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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보죠. 후보자가 가진 전력 중에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 포장마차들은 뭡니까?
마티의 포장마차라고 하면, 헝가리 서북쪽에서는 순회 맛집으로 유명하더군요. 이것도 병력입니까?”
녀석은 고개를 떨궜다. 창피한 줄은 아냐? 아오오오!!! 이건 또 뭘 어떻게 끼워 맞춰? 오늘 과로해라, 내 두뇌!!!
“바겐부르크(Wagenburg : 전투마차)입니다.”
“뭐, 뭐라고요? 전투마차? 그게 어딜봐서 전투마차라는 겁니까?!!! 제대로 된 총안이나 방벽도 없고, 내부에 위락설비와 조리시설만 가득하다고 하던데?
“하! 환관장님. 대체 언제적 전투마차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더럽게 무겁고, 파성추랑 공성탑 달린 전투마차? 그거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에 쓰던 겁니다.
요새는 그런 구닥다리 안씁니다. 공성전을 위한 무겁고 육중한 전투마차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야전과 기동전을 염두에 둔 가벼워서 신속하고, 운용이 용이하고, 병사들에 쾌적한 전투 환경을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마차가 대세가 될 겁니다.
우리 사령관 후보님이 발빠르게 그걸 벌써 도입하셨네요. 역시, 실전 현장에 유학가서 많이 배우신 분은 다르십니다.
뭐, 지금은 예산이 부족해서 병사들의 복리 시설만 갖추어져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건 제대로 정비되고 개량되어서 신생 헝가리군의 주축이 될 물건입니다.
우린 제국의 예니체리처럼 후방 보급과 지원을 해줄 자원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거라도 활용하는 수 밖에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구닥다리 봉건 영주들의 군대 필요해서 저 보낸거 아니지 않습니까? 맞나요? 그럼 우리 취향 인정해 주시죠.”
왠지, 이번에는 바실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걸 무승부라고 생각했는지 율리아가 소리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보자와 그 부친의 이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더군요.
군경력의 태반이 농민반란과 연관된 이력. 그래서, 실제로 운영해봤던 군대도 대부분 농노들로 구성된 오합지졸 농민징집병인 것은 어떻게 반박하실 겁니까?
당장 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베오울프가 보고 한숨을 쉴 것 같은 오합지졸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더군요.
그걸로 제국과의 동맹 협정에서 타결된 헝가리 상비군을 편성하겠다는 농담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제국은 동맹에게 최소한의 교리를 공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전력을 요구합니다. 가장 열악한 테마군도 순식간에 짖밟고도 남을 농노들이 아니라요.
하지만, 후보자의 이력을 보면 그것 외에는 다른 건 상상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해명해 보시죠.”
솔직히, 제일 뼈 때리는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었다. 농민병만 굴려본 하급지휘관이 제대로 된 병력 편성을 할수 있겠느냐는 질문.
부정할 수 없지. 정말로 못할 것이 뻔하니깐. 얘 하는 짓 봐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무리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최약체들을 가지고 오합지졸 어중이떠중이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망할 기집애의 그 예리한 공격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어째야 하지? 이건 대체 뭐라고 뻘소리를 해야 해?
반박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논리가 서지를 않잖아? 그리고, 피고인 삼돌이도 뭔가 대역죄라고 지은 듯이 고개를 푸욱 숙일 뿐이었다.
바실도 살짝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과열된 뇌가 익어버리기 전에 말도 안되는 발상이 떠올랐다. 논파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인정해 버려라.
그리고 나는 그 미친 발언을 내뱉었다.
“사과하십시오.”
“네? 갑자기 사과는 왜?”
“파라코이모메노스시여. 아무리 당신이라도 사과하십시오!!! 그들을 모욕한 것을 사과하십시오!
그들은 농노도, 오합지졸도 아닙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하나 우리 헝가리의 백성이며, 영광스러운 마자르의 전사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찮은 농노로 치부한 것은 동맹으로서 수용할 수 없는 모욕입니다. 사과하십시오!!!”
어이없는 나의 말에 율리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딱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바실을 바라보았는데, 바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율리아는 뭐 씹은 표정이 되었다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함부로 그들을 농노라고 부르며, 말이··· 심했던 것은 사과하겠습니다. 하지만, 내 말이 과하다는 생각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과를 요구할 거라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도 대시지요. 그들이 제대로 된 병력이 될 수 있습니까?”
“네,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되고 말고요. 아니, 그들이 아니면 안됩니다. 오직 그들만이 신생 헝가리군의 주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말에, 삼돌이와 율리아는 물론, 바실까지도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말같지도 않은 변명을 정리해서 그럴싸하게 썰을 풀어야 했다. 일해라, 내 두뇌야!!!
“우리 헝가리는 약합니다. 인력도 자원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죠.
그러니, 신성동맹처럼 경험많은 용병대를 고용하고, 기사단을 운영할 수도 없고, 제국처럼 고도의 체계로 타그마타와 테마를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들의 눈에 보기에는 하찮고 미미한,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농민들··· 그건 마치 우리 헝가리와도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죠.
우리는 그래서 우리와 닮은,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인 그들을 우리의 방패로 삼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좋은 무장과 체계적인 훈련은 받은 적 없고, 압제에 터져나오는 분노로 봉기했다 진압당하기 일수인 하찮은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귀족들이 사라져도, 그들은 아마 끝까지 살아남을 것입니다.
나는 그 모질고 질긴 생명력에 조국의 운명을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고 자원과 훈련이 진행되어도, 그들이 적성국의 용병이나 기사단처럼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들의 근본은 대지에 못박힌 농부들이고, 군으로 편성되어도 둔전과 훈련을 겸해야 할테니깐요.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약하고 미미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뿌리를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처럼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언젠가 우리의 적들도 약해지는 날이 올때까지 우리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쩌면 승리할지도 모르죠. 까마득하게 먼 미래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는 생명력에 나는 우리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보자는 그런 우리 풀뿌리 백성들과 같이 대지를 달렸던 선구자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용병대, 기사단, 테마, 타그마타를 기대하셨다면 그 기대를 저버리게 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무례하게 굴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후보자는 그 미래를 우리 생각보다 빠르게 구현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깐요.
언젠가, 제국이 약해졌을 때, 우리가 동맹으로 그대를 지킬지, 아니면 과거의 모욕을 떠올리며 칼을 뽑을지, 그건 제국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잠시, 침묵이 막사 안을 감돌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보며 나는 격하게 현명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 또 사고쳤구나. 아아악!!! 이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제국 황제와 환관장이 보는 앞에서, 나중에 니들 우리가 쎄지면 감당할 자신 있냐고 드립을 쳐?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물론, 바실이니깐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나는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짝 살폈다.
먼저 삼돌이. 뭔가 조금전까지 정말로 농민반란 밖에 이력이 없던 것에 자학하다가,
갑자기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우러러본다. 아오!!! 분위기 파악 좀 해!
그리고 율리아.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살짝 떨며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어버버.
들리지는 않지만, 왠지 마음의 소리로 ‘미친년? 왜 이렇게 과속 급발진이야?’ 라고 하는 듯.
바실. 아오, 보기가 두렵다. 그런데 바실은 살짝 묘한 표정이었다. 뭔가 조금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율리아를 보면서 어께를 으쓱했다. 휴··· 다행이다. 그래도 크게 정색하는 것 같지는 않구나. 그리고 율리아에게 그 정도면 됐다는 듯 보였고.
그래서인지 율리아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면서도 억지로 참는 듯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막사를 나갔다.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후보자에 대한 제국 측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진이 빠져서 어디든 나자빠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젠장할, 내가 봐도 답 안나오는 애들 말도 안되는 미사어구로 장식하는 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지독한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나와 별개로 이 머저리는 이 상황이 좀 다르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크흑, 공녀님, 제가 큰 착각을 하였습니다.
소문으로는 이번에 편성할 헝가리군은 명목에 불과한, 제국의 소모품으로 쓸 버리는 수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군요.”
아니야. 그거 사실 맞아. 역시나, 얘만 빼고 헝가리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래, 그게 당연하겠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감동 먹은 녀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희에게 그런 막중한 사명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천대받던 농노들을 헝가리를 짊어질 마자르 전사라 인정해주실 줄 몰랐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기 그지없는 몸에, 한심한 전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가짐을 달리하겠습니다.
공녀님께서 당당히 제국에게 우리 헝가리를 동맹으로서 같은 반열을 요구하신 것에 부끄럽지 않게 책무에 매진하겠습니다.”
“아, 예. 뭐 그러시든지요. 열심히 해보세요.”
이제, 내 손목을 붙들고 꺼이꺼이 우는 이 삼돌이를 보며 나는 그저 매사가 다 귀찮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콘스탄틴노플 의회, 의원 회관.
패티우스는 오전에 있었던 군사위원회의 회의 자료를 가지고, 방에 들어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공녀의 행보가 여전히 예측 불허더군요. 이번에 신규 선임된 헝가리군 사령관이 좀 의외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향후 구성될 군의 형태도 의문입니다. 거기다, 그 사람과 관련된 현지 감찰관과의 마찰도 목격되었습니다.
좀, 우리 제국 측에 위협이 될지도 모를 위험한 발언이 나온 모양이더군요.”
요하네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료들 위에 있던 요약된 내용을 받아들고 흩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요하네스를 보고 패티우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무 상식 밖의 인선과 향후 군대 편성인데요? 전쟁터에서 화살받이 외에 의미가 없을 농민병을 아예 정규 편제로 쓰는 군대라니?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보면 적격인 사령관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한심하다는 평이 많은 사람이고.
그런데, 그걸 문제 삼으니, 언젠가 그 사람들이 제국을 위협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어쩔거냐는 투의 발언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지금까지 말도 안되는 전쟁의 귀신들을 선발해서, 전국을 주도한 공녀답지 않은 전개입니다.
뭔가, 이번 경우만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현지에서 외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패티우스의 의견을 들은 요하네스가 긴장된 얼굴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건,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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