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
“적군 출현! 적군 출현! 크윽··· 놈들의 정체는, 키에프를 공격해서 불태웠던 오유카의 승냥이들. 타입, 경기병! 불 속성과 바람 속성이다. 응전하라!!!”
“적의 공격에 응전한다. 부대! 전원 거창!!! 보아라!!! 우리들의 창으로 만들어진 창날의 숲을!!! 타입 장창병. 자연 속성으로 대응한다. 혼돈을 종식시키는 정화의 숲, 스피어 포레스트!!!”
“적의 피해 다수! 적의 피해 다수!!! 노스페라투 근접타격지원대, 처리하라. 응? 피해가 많이 발생하자 적들이 일제히 우회하기 시작한다. 본부 경계경보!!!”
언덕 위의 진지에서 그는 고고히 내려다 보았다. 그의 권속들이 보여주는 인간 승리의 찬가를. 어둠에 속한 자이면서도, 인간을 위해 싸우는 밤의 배신자들이 그들의 피의 맹주의 영도 하에 대지를 붉은 축복으로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성스러운 세례를 거부한 자들이 일제히 공세의 방향을 전환하자, 그들의 시선의 앞에 정면으로 본진, 블러드 네스트가 노출되었다. 피의 참모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진언하였다.
“어두운 밤의 배신자시여. 그림자에 속하나, 빛을 갈망하는 우리의 주인이시여. 적이 이곳으로 오고 있나이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크큭!!! 어리석은 바람의 자식들이여. 되다만 늑대의 잡종들이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허나,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미 예상하였노라. 그래서, 미리 사과한다. 미안하다.”
“사과라니요? 대체, 무엇에 대해서? 서··· 설마?”
“나는 사과하노라. 저들에게서 혹시나 태어날지도 몰랐을 태어날 가능성을 가진 생명들에게··· 그 기회를 박탈한 것을. 나, 왈라키아의 군주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바로, 지금이다. 가라!!! 어둠에서 태어나 빛의 날개를 단 어둠의 순례자들이여. 왈!라!키!아! 중!기!병!대! 그대들의 학살을 통해하며 허락하노라.”
“우리들의 군주를 위해!!! 피의 복음을 위해!!! 순례의 시간이다. 출격!!!!!!”
그리고, 위대한 밤의 제왕은 고개를 돌려 그대들의 아군을 보고 말했다.
“그대, 바람의 전우들이여. 카!자!크! 그 이름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하시겠소? 그대들의 동족일지도 모를 자와 싸우는 것에··· 섭리를 제파하고, 덕목을 굴절하여 응할 수 있겠소? 저 머나먼 지고의 계신분이 보내준 나의 전우, 쥬르첸족의 바이갈이여!!!”
“오오오!!! 이 땅의 주인이시여. 이 몸은 그저 대지를 스치우는 바람의 자취. 주인의 도움에 응하는 것은 손님된 자의 당연한 도리외다. 우리 바람의 아이들··· 같은 일족이라 해도, 저들은 달과 얼굴을 지운 자를 섬기는 뒤섞인 자들. 순결한 바람이 아니외다. 우리는 손님으로서 환대의 규칙을 지킬 것이오. 쥬르첸 궁기병대, 출격!!!”
“크큭··· 왈라키아의 피의 형제들아.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 바람이 우리의 편이 되었다. 아니, 이제 그들은 단순한 바람이 아닌··· ‘역풍’이라 불리리니. 이제 시간이 도래하였다. 마스커레이드의 시간이다. 가면을 써라. 이름을 숨겨라. 박쥐와 늑대와 함께 춤춰라. 아아아··· 오늘 밤, 우리는 달을 죽!인!다!”
거기까지 읽은 나는 책을 덮었다. 뒷목을 넘어서서, 척추와 다리까지 이어지는 지독한 결림 현상. 만성 질환인 뒷목 결림이 이제는 전신 결림으로 악화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는 마침, 나와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바로, 왈라키아의 시종장이자, 왈라키아 테마군의 총참모장인 렌필드 경이었다. 그는 왠지 나보다 더 증상이 심한지, 결림을 넘어서 거의 경련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며 한쪽 구석에서 벽을 부여쥐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내가, 저딴 꼴을 보려고 그 자식을 친자식처럼 모시고 가르치고 수행하고··· 아아아아악!!! 선대 대공님 돌아가실 때 같이 따라갔어야 했는데···”
그의 절규에 대해서는 구구절절이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사실 확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렌필드 시종장님. 이게 대체 뭐에요?”
나의 질문에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대답했다.
“표지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아니, 그러니깐··· 이게 티라스폴 전투 경과 보고서라고요? 제목에 그렇게 안 적혀 있잖아요. 제목은··· ‘몰다우는 쇠퇴하였습니다.’ 라고요? 이게 어딜 봐서, 공식 전투 경과 보고서··· 아, 저 밑에 부제로 조그만하게 적혀 있기는 하네. 몰다우는 쇠퇴하였습니다, 3권. 부제는··· 달의 몰락 in 티라스폴?”
“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표지에 적힌 부제까지 읽어버리자, 렌필드 시종장의 인내심은 박살이 났고, 그는 격한 절규를 여과없이 내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선 그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만악의 근원, 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 왈라키아 대공, 블라드 체페쉬에 대해서 마음 속 깊이 욕이 절로 나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하려면, 조금 시간을 되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번 패티우스에 대한 공작이 완전히 정반대의 결과로 대실패를 하자, 결론적으로 단시간 내에 헝가리 측이 제국의 동맹국으로서 군사자주권을 가진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결국 그 정책은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로는, 기존 정책에 대해서 황실의 입장 전환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컸다. 황제는 그 정책의 중심인 패티우스의 복권에 특사 파견이란 형태의 간접적으로 지지를 표함으로서, 더 이상 그 정책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그래. 바로 전에 내가 니코메데이아에서 저지른 황명 사칭 건. 그거다. 물론, 그 상황에 대해서 황제의 반응은···
“응? 내가 니코메데이아에 특사를 파견했다고? 잘 기억이 안나는··· 근데, 왠지 그랬을 것 같아. 아냐. 되게 내가 한 것 같아. 왠지 나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근데 무슨 문제라도? 응? 거기 시민들이 다같이 황제 만세라고? 훗! 이 몸의 인기란 역시···”
저런 새끼도 황제를 한다. 아무튼, 졸지에 정책 전환이 결정되자, 이와 관련하여 제국군 내부에서는 군의 배치 변경에 대한 사전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와 관련해서 가장 바빠진 것이 의외의 왈리키아 방면이 된 것이다. 왈라키아 대공이 제국에 귀순한 이후로, 동북방면은 크게 요란하지는 않지만 소리소문 없이 실속을 챙기는 전방 테마로 승승장구했다. 제국의 후광을 등에 업은 블라드 경은 왈라키아를 넘어 몰다우 방면에 상당한 영역을 제국의 산하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실속 영토 면적으로만 따지면 거의 요하네스 치미스케스 황제의 업적에 버금가는 쾌거였다.
그런데, 헝가리에 대한 제국의 군사 정책이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북 방면에 대한 정사 정책도 변화했다. 지금까지는 왈리키아를 기반으로 동북쪽에서 오는 황금일족의 군소 세력들을 선제 공격하여,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공격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헝가리 방면의 군사적 안정에 변수가 예상되자, 그러한 기존의 공격적인 정책을 방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방어적인 정책이라고 해서, 왈라키아로 물러나는 그런 건 아니고, 기존에 치고 빠지는 방식이 아닌, 몰다우 방면에 요새와 전진기지를 세우고 유효 지배 영토를 확대하고, 그 방어선을 공고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추가적인 물자와 지원도 아낌없이 주어졌고, 그로 인해 왈라키아 테마는 넘쳐나는 보급을 가지고, 실효 지배 영토의 확장을 해야 하는 행복한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생의 결과는 황도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게 예상보다 크게 돌아왔다. 연이은 승전과 방어선 확장으로 제국 군부는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두 사람··· 나와 왈라키아 대공의 시종장인 렌필드 경만은 그 승리로 인해 결코 기뻐할 수가 없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있었다.
그건 바로··· 그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그 인간의 광기가 폭발하고, 그게 다른 곳도 아닌 군의 공식적인 전황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서, 본국에 제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절규하며 창피함에 몸부림치는 렌필드 경을 보고 한숨을 쉰 다음, 다시 한번 그 보고서를 펼쳐보았다. 왠지 모르게 고급 종이에 요약은 커녕 책한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장황하게 적은 그 전황보고서라고 주장하는 무언가. 마침, 내가 펼친 곳에는 내가 조금 전에 읽어 보고선 어이를 상실했던 텍스트를 능가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나는 렌필드 경에게 물었다.
“시종장님. 이건 또 뭐에요? 아니, 다른 것도 아닌 군의 전황 보고서에··· 왜 일러스트? 그것도 달빛을 보면서 광소하는 대공님 자기 자화상?”
“아아아아아아아악!!!!!! 결국 실었어. 그것만은 제발 참으라고 다리를 붙들고 말렸는데, 결국 실었어. 그걸 실었으면 나머지 일러스트 11장도 더 실었겠네. 아아아악!!! 내가, 더는 창피해서 못살아. 선대 대공님!!! 제가 따라갑니다!!!”
창문에 뛰어내리려는 렌필드 시종장을 붙드느라 엄청 애를 먹어야 했다. 그랬다. 이 인간··· 제대로 병이 도졌다. 나름 영광과 풍요가 넘치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전에 봤던 것처럼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리면 도진다는 병이 제대로 도지신 모양이다. 근데, 문제는··· 전에는 그게 쪽팔려도 그저 부쿠레슈티 성 밖으로 나올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로 형용하기 힘든 괴상한 짓거리가 이렇게 서류를 타고 올라와 나한테 직접적인 타격을 먹인다는 것이다. 아오··· 나랑 렌필드 경은 대체 무슨 죄야!!! 나는 렌필드 경을 보고 말했다.
“보아하니··· 몰다우 방면에서 황금 일족의 분견대를 이끌고 반독립 상태이던 부족과 교전을 한 모양이네요. 장창병 방진으로 적의 돌격을 방어하고, 우회한 적이 언덕 위에 본진에 갔을 때 중기병대가 공격하고, 그 후미를 카자크 궁기병대가 들이쳐서 마무리하고. 그냥, 정석적인 승전 기록이잖아요. 그냥, 종이 한장에 적어도 될 것을··· 대체, 이렇게 장문으로··· 거의 책을 만들고, 문체도 뭔가 2학년 다니는 애들 수준으로 써서 들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시종장님이 말리셨어야죠. 아니면 적어도 수정을 해서 오시던가요.”
“말릴 수 있었으면 진작에 말렸죠!!! 근데, 제가 무슨 수로 테마군의 스트라테고스가 제국군 총사령관에게 보내는 직통 보고의 봉인에 마음대로 손을 대요!!! 저도, 이거 보고되고 난 다음에, 공개 가능해진 사본 보고선 원문이 이런 거 알게 된거란 말입니다.”
“아오, 머리야. 아니, 대공님은 서기도 없으세요? 최고위 귀족이면 좀 이런 일에 성실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 시키면 좀 좋아요? 이걸 왜 자기가 직접 써서··· 응? 잠시만요. 총사령관 직통 보고? 그렇다면 그 말은··· 바실 태자님에게 이미 이 보고서가 제출이 되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깐, 제가 지금 이렇게 공녀님 앞에서 발광하는 것 아닙니까? 다른 것도 아닌, 중대한 제국군 군사보고서가 그런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삽화까지 곁들여서 보고된 걸 보시면··· 총사령관이 진노하시리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제발, 좀 살려주세요, 공녀님. 우리 왈리키아 죽어요!!!”
“아니, 자기들이 다 싸지르고, 보고까지 마친 다음에 나보고 그걸 어쩌라고···”
그런데 그때였다. 나와 시종장이 대기하고 있던 군부의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분노한 표정의 바실이 있었다. 그런 바실을 본 렌필드 시종장은 기겁했다. 전황보고서 들고 온 죄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그를 발견한 바실이 곁에 있던 쿠타이에게 책을 받아들고선 탁상 위에 내려치듯이 놓으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렌필드 참모장님. 지금, 당장 해명을 할 것을 제국군 총사령관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히이이이익!!! 평소에 내가 알던 바실이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분노한 얼굴로 렌필드 시종장에게 거칠게 추궁했다. 그러자, 시종장은 통곡할 것 같은 표정으로 엎드리며 말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추상 같은 군의 보고서에 그런 장난 같은 글을 적어서 보고드린 것··· 열번 죽어도 할말이··· 다만, 이는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제 과실이오니, 대공님과 영민들은 용서하시고, 대신 저를 처벌해 주시···”
“시종장!!!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러면? 아! 그 보고서도 보고서지만, 그런 오물 같은 글을 보고서랍시고 쓴 대공님이, 그 지경이 되도록 방임한 것이 지적하신 대로 저의 더 큰 죄입니다. 그 죗값은 자결로서 치르는 것이···”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이거!!!”
그렇게 말한 바실이 가리킨 것은 보고서의 가장 마지막 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렌필드 시종장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 왜? 거기 무슨 내가 모르는 문제가? 그때 바실이 소리쳤다.
“여기서 절단신공 발휘하는 것이 어딨습니까? 틀림없이 2권 예고편에서 말했잖아요? 뱀파이어 세자매가 오데사에서 활약한다고. 근데, 오데사 공중잠입하는 장면에서 끊고, 다음화에 계속이라니!!! 아악!!! 궁금해서 미치겠잖아요. 이럴거면 마지막화에 일러스트나 그리지 말지. 더 궁금하게 시리. 당장, 4권 내놔요!!! 몰다우는 쇠퇴하였습니다, 4권 내놓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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