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1
“황후 마마!!!”
“일어나지 말고 누워있거라. 그래, 얼굴의 붓기는 이제 좀 가라앉은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황후 마마께서는 침상에 누워서 탱자탱자 시간을 죽이던 나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으로 오셨고, 그래서 나는 찔리는 기분으로 억지로 아픈 척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황후 마마께서 침상의 내 곁에 다가와 앉으시며 내 머리를 살짝 쓸어넘기시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그 동안 너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 같구나. 목숨을 걸고 온 처지에도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나는 그저 막연하게 네가 집안에서도 사랑받는 아이였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너에게도 뭔가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것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다. 나 역시도, 빈말로도 훌룡하다고 할 수 없는 부친의 자식으로 태어난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너를 잘 이해해 주었어야 하거늘··· 그러지 못한 것이 가슴이 아프구나. 그리고, 네가 이곳에 있는 동안 너의 보호자는 바로 나인데, 그런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황후 마마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아오, 가짜로 보내진 사람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황후 마마께서 마치 고향에 있는 우리 엄마처럼 진심으로 걱정하는 반응을 보여주셔서, 공작님 덕분에 묘하게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황후 마마에게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집안의 불찰로 황후 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힌 점을 깊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친의 만행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에 보내진 시점에서 저는 템즈의 꽃이 아닌 카르브나의 공녀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를 총애하여 주신 황후 마마의 은혜에 갚을 길이 없는 마음만 가득합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하셨다니요. 그런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이 모든 것은 다 못난 저희 가문의 불찰로 기인한 것이고, 황후 마마께서는 그저 내궁의 주인으로서 하셔야 할 기강을 제대로 잡으신 것 뿐입니다.”
나의 말에 황후 마마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 복잡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셨다.
“네가 그렇게 이야기해준다니 내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구나. 솔직히 조금 고민하고 있었단다. 그때는 네가 폭행당하고 있는 장면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너를 구하고 네 아비를 체포하는 것만이 머리 속에 가득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머리가 조금 차가워진 다음에 생각해 보니··· 혹시나 내가 너무 과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드는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 그러니, 그런 행동이 그대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연결될 때 어떤 여파를 남길지 감히 가늠할 수 없고, 가늠해볼 생각도 없었지.
그래서, 가능하면 내 행보에 있어서 정치적인 구설수가 될 일은 최대한 피하고 그저 실무에 능한 것으로 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너무 앞뒤 안가리고 행동을 저지른 것 같구나. 뭔가, 일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커지는 모양이다. 나는 그저, 딸이라고 해도 자기 소유의 개나 소처럼 폭행을 하는 글러먹은 아비를 벌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 고작인데, 그의 입지와 지금 제국과 너희 나라의 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할 일이 아닌 것 같더구나. 그래서 뭔가, 일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더구나. 더 이상 내 손을 떠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잘한 일인지 아닌 건지 이제는 알 수가 없구나.”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 사건이 너무 커져서 이제는 황후 마마의 손을 떠났다고? 확실히, 뭔가 내가 병상에서 누워 있는 동안 사건이 점점 눈덩이 굴러가듯 커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었다. 군부와 행정부는 물론이고 황제까지 직접 개입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 뭔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런 제국의 태도에 공작님은 더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이신 모양이다. 처음에는 폭행의 관련 진술만 요구받다가, 어느새 질문의 내용이 헝가리가 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의와 공작의 정치적 진심으로 넘어가자 미치려고 하신다더라.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확실히 좋은 일을 성사시키려고 만든 자리에 찬물을 대차게 끼얹은 일에 대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걸 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상황인 건가? 그래봤자 그냥 내가 몇대 얻어터진 것이 전부인 사건인데? 이거, 이러다 정말로 뭔가 큰일이 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뭔가 이런 일로 공작님과 시녀장님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되면 쌤통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사안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그냥 웃고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이번 일로 인해 외교 사절이 추방되고, 제국이 그것에 대해 본국에 정식으로 책임을 묻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형사고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 몸을 반쯤 일으키고 황후 마마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역시나 이번 일로 인해 큰 벌을 받게 되실까요?”
“글쎄다. 나도 이번만은 어떻게 될지 감히 예측하기가 어렵구나. 니키는 묘하게 그럴때가 있어.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물불안가리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달려드는 경향이 있거든. 왠지, 이번에는 묘하게 그런 느낌을 받는구나. 네 아비가 크게 경을 칠까봐 걱정이 되느냐?”
“용서하시옵소서. 전에 확인드린 것과 같이 저는 카르브나의 소유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혈연으로 이어진 끈을 남의 일인 것처럼 방관하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군요. 저는 그런 제 아버지에게 연민이 아닌 동정을 느낍니다.”
그런 나의 말에, 황후 마마는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나를 살며시 안아주시고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씀하였다.
“너의 그런 자상한 마음은 이해하느니라. 하지만, 명심하거라. 만약에 네 아버지에게 니키가 국문을 마치고 판결을 할 때, 너는 결코 저쪽에 서서는 안된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쪽이니라. 설령, 네 아비가 받을 벌로 인해 네가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약속드리건데 저는··· 카르브나의 사람입니다.”
그러자, 황후 마마는 안심했다는 듯이 내 등을 토닥이며 몸을 떼고 말씀하셨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이만 쉬거라. 그리고, 네 아비에 대해서는 너무 크게 걱정하지 말거라. 먼가 정치적으로 일이 커져가서 내 예측 범위를 넘어가기에 불안하다고 하기는 했다만, 뭐 그리 큰 일이야 있겠느냐? 정치하는 놈들은 다 적절한 타협으로 자신의 작은 손익에 연연하기 마련이니깐, 그것이 설령 정치적으로 큰 일이라고 해도, 네 아비가 그리 큰 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키다.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콘스탄틴노플의 시민들이 누구나 다 지나가다 어께를 툭치고 아는 척을 해도 위화감이 없이 지나가는 그 사람이다. 그가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닌 네 아비에게 무슨 큰 해꼬지라도 하겠느냐?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 널 때린 것에 대한 대가로, 그 양반이 네 아비에게 고작 헝가리 토카이 와인을 잔뜩 달라는 판결을 내릴까 봐 말이다.”
나는 그런 황후 마마의 말씀에 마음 속으로 안도하는 기분이 들고, 그래서 겨우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그것 참 곤란한 판결이고, 너무나 폐하라면 하실 법한 판결이군요. 제 맷값으로 받은 와인이니 제가 죄다 마르바라 해협에 뿌려버려도 상관없겠죠?”
“하하하!!! 아까운 와인 낭비지만 특별히 허락한노라. 오랜만에 니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겠구나.”
"당황하시면 그나마 다행일지도요? 왠지 바다에 뛰어드시는 거 잡느라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부정을 할수가 없다는 사실이 참 창피하구나. 내가 왜 너한테 와인창고 열쇠 쥐어줬는지 이제는 좀 알겠지?"
"네,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물쇠 좀 더 채워야겠다고 생각 중이고요."
그렇게 황후 마마와 나는 유쾌하게 웃으며 자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제가 친히 진행한 국문을 마치고 이번 일에 대한 판결의 자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소는 부콜레온 황궁의 어전이었다. 내가 제국에 와서 처음 황제를 만났던 그곳. 와, 그때 확 깨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그리고, 뭔가 대단히 장엄하고 웅장해 보이는 이 어전도 평소에 어전회의가 없으면 바실이랑 쿠타이가 종종 실내 축구하는 곳을 쓰이는 것을 보고 급격하게 웅장함이 사리지는 것을 느꼈더랬지. 그 장소에는 제법 많은 제국 고위층이 벌써부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 폐하가 입성하십니다.”
관리들의 선포와 함게 황제가 황후 마마와 같이 어전에 들어왔다. 어전에 모인 고위 관료와 군인들이 지고의 예를 표하는 것을 받은 그가 황좌에 착석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번에 벌어진 황궁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국문의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다. 죄인을 데리고 오라.”
그러자, 어전의 끝에 문이 열리고 근위대원들이 결박당한 공작님과 시녀장님을 끌고 어전으로 들어왔다. 딱히 폭력을 가한 것은 아닌지 몸은 성해 보였지만, 지독한 심문이 이어졌는지, 엉망이 된 차림새와 퀭한 눈으로 들어온 공작님과 시녀장님의 모습은 피폐해 보였다. 그들은 문득 어전을 끌려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엄청나게 많은 뜻을 담은 눈빛을 나에게 보냈고, 나는 부채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어전의 앞에 끌려와 바닥에 꿇려지자, 어전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가 말했다.
“심문을 통해 대략적인 사건의 조사는 끝났다. 그리고 짐은 이번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심히 통탄을 금할 수 없도다. 피고인 라즐로 아르파드는 이 사건을 그저 부모에게 불손한 자식에 대해 집안의 가장으로서 훈계를 하였다고 주장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납득할 수 없는 폭력을 수반하여 훈계를 한 시점에서 그것은 더 이상 훈계가 아닌 친족간의 상해를 유발할 수 있는 폭행으로 간주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폭행으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와 피의자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할 때,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일이 아닌 국가의 대사와도 연결된 심각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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