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
갈수록 태산이다. 이 정신 나간 년아. 정말로 그런 생각으로 바실에게 꼬리를 치고 나한테 시비를 털고 있는 거였냐? 나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그딴 걸 왜 황궁에 둬야 하는데요!!! 어딜 봐도 제 정신이 아니잖아요!!! 백보 양보해서 위험하지는 않다고 쳐요. 근데, 그걸 대체 어디다 쓴다고!!!”
“아뇨, 공녀. 그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환관은 황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당히 요긴한 패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력을 보면 지금 황실에서는 그런 존재가 상당히 절실한 존재입니다.”
“뭐··· 뭐라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공녀. 거세 노예로 라구사에 던져져서, 아무런 의지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 미모와 계략과 검술로 우스타샤의 두목 자리를 차지했다면서요? 사회의 밑바닥에 어둠에 대해서 가장 깊숙이 이해하고 있고, 어둠 속에서 음습한 방면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낼 모략과 실력을 갖춘 인재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대 황실의 정통을 이어받은 가장 고귀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이런 인재는 어디가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카르브나 황실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절실한 인재입니다.
지금까지 카르브나 황실은 공녀를 통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간단하게 달성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간에 손해를 본 건이 바로 지난번에 있었던 오징어 혁명입니다. 황실에서는 공녀를 통해 시민들의 민심 통제를 주도했고 그것을 성공리에 이뤄냈죠. 하지만, 그 와중에 공녀는 다소 시민들에게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 또한 포함된 책략이기는 하지만, 단기 결과로 보면 황실의 관점에서 그런 일에 공녀를 투입해서 오명을 쓰게 만든 것은, 차기 황실을 고려했을 때 다소 손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또··· 또 이놈의 오징어!!! 이건 죽어도 나한테서 떨어지지를 않아. 그렇게 내가 짜증이 나는 와중에 요하네스의 영문도 모르겠는 말이 이어졌다.
“황제는 그래서 새로운 챔피언을 기용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공녀와 마찬가지로 황실의 그림자에서 일하며, 황제의 챔피언으로 일하지만 그 방향성은 서로 정반대죠. 공녀가 양지를 지향하며 관료와 군사 분야의 책략을 담당한다면, 그자는 음지를 지향하며 정치와 정보 분야의 책략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황제는 그 두명의 챔피언을 통해 지금까지 깊이 파고들지 못했던 어두운 분야에 대해 좀더 효율적인 책략의 구사가 가능하겠죠. 지금까지 카르브나 황실이 다소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던 어둠 속에 더러운 모략을 전담해줄 최고의 인재가 기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서로에게도 적성에 맞을 겁니다. 공녀가 전천후 인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녀는 군부에서 태자와 같이 활약하는 것이 더 어울려요. 더럽고 음습한 일은 그 사람에게 잘 맞겠죠. 앞으로 제국과 황실의 미래를 볼 때 그런 일은 더 이상 공녀가 처리하지 않고 그가 맡는 것이 좋아요. 그러한 관점에서 황제는 이번에도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한 것 같습니다.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최고의 으뜸 패를 하나 더 손에 넣다니 말입니다. 역시, 황제. 자신의 대자마저 그런 식으로 써먹는 잔혹함이라니··· 과연 얕볼 수 없는 경외로운 존재십니다.”
나는 요하네스의 말에 뒷목을 잡으면서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황실의 미래가 나랑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더러운 일에 대해서 그 자식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은 사실이니깐.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능력있고, 배신할 염려도 없이 황실이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 분야의 더러운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겠지.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골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이 자식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황실에 해가 될 놈은 아닐지라도, 내 관점에서 보면 더 위험한 놈인 거 아니야? 그런 나의 표정을 읽었다는 듯이 요하네스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공녀님께서 냉철함이 돌아오시는 것 같군요. 그래서, 제가 흥미진진하다고 한겁니다. 앞으로 공녀와 황실의 총애를 두고 다툴 경쟁자가 생겼다는 점이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이벌이 생기셨군요, 공녀.”
“아침마다 황실에 침입해서 섹드립치고 노출증이나 선보이는 변태를 라이벌로 둔 적 없거든요.”
그런 나의 말에 요하네스는 조금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뭐, 지금은 적당한 라이벌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공녀. 지금 공녀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그 사람··· 의외로 공녀를 뒤집어 놓을 일은 그런 장난스러운 일이 아니라, 진지하게 일을 할 때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의 진지함을 경계하십시오. 그건 아마 결코 아침의 웃픈 헤프닝으로 넘어갈 수준의 일이 아닐 겁니다.”
나는 요하네스의 경고에 조금 움찔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정신 나간 자식이··· 뭔가를 진지하게 한다고? 대체 무엇을? 나는 그것에 대해 미묘한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그렇게 요하네스와의 알현을 그렇게 마쳤다. 하지만, 요하네스가 나에게 남긴 경고는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여운처럼 파문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정말로 율리아는 그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파라코이모메노스로서의 일을 대단히 성실하게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뭔가 근위대가 아침마다 벌어지는 행사가 없어진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한동안 황궁 출입도 자제하며 그는 업무에 집중한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또 뭔가 유치한 짓거리를 꾸미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업무에 집중하며 수완을 발휘한 그의 성과는 그리 오래지 않아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상당히 오랫동안 그러한 일에 종사했던 것처럼, 황궁에서 방치되어 있던 일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정리가 되고 해결이 되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오랫동안 환관을 기용하지 않던 카르브나 황조가 갑자기 기용된 환관에 대해서 처음에 불안감을 표출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그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고 환영하기 시작한다는 안좋은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망할 자식. 왕년에 라구사 창관에서 굴러먹어서 황궁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업무 역량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의 묘한 울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낸 결과는 우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런 경과 보고를 하러 황궁에 들렸다. 황제와 황후 마마가 아직도 좀 어려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하며 보고를 듣는 자리에 나는 조금 억지를 써서 같이 끼었다. 그리고 어전에 들어온 그는 나를 보고 조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뭔가 그 특유의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를 시작했다. 응? 뭐지? 이 자식 뭔가 있는데?
“명하신 바대로 실전된 황궁의 의례대전을 복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기술자와 의례관들도 다시 찾아내서 다시 그 일을 맡도록 불러들였습니다. 앞으로 황실의 공식적인 의전은 의례대전을 토대로 행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황위 시대에 실전된 황실 공예도 곧 다시 복원될 것입니다. 물론, 우려하시는 대로 사치는 배제하고 황실 전용이 아닌 민간에 허락하는 조합의 형태로 구성하였습니다. 예전처럼 황실의 비용 낭비가 없이 별도의 조합회사의 형태로 운영되어 황실의 위엄을 높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외에도 몇가지 진행했던 업무들에 대한 결과보고를 하였고 그에 대해서 황제는 물론이고, 황후 마마도 긍정하며 우수한 성과를 내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짝 분한 기분을 느끼는 와중에 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셨다.
“수고가 많았구나. 파라코이모메노스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많이 걱정했는데, 이렇게 마음을 잡고 주어진 일을 집중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구나. 계속 정진하여 황궁에 도움이 되고, 너의 명예를 높이도록 하거라.”
“어리석은 몸이 부족한 일을 한 것으로 황후 마마의 칭찬을 들으니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명하신대로 계속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동안 미뤄지고 있던 중요한 안건을 하나 말씀드리고 그 처리에 대해서 보고드릴 수 있을지요?”
“허락하노라. 말해보거라.”
그러자, 그는 흘깃 하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한방 먹였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응? 뭐지? 이 자식, 지금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그가 말했다. 그것은, 나는 물론 황제와 황후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안건이었다.
“안나 팔라이올로구스의 처우에 대해서, 그녀를 카르브나 황실에서 거두는 일에 대해서 논의 드리고자 합니다.”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의미의 침묵이었다. 나와 황제와 황후 마마는 모두, 우리가 아는 그 안나 팔라이올로구스 외에 어디 또 다른 안나 팔라이올로구스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황제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물어보고 나서야 그 의문의 침묵은 끊어질 수 있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네 어머니인 안나 황녀님? 지금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냐?”
“그녀는 이미 죽은 율리아노스 팔라이올로구스의 어머니입니다. 카르브나 황실을 섬기는 쥴리아 파라코이모메노스에게 있어서 그녀는 선대 황실이 남긴 마지막 분쟁의 불씨에 불과합니다. 저는 미미하다고 하나 선대 황실의 피를 이어 분쟁의 소지가 될 그녀의 처우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확고하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곧 율리아노스지 않느냐? 그녀는 너의 어머니다.”
“사사로운 일입니다. 저는 환관장입니다. 환관에게는 속세의 가족과의 연도 의미가 없고, 오로지 황실만을 위해 사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 하지만. 그리고 뭐? 그녀를 카르브나 황실이 거두라고?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거두라니? 지금 네가 말하는 거두라는 의미가 서··· 설마?”
“네, 예상하시는 그것이 맞습니다. 카르브나 황실에서 거두시옵소서. 그것으로 인해 카르브나 황실은 선대 황실에 정통성을 잇는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행여나 팔라이올로구스를 정통으로 주장하며 집결할 지도 모르는 불순한 자들을 한번에 조용하게 만들 절호의 한수입니다. 저는 그것을 황실의 파라코이모메노스로서 진언드리고 황실에서 윤허하시기를 청하옵니다.”
이 새끼가 지금 뭐하는 소리야? 지금, 이 자식 지 엄마를 황실에 시집 보내겠다는 거야? 이게 무슨 미친!!! 지금 눈앞에 황후 마마가 떡하니 계시는데.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황제가 질겁을 하며 소리쳤다.
“야! 자··· 잠깐만!!! 그거 무리. 절대 안돼!!! 나 이미 기혼이야. 지금 옆에 색시가 눈 시퍼렇게 뜨고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의 대부이신 황제 폐하시여. 황궁의 의례를 주관하는 시종장인 제가, 이미 국혼을 하신 폐하에게 부인을 하나 더 들이는 중혼을 요청하는, 그런 도를 넘어서는 청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그치? 어휴, 설마 나를 말하는 줄 알고 간 떨이지는 줄 알았네.”
“그럼요. 그럴리가 없죠. 저희 엄마도 눈이 있지.”
마지막에 저 자식이 조용히 한 혼잣말은 왠지 나만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안도하는 황제에게 이어서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런 식으로 카르브나 황실에 부담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통성의 확보를 위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이번 일로 인해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크고, 자격의 적격성을 갖춘 대상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죠. 그리고 카르브나 황실의 근원과 닿아 있는 권위 있는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카르브나 황실의 그 자격에 마땅한 자에게 그 전례를 이어나가고 청원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갑자기 이 자식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깐,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야? 지금 이 녀석이 말하고 있는 것이 설마? 그리고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 녀석이 말했다.
“카르브나 황실의 파라코이모메노스로서 황제 폐하에게 진언합니다. 다넬리스의 예법에 따라서 바실레이오스 카르브나 태자로 하여금 안나 팔라이올로구스를 거두게 할 것을 정식으로 품의드리옵니다.”
잠시나마, 이 새끼가 그래도 유능할지도 모르겠다고 한 생각을 철회했다. 이 자식은 진정으로 수습할 길이 없는 미친 새끼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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