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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방문한 부다페스트에 봄이 왔다.
계절상으로도 봄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지금의 시기를 사람들이 봄이라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수도 부다페스트 전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활기가 넘쳤기 때문이다.
생명이 움트는 봄처럼,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북적이고 저마다 활기를 가지게 되며 삼삼오오 몰려드는 현상에 대해 내 앞의 웬수를 이렇게 평했다.
“병신 같은 헝가리 망명 귀족 새끼들.
제국군이 물러나자마자, 얼굴에 철판 깔고 귀국해서 한자리 해먹을려고 우글거리는 꼴 좀 보라지. 부다페스트의 봄은 아주 볼만하네.
역겨운 파렴치의 떡잎들이 움트는 꼴을 죄다 짖밟아 버리고 싶어지니 말이야. 탭댄스 같이 추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 그랬으니깐.
지금, 부다페스트에서 이토록 활기가 넘치는 건, 녀석이 지적한대로, 반제국파의 망명 귀족들이 제국군 철수 이후 대거 귀국했기 때문이다.
신성동맹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죄다 걸고 베팅한 귀족들. 그들은 판돈을 죄다 날렸고, 심지어는 조국까지 등지고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귀족이었고, 태생이 다른 자들이었다.
헝가리를 떠나 망명 생황을 하면서, 나름 고되었다고는 하여도, 여기저기서 인맥과 부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신성동맹의 귀족들도 크게 괄시하지 않고 그들과 같은 동류로 취급하였고, 경우에 따라 언젠가 수복할 고국을 이끌 지도자로 추켜세웠다.
뭐, 개중에는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조기 귀국하려다 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고만고만하게 빌붙어 살며 헛바람만 제대로 들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제국군이 철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본인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노력으로 조국이 해방된 것처럼 감격했다.
그리고, 일제히 제국이 물러난 조국으로 급거 귀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단순히, 망명한 사람들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망명지에서 불어난 사람들, 그곳에서 받은 혜택들, 그리고 한몫 잡으려는 곁다리들도 같이 말이다.
제국의 입장은 물론이고, 헝가리의 입장에서 봐도, 그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짐더미들이다.
아니, 노골적으로 반 제국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쓸모없음을 넘어서서, 위험한 수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위험물들을 헝가리 왕실은 내치기는 커녕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난 듯, 감격하여 열렬히 환영했다.
덕분에 부다페스트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사람과 돈과 이슈로 활기를 띄게 된 것이었다. 나의 두통에 대해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왜지? 난 왜 이 상황이 나중에 어떤 문학 작품에서 ‘헝가리의 마지막 봄은 너무나 활기찼다. 아무도 닥쳐올 일을···’ 같은 묘사로 나올 것 같지?
나만 과민반응인 거야?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대답해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지독하게 근시안적인 우리 조국의 높으신 분들에게 실망하며, 차라리 다른 골치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깐.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봄이 온 것이 불만이라, 시비 털고 싶으면 차라리 지금 나한테 해라. 저번처럼 세자 엉덩이에 칼침 놓지 말고.”
“뭐래?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확실히 아직도 네 꿍꿍이 속을 모르겠고, 헝가리가 너랑 제국에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안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관심없으니 신경 끄셔.
보라고. 나 오늘 깽판치러 온 복장 아니잖아.”
“아, 그래. 마침 말 잘했다. 확실히 오늘은 그 요사스러운 환관장 복식은 아니네. 근데, 지금 옷차림이 내 눈에는 더 위험해 보이거든?
뭔 생각이냐? 그 미친 차림새는?”
“뭐가, 미친 차림새라는 거야? 그냥 평범한 메이드 옷차림이잖아? 헝가리 메이드 의무대 복식이랑도 큰 차이도 안나는 차림이구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은, 봄이라 그런지 다소 화사한 베이지 색이 많이 들어간 평범한 메이드복 이었으니깐.
다른 사람이 입고 있다면, 크게 어색하지 않을, 그냥 하녀인가 보다 하고 넘어갈 그런 옷이었다.
문제는 그걸 이 녀석이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어색하고 위화감이 있으면 차라리 괜찮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너무 잘 어울리잖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대체 어느 집안에 저런 청순하고 아름다운 하녀가 있지 싶어 줄줄 따라올 법한, 그런 조신하고 이지적인 미인 메이드가 있었다.
알멩이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 내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어질 그런 미모다. 아, 씨. 왜 나보다 이뻐?
아오, 하나님. 저런 신이 내린 미모는 좀 필요한 사람한테 주셔야지, 아무 곳이나 뿌려 놓으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주님의 응답은 들리지 않았고,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 여기며 녀석에게 말했다.
“네가 그런 차림새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일리가 없잖아!!! 대체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그런 청순가련 미녀 컨셉이냐고?!!!
넌, 씨발 칼든 것보다 화장할 때가 더 위험하다고!!! 당장, 말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리고 왜 그런 차림으로 부다페스트까지 나랑 동행한 거냐고!!!
미리 말해두지만, 나 네가 작정하고 사고치려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너 데리고 왕실에 못간다. 꿈도 꾸지마.”
“허이구. 꿇릴 것이 없으면 내가 환관장 복장을 하던, 메이드 복장을 하던 왕궁에 동행하지 못할 이유가 있냐?
왠지, 점점 더 수상해지는데. 나 없는 곳에서 마고랑 은밀히 무슨 재미를 보시려고 그러시나? 상상력을 좀 보태서 바실한테 들려주고 싶어지네.
템즈의 꽃과 아르파드의 백합이 벌이는 개수작에 녀석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지지 않냐?”
“뒤진다! 이 뭣도 아닌 년아!!! 너 진짜 한판 붙어보자는 거야?”
“시비는 항상 네가 먼저 걸었지!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오늘은 너랑 드잡이질 안해. 나도 나름 다른 볼일이 있어서 온 거니깐.
그래서, 애초에 너랑 왕궁에 동행할 생각도 없었어.”
“뭐? 그럼 왜 부다페스트로 같이 온 건데? 네가 나한테 시비걸지 않으려면 달리 올 이유가··· 어? 설마···”
녀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와 드잡이질 하는 웬수일때나, 제국 황궁의 환관장일 때와는 다른 살기가 실린 가는 눈빛.
저건, 녀석이 리키스카의 수장으로서 뭔가를 할 때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 그것으로 나는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부다페스트에 깔아놓은 리키스카 정보망을 점검하러 온 것이다.
청순한 화장과 메이드 복장과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미소를 띄운 녀석에게 나는 물었다.
“부다페스트에, 너희 애들 대체 얼마나 깔아 놓은 거냐?”
“흐음? 글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미 알고 있잖아? 우리는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라는 걸.”
대충, 뒷골목은 거의 꽉 잡았다고 봐야 하겠군.
물론, 그 중에는 녀석의 직할도 있고, 하청을 받은 사람도 있겠지. 심지어는 자기가 리키스카에 협조하는지 모르고 협조하는 놈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신경이 곤두선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어디에든 녀석의 귀와 눈이 있다는 의미니깐.
그리고 녀석은 그런 사실을 과시하듯이 나에게 혼잣말처럼 말했다.
“본국에 돌아오신 반 제국파의 고명하신 귀족 나으리들이 저마다 한자리 해먹으려고 여기 부다페스트에 우글거리고 있지.
그리고, 그 한량들은 기약없는 기다림에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 알량한 거시기를 들고 쾌락을 찾을 것이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내 손이 닿는 곳을 거치지 않을 수 없지. 뭐, 네가 아르파드 왕실과 붙어먹는 썰을 풀지 않는다면, 나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내 나름대로 직접 듣고 보는 것으로 정보를 수집해 볼까 생각 중이야.
그러려면 나름 여기서 일하는 애들한테 특별 교육도 좀 시켜야 하지. 고명하신 귀족 나으리들의 골수 빼먹기는 조금 특별해야 하거든.
그걸 위한 방문이다. 몸소 애들을 가르치고, 직접 시범을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 개인적인 라인도 만들어 두려고.”
그렇게 말한 녀석은 혀로 입술을 핡았다. 그 모습은 확실히 우스타샤의 수장을 차지했던 그때 그 요사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복식과 어울리지 않는 녀석의 표정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적당히 좀 하길 바란다. 너, 이제는 제국 황실에 몸과 마음을 바친 거 아니었냐?
왕년에 하던 버릇으로 동맹국 고위층 내사하는 거, 그 누구도 달가워 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러려면 복장이나 좀 제대로 갖춰라.
그 유흥가에 어울리지 않는 청순가련 메이드 복장이야?”
“응? 네가 잘 모르는구나. 의외로 이렇게 홍등가에서는 분위기에 안맞는 컨셉을 찾는 놈들이 더 거물급들이라고.
마음 같아서는 수녀 복장으로 실무 교육 시키면 좋겠는데, 종종 그랬다가는 신성모독이라고 급발진하는 사제들이 있어서 무난하게 메이드로 한 거지.
남자라고는 손목도 못 잡아본 것 같은 청순가련 메이드를 더럽히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변태들이 제일 편리한 호구들이지.
오늘 너희 왕족들 몇놈, 골수까지 빼먹고 내 충직한 노예로 만들 생각인데, 괜히 초치지 마라.”
“입맛 다시지 마! 드러! 이 미친 년아!!!”
그렇게, 환장할 것 같은 녀석과의 동행은 마차가 부다페스트 시가지에 들어가고 나서, 녀석이 홍등가로 사라지고 나서야 끝날 수 있었다.
왠지 뒷모습에서 엉덩이까지 여자처럼 살랑이며 가는 녀석에게 거리의 사람들이 혹하는 것을 보고 두통이 밀려왔다.
어우··· 우리 동포 높으신 분들이여. 제발 부탁이니, 저 마귀년에게 홀려서 인생 탕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근데, 큰 기대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왕궁에 도착했다.
“보고를 직접 받으시겠다고요?”
“그래. 그렇게 말씀하셨다.”
시녀장님은 나에게 좀 깨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것은, 이번에 방문한 나의 보고 및 상의할 것을, 지난번과 달리 위에서 직접 보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보고의 대상은 바로, 마고 공주였다.
왠일이지? 지난번처럼 회의실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엿듣는 것이 더 익숙하신 것 아니셨나?
갑작스러운 대면 보고를 받겠다는 마고 공주의 의사에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녀장님에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도록 하죠. 마고 공주님은 언제 오시나요?”
“오지 않으신다. 공주님께서는 이곳에서 보고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네? 그럼···”
“왕궁 정원으로 가라. 마고 공주님께서는 거기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생각치도 못한 장소에 조금 당황했다. 왕궁 정원? 갑자기 거기는 왜?
나도 처음 가는 곳이지만, 대개 왕궁의 정원이나 후원은 너무 사방이 트여서, 그런 은밀한 보고를 받기에 애매한 곳 아니었나?
뭐, 제국 부콜레온 황궁처럼 사람없이 횡한 곳이라면 그럴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서, 나는 의문스러운 마음으로 왕궁 정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이,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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