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2
“네? 조직에 들어오라고요? 갑자기 왜요?”
마리오는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국군에 경우없이 집적거리다 뒈진 똘마니들 대신에 인원 보충이 필요한 모양이구만. 같은 부대 출신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우리들은 불편한 존재였지. 하지만 당장 부리던 똘마니들이 중상을 입고, 제국군에게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고 보니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멸시하던 우리의 손까지 아쉬운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제의에 마리오는 살짝 솔깃한 표정을 지어보이다, 이내 클라라를 한번 보더니 아니란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리오를 보다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해주신 제의는 감사합니다만··· 그보다 먼저, 굳이 왜 지금 와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듣자하니 이번에 화제거리였던 그 일이 흐지부지되서, 왠지 사람이 많이 필요하시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이 흐지부지되긴 했지.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런 식으로 당하고는 못살아. 그래서, 나를 엿먹인 제국 놈들에게 복수할 생각이다. 실종된 사람이 헝가리의 공녀가 아니고 그냥 하녀라고? 그리고 실종인지 도주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제국은 그 하녀를 수배한 상황이고.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제국은 그 년을 찾고 있는 중이고, 그렇다면 그 년을 내가 먼저 찾아서 빼돌리면 그건 그대로 제국에 한방 먹이는 일이 되겠지. 이 빌어먹을 제국 놈들··· 내가 먼저 찾아서, 절대 못찾을 곳에 처박아 둘테니, 어디 한번 평생 찾아 다녀 보라지.
그 놈들이 답 없는 일에 용쓰는 걸 보면서 통쾌하게 비웃어 줄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도망친 하녀가 정황상 헝가리의 공녀와 관련된 하녀는 맞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냥 아무 곳에나 굴러다니는 닳아빠진 년들 보다는 좀 반반하고 봐줄만 할지도 모르지. 공녀는 손댈 엄두가 안나지만, 기껏해야 은화 몇푼짜리 하녀는 좀 재미봤다고 뭐라고 할 놈도 없겠지. 그러니깐, 내가 접수할 생각이다. 그 년 때문에 부상당한 내 원한을 담아서 조금 귀여워해 줄 생각이란 말이다.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구만.”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독한 혐오감을 억누르느라 욕지기가 치밀었다. 이 개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감히, 너 같은 쓰레기가 아그네 아가씨한테 뭘 어째? 그분은 네가 감히 손을 대도 되는 그런 분이··· 어라? 근데 그녀가 공녀가 아니고 하녀라고? 갑자기 그렇게 생각을 하니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에 이 자식의 말에 머리 속이 더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젠장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 상황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한가지 뿐이었다.
“제안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저 같은 놈은 별 도움이 안될 겁니다. 그러니,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찾아보시죠.”
나의 말에 루카의 얼굴은 좀 찡그려졌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비웃듯이 말했다.
“아, 그래? 쫄보 놈인 것은 여전하구나. 미로크슈에서 혈태자의 공격을 당한 부대들이 죄다 전멸하는 와중에 흔치 않게 살아남아서, 신통하다 싶었는데 어디서 고개 쳐박고 숨어서 목숨을 연명했다는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구나. 그래, 집어치워. 모처럼 준 기회를 잡을 용기도 없는 놈은 필요 없어. 마리오 네놈은?”
“아, 저··· 저도 바실이랑 같은 생각이라.”
“흥, 형편없는 자식들. 그래, 평생 그렇게 밑바닥 버러지로 살아라. 이 몸이 안치오 뒷골목의 왕이 되는 동안, 네놈들은 그렇게 시궁창 벌레로 사는 것이 네놈들이 선택한 삶이겠지. 기회를 줘도 잡지도 못하는 반푼이들 같으니.”
그렇게 우리에게 모멸적인 말을 내뱉은 루카는 퍼브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이 우르르 그를 따랐고. 나와 마리오는 그 자식이 내뱉은 말에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 우리에게 클라라는 주문도 없었는데 술 한잔씩을 줬다. 마리오는 그것에 조금 흐믓한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게 느긋하게 술을 마실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마리오와 얘기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먼저 일어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내 머리 속은 오늘 접한 정보 덕분에 지독하게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공녀가 아니라고? 그냥 하녀였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내 인생을 뒤바꿀 기회는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느껴지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그녀의 상황이 내 머리 속에는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제국이 그녀를 쫓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제국이 하녀의 행방을 지명수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국이 그녀를 붙잡는다면 결코 그녀에게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안치오의 범죄조직을 이끌고 있는 루카도 그 수색에 뛰어들 모양이다.
이유는 좀 한심하지만, 그 비열한 루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녀가 루카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또한 그녀에게 지옥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그녀의 신변은 위험하기 짝이 없고, 그 상황에서 그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루카에게 시선도 마주칠 용기도 없는··· 나다. 그 생각을 하니, 머리 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공녀도 아닌 그녀를 내가 몰래 보호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판단은··· 그나마 나을지도 모를 제국에 그녀의 신변을 인도하고 현상금을 타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상식적인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는 자꾸 거부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새 나는 집에 도달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왜냐하면 집에 문이 열려져 있고 안에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에는 순간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당황하여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아그네 아가씨!!!”
“네에. 저 여깄어요. 이제 오셨어요?”
“어어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해안가 쪽에서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바구니 같은 것을 들고, 해변에서 주은 것으로 보이는 조개를 잔뜩 담고선.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면서 조금 미소지으며 말했다.
“전에 파스타를 삶으실 때 거기 넣을 해변의 조개를 주워오시는 걸 봤어요. 저녁에 바로 드실 수 있게 제가 한번 주워와 봤어요. 생각보다 재밌네요.”
그녀는 왠지 칭찬이라도 받고 싶은 아이처럼 나에게 해맑게 웃으며 조개를 내밀었고, 나는 그것을 말없이 받아들었다. 그리고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리고 머리 속에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결론이 어쩌면 가장 최악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결정하고 나서야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만의 비밀은 계속 나만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군요. 주워주신 조개 감사드립니다. 손을 덜었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 지난번보다 더 맛있는 파스타를 삶아드릴게요.”
“네, 기대할게요.”
나는 미소짓는 그녀와 함께 내 누추한 거처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그녀를 보호하는 것은 나다. 그녀가 공녀이든 하녀이든 알바 아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여기 있고, 내가 그녀를 지킬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지키겠다는 것뿐이다. 나는 그 다짐을 하면서 저녁을 준비하러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생각보다 안치오의 분위기는 조용했다. 뭐, 무리도 아닌 것이 한때 공녀가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야 동네가 벌집을 쑤신 것처럼 난리였지만, 지금 그냥 하녀를 찾는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루카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깐. 그나마도 배가 좌초한 곳 인근인 폰차 일대만 수배지가 붙었지 이곳에서는 큰 반응이 없었다. 한마디로 이전의 소동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안치오는 예전의 평화가 돌아왔다. 그 당사자를 집에 숨겨두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좀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상황은 그랬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으로 조금 안도하며 되도록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단골 퍼브에 들렸다. 그날은 왠지 마리오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별다른 소식을 듣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하고, 술이나 한잔 마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때, 들어오는 나를 발견한 클라라가 나를 가리키면서 누군가에게 말했다.
“아, 마침 들어오네요. 저 사람이에요. 이봐, 바실! 여기 너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클라라의 말을 듣고 돌아본 곳에서, 나의 시선에 들어온 사람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딱히 대단해 보일 것은 없는 남자였다. 특별히 잘생기지도 않았고, 비범해 보이지도 않은 어느 시골에 가든 한두명 정도는 있을 평범한 청년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평범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좀 촌스러워 보인달까? 그가 왠지 순한 인상으로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치오 해안경비대에 계시는 경비대원이시죠?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바실 경비관님.”
“제가 바실이긴 합니다만··· 그러는 당신은 누구죠?”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도 경비관님과 같은 바실입니다. 하하하··· 참, 재밌는 우연이네요.”
그의 싱거운 말에 조금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그의 다음 말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는 제국군에서 최근에 제국을 기만하고 사라진 하녀를 찾기 위해 왔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경비관님에게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사라진 하녀를 찾으러 왔다고요?!!!”
순간 긴장했다. 그럼, 이 녀석이 제국군에서 파견된 수사관이라는 말이야? 군수사관이라면 나름 장교급이라는 건데, 생긴 것만 봐서는 장교는 커녕 제국군 말단 병졸이라고 해도 좀 미덥지 않아 보이는구만. 그 정도로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에게 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물었다.
“사라진 하녀를 찾으러 여기 안치오까지 오셨다고요?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시는 군요. 천하의 제국군이 그렇게 할일이 없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민망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중요한 일이라고 하니,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일을 할 수 밖에요.”
“어디든 말단은 다들 고생이시구만. 근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사라진 하녀를 찾는다고? 그 하녀, 폰차에서 좌초된 배에서 실종된 거 아니요? 그렇다면 폰차 일대나 아니면 더 남쪽에 나폴리로 가서 찾아야지. 왜 북쪽 안치오로 오셨습니까? 뭔가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혹시 방향 감각에 문제가 있습니까?”
나의 조금 무례한 말에도 그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그런 편이에요. 주변 사람들이 저 때문에 자주 길을 잃어서 절 원망하곤 하지요. 근데, 뭐랄까? 좀 고쳐보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더라고요. 사실, 제대로 집중하고 가면 길을 헤매는 편은 아니에요. 근데, 자꾸 길을 잃는 것이, 어딘가를 가다 보면 자꾸 산만하게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생각치도 못한 엉뚱한 길로 가는 버릇을 좀처럼 고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런 습관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하죠. 왜냐하면 그러면서 종종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기도 하고 생각치도 못한 것을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면···”
나는 그 녀석의 태평한 이야기를 들으며, 군에서 되게 고문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평상시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류가, 어쩌면 일시적으로 어떤 조건에서는 역류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요. 하하하··· 좀 어처구니가 없으시죠? 제가 좀 이렇네요. 자꾸 쓸데없는 망상을 하는 버릇을 버려야 하는데, 남들이 다들 아니라고 해도 자꾸 그걸 확인해 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나쁜 성격이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다들 나폴리 일대를 수색하는 와중에 저만 혼자서 쌩뚱 맞게 이곳에 오게 된 겁니다.”
식은 땀이 흘렀고,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이 자식 뭐야? 완전히 미친 놈이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영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둘다 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들통나서 의심받지 않게 그 녀석에게 대답했다.
“흥미로운 생각이군요. 바다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고 보니 종종 나폴리 인근의 유실물이 떠다니는 걸 본 것 같은 기억은 있소만.”
“아, 역시!!! 다행이네요. 주변을 수소문해서 다녀 보니, 그런 일에 대해서는 바실 경비관님이 가장 잘 아실거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제대로 찾아온 모양입니다. 경비관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여기에 온 것이 헛수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거죠? 여기, 제국군의 수색인력이 죄다 몰려오나요?”
“하하하··· 그건 무리죠. 아무리 제국이라도 자국령이 아닌 교황령에 인접한 안치오에 그런 강행 수색을 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무립니다. 그리고, 하녀 하나를 찾는데 그런 인력을 보내줄리도 만무하고요. 그리고, 아직 확실한 정보도 아니니 당분간 수색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가 혼자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리는데··· 종종 여쭤볼 것이 있으면 찾아와서 도움을 청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혼자 수색한다는 그의 말에 조금 안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던지요.”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지신 분에게 이런 큰 도움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클라라에게 나에게 한잔 사주라는 듯 돈을 바에 올려놓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선 퍼브를 나섰다. 그리고 문득 문을 나서기 전에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혹시, 저희 어디서 본적 없나요? 왠지 초면이라고 하기에는 낯이 익은 기분이 드는데요?”
“글쌔요. 전혀 모르겠습니다만···”
“하하하, 인상 좋으신 경비관님이라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근데, 자꾸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기억이 드는데··· 뭐, 크게 신경쓰진 마세요.”
그는 그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퍼브를 나섰다. 그리고, 나는 마음 속에 불안감이 넘쳐났다. 젠장할··· 이젠 어떻게 하지? 그 문제에 대해서 답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건낸 돈이 제법 됐는지, 잔이 아닌 병으로 받은 술을 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가 건낸 와인을 보고선 환하게 웃었고, 그것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위로와 불안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그런 기분이 표정에 드러나서였을까? 그녀는 식사를 하다가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밖에서 하시는 일이 뭔가 잘 안되시나요? 조금 표정이 어두워 보이셔요. 혹시··· 저 때문인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나세요.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는 경비관님이 고생하시네요. 제가 기억만 찾았어도 이런 고생을 안하실텐데.”
“그런 말씀마세요. 아그네 아가씨 탓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확실히 아가씨의 신변과 관련된 일을 찾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아가씨가 그걸로 미안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의 정체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 앞에 놓인 운명까지도 알고 있다. 내 고민의 이유는 그것을 내가 억지로 보류하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그에 대해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그녀가 살면시 손을 들어 내 뺨에 올렸다. 그리고 위로하듯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련한 처지인데, 이렇게 경비관님처럼 좋은 분을 만나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어요. 참 신기하죠? 원래 기억이 모두 사라지면 혼란스럽고 괴로워야 정상이겠죠. 근데, 지금 저는 왠지 모르게 지금 상황에 안락함을 느껴요.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잃기 전에 저는 왠지 모르게 복잡하고 위험한 일에 많이 고통스러워 했던 것 같아요. 항상,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이 간절했던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나요. 어쩌면, 제 기억이 사라진 것도 그런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요.
경비관님은 항상 누추한 곳이라고 이야기 하시지만, 왠지 저는 이곳의 공간이 안락하고 마음이 편해요. 그런 걸 보면, 아마도 저는 그렇게 좋은 신분은 아니고 하녀나 그냥 평범한 농가의 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제가 잃어버린 기억과 저 자신을 억지로 찾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요. 고생하시는 경비관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의 시간이 그대로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너무··· 철없는 생각이겠죠? 죄송해요. 제가 지독한 민폐만 끼치려고 하네요.”
나는 그녀가 내민 손길에 뺨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손등 위에 올려 살짝 잡고선 말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하다니 뭐가요?”
“그냥··· 아가씨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그 말씀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의 말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이었다. 지금 내 작은 거처에 환하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존재는, 내 인생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하는 것을 나는 깨닭았다. 그래, 최대한 지켜보자. 나만의 작은 비밀···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이 닿는 곳까지는 지켜보자. 그 나와 이름이 같은 제국의 수사관도 한도 끝도 없이 이곳에 머물며 수사를 하진 않겠지. 루카도 시간이 지나면 금새 흥이 식을꺼야. 그러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리고 그런 나의 다짐은, 다음날 붕괴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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