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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은, 그 임시 폐병수용소를 운영하던 우스타샤가 형식적으로 채용한 관리인 여자의 아들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전염이 잘되는 폐결핵은 간병이 고역이지.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간병인이 아닌 목숨값이 싼 하루살이 인생들을 쓰지.
마르탱의 엄마는 창관에서 일하다, 손님에게 화상을 입어 가게에서 쫓겨난 창부로 기억한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그녀를 놔주지 않고,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부려먹었지. 그래서, 그곳의 관리도 그녀에게 맡겼다.
그녀는 아들인 마르탱과 같이 말로는 요양시설이지만, 사실상 수용소인 그곳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유일한 간병인이었던 거지.
어지간하면 조직에 대한 증오나 전염의 두려움으로, 환멸을 낼만도 한데, 그녀는 생각보다는 인성이 바른 사람이었다.
생계가 유지가 될까 싶은 몇푼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도, 죽어가는 우리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나름 성심성의껏 우리를 돌보려고 노력했지.
물론, 큰 성과는 없었다. 전문적인 간병인도 아니고, 약은 커녕 식량도 없는 우스타샤의 쓰레기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절규하며 죽어가는 여자들을 위로하고, 기도하고, 같이 슬퍼해주는 것 밖에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지. 그런 그녀를 도왔던 것이 마르탱이었다.
그런 시기에 내가 그곳에 수용된 것이지. 그리고, 수용되어서 생을 포기하고 그냥 누워만 있던 나에게 마르탱은 묘한 관심을 보였지.
그렇게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자, 잠시만. 얘기를 끊어서 미안한데, 그럼 그 마르탱이라는 친구는 너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 뭣이냐. 네 정체성에 대해서···”
나의 머뭇거리는 말에 율리아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대답했다.
“당연히 거세된 남자라는 사실은 모르겠지. 굳이 그것을 내가 밝힐 이유도 없었고, 그런 창부가 흔한 것도 아니었어.
시골에 내쫓긴 창부의 자식인 마르탱에게 그건 알 수 없는 세계였을 거야. 그냥, 나를 가슴이 빈약하거나 어린 창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나를 자기 또래의 소녀라고 생각했는지, 마르탱은 나에게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지.
처음에는, 나는 그것을 거칠게 거부했었다. 당시 나의 심정으로는, 바닥이 없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창부의 자식에게 동정을 받는 것이 치욕이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나에게 친절을 베푸려는 마르탱에게 모욕적이고 악의적인 말을 내뱉어서 녀석을 쫓아내려고 하였지.
하지만, 그 녀석은 묘하게 그런 나에 대한 친절한 간병을 포기하지 않았어. 매일매일 나를 돌봐주려고 와주었고, 거부하는 음식을 억지로라도 먹이려고 애썼지.
생을 포기하고 죽으려고 하던 나에게, 그것은 지독하게 성가시고 불편한 친절이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고 달래며 어떻게든 내가 생에 집착을 가지게 하려 노력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 되자 그제서야 녀석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그것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만족했지. 어차피 일시적인 관심일 뿐, 중증에 놓인 일면식도 없는 나를 위해 자기 목숨도 걸 바보는 없다고 자신하며.
그리고, 그제서야 영면에 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열에 시달리며 의식이 흐려졌지. 그대로 죽음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이 떠지더군. 시원한 느낌과 함께. 그래서 눈을 떠보고 경악했어. 녀석이 있었어. 그리고 입으로 내 입에 해열제와 물을 먹이고 있더군.”
“······!!!!!!”
내가 다 기겁할 뻔 했다. 미친 짓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폐병환자에게, 아무리 의식을 잃었어도 자기 입으로 물과 해열제를 먹인다고?
전염되면 자기도 저 세상에 갈지 모를 미친 짓이다. 그걸 간병인이 모를리가 없는데? 율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경악해서 없는 힘을 동원해 녀석을 뿌리쳤다. 그리고 소리쳤지.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이대로 죽게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랬더니, 녀석이 울면서 그러더군. 자기는 그래도 제발 내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힘들고 괴롭겠지만, 그래도 자기를 위해서라도 살아주면 안되겠냐고 그랬다. 아무런 논리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아무 말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역시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치도록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녀석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다시는 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그리고 정말로 그 이후로 나는 이를 악물고 폐결핵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늘이 나를 구한건지, 조롱한건지 알 수 없지만, 의외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마침, 라구사의 폐결핵 유행도 조금 가라앉는 분위기였고, 이미 죽을 사람은 다 죽어서 그런지 요양소에서도 회복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나 역시도 겨우 몸을 회복할 수 있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마르탱과 많이 친해져 있었다.
마르탱은 그 이후로도 나에게 성심성의껏 간호를 해주었고, 나는 보답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마르탱에게 글쓰기와 수학을 가르쳐 주었지.
그렇게 인연을 쌓아가던 시기에, 우리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 회복이 된 창부들은 다시 창관으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을. 나도, 녀석도 알고 있었지. 그리고 우리는 우스타샤에 거역할 수 없다는 것도.
비싸게 사왔는데 못쓰게 될 줄 알았던 창부가 회복했다는 사실에, 우스타샤는 지체하지 않고 복귀를 명했다.
수용소를 떠나던 날, 마르탱은 나에게 말했지. 언젠가 어른이 되어서 반드시 다시 만나자고.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살아있다면 꼭 자기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나도 반드시 그러겠다고 약속했지.
그리고 나는 라구사로 돌아왔다. 그것이 마르탱과의 마지막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라 물었다.
“뭐? 마지막이라고? 어째서? 너 그렇게 오래지 않아서, 우스타샤를 네 손에 장악했잖아?
그럼, 당당하게 우스타샤의 수장으로서 그를 만나러 갔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그렇지 않았던 거야?”
“우스타샤는 솔직히 엉망진창인 조직이었어. 어설픈 세력들이 뭉쳐서, 덩치는 커졌지만 서로의 이권 다툼으로 피가 마를 날이 없었지.
파벌 간의 내분은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분은 허드렛일을 하던 마르탱 모자에게도 마수를 뻗쳤지.
창관 파벌과 밀수 파벌 간에 내분이 벌어졌는데, 밀수 파벌은 창관 파벌에게 적당한 경고성 도발을 하고 싶어했어. 그 타겟으로 결정된 것이 수용소였지.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상대 파벌에게 적당히 도발하고, 나중에 적당히 화해하기에 적당하다 판단한 거지.
그래서, 녀석들은 수용소에 들이닥쳐서, 폐병걸린 창부들을 살해하고, 시설에 불을 질렀지. 그 소식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어.
그때는 마르탱 덕분에 생긴 삶의 의지 덕분에 조금 열심히 일해서, 파벌 내에서 지위가 생긴 시점이었어.
하지만, 그런 내분을 미리 막을 정도는 아니었지. 그 경악스러운 소식에 나는 다급하게 수용소로 달려갔어.
그리고 거기서 본 것은 불타서 무너지는 수용소 건물이었지.
그리고 불이 꺼진 다음, 내가 찾은 것은 마르탱 엄마의 불탄 시신과 잿속에서 찾은 내가 마르탱에게 선물한 로사리오 뿐이었다.”
“응? 로사리오? 그거 설마···”
“그래. 그거. 니케포루스 황제가 서명한 세례증명서의 일부가 그을린 이유가 바로 그거다.
어렸을 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때 다시 찾아서 살펴보다가 찾게 되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그걸 붙들고 오열했다. 마르탱이 죽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깐.
그리고 나는 복수를 다짐했지. 내게 주어진 생을 반드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놈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바치겠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단순히 우스타샤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인 팔라이올로구스 황조와 니케포루스 황제까지 증오하게 되었지만, 그건 좀 나중의 일이고.
아무튼,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 험한 세상에서 흔치 않게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고 살아주길 기도한 소년이.
그런데, 그를 여기서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율리아의 표정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보였다. 안도감. 기쁨. 회한. 그리움. 쓰라림. 그녀의 생을 다 담은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좀 엄한 생각이 들었다. 하이고, 마르탱군. 그때 그냥 저 망할 년 손목 잡고 도주하지 그랬냐?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라구사 사태와 저 미친년이 튀어나온 원인이 된 것도 다 마르탱군 탓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과잉 사고인가?
그걸 입 밖에 냈다가는 다시 칼 뽑을 것 같아서 다물었다.
그래서, 대신에 칼까지는 안 뽑을 수준에서, 녀석을 좀 먹일만한 말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괜찮은 것이 떠올랐다.
“흐음. 결론은 첫사랑이라는 거냐?”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도 남자고, 나도 남자··· 휴우. 그래,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는 나에 대해서 모르고, 나는 반쪽짜리였으니깐.
그때의 나는 그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걸고 온정을 베풀어준 그에게 그런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어.
아아··· 제기랄. 나 자신이 역겹기 그지 없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 생에 그토록 살아있어 주기를 바랬던 사람에게. 이런 추한 모습으로···”
솔직히 당황하는 반응을 보면서, 좀 놀려먹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침울해지는 반응을 보고선 그럴 엄두가 안났다.
내가 아는 율리아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세당한 걸 숨기기는 커녕, 오히려 성별을 넘나들며 역한 짓거리를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이 녀석 반응 맞아?
뭔가,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게 되서 자학하는 순수한 소녀처럼 보여서 되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되려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뭐 어찌되었건 잘된 거 아니야?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거잖아?
그리고, 그쪽의 반응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아직도 너에 대한 마음이 가득한 것으로 보이고. 그럼, 뭐 그렇게 고민할 거 없잖아?
내일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는 자주 만나면 되잖아?
뭐, 우리야 좀 어이없지만, 일단 네 지위가 제국에서도 최고위급이니 더 이상 훼방 놓을 사람도 없고.
네 권력을 조금만 사용해도, 그 시절에 네가 느낀 은혜도 갚고, 앞으로 남은 시간 훈훈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좀, 세간의 시선이 불편하기는 해도, 전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니, 바란다면 그와 삶의 동반자가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이래저래, 지금처럼 우울한 표정을 하고, 당장 만남을 하루 뒤로 미루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율리아가 좀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지금까지 남친 없었지?”
“뭐, 뭐야? 갑자기 그런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있었으면 네가 그런 헛소리가 나올리가 없잖아? 모르겠냐? 나는 알리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그 사람이 알기를 원치 않는다고.
그의 기억 속에서 나는 병약한 몸으로 창관에 내몰린 귀한 집안의 영애였어.
거세당한 남자라는 사실도, 우스타샤를 손에 넣은 사실도, 황궁의 환관장이란 사실도, 리키스카의 수장이란 사실도··· 다 그가 알기를 원치 않아.
모르겠어? 나는 그에게 그가 기억하는 그 시절에 그 순수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고.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래. 나 같은 반쪽짜리에게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좋은 여자를 만나 자식을 보고, 세상에 구김없는 삶을 살아가길 바래.
그래서, 내가 지금 그를 만나고도 기쁘면서도 이렇게 당황스러운 거야.
너는 그럴 수 있어? 어린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그 사람이 여자도 아닌 반쪽자리 괴물이란 사실을 널 좋아했던 사람에게 말할 수 있어?
그래서, 내가 너 남친 같은 거 없었다고 확신하는 거다. 이 반쪽짜리만도 못한 한심아!!!”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야!!! 한판 뜨자는 거야!!!”
“못떠! 내일 마르탱 만나려면 오늘 저녁에 피부관리랑 머리관리해야 해. 너 혼자 저기가서 싸워. 이 목석년아!”
“마르탱한테 부고 잘 전해주마! 너 나무랑 돌로 맞아봤어?!!!”
왜 우리는 항상 진지하다가도 마지막에 항상 머리 끄댕이를 잡는 걸까? 제국 대사관의 난장판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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