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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모클레스의 검이요?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다모클레스의 검이라면 자신을 겨누는 검을 옥좌 위에 실 하나로 매달았다는 그 이야기 아닙니까?
그 이야기가 갑자기 여기서 왜 나오는 거죠?”
“그걸 설명하려면, 먼저 자네에게 이거부터 물어보지. 농민병은 왜 약한가?”
“응?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평소에 농사에만 전념하고, 제대로 된 훈련이나 통솔을 받아본 적이 없고, 무장도 빈약한 자들을 징집한 자들이니 그렇죠.
말 그대로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니니깐 그런 거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상하군. 그래서 약하다면, 우리 제국의 테마군은 왜 정예로 취급되지?
그들도 따지고 보면 테마 군관구에서 대다수 농업에 종사하는 자들 중에 의무 징집으로 소집된 병력이 아니던가? 그럼, 그들도 따지고 보면 농민병이지.
그런데 왜 그들은 제대로 된 군으로 역할을 하는 걸까?”
“그야, 그들은 영주의 소유가 아닌 자영농들이니 그렇죠. 자기 농지를 지켜야 하니, 자발적으로 징집과 훈련에 참여하고, 무장도 최고로 갖추죠.
그들을 영주나 마름 지주들의 소유인 헝가리의 농노들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 맞어. 그 차이가 가장 결정적이야. 그들 농노들은 말그대로 농사를 짓는 노예들이야.
그러니 그들에게는 자유가 없지. 그러니 싸워야 할 의지도 없어. 그런 의지를 억지로 부여하려고 하지도 않지.
왜냐하면, 그들이 싸울 의지와 능력을 갖추게 되면, 그 소유자들은 곤란해질 수 있으니깐 말이야.
물론, 우리 제국도 정세가 혼란해지면, 자영농을 농노로 만들려는 놈들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게 안된다는 인식은 깔고 있지.
하지만, 헝가리를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는 그 반대의 인식이 일반적이야.
그래서, 그들은 농노들이 힘을 가지고 주인을 향해 무기를 드는 것을 두려워 해. 그래서, 의도적으로 그들을 강하게 키우지 않지.
자신에게 충성하는 봉신과 사병만 정예로 키우고, 나머지 농노들을 화살받이로 무력하게 만드는 거지.
그건, 지배층에게 현명한 방침이야. 그래야, 나중에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박차고 나온 불만 세력들을 손쉽게 진압하고, 다수에게 본보기를 보일 수 있거든.
그런 억압의 순환구조는 놀랍게도 안정적으로 천년도 넘게 유럽 전체에서 뿌리내렸지.
그런데, 그런 고강한 구조를 아무런 꺼리낌없이 부숴버리려고 하는 자가 마침내 나타난 거야. 바로, 공녀 말이야.”
“자, 잠시만요. 그럼, 지금 선배의 말은··· 공녀가 의도하는 것이 허접한 농노로 군을 편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헝가리 전반에 하층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다수의 백성들을 모두 자신의 군대,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의미십니까?
무모한 짓입니다. 아까 선배도 말했다시피 그들 무지렁이 농노들이 제대로 된 훈련과 무장을 갖추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래서! 다모클레스의 검이라는 거다. 정상적인 지배자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공포스러운 일이지.
하지만, 우리의 공녀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버린다. 그것이 설령 자기 자신까지도 겨누는 검이 될 수도 있을 것을 알면서도 해버리는 것이야.
킥킥킥!!! 두렵지 않나? 자신을 죽일지도 모를 검을 태연하게 집어드는 그 담력이? 그래, 바로 그것이 공녀다.”
“맙소사. 대체, 그녀는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제국은 물론, 헝가리 마저도 판을 엎을 무시무시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니.
만약, 그것이 정말로 성공한다면, 그건 단순히 신규 군대의 편성만을 의미하지 않을 겁니다.
정치, 사회, 문화 그 모든 것이 공녀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달라져 버릴 것입니다. 밑바닥 농노들이 소수 귀족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나라를 세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럴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수도 있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가 만든 그 정체불명의 괴물이 결코 약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야.
체제를 타파하고, 인식을 넘어선 다수의 무기를 든 자들. 그건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어.
그녀가 우리 제국에게 처신 잘하라고 충고한 것도 허세가 아니었군. 어쩌면 정말로 제국조차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나올지도 모르니깐.”
“그 정도면, 뭔가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 나가신 것 같은데요?”
“킥킥킥··· 내 친애하는 후배 패티우스여. 정신 좀 차리게. 흔치 않게 그녀의 시험을 통과한 자네가, 그런 바보 같은 짓으로 비웃음을 살 생각인가?
내버려 둬. 그리고 그 상황을 즐기자고. 우리 역시도 그녀가 만든 다모클레스의 검이 겨누고 있겠지.
그 긴장감과 섬찟함을 잊지 않고 우리 역시도 분발해야 해. 그건, 공녀가 제국에게도 나눠준 선물이야. 결코 방심하거나 약해지지 말라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녀가 준 그 유쾌한 살기를 즐기며 제국을 더 높은 곳으로 발전시키면 돼.
즐겁지 않은가? 그녀가 우리가 혹시나 지쳐 쉴까봐, 선사해준 페이스메이커가 우리를 추격하는 이 짜릿한 상황이 말이야?”
패티우스는 더 이상 선배의 광기에 답을 하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세게드, 군사령부 공터
나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터져나오는 비명을 억누르려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결국, 소리를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내지르는 편이 나은 편이 아닌가 지독하게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내 속을 뒤집듯이, 쿠타이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환장할 말을 내뱉었다.
“여기, 살라미빵 2개요!”
“네, 번호표 받으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차에서는 익숙하게, 조리사들이 세게드 명물인 살라미 소시지를 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다른 마차에서도 주문 소리가 울려퍼졌고, 맛있는 냄새가 공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오, 젠장할!!! 이게 대체 뭐야? 이게 무슨 전투마차야?!!! 이거 그냥 이동노점이잖아?!!!
나는 공터 여기저기에 자리 잡은, 전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보이는 행복이 가득한 마차들을 보면서 절규했다.
그들은 바로, 삼돌이 마티가 사령관으로 최종 결정되고, 그가 불러들인 자기 예하에 있던 자들이었다.
아르파드 왕실이 나를 엿먹이겠다고 작정했다면, 그건 대성공이다. 보면서도 완전히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을 제대로 맛보고 있으니깐.
하지만, 끔찍한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와! 메이드장님. 여기는 트랜신보다 왠지 활기찬 것 같아요. 세게드는 폐허라고 들었는데.”
“꺄악!!! 저기 멋진 북방의 근육질 남자들이 넘쳐나. 우와!!! 팔뚝 자랑하고 있어.”
“어흠. 이 무슨 방정맞은 짓이더냐. 우리는 여전히 마티님 소속이지만, 새로운 고용주님은 여자분이시라고 하니, 특히 품행을 단정히 하거라.”
영내를 돌아다니는 메이드들을 보면서 나는 복장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300명이나 되네. 와씨, 이런 미친. 무슨 가사 고용인을 저렇게 말도 안되는 숫자를 들여!!! 저 정도면 부콜레온 황궁도 충분하겠다.
저걸 의무대라고 군대로 양성해야 한다고? 환장!!!
하지만, 나와 무관하게 반응은 되게 좋았다. 여기저기 휘파람 부는 베오울프 병사들과, 거기에 꺄르르하는 메이드들이 환상의 환장 콜라보였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그래도 얘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나를 정말로 미치게 만드는 것들은 따로 있었으니깐.”
“워매, 여기가 뭐시당가? 병영들이 으리으리하구만. 우리 이제 지붕이 초가가 아닌 곳에서 잘 수 있는겨?”
“왐마. 뭐시라? 복무를 하면 돈을 준다요? 징집되면 우덜은 병사로 나가고, 처자식들은 전쟁세 내야하는 거 아니었소? 왜 우리한테 돈을 준다요?”
“이것이 뭐여? 창에 쇠를 달아부렀어야? 흑요석이 아니라 쇠를? 이 귀한 걸 나가 써도 되는지 모르겠어라?
아니, 애초에 우덜 같은 천한 것들이 몽둥이에 징박은 것이 아니라 창을? 그래도 되는가?”
걸렸던 암이, 되려 암에 걸려 뒤질 것 같은 환장이었다.
농노라고 해서 살짝, 제국의 테마군을 기대한 내가 미친 년이지. 저건 인간 평균에도 못미치는 것들이잖아!!!
하지만, 마티는 그 끔찍하게 수준 이하인 것들을 반기며 영내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들을 본 율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나에게 말했다.
“너, 쟤들 데리고 시간만 충분하면 제국이랑 맞먹겠다고 한거냐? 하! 대체 그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궁금하네.
만약에 그 기한을 정할 수 있다면 만년쯤 줘도 되겠다.”
쓰발. 부정을 못하겠어. 아니, 왠지 모르게 만년도 모자랄 것 같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나간 나년아. 차라리 동네 개들한테 갑옷을 입히고 제식 훈련을 시키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마티가 희죽거리며 다가왔다.
“공녀님! 덕분에 제 부하들이 무사히 영내로 소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휘하에 있다가 낙오되었거나, 고향에 끌려갔던 녀석들도 하나둘 소문을 듣고 이곳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곳 세게드가 이제 우리 헝가리군의 재건의 땅이 되겠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족하고 한심한 저를 믿어주시고, 저 언제 죽어도 아무도 모를 놈들을 병사로 받아주시다니.
그리고 우리가 희망이라고 해주신 점, 진심으로 감격하였습니다.
아직 스승님이나, 아버지나, 대모님에게는 한심한 놈이겠지만, 어떻게든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 네··· 뭐, 그러세요. 근데, 그 뻘건 건 뭐에요?”
“아! 좋은 지적이십니다. 이건 제가 생각해본 저희 신생 헝가리군의 군기입니다.
공녀님이 말씀해주신 대로, 부족하고 한심한 농노들로 구성된 군대. 그런 그들에게 익숙한 낫과 망치를 교차한 상징을 깃발에 그려봤습니다.
석양이 질 무렵에 붉게 물든 밀밭처럼 붉은 천 위에요. 어떠세요? 제가 생각해본 우리의 군기가?”
뭔가··· 대단히 안좋았다. 저거 왠지 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런데 녀석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 군의 통칭도 생각해 봤습니다. 농노군이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백성들과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라는 의미로, 인민군(People Army)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떠세요?”
“기각합니다!”
나의 단호한 말에 마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이, 젠장할!!! 우울이 아니라 조울이야? 왜 오르락내리락이야?
그리고 어감 되게 이상해. 저런 군대면 왠지 모르게 아무나 다 공격하고 싶어질 것 같아.
그래서 단호하게 던진 반대에, 마티는 징징거리면서 대안이란답시고 더 어감이 안좋은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약해보여서 그러세요? 그럼, 인민무력군은 어떠세요? 아니, 우리 헝가리의 자주를 담는 편이 좋을까요? 그럼, 인민해방군은요?
그것도 아니시라면, 아무래도 헝가리 백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농노들이니, 다수의 군대라는 의미의 루스어로 볼셰비키(Bolshevik)군은 어떨까요?”
아오!!! 좀 닥치라고!!! 날 지금 어디다 취직시키려고 그래!!!
고르는 어감 하나하나가 다 뭣같다고!!! 그래서, 나는 귀를 틀어막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 달렸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발견한 저 무지렁이 들이 소리쳤다.
“워매. 저길 보소, 저 아가씨가 우덜 고용하신 공녀님이라 하더만.”
“와따. 나도 들어봤어라. 고매하신 귀족님들 다 대글빡 깨져부리고, 패전해서 대신 제국에 당겨 오셨당가? 근디, 이리 잘 돌아오신 걸 보니 참으로 장하여.”
“여들 보소. 다들 우리가 공녀님을 위해 뭐든 해야하지 않겠능가? 다들 우리를 불러주신 공녀님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당께.”
“이잉. 글치글치. 자, 다들 소리치세. 헝가리의 모든 농노들이여. 우리 공녀님을 위해 단결하지라!!!
“워매. 우째 우리 헝가리 농노들만 해쓰까? 온 세상의 농노들이 다 좋아하지라. 그닝께 이래야 맞제.
만국의 농노들이여 단결하라!!!”
아, 젠장 좀 닥치라고!!!
삼돌이 마티(Mati the trinity). 본명보다 농노들에게 별명으로 더 익숙했던 그는 12 사도 중에서도 이색적인 인물 중에 하나이다.
국적 여부가 모호하지만, 결과적으로 헝가리 출신으로 공녀에게 선발된 그는 초기 주변에서 숱한 지탄과 비난에 시달렸던 인물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시간 큰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기라성 같은 공녀의 말석에서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그와 그가 이끌던 헝가리군은 수많은 시련과 격동을 거치며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가 평생 중압감을 느끼던 부친과 스승과 대모에게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
하지만, 헝가리군이 구성되던 초기, 사람들은 많이들 실망하고 허탈함을 느꼈고, 그것은 그를 기용한 공녀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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