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
‘채앵!!!’
그녀의 단검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녀의 단검은 그녀의 손을 벗어나 옆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창에 의한 공격이었다. 다른 병사들은 외벽을 타고 오느라 상대적으로 경장비를 하고 온 것에 비해서, 외벽을 타고 왔음에도 자신의 창을 들고 왔던 그 사람, 타마르 여왕의 공격이 마리아에게 가해졌다. 그리고 장창의 공격에 마리아는 병사에게 빼앗은 단검을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났지만, 그런 그녀에 대한 타마르의 공격은 이어졌다. 창을 내지르며 마리아를 몰아붙이던 타마르가 소리쳤다.
“이 지긋지긋한 제국의 방해물들. 왕좌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끝까지 방해를. 당장 사라져 버려!!! 나는 여왕이다. 영광스러운 사카트로 밸리의 여왕 타마르다. 감히, 네까짓 것이 이곳의 안주인을 자처하다니. 내가 이곳의 유일한 주인이고, 정당한 지배자이다. 네가 왕관의 무게를 아느냐? 왕의 고통을 아느냐? 아무것도 모르는 괴물의 암컷 주제에 분수를 알아라!!!”
“훗, 날 괴물의 암컷이라 부르는 건 좋아. 그게 사실이니깐. 하지만 그이를 괴물이라 부르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여왕? 너는 망한 나라의 여왕일지 모르지만, 나는 존재하는 제국의 여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몸이다. 왕관의 무게를 아냐고? 타국에 절대 내주지 않는다는 콘스탄틴노플의 황제관을 어렸을 때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던 것이 나다. 그딴 거, 나라가 망하면 돌멩이만도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고통? 애도 하나 안낳아 본 주제에 감히 고통을 지껄이지마!!! 이 반푼이 계집년아!!!”
“발칙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네가 감히 캅카스의 암사자라 불리던 나를 당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집안에서 가사나 하던 주제에 요행으로 내 병사들을 죽인 것이 나에게도 통하리라 생각하느냐?”
“캅카스의 암사자가 뭐? 그로즈니에서 체첸인들한테 받들어져서 평생 위험이라곤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누구처럼 보호해줄 사람도 없는 망명지에서 혈통이랑 미모를 탐내서 한번 재미보려던 놈들의 위협에서 평생 살아온 적도 없잖아!!! 요람에서 보호받은 고양이 주제에 사자 들먹이지 말아줄래? 듣는 진짜 사자 열받으니깐.”
뭐여? 저 언니 저 정도로 한 성격하는 언니였어? 아무리 타마르 여왕이 앙리 콰지모도를 모욕했다고는 해도 상당히 날선 반응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저런 성깔에 신체 능력을 가지고선 내숭을 떨고 있었다니··· 대체 들판에 꽃도 못꺽을 가련함 그 자체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불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공방은 타마르 여왕에게 더 유리하게 흘러갔다.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갑옷도 제대로 갖추고, 긴 장창을 들고 공격을 해오는 타마르 여왕의 공격에 검을 들고 막아내는 것은 버거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연이은 공방에서 승세는 여왕에게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공세에 마리아는 짜증이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파격적인 짓을 저질렀다. 그것을 본 타마르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가··· 갑자기 칼을 버리다니,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냐? 그리고 또 옷은 왜 벗어던지는··· 어? 어어어!!! 이게 무슨? 크아아악!!!”
멀리서 숨어서 보고 있던 나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타마르의 말처럼, 갑자기 마리아는 들고 있던 칼을 버렸다. 그리고 입고 있던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속옷차림이 되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미친···!!! 상대를 얼빠지게 만드는 걸 유도하기라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던 찰라, 갑작스럽게 그녀가 움직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러더니 순식간에 타마르의 창 안쪽으로 파고들어 거리를 좁힌 마리아는 당황하는 타마르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억!!!’
깔끔하게 타마르의 머리가 돌아갔다.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마리아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휘청거리며 뒤늦게 마구잡이로 창을 휘두르는 타마르의 공격을 빠른 발놀림으로 피하며 연이어 주먹을 날렸고, 그 펀치가 갑옷으로 보호되지 않는 타마르의 노출된 부분을 가격하였다. 이··· 이건 또 뭐야?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나타나서 마리아를 보며 소리쳤다.
“더 쎄게. 좀더 허리를 움직여서. 더더더!!! 움직이십시오. 계속 발을 움직이셔야 합니다.”
나는 나타난 사람을 보고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저 사람은···
“알리 집사님?”
“오! 공녀님도 여기 계셨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 밑으로 내려온 병사 대여섯명들은 제가 다 처리했습니다. 역시, 마리아 마님이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붙잡고 있었던 덕분에 적을 분산시켜서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네? 피난한 사람들을 잡으러 간 조지아 병사들을 다 처리하셨다고요? 대체, 어떻게요? 그리고 지금 마리아 부인은 저게 뭐하시는 거에요? 말도 안되는 무술 실력도 황당하기 그지 없는데, 갑자기 왜 저렇게 속옷차림으로···”
나의 질문에 알리 집사는 갑자기 미소를 드리우며 말했다.
“후후후··· 좋은 질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권투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전해지는 유서깊은 대인 격투술. 마리아 마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고 계신겁니다. 마님께서는 조지아에 오셔서 앙리 주인님을 노리는 적들이 많다는 것을 아시게 되시고 부족하나마 부군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셨죠. 마침, 아가씨들을 낳고 산후조리도 하셔야 해서, 마님은 오랫동안 앙겔로스 황가의 체육 교사를 해오던 저를 불러주셨죠.
오래 전 튀니지 해적들에게 거세당하고 노예로 팔려다니던 것을 구해주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에 저는 곧바로 이곳에 와서 마님을 모시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기술을 열심히 가르쳐 드렸죠. 마님은, 기존에 고전 권투에서 제가 좀더 속도 중심으로 개량하여, 여성들도 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새로운 권투에 금방 익숙해지셨죠. 지금, 저렇게 그 성과를 눈부시게 보여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스승으로서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까 합니다. 오늘이 바로 이 몸, 무하마드 알리 인생에 가장 뿌듯한 날입니다.”
무하마드는 무슬림들에게 되게 흔한 이름이다. 그리고 알리라는 이름도 그렇고. 그런데··· 왜 그 두개가 합쳐지니깐, 뭔가 되게 무시무시한 기분이 드는 걸까? 그러면서 나는 전에 조지아 내궁에서 들었던 그 야릇한 소리를 기억에 떠올렸다. 아니, 그럼 그거··· 거시기한 짓을 한 것이 아니라, 사실 권투 배우고 있었던 거야? 아니, 이게 뭐야아아아!!! 하지만, 나의 그런 경악에도 불구하고 알리 집사는 연신 뒤에서 마리아 부인에게 소리쳤다.
“풋워크! 풋워크!!! 쉬지 말고 움직이십시오. 턱을 가격당했다면 적은 뇌가 흔들려서 정신이 없어서 치명상은 못날립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십시오. 잽! 잽! 잽!!! 스트레이트!!! 더 쎄게. 좀더 허리를 움직여서. 더더더!!!”
그리고 마리아는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며 타마르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연달아 그녀의 주먹이 타마르의 면상에 날아갔고, 그녀의 얼굴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승부가 났다. 그녀의 강한 주먹이 다시 한번 타마르의 턱에 날아갔고, 그녀는 그 펀치에 창을 놓치고 몸마저 허공에 반회전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커헉!!! 이··· 이건 말도 안되는!!! 크억!!!”
그녀는 바닥을 나뒹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마리아의 강한 공격에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어 형편없는 모습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타마르를 보면서 혈투를 벌인 마리아는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아드리안!!! ···이 아니라, 앙리!!! 앙리!!! 어디었어요? 앙리!!! 제가 이겼어요!!!”
이제···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도 안난다. 그냥 다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어이털림과 무관하게 지금 처한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상황은 되게 어처구니 없지만, 그래도 일단 타마르 여왕이 붙잡힌 상황이다. 그리고, 외궁에서는 아직 바실이 사투를 벌이고 있고. 나는 마리아에게 소리쳤다.
“마리아 부인!!! 지금 당장 타마르 여왕을 결박해서 외궁으로 데리고 가세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아, 네네네··· 알리 집사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잠시 후··· 외궁을 공격하던 조지아 병사들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저기봐!!! 여왕 폐하시다. 서, 설마··· 잠입이 실패한 것인가? 그리고, 그 옆에는··· 히익?!!! 저, 저게 뭐야!!!”
외궁의 옥상 테라스에서 나타난 타마르 여왕의 모습에 병사들의 공격은 멈춰졌다. 그들은 얼어붙은 표정으로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테라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소리친 것은 마리아 부인이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너희들의 여왕이 여기 잡혀 있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 너희들의 패배다.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 여왕에게 끔찍한 짓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마리아 부인의 선포에,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히 바실이었다. 그래서 실내에 있어서 마리아의 소리만 듣고 모습을 보지 못한 바실은 기뻐하며 조지아군에 소리쳤다.
“맙소사. 내궁이 여왕의 기습에 당한 것을, 되려 역습해서 여왕을 포로로 잡다니. 마리아 부인, 공녀님? 모두 무사하시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조지아군이여. 지금 당장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타마르 여왕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지금 당장, 항복을··· 어라? 조지아 제군들? 지금 왜 다들 엉거주춤한 자세로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건가요? 그거, 조지아 식 항복 표시인가요?”
병사들은 바실의 해맑은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실내에 있어서 바실은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궁 지붕 위에서는 가관이 펼쳐져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절세 미녀가 속옷차림으로 칼을 들고 그들의 여왕에 목에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여왕도 입고 있던 중갑이 벗겨져서 무장해제되고 속옷바람의 반라였다. 그리고 팔이 결박되고 입도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미녀 두 사람이 많이 안 입고선 둘이 밀착해서 되게 상상의 여지가 많이 되는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뒤에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건장한 근육질 흑인 남자도 한명 서 있고.
나는, 자신들의 여왕이 붙잡힌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조지아 병사들을 보면서, 쟤네들의 미래가 밝은건지 암울한건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므흣한 상황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마음을 느끼며 저 멀리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리고 이 심각하면서도 웃픈 상황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자신들의 잔인한 상상력에 하반신을 학대당하던 그들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서 누군가가 외쳤다.
“조지아 테마군이 돌아온다. 지옥의 꼽추가 귀환하고 있어. 이제 다 틀렸어.”
그 말이 결정타였다. 병사들은 하나둘 들고 있던 무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건지, 뭔가를 숨기려는 건지 알수는 없지만, 그렇게 조지아 해방군은 무너졌다. 그리고, 자신들이 기만당한 것을 알고 분노하여 황급히 병력을 돌린 앙리는 서둘러서 트빌리시 왕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는 벌어진 상황을 보고 소리쳤다.
“야, 이 여편네야!!! 당장, 옷 입어!!! 지금 이게 무슨 짓거리야!!!
그렇게, 뭔가 목적과 순위가 산으로 가버린 것 같은 조지아 반란 진압은 앙리의 절규와 그걸 보며 해맑게 손을 흔드는 마리아 부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의외로 전쟁보다 더 골머리 아픈 후속 조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Commen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