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1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나는 대단히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족가의 관례처럼 몇주동안 진행되던 맞선 파티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날이 이 파티의 주인공인 테오가 결정을 하는 식으로 몰아가서 혼사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뻔 했다. 그리고 그런 파티 막바지에 들떠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파티장에 나타난 베스의 모습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웅성거림을 듣고 우리 눈앞에 그녀의 언니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베스···? 베스 맞니? 대체, 콘스탄틴노플에서 무슨 일을 겪었길래? 애가 반쪽이 되서 돌아왔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그리고 지금은 미안하지만 잠시 예전처럼 방에 들어가 있으렴. 이번 맞선 파티의 결과는 다 정해졌으니 더는 개입하지 말고 들어가 있으렴.”
그녀들은 여전히 오만하고 도도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동생을 보고서도 파티장에서 내몰 생각만 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기가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두 사람이서 오늘 어떤 식으로든 승부를 내서 결말을 내겠다는 것이군. 그리고 거기에 베스의 자리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고. 예전의 베스였다면, 저런 언니들의 태도에 기가 죽어 움츠러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베스는 달라졌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비켜 주세요. 언니들. 저는 갈거에요. 가서 직접 테오님을 뵙고 제 마음을 전할거에요. 이제는 더 이상 방에 숨어있는 못난이 베스가 아니에요. 저는 이제 못생기지 않아요. 그리고 움츠러들지도 않고요. 더 이상 테오님에게 나서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에요.”
그리고 그런 베스의 말에 언니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리고 그녀들은 비켜서기는 커녕 더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막아서고 팔을 붙들며 말했다.
“정말이지··· 말로 해서는 안되겠구나. 따라오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니깐, 잠자코 언니 말을 들어.”
그리고 그녀들은 베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가 움직였다. 거의 조건반사와 같은 수준으로···
“꺄아아아아악!!! 내··· 내 손목이···”
그녀는 순식간에 자신의 팔을 붙든 그들의 손목을 잡아서 뒤로 꺽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소리쳤다.
“더 이상, 언니들은 나를 막지 못해요!!! 콘스탄틴노플에서 배운 사교계의 품격을 보여드리겠어요!!! 더블 엘보 드롭!!!”
“크아아악!!!” “꺄아아아악!!!”
야! 콘스탄틴노플 사교계의 품격에 왜 더블 엘보 드롭이 나와!!! 하지만, 나의 경악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양팔은 정확하게 언니들의 목을 가격하여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파티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는 없어!!!”
그리고 그것을 보며 목을 부여쥐며 쓰러진 언니들이 소리쳤다.
“다들 막아!!! 베스를 막아!!!”
그리고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언니들의 말대로 언니들의 지인으로 보이는 남녀노소가 베스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스는 그런 막아서는 사람들을 익숙한 대인전투 기술로 제압하거나 내동댕이 치면서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삽시간에 파티장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난투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베스의 전투 기술은 누가 가르쳤는지 출중했다. 그녀는 막아서는 사람들을 타격기와 관절기와 주변 도구를 활용하여 하나하나 제압하면서 무쌍을 펼치며 전진했다.
그리고 그녀를 막아서는 사람들은 여자들은 물론, 건장한 남자들도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어지며 파티장에 혼란을 더했다. 아니, 대체 이게 뭐야? 이 정도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때였다. 파티장의 소란을 들었는지 집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그녀는 바로 전에 본 적이 있던 올코트 부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벌이는 만행에 경악하여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니!!! 그만두지 못하겠니?”
그녀의 외침에 베스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나는 어차피 벌어진 아수라장, 지금 이 상황에서 말려야 할 것은 베스가 아닌 부인이라는 사실을 깨닭았다. 그래서, 나는 베스양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눈빛을 보내고 베스를 향해 다가가는 올코트 부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걸 본 부인이 나에게 소리쳤다.
“공녀님, 대체 이게 무슨 만행이십니까? 우리 올코트 가문에서 이런 난장판을 벌이시다니요!!!”
“부인이야 말로 너무하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베스양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으면 저 정도로 막 나갈까요? 아무리 자기가 낳은 친자식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렇게 편애를 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최고의 신랑감은 오로지 두 언니들에게만 기회를 주고 베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하다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구실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하세요.”
나의 말에 올코트 부인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베스가 제가 낳지 않은 아이라니요? 말씀 삼가해 주세요. 베스는 제가 낳은 제 아이입니다. 제 배로 낳은 아이라고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후처인 제가 베스의 엄마여야 맞지, 메그나 조에의 엄마일리가 없잖아요!!! 베스랑 에이미는 제가 낳은 아이라고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올코트 부인이··· 베스의 생모라고? 근데 생각해 보니 그러네. 베스가 3녀니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올코트 부인은 에이미나 베스의 모친이어야 맞지. 어라? 그럼 대체 왜···
“그럼 대체 왜 친자식도 아닌 언니들은 좋은 자리를 배려하면서 베스에게 그렇게 홀대를 하신 거에요? 자기 딸이잖아요? 자기 배로 낳은 자기 딸은 그렇게 홀대하면서 친자식도 아닌 딸들만 배려하신 이유가 뭔데요?”
“메그랑 조에가 제 배로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어렸을때부터 제가 키운 아이들이라 저는 그 아이들을 제 친자식과 다름없이 키웠어요. 그러니, 제가 친자식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왜 베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홀대했냐고요? 그야 당연하잖아요. 그건···”
그리고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베스의 진격은 끝을 맞이했다. 그녀는 파티장을 화려하게 박살내놓은 다음에 파티장 한쪽 구석에 있던 그녀가 그토록 사모하던 남자, 테오의 앞에까지 도달했다. 그는 여전히 조금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파티장의 소란이 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구석에서 자신의 애견과 같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스는 그런 그에게 흐트러진 옷차림을 정리하고 다가갔다. 그리고 그 인기척에 테오가 말했다.
“누구··· 신지요?”
“테오 오라버니. 저는 엘리자베스 올코트 입니다. 올코트 가의 3녀이고요.”
“아, 메그와 조에의 여동생이군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뵙는 건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베스양.”
“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라버니는 모르실거에요. 제게 이 시간이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이었는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갑작스러울지 모르지만,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릴게요. 테오 오라버니. 저는 당신을 사모합니다. 오라버니는··· 이런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저에 대한 오라버니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마음에 대한 대답도···”
그리고 그녀가 그러는 사이 나는 올코트 부인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말을 듣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깐 그런 거잖아요!!! 그 양반은 로레이우스 의원과의 약속이라며 우리 집 딸을 넘겨주고 정략 결혼을 시키려는 생각이지만, 저는 이 결혼 반대라고요. 신랑감도 마음에 안들고요. 하지만, 거물급 정치가인 로레이우스 의원의 손자를 무시할 수도 없으니, 형식적으로는 맞선 파티를 열어서 응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메그와 조에한테 시간을 질질 끌다가 이 맞선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 파티에 베스를 내보내지 않는 것도 당연한 거잖아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맞선을 거절하려고 했던 거라고? 근데 생각해보니··· 뭔가, 부인도 그렇고 언니들도 베스를 괴롭힌다기 보다는 그냥 파티에서 따돌리려고 하는 것 같기는 했네. 근데··· 대체 왜? 저 신랑감이 뭐가 문제라고?
“납득할 수 없어요. 대체 뭐가 문제인데요? 최고의 신랑감이라면서요? 제가 봐도 조각 미남에 경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출중하고 인성도 좋고 장래도 보장된 청년이잖아요? 근데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뭔데요?”
“아무리, 미남에 좋은 혈통과 경력을 갖추고 있으면 뭐해요? 가장 중요한 그것이···”
그리고 그 사이에 테오군이 베스에게 대답했다.
“저는··· 베스양이 좋은 아가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려로서 손색이 없는 아가씨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베스양이 저에게 보내주시는 마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저··· 정말이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론을 내리실 수 있으시죠? 제 모습이 지금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닌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저에게는 그 어떤 모습이든 별 차이가 없으니깐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저에게는 상대방의 외양보다는 저를 대함에 있어 가식적으로 대하지 않는 분이 더 진실되고 소중한 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아아··· 테오 오라버니. 역시 오라버니는 내면의 가치를 알아봐주시는··· 응?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요? 앞이 안보이신다고요?”
경악한 것은 베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올코트 부인에게 그 말을 듣고 경악하고 있었다.
“테오군이 맹인이라고요?”
“정확히는 맹인이 아니라, 맹인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력이 좋지 않은 거죠. 하지만 별반 차이는 없어요. 왜 항상 개를 데리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에요? 맹도견과 하인들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 생황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요. 아무리 잘생기고 혈통과 경력이 좋아도, 어느 엄마가 딸을 맹인에게 시집보내고 싶겠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할말을 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봤을 때 개 한마리 데리고 따로 놀고 있었지. 그때는 뭔가 미남은 혼자 노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 잘 안보이니깐 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었던 거였어? 나는 그제서야 뭔가 아귀가 맞는 이야기가 머리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 드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 맹인이 확실히 흠이긴 하겠지만, 서로 좋다면 그 정도야 뭐 어때서?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본인이 판단할 일이잖아요. 맹인이 된 것이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걸 이유로 상대방을 거절할 상대로 미리부터 규정지어 버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저도 물론 그 정도 사유라면 그냥 넘어갔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요.”
그때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예상치 못한 테오가 눈이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에 당황한 베스의 머리칼도 휘날릴 정도로 강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바람은 약간 느슨한 테오의 터번도 스쳐갔고. 베스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앞이 안보이신다고요? 아니, 그럼··· 저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고생을··· 아앗! 테오 오라버니, 머리에 터번이 바람에 흐트러지시는 것 같은··· 어? 어라라? 히이이익!!!”
베스의 신음 같은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녀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던 것이다. 바람이 불어 흐트러지면서 풀어진 테오의 터번이 흘러내려가자, 그것이 감싸고 있던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라고는 한올도 보이지 않는 민둥산의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올코트 부인이 속에 불이 올라온다는 투로 소리쳤다.
“대머리라고요! 대머리!!! 아무리 잘생기면 뭐해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다시 한번 할말을 잃었다. 아니, 그 터번이 동방 출신이라 현지 관습대로 두른 것이 아니라 대머리 감추려고 둘러싼 거였던 거야? 갑자기 그 조각미남의 미모가 확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베스는 얼어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베스는 잠시 후 터번을 다시 두르는 테오를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감수할 수 있어. 앞이 안보이는 거랑 머리까지는··· 그래, 거기까지는 참아볼 수 있는··· 그래, 내가 한 고생이 있는데···”
그래. 잘 생각했다. 결격 사유가 약한 것이 아닌데, 여기서 접어버리기에는 좀 그렇지. 가능하면 초심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바라던 꿈을 이루는 것이 현명할거야. 그런데, 그때 그런 나의 생각에 초를 치는 말이 올코트 부인으로부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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