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2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말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이카루스와 페가서스는 어쩌면 진지한 현실 취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눈앞에서 날아가는 인마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크아아아악!!! 사, 살려줘!!!”
또 다시 하늘을 날았다. 장정 하나와 그가 타고 있던 말 한마리가 사람 키보다 높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저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혹자는 추락으로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비약 거리를 생각하면 거의 비행에 가까웠다.
나는 인간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소망을 몸소 실천하는 것에, 협조하는 베오울프 연대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우하하하!!! 이거 계속 하다보니 재밌는데? 쟤들도 즐기는 것 같아. 담부터는 돈받고 할까?”
세게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가도에서 벌어진 세번째 교전. 적의 병력은 수백의 잡병들.
어느 영주인지 모르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능한 출혈을 최소로 하고 진압할 것을 부탁했고, 울프스턴은 그 말을 충직하게 이행했다.
덕분에, 사지가 날아가고 토막이 나는 잔혹공포물이 아니라, 사람과 말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코믹액션물이 연출된 것이다.
이제는 습격에 재미마저 느끼는 그들 병사들의 반응과, 너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전력에 나는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간헐적인 위협에도 큰 피해없이 부다페스트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제국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 동안 수시로 오가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도로다.
근데, 그곳을 거점거점마다 자리잡고 기습하는 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슬로슈의 선동에 참여한 지방 영주들의 규모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왕실을 지지하는 세력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듯 싶었다.
즉, 현재 상황은, 부다페스트와 세게드를 제외한 거의 전 영역의 헝가리가 반군에 가담했거나, 혹은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이지···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보안을 유지한 것도 대단하고,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도 대단하다.
그리고, 그런 말도 안되는 성공적인 모반의 그림을 그린 슬로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네. 그정말이지 오랜 시간 그 복수의 칼날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잘도 숨기고 기다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인내심에 더불어서 과감성도 놀라웠다. 그 열세의 상황에서 그런 반격을 시도할 결단을 내리다니.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도 들었다. 일단 그 도박에 일단 첫판부터 크게 땄다. 근데, 이제 어쩔 생각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정도의 승기를 잡았으면, 그 여세를 몰아 왕실의 숨통을 끊고 조기에 모반을 종결짓고 원하는 것을 달성했어야 최선이다.
하지만, 그는 그 후속으로 이어질 다음 전략 행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뭐지? 원하는 것이 헝가리의 왕위든, 슬로바키아의 독립이든, 뭐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당연히 여세를 몰아 공세가 이어져야 하잖아?
근데, 헝가리 전역이 난장판이 되기는 했지만, 슬로슈는 그 다음 행보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뭐지? 이런 일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저지른 머저리가 아니라는 건 확실한데. 그럼 그가 노리는 것은 대체 뭘까?
나는 그 의도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하게 힌트를 줄 사람이 나타났다. 동행한 웬수였다.
“젠장, 여기저기서 난리구만. 이 정도면 부다페스트도 이미 털린 상황아니냐?”
“그러지 않길 바래야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슬로슈를 상대해야 할지 의사결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건 곤란한 상황이니깐.”
“앞으로의 대응? 그건 간단한 거 아니냐? 결국, 이 상황에 대해서 슬로슈를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아르파드 왕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보면, 대략 아르파드 왕실이 취할 수 있는 방침은 3가지 정도 밖에 없겠지. 근데, 그 방법들이···
하이고! 왜 슬로슈가 대기타고 있는지 이제야 알겠네. 뭘 택하든, 자기에게는 불리할 것이 없고, 아르파드 왕실에는 유리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구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설명을 해봐.”
그리고, 그런 나의 요구에 율리아는 혀를 차며 그 3가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얼굴이 찌푸려졌다.
동시에 슬로슈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기랄, 나라도 저 상황이라면 팔짱끼고 버티고 있겠구만. 상황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부다페스트가 보인다. 응? 도시가 포위된 모양으로 보이는데?”
선발로 앞서가던 베오울프 대원들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말처럼, 부다페스트는 시가지의 성벽을 두고 외곽에 접근한 병력들로 포위된 상태였다. 벌써, 여기까지? 당황하여 나는 포위한 병력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은 수만 많았지 질적으로는 우리가 가도에서 조우한 자들과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근위2군의 붕괴 소식을 듣자마자, 부다페스트 인근의 영주들까지도 슬로슈의 편에 가담해 수도에 병력을 몰고 온 모양이었다.
그걸 보며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느끼다가, 동시에 어이없음도 느꼈다.
뭐, 뭐야? 부다페스트의 성벽에 있는 저 병력은? 근위1군들이잖아? 그래, 근위2군은 당했어도 원래 전통적으로 운영된 1군은 남아있잖아?
근데, 왜 이런 잡병들에게 포위를? 그냥 저 병력을 몰아서 포위망을 풀면···
서, 설마? 그 패전 때문에 저 병력을 내보내서 교전을 하는 것도 왕실에서 질겁을 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 생각에 쐐기를 박듯, 쿠타이가 멀리서 보면서 말했다.
“누나. 아무리 봐도 성 주변에 교전의 흔적이 안보이는데? 포위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 교전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나봐.
농성하는 측은 나올 생각이 없고, 공성하는 측은 들어갈 생각이 없어. 이건, 그냥 서로 성벽을 두고 대치하는 기싸움인데?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내 말이. 그리고 그 사연을 왠지 알 것 같다는 점이 더 내 속을 타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도착한 부다페스트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울프스턴 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뒷목을 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저것들··· 치워 주세요. 제가 수도로 들어갈 수 있게. 가능하시죠?”
“그러지. 하아··· 근데, 참 너무하는 구만. 경계도 세우지 않고 느긋하게 퍼져서 성벽만 바라보고 있다니.
기습을 할 생각이 없는데도, 어쩌다 보니 기습이랑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싶네. 얘들아, 대충 살살 가자. 2백명 정도는 크게 우회해서 퇴로 막아.”
그리고, 노르만 전사들은 포위망을 향해 터벅터벅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언덕 위에서 부다페스트를 둘러싼 시설과 사람들이, 마치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와, 씨. 겁나 시원하긴 한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겁나 후덜덜한 괴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겠다.
아무튼 그렇게 채 한시간도 되기 전에, 부다페스트를 둘러싼 병력은 깔끔히 사라졌고 입성하는 길이 열렸다.
나는 안전을 확보한 베오울프의 호위를 받으며 성벽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성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살짝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와, 아무리 미운 털이 박혔어도 이 정도면 부다페스트에서도 구원군으로 환영받겠지?
“가까이 오지마!!!!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쏘겠다!!!”
···라고 생각한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성벽 위에서는 거의 절규에 가까운 경고가 울려퍼졌고, 그걸 본 베오울프들이 되려 당황할 지경이었다.
“이봐! 방금 전에 교전하는 거 안봤어? 세게드에서 너희들 도우러 온 공녀 일행이라고.
누군지 알았으면, 이제 위협은 사라졌으니 어서 성문 열어!”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왕실의 엄명이 있었다. 특히나 무장 병력은 절대로!!! 물러서라!!! 제바알!!!”
어흑, 다시 뒷목. 대체 얼마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야 직성이 풀리시는 걸까?
이해는 하지만, 안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패닉 상황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로 문전박대 할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실랑이를 하는 건 어차피 내 정신 건강에만 안좋다. 나는 앞으로 나서며 성벽 위의 근위대에게 말했다.
“그럼, 병력은 여기 두고, 동행한 인원들만 들어가도록 하겠다. 그건 가능하겠지?”
“하, 하지만···”
“당장 열어!!! 이것도 용납 못하면, 방금 전에 반군을 쓸어낸 병력이 공성전을 시작해서 강제로 열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히이이이익!!!”
성문이 조금 열리는 것을 본 나는 울프스턴과 일행들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응응. 곧 돌아와야 해. 기다리는 동안 사다리 만들고 있을건데, 너무 늦으면 그거 사용하고 싶어질 것 같으니깐.”
섬뜩. 난 상황이 거기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간 성벽 안 부다페스트의 상황은 가관이었다.
“혹시 우리 남편 소식을 들은 것이 없나요? 붉은 머리에, 은색 깃털 장식을 한 투구를···”
“어떻게 해. 어떻게 해. 그래서, 헝가리로 돌아오지 말자고 했잖아. 지금 오자마자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야. 좀 궁핍했어도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어.”
“이제 헝가리는 끝장이야. 어떻게 그 자랑스러운 근위대가 그렇게 순식간에··· 이제 우린 다 죽었어!!!”
와, 씨. 밖에서 포위 되게 느슨하게 하고 있던 이유가 있었네. 이 정도 분위기면, 그냥 냅둬도 몇달 안에 내부에서 붕괴할 지경인데?
얼마 전에 우리 측 병력과 실전훈련을 할 때, 모여들어서 근위대에 환호하던 귀족과 시민들의 모습은 없었다.
벌벌 떨면서, 당장이라도 사형 선고를 받은 듯 두려움이 가득했고, 들어간 나에게 행방마저 묘연해진 근위대의 소식을 물으러 달려드는 사람들이 북새통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왕궁 다과회에서 마고한테 붙어있던 영애들도 보이네.
그들은 포위를 풀고 나타난 나의 등장에도,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찬 모습으로 상황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성벽에서 내려온 근위대와 내 일행을 보고 말했다.
“우리 일행들은 여기서 좀 기다려줘. 그리고 근위대는 사람들을 좀 물려주세요.
그리고 왕궁으로 가는 길을 호위해주시고요. 지금 바로 폐하를 알현해야 합니다.”
왕궁에 도착해서 곧바로 어전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는 더 침통했다.
이슈트반 국왕은 고개를 숙이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마고 공주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분노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 라즐로 공작님을 비롯한 근위대의 장교들이 상황판에 보고되는 내역들을 분석하고, 급보를 보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통한 결과는 없는지 전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들어가도, 의외로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저 눈치만 보는 보였다.
뭐야? 일단 부다페스트 포위를 풀어내고 온 걸 보고는 받았을텐데,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니야?
해방군으로 환영은 해주지 못할 망정. 나는 그런 심정을 조금 담아 말했다.
“세게드의 카밀라가 폐하를 뵙습니다. 전황은 대충 전해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마나 놀라셨을지 감히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마음을 진정하시옵소서. 부다페스트를 포위한 반군은 몰아내었습니다.
왕도의 포위는 풀렸고, 세게드와 부다페스트의 통로는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무사히 폐하를 알현할 수 있음은 주님의 축복인듯 합니다.
이제, 당장 눈앞에 위협은 제거되었으니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하명을 받고자 합니다.”
나의 말에, 그제서야 이슈트반 국왕은 고개를 조금 들고 침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 생기는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왠지 모를 원망, 그것도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 뿐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라즐로 공작님이 장교들을 보고 말했다.
“잠시, 어전에서 나가들 있게.”
그 말에 장교들이 군말없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어전에는 나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 만이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슈트반 국왕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 왕실이 이 지경이 된 꼬락서니를 신나서 구경하려고 왔느냐?”
“폐하. 무슨 그런 말씀을··· 저는 부다페스트와 근위대에 급변이 생겼다는 소식에···”
“집어 치워라!!! 그리고 지껄이지 마라. 그 거짓말을 듣기 역겨우니. 그래, 보기가 참 좋겠구나. 공작의 하녀야.
헝가리의 왕실이 이 지경이 되어서 비참한 꼴로 전락한 모습을 보니 즐겁기 그지 없겠구나.
왕실을 굳건히 지키던 기사들이 사라지고, 후계자도 행방불명된 모습을 보니 흥겹겠구나. 그 슬로바키아 도적놈이 기고만장하니 아주 날 듯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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