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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와 율리아를 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에 손이 닿을 정도로 황제가 다가오자, 율리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황제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소!!! 죽지 않고 살아 있었소. 당신이 버린 아들인 내가 살아 있었단 말이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정당한 제국의 계승자로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던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단 말이오. 더러운 도적들의 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나락의 시궁창으로 떨어져 욕지기 나는 비역질을 강요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당신 앞에 나타났소.
오로지 날 버린 당신과 내 자리를 훔친 저 녀석에 대한 복수심만을 내 생명의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남았고 당신의 앞에 나타났소. 가능하다면 일생을 염원하던 복수를 달성하고 빼앗긴 자리를 되찾았어야 했지만, 그것은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비참한 꼴로 당신 앞에 던져졌소. 어떠시오? 당신 눈에 보이는 당신이 버린 아들의 꼬락서니가? 증오스럽소. 살아서 복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면, 죽어서라도 이루고 싶을 만큼 당신을 증오합니다! 나의 아버지시여!!!”
마치, 서사시 속 비극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은 율리아의 절규는 곁에서 보고 있는 나와 바실에게도 울림을 전할 정도로 비통함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외침을 들은 황제의 반응은··· 놀랍게도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울며 율리아를 보고 말했다.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지켜줬어야 했는데···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책임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뭐라고? 미안하다고? 이런 망할!!! 차라리 욕을 하시오!!! 아니면 부정을 하거나!!! 내 어머니와 나를 버린 증오스러운 나의 아버지시여. 당신은 사과할 자격도 없소. 이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이 지경이 되어버렸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 와서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이 늦어버렸단 말이오. 당신의 양심에 가책을 덜하기 위한 위선적인 사과 따위는 집어치우시오!!! 나의 아버지시여. 당신이 진정으로 이 일에 대해서 가책을 느낀다면, 스스로 자진하시오. 당신이 진정 나의 아버지라면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자결하란 말이오. 그것만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니깐.”
이 새끼가 선을 넘었다. 그 말에 근위대장마저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칼자루에 손이 올라갔다. 그러나, 황제는 손을 들어 근위대장을 제지하며 더 침통한 표정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바라는 것은 들어줄 수가 없다.”
“그래. 당연히 그러시겠지. 당신 같은 위선자가 하는 사과가 진심일리가 없지. 이 더러운 위선자 자식아!!!”
그런 율리아의 분노 어린 일갈에 황제는 조금 진정한 표정으로 율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것은 내가 위선자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너의 친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부정하고 싶겠지. 없었던 일로 하면 편하겠지. 이미 세워둔 후계자를 위해서라도 내 존재를 지워버리고 부정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야!!! 이, 비겁한 자식!!!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인정한 증거가 있는데도 거짓을 말하다니!!! 황제라는 자가 부끄럽지도 않냐!!!”
그런 율리아의 격한 분노에 황제는 당황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내민 것은 바실이었다. 바실은 전에 민체타 탑에서 율리아가 보여주었던 로사리오에 달린 십자가에 들어있던 황제의 서명을 꺼내 펼쳐보이며 자신의 부친에게 말했다.
“설명해 주세요.”
바실은 평소의 그저 해맑던 모습과 다르게 더 없이 진중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그것을 건냈고, 황제는 그것을 무거운 표정으로 건내받았다. 십자가 속에 있던 서명을 본 그는 깊이 탄식했다. 그리고, 뭔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이 서명은 내가 한 것이 맞다. 그리고 이 불탄 서류의 일부는 내가 젊은 시절에 지키지 못한 회한이 담긴 약속의 증거다. 하지만, 나는 율리아 너의 친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서류는 너의 세례증명서의 일부니깐. 율리아, 나는 너의 친부가 아니다. 나는··· 너의 대부였다.”
“거짓말 하지마!!! 그런 식으로 나를 기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마!!! 그저 말한마디로 부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당신이 정녕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그 증거나 증인을 내놔!!! 그런 것도 없이 하는 말은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어!!!”
율리아는 격노한 목소리로 황제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황제는 그런 율리아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황제는 율리아의 친부가 아닌건가? 아니면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일까? 율리아가 주장하는 말은 격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대부일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탄 서류가 내용을 잘라먹은 상황에서 그것이 세례증명서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 말은 황제의 말을 입증할 증거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율리아의 말에 강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황제의 태도는 어딜봐도 의구심을 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증인, 여기 있다.”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놀라 모두가 돌린 시선의 끝에는 생각치도 못한 사람이 있었다. 황제가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황후···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그 사람은 다름아닌 유도키아 황후 마마셨다. 우리 모두는 식겁했다. 으아아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 개고생을 한 이유는 저 분이 이 사실을 알면 안되었기 때문인데. 갑작스럽게 난입한 그녀를 보며 나와 바실은 당혹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달랐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동행이 있었다. 아니, 저 사람은 군의총감 갈레노스경? 저 사람은 또 왜 여기에? 그때 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셨다.
“그럴수는 없어, 니키. 나 또한 그 일과 무관하지 않은데 멀리서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그리고, 당신이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는 것도 두고 볼 수 없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난입에 모두가 다 당황하였다. 나는, 당장이라도 황제 폐하의 머리를 쥐어 뜯는 황후 마마의 모습만 상상하다가 생각치도 못한 말에 혼란스러워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율리아가 말했다.
“당신은··· 설마, 유도키아 황후인가? 빌어먹을··· 부부가 똑같이 나를 기만할 생각인가? 아니지. 어쩌면 저 빌어먹을 아버지보다는 당신이 더 그에 대해선 부정해야 할 절박한 입장이겠지. 당신의 자식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말조심해! 이 천지 분간도 못하는 애송아. 지금 누구한테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가 나에게는 그런 망발을 지껄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네가 니키에게는 그런 망언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니키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을 운명인 너를 살린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다!”
“!!!!!!”
모두의 표정에 당혹스러운 빛이 퍼져갔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황제가 율리아의 생명의 은인이라니? 나는 물론 율리아마저도 할말을 잃고 당황하는 상황에서 황제만이 난감한 표정으로 황후 마마에게 말씀하셨다.
“황후··· 제발, 그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그 진실은 저 아이에게 너무 잔혹한···”
“아니. 알아야 해. 당신은 착해서 저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어. 저 아이도 그날의 진실을 알아야만 해. 이 시건방진 애송아. 여기, 네가 바라던 증거와 증인이 있다. 이 편지와 진단서가 증거이고, 그리고 여기 있는 돌팔이 갈레노스가 증인이다.”
우리의 시선은 황후 마마가 내민 서류에 모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읽은 우리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진단서는 갈레노스의 명의로 발급된 안나 황녀의 임신 진단서이고, 편지의 내용은··· 낙태를 시킬 의사와 지리에 밝은 길잡이를 찾아달라는 게오르기우스 근위대장이 유도키아 황후 마마에게 보낸 의뢰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때 황후 마마가 말씀하셨다.
“보았느냐? 그래, 이것이 진실이다. 안나 황녀님은 니키와 만나기 전에 이미 너를 잉태하고 계셨다. 그녀는 공황위 시기의 내전에서 자신의 오빠인 요하네스의 위협에서 두라초로 피신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전부터 황궁에 물자를 조달하던 우리 조합의 일로 인연이 있던 게오르기우스 근위대장은 나에게 낙태를 유도해줄 의사와 두라초로 길을 안내할 샛길에 밝은 길잡이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였지. 하지만, 팔라이올로구스 가문이 황위를 차지하고 있던 시기에는 굽신굽신거리던 우리 집안은 팔라이올로구스가 몰락하자 태도를 바꾸었지.
특히나 힘은 없으면서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녀에게 지킬 의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황실의 요청을 외면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 개인적으로 조합의 일로 만난 적이 있던 안나 황녀는 베니스인의 사생아인 나를 사용인이 아닌 친구로 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고 나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그녀를 위해 방법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집안의 의사 결정을 거역하고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무의미한 의리로 불속에 뛰어드는 어느 머저리와 실력도 어설픈 주제에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지옥 끝이라도 달려가는 어느 돌팔이 밖에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그들에게 보상을 담보할 수 없는 의뢰를 전했고, 그 두 사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수락했지. 그게 바로 젊은 시절의 황제 폐하와 의무 총감이다. 나는 그 두 사람과 같이 의뢰를 수행하러 안나 황녀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안나 황녀님은 절망 속에서 죽음만을 바라고 계셨다. 바로 너를 가진 배를 부여쥐고 말이다.
그래. 너는 니키의 아이가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니키가 안나 황녀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너는 잉태한 상태였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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