장교들은 부대 상태 점검. 이번에는 훈련이 아닌, 실전이다. 전원 긴장하라고 해.”
사령부는 의외로 활기차고 왁자지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오합지졸들에게 너무나 긴장감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뒷통수가 뻐근한 것을 느꼈다. 아오, 근위2군을 전멸시킨 놈들을 상대하는 거라고.
그런데, 왠지 들뜬 표정마저 드는 이 상황, 실화냐?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회의실에서 작전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게 오가고 있었다.
삼돌이 마티는 의외로 차분하게 참모들과 장교들의 의견을 취합하여, 앞으로 작전에 대해서 달성해야 할 전략 목표를 하나씩 벽에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현재 각지에서 올라오는 첩보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헝가리 전역이 내전에 휘말려서 혼란스럽다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현재 슬로슈에게 동조한 세력들이 완벽하게 헝가리 전역을 자기 세력으로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각지에서 왕당파와 반란군이 혼재되어 지리멸렬한 교전을 벌이는 상황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측에 한가지 희망이 더 생기는 겁니다.
각 지역에, 아직도 왕실에 충성하는 영주들이 고립되어 반군에 저항하고 있다면, 그 세력들과 연계하여 반군 진압을 손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게드 거점과 이미 확보했고, 근위대가 수비하는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한 근거리 거점 확대를 도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마티는 지도에서 우선 세게드와 부다페스트로 이어지는 가도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좌측에 펙스(Pecs)와 아래의 템즈(Themes)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측에 솔노크(Szolnok)로 이어지는 선을 그었다.
그러자, 세게드를 중심으로 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사각형이 그려졌다.
“우선 이 영역을 최우선 순위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템즈를 통해 제국과의 연결망이 안정되고, 펙스를 통해 다소 반란의 기세가 약한 서부의 동요를 잠재울 수 있죠.
그리고 동부의 솔노크를 점거하면 헝가리 중심부를 반군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차적으로 헝가리 전역에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반란을 남서부와 북동부로 깔끔하게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죠.
그래서, 이 거점들의 확보를 최우선 사항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곳으로 확보해야 할 곳이 바로 반군에게 우리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들 허를 찌를 장소, 바로 솔노크입니다.”
그의 말에 다수의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뭐, 확실히 상식적인 수준의 제안이긴 했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끄덕이자, 마티는 벽에 1차 목표를 기재했다.
- 세게드를 중심으로 한 진압군의 영역 확보. 최우선 순위는 솔노크 점령
그렇게 1차 목표가 세워지자, 참모들의 의견도 활발해졌다. 그리고, 한 참모가 손을 들고 발언 기회를 얻어 발언했다.
“우선 군의 진격 방향은 솔노크로 하더라도, 그와 병행하여 진행해야 할 작전이 있습니다.
바로 푸스타 전투에서 반군에게 포위되어 궤멸된 것으로 알려진 근위2군의 생존자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특히, 행방이 묘연하신 이슈트반 왕세자님을 빨리 구조해야 합니다.”
그 말에 나는 살짝 심기가 불편했다. 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하긴 해야 했다. 근데··· 살아 계시기는 한 거야?
그냥 거기서 장렬히 전사하셨으면, 우리도 편하고, 본인도 비운의 왕자로 끝이 좋게 가실텐데. 근데, 그렇게 내 맘대로 되는 명짧은 양반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소식이지만, 현재 부다페스트 북동쪽 에게르에 와해된 근위2군의 생존자가 현지 왕당파 영주의 영지에 합류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에 이슈트반 세자님이 있으시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더군요. 바로 반군의 동향을 통해서 말입니다.
반군의 주요 영주들이 상당한 병력을 에게르에 배치하고, 그곳을 포위하고 공성전을 벌이고 있다는 부분에서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흠. 에게르는 우리가 단기 목표로 삼은 솔노크 보다도 훨씬 적들의 세력권 안쪽이군요.
그렇다면, 이슈트반 세자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군을 전진시켜 포위를 풀기는 무리고, 소수의 구출조를 편성해서 구출 작전을 벌여야 할 것 같군요.
일단, 이것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과제이기는 하군요.”
- 에게드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이슈트반 왕자의 구출
그런데, 마티가 그 목표를 벽에 적자, 그 목표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율리아였다.
“굳이 저걸 꼭 구해야 하나? 잘난듯이 근위대를 몰고가서 죄다 말아먹은 모지리를?
너희 헝가리군 입장에서 보면, 저건 차라리 구하지 않는 편이 너희 쪽에 더 유리하지 싶은데?”
솔직히 동감. 그런데 그걸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신 마티가 좀 난색을 표하며 율리아에게 말했다.
“제국 감찰관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우리 왕세자십니다. 적들에게 넘어가면 더 큰 일이 납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은 좀 자제해 주심이···”
“알아알아. 뭐, 너희들로서는 그런 없어도 그만인 놈도 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이겠지.
그 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굳이 그걸 지적한 것은 너희들이 정말로 구할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의지가 확실하다면, 그 부분은 내 쪽 라인을 좀 활용해서 내가 좀 적극적으로 도와주도록 하지..”
“네에에?”
예상치 못한 율리아의 제안에 우리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녀석이 왠일로?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율리아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마르탱 빚은 이걸로 퉁치는 거다?”
“에라이.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근데, 왕세자의 가치가, 너한테 마르탱의 가치와 동급인 거냐?”
“아씨. 그렇게 말하니 왠지 퉁치기 되게 모자라 보이네. 겨우 그딴 녀석이랑 마르탱을.”
율리아는 괜히 나섰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마티와 참모들은 대체 제국 감찰관이 왕세자보다 더 높게 치는 마르탱이 대체 어떤 분이신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무튼, 일단 그걸로 거래는 성립했다. 그리고 율리아는 다른 할말이 있다는 듯이 말을 더 이어갔다.
“뭐, 일단 그건 나중에 다시 계산해 보기로 하고,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전략 목표를 내가 하나 제안하지.
이건 너희 군인들 보다는 위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기는 한데. 카밀라, 너도 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전에 내가 얘기한 슬로슈의 배경 기억하지?”
“응? 슬로슈의 배경? 아, 그 전에 말한 신성동맹 측에 의문의 흑막이 있다는 가설?”
“그래, 그거. 이번 기회에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파고들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리키스카 측에서도 조사를 개시했지만, 이번 일은 너도 나서야 할 것 같아. 당장 직면한 작전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니.
전투는 군인들에게 맡기고, 너는 이 부분에 참여해. 이봐, 마티 사령관. 적어.”
- 슬로슈의 반란을 획책한 배후에 대한 조사
뭐, 일단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녀석의 말처럼 이번 반란의 배경이 상당히 수상한 것은 사실이니깐.
그리고 그것까지 정리하자, 크게 우리 헝가리군이 앞으로 진행해야 할 전략 목표가 3가지로 정리되었다.
- 세게드를 중심으로 한 진압군의 영역 확보. 최우선 순위는 솔노크 점령
- 에게드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이슈트반 왕자의 구출
- 슬로슈의 반란을 획책한 배후에 대한 조사
그리고 그 목표들을 결정하자, 왠지 모르게 참모들은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박수라도 치고 싶은 분위기였다.
뭐,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정해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 그래서, 마티 사령관도 조금 자신감이 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솔노크 공격을 시작으로, 우리 헝가리군의 슬로슈 반란 진압 작전을 개시하겠습니다.”
그렇게, 헝가리는 물론, 제국의 역사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슬로슈 반란 진압과 헝가리군의 첫 출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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