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
나의 말에 이승과 저승을 몇 번씩이나 오간 크림의 귀족들은 거의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타이투스는 어느새 머리가 저렇게 하얗나 싶을 정도로 초췌한 모습으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련은 아직 한가지가 더 남아있었다. 나는 방금 전까지 날 죽이란 말을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진이 빠진 표정의 바실을 보면서 말했다.
“두번째 작은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께서는 이번 일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손에 넣게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감축드리옵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뜬금없이 막대한 부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이곳 크림은 원래 실크로드의 초원길의 종착지. 그래서 수많은 유럽의 자본들이 이곳으로 모여서 큰 이문을 남겼고, 크림의 귀족들 역시 이곳을 근거지로 한 몫 잡을 수 있었죠. 근성은 썩었지만 그래도 3만 대군의 테마군의 수준은 우수했고, 이곳 크림반도 남쪽에 위치한 호화로운 테마 본부도 그런 그들의 막대한 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크림의 본국에 대한 반발, 그리고 킵차크에 대한 대비, 그리고 월경지라는 특성상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방임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이제 이곳에는 폐하의 백성들인 초원의 백성들이 들어와 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들 중 다수는 제국 본토와 몰다우 방면으로 분산되겠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초원에 인접한 크림에 정주하게 되겠죠. 그리고 그들의 주인은 바로 폐하시죠. 그래서 이제 크림에서 거두는 부는 이곳 크림 귀족들이 독점하고 영유하지 않고, 폐하의 것으로 귀속될 것입니다. 폐하는 이곳에 정주할 새로운 백성들의 기반을 마련할 자금을 본국 재정이 아닌 크림 테마에서 거두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초원의 백성들은 빠르게 입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자신들의 땅을 킵차크로부터 회복할 힘을 기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고도 남는 막대한 초원길의 부는 온전히 폐하의 것으로 귀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폐하께서 얻으실 두 번째 작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는 오로지 폐하의 것입니다.“
나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친 사람이 있었다. 타이투스였다.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억지로 기력을 짜낸 듯 소리쳤다.
“동의할 수 없는 말이오. 크림은 지금 테마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재정이 벅차단 말이요. 그것을 초원길의 교역 수입으로 겨우 감당하는게 그걸 본국 정부에서 갈취하다니. 거기다 저들 유목민족들의 생활 안정까지 우리가 책임지란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런 막대한 부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도 보고 싶군요.”
나는 비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죽은 목숨 예약하고도 그까짓 돈이 아까워서 마지막 기운을 짜낸거냐?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것에 태연하게 응수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 정보를 준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그에게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타이투스 경. 저는 경과 크림의 귀족들이 그런 막대한 부를 숨겨두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림의 귀족들이 자신의 명의로 가진 부는 그렇게 크지 않죠. 네, 저는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제가 말하는 그 부의 출처는 여러분들이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에 크림의 귀족들의 얼굴에서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이 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고작 내가 말을 이어가는 잠시에 불과했다.
“엔리코 단돌로!!!”
“아, 네... 네에엣?!!!!!!”
“바실레이오스 태자 마마. 이곳 크림에서 저는 우리 제국을 위협하려는 베니스의 잔당. 엔리코 단돌로의 자본이 은닉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선을 통해 접수하였습니다. 아마도, 말씀은 저렇게 겸손하게 하시지만, 그 자본은 틀림없이, 크림의 귀족들이 제국을 위해 베니스 저항 세력이 은밀히 자본을 크림 측에 모으는 것을 일망타진 하기 위해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설마하니, 여기 크림의 귀족분들이 제국의 공적인 엔리코 단돌로와 이득을 남기는 거래를 하거나, 혹은 저항 세력의 편의를 봐줬을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마 조사해보면 나올 그들의 계좌와 통상 루트는 제국이 인수하여 지금 제국에 귀순한 난민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크림의 귀족분들은 적극 폐하에게 협조하리라 생각하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크림의 귀족 여러분?”
나는 이제 거의 시체처럼 보이는 크림의 귀족들에게 이번에는 최대한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미소에 크림의 귀족들은 완전히 죽어 보이는 눈으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일생을 긁어모은 재산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금융업에 능한 베니스 자본에게 차명으로 맡겨뒀겠지. 그리고 그게 커져서 교역 편의도 봐줬고. 그리고 본국에 대한 반발로 은밀히 엔리코 단돌로의 존재로 눈감아줬을 것이고. 그 대가로 뒷돈도 챙겼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이제 한방에 다 털리게 생긴 것이다. 바로 베니스와 엮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나는 그들의 긍정을 보며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으며 바실에게 고했다.
“이곳이 통합군 작전지역으로 주관으로 바뀌었으니, 본국의 수사관과 재무관들을 부르시면 그리 오래지 않고 베니스 자본과 저항 세력의 비자금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인수하시고, 그 공백을 제국 본국의 지원을 받아 초원길의 교역을 통해 얻은 이문을 증대하소서. 그것이 곧 초원의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회복한 그들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교역로를 지키는 일이 되겠죠. 그들은 동방의 부를 폐하의 손에 안전하게 가져올 것입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황당함과 경악을 넘어 두려움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세번째 작은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이번 일로 인해 황실은 의회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강한 발언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하네스 의원님. 미안하지만 저한테 이번에 당하셨습니다. 정신 똑바로 안차리시죠?”
나의 말에 갑자기 공격을 당한 요하네스 의원은 당황하여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앗!!! 그. 그렇군요. 완전히 당했군요. 저들이 지금 제국에 귀순하게 되면, 저들은 온전히 황실파 백성들로 제국에 자리 잡게 되겠죠. 그리고 군복무를 한 사람만이 의원 후보가 될 수 있는 선거 규정은, 군인의 비율이 높을 저들 유목민족들의 원로들이 의회 진출을 할 여지를 높여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황실은 현재 의회파가 장악하고 있는 의회에 황실파 의원을 대거 진입시켜 황실파를 여당으로 만들 수 있겠군요.
그러면, 이번에 긴급 상황이기는 하나 폐하가 결정한 너무나 큰 상황에 대한 후속 수습에 대해서 의회의 견제 없이 황실의 의도대로 신속하게 처리가 되겠죠. 그리고 우리 의회파는 손가락만 빨고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고. 맙소사... 공녀. 대체 얼마나 멀리 보고선 이런 모략을 꾸민 겁니까? 설마하니 의회까지 합법적으로 무력화 시킬 의도를 가지고 움직였다니...”
“훗... 친애하는 나의 정적이시여. 조금은 긴장을 해주세요. 헝가리에서 온 어린 계집을 한눈에 폐하의 정치적 챔피언임을 인지하고 경계하신 그 초심을 잃으셨다가는 크게 다치십니다. 설명해드리는 것도 이번이 특별히 예외적입니다. 다음번에는 다시 저는 바보 흉내로 일관하며 이번처럼 자세한 설명조차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끝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는 정신이 혼미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바실을 보면서 말했다.
“아무튼, 이것이 폐하께서 얻으신 세 번째 작은 것입니다. 앞으로 황실의 정치적 행보와 폐하의 군사적 행보에 귀찮게 딴지를 거는 의회의 견제는 다소 신경을 끄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저는 이번 일을 통해서 폐하께서 얻으신 세가지 큰 것과 세가지 작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이 모든 업적을 얻어내신 황제 폐하의 영광을 찬양하며 저는 감히 그것을 우러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제국에 영광이요, 우리를 이끄실 위대한 황제 폐하의 업적이 되실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제사장과 방백과 선지자들과 목자들이여. 우리 위대한 황제 폐하를 찬양하라. 그분은 그대들의 찬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주께서 기름부으신 이니라. 자, 이렇게 기쁜 날 축하하지 않을 수 없죠. 다들 잔을 들죠. 그리고 와인을 따르세요. 그리고 건배합시다. 우리 위대한 황제 폐하의 영광을 찬미하며 건배 합시다. 다들 뭐해요? 잔에 와인을 따르지 않고?“
하지만, 그런 나의 흥겨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잔에 와인을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 몇 명의 사람이 겨우 몇잔을 마지못한 듯 따르는 것을 보고 나는 개의치 않고 홀로 와인을 들고 홀에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건배!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이여 영원하라!!!”
하지만, 호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와 그 엄청난 업적을 이뤄낸 황제를 차마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곁눈질을 할 뿐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보다도 바실을 따라 합류한 유목민족들의 반응은 심각할 정도였다. 나중에 소개받아 이름을 알게 된 퉁기스 장로는 그 상황을 보고선 이렇게 중얼거렸다.
“맙소사... 우리는 어쩌면 늑대를 피해 호랑이굴에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구나. 일족들에게 전해라. 절대 흉측한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고. 여기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가 있다. 우리가 살길은 오직 폐하에게 순종하는 것 뿐. 그 어떤 흉측한 마음도 결코 품어서는 안된다. 명심하라.”
그렇게 크림 테마의 본부에서 있었던 바실의 귀환은 뭔가 대단히 어색한 분위기로 마쳤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일들은 상당히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는 공개되지 않는 대외비로 붙여졌고, 제국의 일부 최고위 인사들에게만 조금씩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일부를 들은 사람들도 너무나 충격적인 발언에 들었다는 사실을 크게 후회했다는 후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요하네스 의원의 의해 전해진 내가 한 말에 대한 완곡한 정치적 수사 정리를 통해서 많이 전파되었는데, 그 마저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발언이었다고 한다. 요하네스 의원은 나중에 자신의 회고록에 그날 테마 본부가 있었던 크림반도의 작은 도시의 이름을 따서 그날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얄타 선언(Yalta Declaration). 그날이 바로 제국의 카밀라 독트린(Camila Doctrine)의 시작일이었다.”
카밀라 독트린은 뭔 놈의 카밀라 독트린이야!!! 제발 나 살자고 아무렇게나 죄다 끄집어내서 내뱉은 거에 쓸데없이 진지해지지 말라고!!! 그리고, 독트린이란 단어를 붙이려면 황제 폐하 이름을 붙여서 니케포루스 독트린이나 바실 독트린이지 왜 거기에 내 이름, 아니 정확하게는 공녀님 이름이 붙는 거냐고!!! 하지만, 그건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보다는 나는 따로 급한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태자 마마가 아닌 바실과의 독대였다.
Commen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