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1
세게드의 사령부에 귀환하였다. 사령부의 분위기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공녀님께서 용기를 내셔서 출진하신 덕분에,
세게드와 부다페스트를 연결하는 가도를 중심으로 한 거점과 요충지 들이 아군 측에 확보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포위도 풀고 승리와 함께 입성하셨다고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공녀님의 방문을 계기로 왕실에서도 향후 방침을 진압으로 결정하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왕실도 드디어 정신을 차리시고 대응을 하시려는 모양이군요. 그럼, 이제 근위군이 출격하는 거죠? 이제 저희들은 그럼 뭘 도우면 될까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누가 들으면 내가 되게 잘하고 온 것처럼 들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나만해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야, 그 공녀라는 사람,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하네.
그래서, 나는 뭔가 들뜬 농민군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지금 내가 받아온 말도 안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찬물을 끼얹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하하하··· 일단, 회의실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시죠. 잠시 후 다들 모여주세요.”
잠시 후 주요 간부들이 모인 회의실에서, 나는 내키지 않는 지금의 상황과 우리에게 부여된 말도 안되는 임무를 말해야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고 한참 동안 회의실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 환장할 것 같은 침묵. 모두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 후 누군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뭐라고요? 지금 그 무지막지한 슬로슈와 그에 동조한 헝가리의 유력한 영주들의 군대를···
우리 만으로 진압해야 한다고요? 제국의 지원은 고사하고, 근위1군의 도움도 없이? 정말로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고요?
제가 지금 뭘 들은 거죠? 아니, 대체 왜요?”
그건 나도 묻고 싶을 지경이다. 대체, 왜 지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근위대도 개작살낸 그 북방의 야수를 우리 혼자 잡아야 하는걸까?
그리고, 그 말도 안되는 상황을, 신성동맹 개입이라는 미친 짓을 막기 위해, 어쩌면 내가 수작을 부려서 얻어냈다는 것도 어이가 없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 모인, 말이 장교지 얼마전까지 유랑하던 농노들이었던 사람들만 할까?
장교들은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상황에 저마다 혼란에 빠져 수근거렸고, 나에 대한 시선이 복잡하게 변해갔다.
아마도,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 대놓고 비아냥거리거나 제 정신이냐고 묻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 사람은 정말로 그런 눈치도 보지 않고 거리낌없이 나를 보면서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와우. 결국 예상했던 왕실의 대처방안 3가지 중에서 받아온 것이 그 중에 가장 최악의 수였어?
전에 세게드 영지도 그렇고, 너 요새 부도수표 받아오는 재주가 있었네.
왜? 같은 동포의 왕이니깐, 막 충성심이 솟구쳐? 그래서, 이 충신이 죽음으로 왕실을 보호하고, 역적을 치겠나이다! 하고 비장하게 부도수표 받아왔어?”
오늘 나는 처음 알았다. 사실 나는 저 녀석의 머리카락을 너무너무 사랑했다는 사실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마구 애무해주지 않고서는 못배길 정도로. 사람들 시선이 많아서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비아냥에 폭발할 지경이었다.
근데, 이게 더 열받는 것이, 누가 보면 정말로 그런 줄 알겠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어느 멍청한 장교 중에 한 놈은···
“크흑.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오직 공녀님만이 우리 헝가리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고 왕실에 충성하는 최후의 충신이셨던 거군요.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감동먹지마. 저건 비꼬는 소리라고!!! 나 충심 같은 건 쥐뿔도 없고, 그냥 내 목숨만 부지하고 싶은 사람이야!!!
하지만 그런 절규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소수였고, 대다수의 표정은 상당히 안좋아보였다.
도무지 말도 안될 것 같은 상황에 던져져서, 눈빛으로 ‘나 죽으라는 겁니까?’ 라고 묻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젠장할.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네. 제국에서 이상한 놈 뽑아서 사령관이라고 던져놓으면, 병사들 반응이 딱 이랬을까?
전에 큰 죄의식없이 저질렀던 일들이 내가 경험하니 더 환장할 것 같았다.
나는 대체 왜 여기서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겪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건 바로, 총사령관으로 선발한 그 사람. 삼돌이 마티였다. 그리고, 조금 당황했다.
의외로 어리둥절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불안한 표정은 아니야? 어라라? 뭐지? 갑자기 위기에 숨은 재능이 발휘되는 성격?
나 이 양반 그런 취지로 선발하지 않았는데? 그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마티 사령관님은 의외로 담담하시네요. 사령관 입장에서 장교들보다 더 당혹스러우시리라 생각했는데.”
“아? 그런가요? 하하하··· 뭐, 솔직히 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왕실에서 저희에게 기대하시는 요구치가 너무 높으신데요?
지금 여기 병력만으로 제국의 지원도 없이, 북방의 야수를 잡으라? 우와··· 쉽지 않네요. 아니, 거의 불가능이지 싶습니다.”
“근데, 왜 표정은 그렇게 담담하세요? 뭔가 자신이라도 있으신 것처럼?”
“아! 그야 솔직히 지금 상황이 심각하기는 해도, 그래도 예전에 경험한 상황들만큼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최악이 아니다? 오잉?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갑자기 이 삼돌이의 말에서 희망의 실낱을 보았다. 녀석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전에는 더 최악이었거든요. 농노 반란이라는 것이, 말이 반란이지 거의 시위에 가까운 수준이라서요.
계획도 없고, 조직도 없고, 그냥 죽겠다고 모여든 군중들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영주들의 사병에 진압되는 것이 일상인 상황이라···
그때는 정말로 무슨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그냥 크게 항의하고 안죽으려고 내빼는 것이 전부였죠.
근데,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병력도 집결했고, 보급도 생겼고, 외부 지원도 있고.
여전히 수준이 낮기는 해도, 그래도 예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최악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찌되었건, 지금은 그래도 싸우자고 나가면, 적과 조우하기 전에 죄다 도망치지 않고 모여서 진군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그럼 그렇게 진격하면 혹시 슬로슈를 잡을 요행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하하하! 에이, 그런 건 없죠. 당연히 지겠죠. 겨우 걸음마 띠었는데.”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저 새끼가 왜 삼돌이 소리를 듣는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웃음에 나는 살의까지 치밀었다.
그런데, 의외로 저 녀석의 저런 미친 긍정에 동조하는 놈이 있었다.
“아니야. 마티 사령관님은 승산이 없다고 하셨지만, 의외로 지금 상황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야, 쿠타이. 넌 또 왜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어서. 그리고 이게 어딜 봐서 나쁘지 않은 건데? 못들었어?
제국은 물론 근위1군의 지원도 없이, 우리만으로 그 자식을 때려잡아야 한다고. 더불어 같이 공조한 빌어먹을 영주들까지 말이야.
거기에 무슨 승산이 있다는 말이야?”
“승산은 확실히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명분은 확실하지.”
“명분?”
나의 말에 나는 물론 모두의 시선이 쿠타이에게 향해졌다. 녀석은 조금 곤란한 표정도 잠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슬로슈는 북방의 야수라는 말과는 달리, 과격하기 보다는 교활한 성격으로 보여.
그래서, 이번 모반도 자기 힘을 믿고 날뛰는 대신에, 이해 관계자들을 정치적으로 결집시켜서 양적 우위를 확보하고 행동에 나섰지.
그리고 그 결집을 위해서 놈은 그들이 모일 수 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었어.
근위대는 망명했다 돌아온 귀족들이 기존 영주들의 영지와 세력을 넘볼거라고 했고,
상비군은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제국과 연계하여 아르파드 왕실의 뒷배경이 되어 자기네를 위압할거라고 말했다지?
그래서, 영주들은 자기 땅 넘보는 근위대를 박살내는 것에 적극 동참했지.
그럼 이제 다음은 상비군 차례지. 근데, 여기서 상비군이 공식적으로 제국의 지원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진압에 나선다면?
그렇게 되면 영주들에게는 우리가 제국을 등에 업었다는 명분이 사라지지.
외세의 개입은 없고, 아군은 충성스러운 왕실의 진압군, 그리고 적군은 선동에 넘어가서 들고 일어난 반역자들. 명분 확실해지지 않아?
그럼, 일단 그것 만으로도 슬로슈는 몰라도, 그와 결탁한 영주들은 우리를 대하는 입장이 껄끄러워 질 수 밖에 없을 거야.”
녀석의 말에 나는 인상이 찡그려지는 것을 느꼈지만 부인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정론이었으니깐.
그래서 몇몇 장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에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그래 좋아. 그 명분이 우리 측에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래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이 전력 차이는 대체 어떻게 하라고?
아무리 명분이 있어도, 놈들을 제압할 힘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데?”
“확실히, 힘이 없다면 명분이 의미가 없기는 하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힘이 없다고 봐야 하나?”
“너 여기서 뭐 봤니? 그리고 제국에서는 뭘 봤고? 네 눈으로 본 것들이 있지 않냐?
네가 보기에는, 제국군에 비교해서, 여기 모인 병사들과 부대들의 질이 그 정도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건 아니지. 누나 말처럼, 여기 상비군 아저씨들은 제국군에 비하면 아직은 힘이 없지.
근데, 상비군이 힘이 없는 거지, 누나가 힘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뭐? 그게 무슨··· 너 설마, 베오울프 연대를 말하는 거냐? 야! 그건 말도 안돼. 그건 제국의 개입이잖아!!!”
“아니지. 제국과는 무관하지. 잊었어? 베오울프 연대의 고용 계약? 지금 베오울프 연대는 제국군과의 계약을 중단하고, 누나 사병으로 왔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벌렸다. 그래, 확실히 황후마마가 보내주실 때 그렇게 보내주시긴 하셨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누구나 다 아는 제국군 아욱실리아에서도 최강의 선봉부대가 내 개인 사병이라고 하면 그걸 누가 인정···
아, 하는구나. 옆에서 앞치마 두르고 스튜 끓이던 울프스턴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인정.
그래, 저 개자식들은 제국군 군견이 아니라 우리집 개가 맞나 보다. 맞는 말을 해도 뭔가 짜증이 나네.
그리고 쿠타이의 말은 이어졌다.
“일단 최강의 으뜸패가 하나 있었네. 그리고 카드가 한가지 더 있지. 제국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하기 위해 파견된 바이갈 삼촌의 기병대.”
“야! 그건 정말로 안돼. 베오울프는 형식적으로 내 개인 사병으로 소속되기라도 했지. 그 부대는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제국군이잖아?
지금 바이갈 경과 그 부대는 왕실 명령대로라면 세게드에서 철수해서, 귀국해야 한단 말이야.”
“물론, 그렇지. 근데, 한번 생각해 보자고. 헝가리 왕실의 명령은 제국군, 정확하게는 군대의 개입을 시키지 말라는 거였잖아?
그렇다면, 군대가 아닌 개인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잖아.
예를 들어, 코사크 기동군단, 제 1 수렵연대가 있으면 문제지만, 휴가 나와서 세게드에 놀러온 우리 삼촌이 친구들이랑 여기서 놀고 있는 건 문제가 안되지.”
“뭐, 뭐라고? 야, 그걸 말이라고!!!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네 말처럼 개인 자격으로 여기서 휴가를 보낸다고 억지로 우기려면, 저걸 작전에 사용할 수는 없는 거잖아?
정말로 말 그대로 놀려야 하잖아? 그럼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아니지. 의미는 있지. 적어도 우리 삼촌이 세게드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제 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세게드를 공격할 생각을 안하겠지.”
“······!!!!!!”
나는 녀석의 기가 차는 말에 장면마저 상상이 되었다.
수상할 정도로 말을 잘 타는 휴가 나온 여행객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돌아다니는 세게드의 풍경이. 그래, 제 정신 박힌 놈이라면 여기 안치겠네.
아니 못치겠네. 다가오기도 전에 천걸음 밖에서 여행객이 취미 삼아 쏜 화살이 해맑게 날아올 테니.
나는 이 기가 차는 쿠타이의 발상에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나 장기 휴가임?’ 이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바이갈을 보며 포기했다.
그래서, 대신 그 말을 받은 것은 내가 아니라 마티였다.
“확실히 그런 전개하면, 한번 해볼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게드의 방어를 신경쓰지 않고 상비군의 모든 전력을 공세로 운영할 수 있다면, 분산된 영주들의 병력을 각개격파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겁니다.
거기다 베오울프가 지원해 준다면, 위급한 상황도 쉽게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장교들도 일제히 그에 찬동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라? 그렇게 생각해보니, 외부의 지원을 배제하고 우리만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드는데요?”
“그러게요. 한번 해볼만할 것 같습니다. 왕실이 아예 무리한 요구를 한 건 아니었군요.”
“공녀님도 이걸 감안하고 임무를 받아오신거죠? 슬로슈 녀석, 임자 만났군.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 북방의 야수 놈을 한번 잡아 보죠.”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던 회의실에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참모들과 장교들은 저마다 지도와 서류를 보며, 의욕을 보이며 시끄럽게 논쟁을 벌이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보며 나는 아연해졌다.
뭐야, 이거? 왜 상황이 해볼만하다는 걸로 흘러가? 그리고 그런 의욕을 보이는 근원이··· 바로 나?
뭔가, 점점 상황이 나빠진다는 것을 체감하였지만,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뿌듯해 보이는 쿠타이를 째릿하게 노려보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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