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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쎄게 후려갈겨서 눈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기세에 나는 거의 바닥에 나뒹굴어져서 엎어진 상황이었다.
뭐, 뭐야. 지금 이 새끼 나한테 왜 이러는··· 그때 녀석이 소리쳤다.
“이 요망한 헝가리의 공녀야. 지금 네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로구나.
새장 속의 새를 황제께서 가여워하여 풀어주었더니, 그 은혜도 모르고 감히 제국의 머리를 쪼려고 해?”
“아니, 그, 그게 무슨···.!!! 꺄아아악!!!”
순간 녀석의 발길질이 내 가슴을 강타했다.
평소였다면 그대로 반격 들어가서 발모가지를 잡아 비틀어 바닥에 내팽겨칠 공격을, 지금은 하도 어이가 없어 그대로 맞았다.
그리고, 녀석이 이어서 소리쳤다.
“내궁의 여인이 감히 환관장에게 말대꾸를? 네가 지금 동족들과 만나더니 분수를 망각하였구나.
황궁에서 생사를 경계에 두고 가르친 천년 제국의 법도와 규범을 망각하고, 내궁의 관리자인 나에게 건방진 언행을 하다니.
네가 본국에서 템즈의 꽃이건, 아르파드의 영애이건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제국 황궁에 들어온 이상, 너는 죽는 그날까지 그곳의 소속이고, 그 어떤 신분과 자격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잊었느냐?
그래서, 내가 그토록 황제 폐하에게 너를 감시 없이 풀어주는 것을 반대했거늘,
오오, 황제 폐하 보소서. 저 아이의 저 방자함을. 어제까지 하늘처럼 받들던 황궁의 법도를 잊고, 제 동족들과 저리 붙어먹는 모습을 보소서.”
그 말에 당황한 것은 되려 마고였다.
“그, 그게 무슨. 동족과 붙어먹다니, 그게 무슨···”
“아까 전까지, 아주 키스라도 할듯이, 얼굴을 마주대고 밀착해서 은밀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계집의 변명은 필요없어!”
그 말에 마고는 경악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도. 하지만,
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녀석의 과장된 액션은 계속 이어졌다.
“황제께서는 너를 가엽게 여겨 관대히 봐주신 것을 너는 감히 원수로 갚는구나. 그 교만을, 폐하는 용서해도 나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네게 네 위치를 상기시키고, 네 분수를 자각시키며, 네가 지켜야 할 법도를 다시 교육시켜주지.
카밀라 아르파드. 제국의 내궁을 주관하는 파라코이모메노스로서 명한다. 내궁의 소유물로서 관리자에게 해야 할 예의를 표하라.”
그리고, 녀석은 갑자기 자신의 발을 엎드린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뭐, 뭐야?
대체 뭐하는 거야? 이 망할 자식아! 대체 이게 무슨 뜬금없는 짓이야? 대체 나에게 뭘 하라고 하는 건데?
나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살짝 시선만 올려 위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베일에 가려져서 안보일 녀석의 맨 얼굴이,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나에게는 보였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더 할 나위 없이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건, 비열하거나 오만함이 없는 순수한 유쾌함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순간 깨닭을 수 있었다. 지금, 녀석은 나에게 연기 도발을 하고 있다.
녀석이 지금 내가 방금 전까지 처한 상황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황상 신분과 무관하게 본국에서 나에 대한 압박을 하는 것은 대략 짐작한 모양이다. 그래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나에게 배역을 던졌다.
그건 바로, 본국 헝가리 따위는 장난으로 여길 정도로 지독하게 제국에서 수모를 겪었던 공녀 역할을.
그래야만,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제국에 대한 앙심을 풀고 있을 본국의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들테니깐.
하녀가 아닌, 공작의 영애도 마치 물건이나 노예 다루듯이 하는 제국의 후덜덜한 내궁의 법도를 봐야, 자기들 따위는 걍 어설픈 공갈범인 걸 알게 될테니깐.
그걸 다른 사람이 하자고 하면 정말 모욕이지만, 저 자식이 나에게 하는 건 좀 의미가 다르지.
녀석은 나에게 그럴듯한 이 연극에 어울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열받는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는 것으로 이보다 좋은 핑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몰입한 뒤 연기를 시작했다.
먼저 자세를 가다듬었다. 몸을 일으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손을 뻗어 녀석이 내민 발을 공손히 받쳐들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녀석의 발등에 입맞추었다.
“······!!!!!!”
내 뒤에 사람들에게 소리없는 경악이 울려퍼지는 것이 들렸다.
무슨, 예전에 멸망했을 고대 노예 왕국에서나 볼법한 막장스러운 예법에 마고도 입을 딱벌리고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좀 먹히네. 그걸 의식한 나는 이어서 말했다.
“오직 한분이신 위대한 로마 제국의 황제 폐하에게 주님의 축복과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그리고, 제국의 만물을 모두 그분의 소유하시매, 그 중에서도 내궁에 속한 공물은 사람이되 사람이지 아니하고, 물건이되 물건이지 아니합니다.
다만, 오직 한분이신 그분의 소유이니 제 몸과 마음은 모두 그분의 것입니다.
불경을 용서하시옵소서, 고귀하신 내궁의 관리자이자, 황궁 여인들의 훈육자이신 파라코이모메노스시여.
속세의 인연이 닿은 이들과 잠시 사사로운 대화를 하였나이다. 내궁의 법도를 잊지는 않았으나, 잠시 옛 인연들과 대화하며 망각하였나이다.
저의 죄이고 불찰입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달게 받겠나이다. 평소처럼 인두와 채찍으로 저를 다스리시옵소서.
이는 지엄하신 파라코이모메노스의 응당한 권한이시고, 저는 오직 따를 뿐입니다.”
헝가리 사람들의 표정에서 뜨악하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말은 안하지만, 다들 ‘뭐? 인두와 채찍?’ 이란 소리를 지르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건 베일 틈으로 맨 얼굴로 날 보며 희죽거리던 녀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녀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없이 말했다.
‘야, 연기 좀 적당히 치자. 넌 뭘 놀자고 하면 죽자고 덤비더라? 하여간 오바질은.’
‘니 싸다구 값으로 이 정도는 받아치셔야 하지 않냐? 왜? 오바하니깐 쫄았냐?’
‘와, 씨. 이 망할 년이 뭐래. 좋아. 너 오늘 뒤졌어. 그래, 어디 메소드 연기 함 해보자.’
녀석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머리 뒷채를 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끌어올렸고, 나는 죽겠는데 억지로 참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녀석은 내 머리채를 쥔 손 말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내 양쪽 손목도 뒤에서 붙들었다.
그리고, 나는 흠칫했다. 아악, 이 자식. 갑자기 내 목덜미 핡았어. 오한이 돋는 기분을 느끼는데, 녀석이 말했다.
“망각하지 않았다니, 다행이구나 이 헝가리 암캐년아.
그 비루한 몸뚱이를 법도를 무시하고 굴렸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기억하니 다행이다.
만약, 아니라면 재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해서 내보냈어야 하니깐.”
“크, 크윽··· 그, 그것만은, 재교육만은 제발. 부디 자비를··· 다시 한번 수백명의 내궁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것은 차마···”
와, 설정 뭐래. 이 녀석이랑 다른 건 다 마음에 안들지만, 묘하게 사기치는 것에는 죽이 잘맞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이 상황을 황제나 바실이 들었다면 되게 어이없을 상황이겠지.
하지만, 왠지 이슈트반 국왕 부자와 마고 공주, 그리고 공작님과 시녀장님의 머리 속에는 왠지 모르게 현실과 다른 엄청난 것이 상상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대충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납득되는 분위기였고.
뭔가, 본국에 현실과 정반대의 뭔가를 상상하게 만든 나는, 약간의 죄의식과 다수의 불편한 상황 회피를 했다는 안도를 하였다.
그리고, 그 연극에 몰입하다가 퍼득 정신을 차린 듯 소리친 것은 아르파드 왕세자였다.
“그, 그만두시오. 제국의 환관장. 지금 이게 무슨 짓이요? 그녀는 우리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가의 영애요.
그러니 무례한 짓은 용납할 수 없소. 그리고, 지금 당신이 벌인 이 상황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소. 대체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오!!!”
그러나, 그런 아르파드 왕세자의 말에 율리아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관객 난입이 더 재밌다는 듯이, 녀석은 다시 한번 과장된 연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아르파드 왕가의 영애?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어느 놈팽이의 마누라건, 딸이건, 제국에 보내져서 내궁에 들어오면 그건 다 황제의 것이다. 전의 삶이나 인생 따위는 우리 알바가 아니야.
내궁의 환관장은 오로지 황제의 명과 내궁의 법도에 따라, 계집들을 다룰 뿐이야.
니들이 전쟁에서 패전하고 우리한테 내다버린 계집, 지금 와서 귀한 자식이라는 식으로 개소리하지마.”
“······!!!!!!”
왕세자의 입이 다물어졌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다 버렸고, 그 책임이 헝가리 측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니깐.
그리고, 말문이 막힌 왕세자에게 율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무례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어이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
정말로 무례한 것이 누군데? 지금 제국 대사관을 자기 소유처럼 점거하고 들어와 출입을 통제하고, 거기다 너희 딸내미에게 수작질을 부리는 건 누구지?
지금 선을 넘은 것은 너희들이다. 지금 너희가 저지른 이 만행을 우리 제국이 왜 용납해야 하지?
보면 볼수록 너희 헝가리 놈들의 방자함은 끝을 모르는 군 그래.
지난번에는 황궁에 외교사절이랍시고 들어와서, 황제의 소유물에 폭행을 하더니, 이제는 대사관을 점거하고 부임한 전권 대사랑 개수작을 부려?
우리 제국이 어디까지 너희들을 인내해야 하지?”
율리아의 말에 헝가리 측 인물들은 복잡해졌다. 특히나,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공작님은 더.
그러거나 말거나 율리아의 말은 이어졌다.
“너희들은 이번 일로 무슨 대단한 성과라도 낸 것처럼 의기양양한 듯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제국이 너희에게 베푼 자비의 소산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자비에 대해서, 제국 내부의 강경파들은 과하다는 입장을 격렬하게 표출하고 있지.
그래서, 지난번 사건까지만 해도 중간자 입장을 취하시던 폐하께서도, 그 사건을 계기로 강경론으로 돌아서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냐?
그건, 다 이 요망한 계집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이 다들 나에게 향해졌다. 그리고 율리아는 어이없다는 투로 말을 이어갔다.
“이봐, 라즐로 공작. 그때, 그대가 선고받은 사형 선고에 이 계집이 나서고, 그대가 어전에서 끌려나간 후에 어찌되었는지 아나?
킥킥킥. 아주 볼만했지. 어전에 나와서 통곡을 하면서, 자신은 죽여도 괜찮지만 아비의 목숨과 조국의 안위만은 보장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꼴이라니.
어처구니 없었지만, 자기 목숨을 걸고 통곡을 하며 자비를 구걸하는 덕에 폐하의 마음이 누그러지셨다.
그래서, 그런 지독한 황궁에 대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도 안되는 자비를 너희 헝가리에게 베푼 것이지.
하아. 우리 자비로우신 황제 폐하. 저들은 그리 다루시면 안된다고 그리 말씀드렸거늘, 예전부터 버려진 들개도 그냥 못지나치시는 성정이 이런 곳에서 나오시니
아무튼, 지금 너희가 날로 먹은 그 결과는 다 이 계집이 저지른 돌출 행동 때문인 것이다.”
야, 이. 거짓말을 해도 뭐 이런 말도 안되는··· 내가 언제 그 양반한테 울고불고 자비를 빌어?
하지만, 개연성으로도 입맛에도 이 이야기가 더 맞는 모양이었다.
그 차갑던 공작님도 잠시 나를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으니 말이다. 아오, 재수없어요. 시선 치우세요. 율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우리가 너희들을 곱게 볼 이유가 있을까?
너희 조국을 위해 이토록 애절하게 목숨을 거는 이 계집이, 너희들과 야합해 제국에 무슨 짓을 저지를 지 어떻게 보증하지?
우리는 항상 주시할 수 밖에 없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그리고, 마침 제국 사절단의 후발대로 부다페스트에 도착해보니, 이 계집이 동행없이 너희들과 밀통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난입해보니 현장이 딱 걸린 거지. 이래도 내가 무례한 행동을 한 건가?”
그 말에 마고도 할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그래, 무리도 아니지.
뭔가 내가 제국과 붙어 먹었다는 주장은 완벽하게 논파되고, 도리어 내 덕분에 헝가리가 무사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신성동맹 입장에서 상황을 주도하던 마고는 할말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율리아 이 녀석의 난입 덕분에 어찌되었건 이번 상황에 대해 본국의 압박을 받던 나의 상황은 해결된 것이다.
젠장. 이 자식에게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야? 아오, 안내켜.
그런데, 정말로 확실하게 안할 이유를 녀석이 만들어 주었다. 아흑, 갑자기 이 자식 뭐하는 거야? 왜 남의 몸을 더듬는··· 아윽.
“하지만, 아까 전의 맹세도 그렇고 지금 몸의 반응도 보니, 이 계집은 아직 자신이 황제의 소유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너희들이란 말이겠지.
우리 자비로운 폐하의 은혜도 모르고 개수작을 부릴 궁리만 하는 쥐새끼들. 너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야, 이···. 우리 쪽에 시비를 거는 일에 꼭 그렇게 날 만지면서 해야 하냐?
기분 나쁘니깐 그만 둬!!! 하지만, 녀석은 왠지 지금 아니면 언제 나 괴롭히냐는 듯이 아무 집요하게 예민한 곳을 더듬었다.
색꺄!!! 이거 성희롱이라고!!!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고 무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자식. 정말 나중에 죽었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보다 더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슈트반 왕과 왕세자였다. 율리아의 말. 쥐새끼라는 그 말은 명백한 내가 아닌, 왕과 왕세자에 대한 도발이었다.
.
그것에 대해서, 이슈트반 왕세자는 분노한 목소리로 이젠 아예 반말로 말했다.
“예의를 갖춰라, 제국의 환관장.”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모르나 본데, 눈앞에 계신 분은 지엄하신 우리 헝가리의 국왕 이슈트반 폐하시다.”
“알아. 그래서 뭐? 쥐새끼들의 왕은 쥐가 아닌 뭐 다른 거냐?”
“이 발칙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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