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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누군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내 옆에 다가왔다.
“푸하하하하!!! 이봐, 들었어? 레모네이드라고? 여기서 레모네이드라고? 탄산수 반컵에 잘익은 레몬을 껍질 벗겨서 으깨어 넣고 설탕을 넣어서 휘휘 저은 그 레모네이드? 여기 모인 년들이라면 누구나 다 주인 아가씨 입맛 덕분에 곤욕을 치뤄본 적이 있는 그 레모네이드를 주문한다고? 그것도 얼음까지 넣어서? 이런, 썅년. 겁나 고상하신 취미시구만. 모두를 엿먹일 정도로 말이야. 보아하니 이 동네 초행인 모양인데, 한번 멍석말이 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이봐, 애송아, 좋은 말할 때 꺼져. 여긴 너 같은 애송이들이 맘대로 오는 곳이 아니라고.”
나에게 시비를 건 것은 아마도 여기서 행동대장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이는 덩치가 크고 험하게 생긴 아줌마였다. 그리고 경력이 제법 된다. 정확한 레몬네이드 레시피. 나는 슬슬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호오라, 이렇게 나오시겠단 말이지. 예상대로다. 나는 나에게 시비를 터는 그 아줌마에서 시선을 돌리고 품에서 동전 두닢을 꺼내서 바텐더에게 던져주면서 말했다.
“레모네이드 두잔. 한잔은 이쪽한테.”
“아앙? 뭐야? 지금 그걸 아부라고 하는 거냐? 지금 그딴 시건방진 짓거리가 나한테 먹힐리가···”
“아니, 아부가 아니라, 입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견딜수가 없어서 말이지. 먹고 입 좀 행구라고.”
그러자, 침방의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에게 시비를 턴 여자는 분노로 얼굴이 뻘개졌다. 그래서, 그녀는 거칠게 손을 뻗어 내 멱살을 붙들면서 소리쳤다.
“이 년이!!! 뒈지고 싶냐?!!! 지금 나한테 감히··· 어? 히익!!!”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나를 후려 갈기려다가 멈칫했다. 왜냐하면 내가 품에 가지고 있던 군용 나이프를 그녀의 목에 들이대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분노로 시뻘개진 그녀가 차분해졌고,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초짜는 아닌 모양이지? 좀 굴러먹었구나.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주변에 서너명의 여자들이 일제히 품에서 가위와 식칼을 품에서 꺼내서 들고 나를 둘러쌌다.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서슬퍼런 상황에서, 나는 애써 그 여자들과 내 멱살을 쥔 여자를 무시하며, 침방의 제일 깊은 구석을 보면서 말했다. 그곳에서 마치 자신과 무관한 듯이 상황을 주시하는, 내가 바에서 가장 먼저 보았던, 여기서 가장 늙은 쪼그라진 할멈에게 말이다.
“이쯤하면 슬슬 나서셔야 하지 않나?”
“으응? 그게 무슨 말인지···”
“시치미 떼지마, 할멈. 당신이 여기 패거리들 두목이잖아? 귀족가나 상회에 일거리 따오고 사람 보내는 총책이고. 그 정도 나이 처먹었으면 이제 손바닥 안봐도 견적 나올 때 되었잖아? 맘에 안들면, 한판 뜰까? 원한다면 그래도 되는데, 감당할 수 있어?”
그러자, 할멈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씨익 미소지으며 내 멱살을 쥐고 있는 여자한테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반발했다.
“할매. 여기서 저런 시건방진 뜨내기를 봐주고 넘어갔다가는 우리 두라초 침방의 이름에 먹칠을···”
“놔줘. 시비 털러 온 뜨내기가 아니라 거래하러 온 년인 모양이니깐. 나름 대비도 해온 모앙이야. 침방 밖에 무시무시한 오빠가 도끼들고 대기하고 있더군.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다 치를 대가가 많아 보여. 왠지 뒷배도 좀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묘하게 돈냄새도 좀 나고 말이야. 손해보진 않을 것 같군. 그랬다가는 치를 뒷감당이 뭔지도 아는 것 같으니 괜찮을 거야. 물러서. 내가 상대하지.”
그러자 여자들이 물러나고 그 할멈이 나를 향해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다가와서 말했다.
“그래, 시건방진 뜨내기. 우리 두라초 침방에 무슨 용건이지? 시답지 않은 걸로 이런 소동을 벌인거면 밖에 있는 오빠와 상관없이 피곤죽이 될 각오를 하고 대답하길 바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일행인 것은 맞지만, 남자들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이쪽 세계 불문률 깰 생각없으니 안심해. 길게 시간 끌 생각없으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지. 사람을 찾고 있어. 팔라이올로구스 황실에서 일했던 사람 중에서 깊숙한 사정을 아는 사람을 찾고 있어. 사건 알지? 그리고 정보 있지? 한명만 불어. 그날의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한명 정도는 있겠지. 그리고 지켜줄 의리도 없고. 그쪽 사람들은 여기 출신도 있겠지만, 황도에서 따라온 뜨내기들도 있으니 여기서 지켜줄 의리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
나의 말에 그 할멈의 눈빛이 빛났다. 짧은 시간 내에 수지타산을 다 계산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큭큭큭··· 거래를 좀 해본 보양이구만. 아직 젊은··· 아니, 어린데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모양이지? 뭐, 맘에 드는 거래 방식은 아니지만, 손해 볼 것도 아니긴 하군. 대가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레모네이드 한잔씩 사지.”
그리고 나는 소매에 있던 노미스마 금화를 던졌다. 그녀는 경험이 많은 하녀였음을 증명하듯 노구에도 민첩하게 그것을 받아들었고, 손가락으로 몇번 돌려본 다음에 말했다.
“뒷탈있는 금화는 아니겠지? 예를 들면 주인집에서 슬쩍 했다던가···”
“그랬으면 노미스마가 아니라 두카트를 줬겠지.”
“훗, 뭐 좋아. 이 정도면 레모네이드 값으론 충분하겠군. 정보를 주지. 예상했던 대로 우리가 의리 지킬 필요는 없는 사람 중에 그 당시에 거기서 살아남은 하녀가 몇 명 있기는 하지. 그 중에서 내부 사정을 알만큼 깊숙히 일했던 사람이 두라초 인근에서 아직 살고 있어. 사는 곳을 알려주도록 하지. 아마 살아남은 사람 중에 거기 내부 사정을 그 사람 정도로 깊이 아는 사람도 없을 거야. 노미스마 값어치는 할 정보라고 생각한다.”
“훗. 확실히 그렇군. 하지만 두고봐야 알겠지.”
“김에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 갑자기 팔라이올로구스 황실에서 일했던 사람은 왜 찾는 거지? 이제 제법 세월도 흘렀고, 그 사건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잊혀진 이야기인데 말이야.”
“얼마 전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팔라이올로구스에 내 아버지들 중에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 개 같은 아비 놈 면상 좀 확인하려고. 살아있으면 엄마의 원한 담아 손도 좀 봐주고.”
“그것 참, 재밌지만 한심한 거짓말일세.”
“맞아, 할멈. 그냥 여기서는 그렇게 들었다고 맞장구 쳐주고 금화나 챙겨가는 것이 우리들 하녀들의 생리 아니겠어?”
그러자, 그 노파는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듯이 어께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그들 중에 한 명이 사는 곳을 그림으로 그린 쪽지와 정보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것을 듣고 받아든 나를 보면서 그 노파는 말했다.
“정보료로 거스름돈이 좀 남아서 덤으로 한가지 알려주지. 사연이 뭔지는 관심이 없지만, 그쪽 일을 캐고 싶다면 주의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 정도 각오도 안하고 움직일까 봐? 뒷배가 좀 거물이라도 상관없어.”
그런데, 그녀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거물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쪽이야. 그래서 주의하라는 거야. 너라면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거라고 본다. 행운을 빌지. 일이 잘되면 나중에 여기 와서 한턱 쏘라고. 불청객인건 여전하지만, 지금처럼 박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충고 고마워, 할멈. 새겨듣지.”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에 대해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여자들을 외면하고 침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와서 나는 왠지 모르게 경악한 표정의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얘들은 지금 왜 저래? 쿠타이가 말했다.
“형, 저게 뭐야? 원래 제국 여자들은 다 저런 거야? 나 지금 미성년자는 못보는 등급의 작품 하나 본 것 같아.”
“몰라, 무서워. 제국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여자들이 다 저런거 아닌가?”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남자랑 똑같다고요. 산전수전 다 겪은 하녀들을 얕보지 마시라고요. 일단 가죠. 행선지는 정해졌으니.”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침방에서 알려준 당시 정황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향했다. 바실과 쿠타이는 뭔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메이드에 대한 이미지가 깨진 것에 혼란스러워 했다. 그래서, 그쪽과는 인연이 없으리라 생각한 카밀라 ‘공녀’가 능숙하게 정보를 얻어냈다는 사실에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괜히 나섰나? 갑자기 얘들도 나에 대한 반응이 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해 했다. 도무지 따라가지 못할 그 할멈과 나와의 대화의 의미에 대해서.
“마지막에 그 할멈이 해준 거물이 아니라 뒷편이라서 더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요? 간단해요. 어쩌면 이번 일이 벌어진 배후가 우리가 생각하는 양지의 정치 세력이 아닐 것이라는 뜻이에요. 저도 생각치 못했네요. 명가들이 내전을 벌이던 시기라서 당연히 그 배후에는 다른 명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런 의미인가요? 그렇다면, 명가가 아니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건가요?”
“말 그대로 뒷편이요. 그러니깐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양지의 군사력을 가진 귀족 가문이나 정치적 세력이 아니라, 음지에서 힘을 발휘하는 하층민들의 뒷세계 세력들이 그 사건에 개입한 모양이에요. 그 할멈도 구체적인 내역을 아는 건 아니지만, 그 사건이 풍기는 냄새가 그런 뒷세계 세력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직감한 모양이에요. 실업 용병, 밀수꾼, 매춘부, 노예 상인 같은 양지에서는 떳떳하게 일하지 못하는 그림자에 숨어사는 자들 말이에요.
의외로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정황 자체가 계약 만료 후 정리된 용병들의 습격이었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자들을 움직인 것은, 양지의 세력이 아닌 그런 용병들과 연루된 뒷세계 조직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팔라이올로구스 황실이 그 사건을 겪고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설명이 되고요. 양지의 정치 세력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이용하려 들었을 거에요.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면 그것은 그림자 속에서 온 자들일 수 밖에 없죠.”
나의 말에 바실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맙소사··· 그러면, 결론적으로 마지막 황실의 황녀는 정치적 세력에 의한 숙청도 아닌, 강도들에게 유린되었다는 건가요?”
“아마도요. 그래서 그 할멈이 상황이 더 위험하다고 한 거에요. 상대가 정치에 발을 올린 자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인 협상을 할 여지가 있어요. 하지만, 음지의 존재들은 그런 것들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깊이 파헤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어둠에 먹혀버릴 지도 모르고요. 태자님은 잘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정치 권력이 통하지 않는 음지의 존재들은 상식적인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요. 그걸 명심하고 움직여야 할거에요.”
바실은 나의 말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게 애초에 이런 머리 터질 것 같은 일에 개입 자체를 안하면 좋았잖아. 나는 그런 말은 뒤로 미루고 알아낸 목적지를 향해 말을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침방에서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고, 이내 그들이 알려준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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