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
“아, 좋은 아침입니다. 경비관님. 하나 드실래요?”
거리에서 그을 만났다. 태연하게 빵 끄트머리를 튀겨 만든 것을 우물거리며 그는 사람 좋게 나에게 건냈고,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받아들고 물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아, 별일은 아닙니다. 그냥 간단한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녀의 수색이요? 역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데요? 몸을 숨긴 사람이 이렇게 번화가에서 나돌아 다닐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안치오가 한적한 곳이어도 얼마 전에 그 사건과 관련된 일로 여기저기서 몰려든 사람들이 우글거렸던 곳입니다. 그런 곳에 현상금까지 걸린 사람이 나 잡아 잡수라고 돌아다닐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네, 좋은 지적이십니다. 상식적인 의견이죠. 근데, 전에도 얘기 드렸다시피, 제가 워낙에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은 번화가를 돌아다니지 않더라고, 물건은 번화가를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말입니다. 조난당하고 실종된 사건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수배자는 부상을 입었고 바다에 빠져서 옷도 엉망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옷가지와 생필품, 그리고 약품을 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품목들을 공통적으로 구한 사람이 혹시 없는지, 번화가의 가게들을 탐문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좀 쓸데없는 일일까요?”
등에 소름이 돋았다. 이 자식··· 대체, 뭐야? 나는 그것을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시군요. 하지만, 말한대로 쓸데없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그것들 최근에 동시에 구매한 사람이 한두명이라고 생각하시오? 당장 눈앞에 있는 나만 해도 얼마 전에 그것들을 전부 구매했소. 해안경비원에게 필요한 물품들이니 항상 떨어지면 보충해두는 비품들이니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그 도망친 하녀겠구만.”
“네, 안그래도 그것들을 몇몇 가게에서 경비관님을 포함한 여러 명이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헛다리 짚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그것만으로 행방을 찾는 것은 좀 무리란 생각이 드네요. 하하하.”
나는 그의 생각을 방어했다는 것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데, 그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경비관님. 한가지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경비관님이 구매하신 물품들 중에서, 다른 것들은 다들 그럴법한 물건들인데, 그 중에 한가지. 일상용 여성복들은 왜 구매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구호용 물품이 아니라 생활용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물건이라고 하던데··· 그걸 경비관님이 최근에 구매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 물품은 어디에 필요하셨던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 그건, 아!!! 기억났소. 아마도, 클라라의 심부름이었던 것 같군요. 말이 경비대원이지, 동네에서 심부름을 해주고 수고비를 받는 일이 거의 본업이라 종종 그런 일을 대신하곤 합니다. 그래서 비품 구매하면서 그것도 같이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나는 군요.”
“오! 이런. 그렇군요. 확실히 퍼브에서 일하시는 여급 분들은 낮에 시장을 보러 갈 여유가 없으시죠. 제가 아는 형님이 그런 일과 무관하지 않아서,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확실히 그런 일을 대신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경비관님의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뭐, 별일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서, 그에게서 멀어졌다. 이 자식··· 시간이 지나면 자포자기하리라는 생각은 역시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제국에서는 도망친 하녀를 붙잡기 위해 만만치 않은 수사관을 보낸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은 슬그머니 넘겼지만, 저 녀석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더 그녀의 존재가 노출될 가능성은 높아져만 간다. 결국 들키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한다. 그런데, 대체 안전한 곳이 어디란 말인가? 안치오에서도 뜨내기 신세인 내게 그런 형편에 맞는 곳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때, 문득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티노섬···”
그래, 그곳이 있었다. 내가 허황된 꿈에 빠져 박차고 나온 내 고향. 제노바령이지만 워낙 외진 곳에 있는 그곳이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 갑자기 상황이 복잡해졌다. 내가 그녀를 티노섬으로 피신시킨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안치오의 해안경비대원으로서 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운명을 뒤바꿀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사실에 그것을 그녀에게 말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안치오의 경비관으로서가 아닌, 바실이라는 한 남자를 따라와 달라고 그녀에게 말할 수 있을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연기할 자신이 없었다. 기억은 없어도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그녀다. 틀림없이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변을 방황하다가 한참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어서 문은 잠겨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늦으면 기다리지 말고 문을 걸어 잠그고 먼저 자라고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빗장이 걸린 내 집 문을 등지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저는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뿐.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에게 저와 같이 제 고향으로 가지 않겠냐는 말을··· 저는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을 지킬만한 용기와 힘을 가지지 못한 제가··· 그런 주제넘은 일을 마음대로 권해도 되는건지··· 알수가 없어요. 아니, 자신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나는 깊이 잠이 들었을 그녀가 듣지 못할 이야기를 저 너머 바다를 보며 중얼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결론이 나오는 것은 없었다. 결국 뜬눈으로 새운 나는 새벽에 그녀가 기상하기 전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처없이 해변을 떠돌았다. 그러면서 마음은 조금 진정되었지만 머리 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결국, 이 문제는 나 혼자서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결론만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조언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리고 떠오르는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마리오 밖에 없었다.
이 자식에게도 지금 숨기고 있었던 사실인데, 이걸 이야기 하면 화를 낼 것이 뻔하다. 하지만, 지금 그나마 내가 믿을 만한 것은 그 녀석 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극으로 여기며 나는 그 녀석을 만나러 항상 가는 단골 퍼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퍼브에 도착해서 나는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결국 자제하지 못했다.
“어이, 바실. 여기야 여기. 지금, 내가 누구랑 만나고 있는지 알면 놀랄 거야. 지금, 이 친구도 이름이 바실이래. 푸하하하!!! 여기도 바실. 저기도 바실. 바실이 천지에 깔렸구만. 어서와. 한잔하자고. 이 친구가 오늘 사겠데.”
“하하하. 안녕하세요? 바실 경비관님. 같이 한잔 하시죠.”
제국의 수사관은 그 녀석 특유의 순진무구한 얼굴로 내 친구의 옆에 앉아서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그랑 오래된 친구로 착각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발을 돌려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의심받을 것이 뻔해서 나는 안내키는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마리오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클라라! 여기 와인 한병 더! 오늘은 좀 좋은 걸로 줘. 여기 새로온 바실이 산다고 했으니깐 외상은 걱정하지 말고.”
“이 멍청한 자식아. 제국군 수사관 앞에서 바실, 바실, 하고 그러지 마. 제국의 황제 이름도 바실이라고. 이봐요, 수사관 양반. 이 멍청이가 하는 말 흘려 들어요.”
클라라는 술을 테이블에 놓으며 역정을 냈다. 그러나 이미 제법 마신 것으로 보이는 마리오는 유쾌하게 반응했다.
“혈태자 이름이 바실이란 것 말이야? 하! 그게 뭐 어쨌다고? 세상에 얼마나 흔한 이름이 바실인데. 그런 식으로 말조심하면 세상에 험한 말 할 수 있는 사람 이름 아무도 없겠다. 그리고, 혈태자가 뭐 어쨌다고? 그게 별거냐? 그딴 멍청한 자식보다도 내 친구 바실이 훨씬 더 잘났거든!”
“하하하. 그 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사람보다는 바실 경비관님이 훨씬 더 남자다우시고, 멋진 분이십니다.”
“어이쿠야!!! 우리 제국군 수사관님은 꼰대같지 않고 융통성이 있으시구만. 거봐! 내가 뭐랬어. 제국군에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잖아.”
그런 마리오의 말에 클라라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어휴, 머저리 같은 놈. 저러다 어디가서 골로 가려고. 그리고 댁도 참 한심하군요. 자기네 황제가 조롱받아도 그런 반응이라니. 제국군이 요즘 뭔가 예전같이 않게 무시무시한 기분이 드는데, 댁 같은 예외도 있는 걸 보면 댁의 상관들도 고민이 많으시겠어.”
“어, 음··· 유감스럽게도 제 위에 상관 없는데요.”
클라라는 뭔가 맹한 그의 말을 무시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멋쩍어 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기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아? 그야 한잔하고 있죠.”
“도망친 하녀 수사는 안하고?”
“하하하. 수사는 해야죠. 하지만 저도 사람인데 하루종일 그것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그래서, 하루 일을 마치고 잠시 쉬러 왔는데, 우연히 경비관님의 친구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의기투합이 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잠시나마 즐거운 여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잔 받으시죠.”
“팔자가 좋으시구만. 이렇게 한잔 하면서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제국군은 근태가 후한 모양이요.”
“그런가요? 나름 여기도 고생은 있답니다. 그리고, 꼭 이 시간이 업무와 무관한 여유를 보내는 시간은 아니랍니다. 가끔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수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는 것도 있죠. 마리오씨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시더군요. 지난번 공녀 실종으로 벌어진 소동. 이 안치오의 최근 동향. 그리고 여기 있던 사람들의 최근 움직임. 뭐 그런것들이요.”
“와하하하!!! 다 물어봐! 내가 다 알려줄게!!! 나 안치오 최고의 소식통 마리오를 믿으라고.”
뒷목이 땡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자식 정말··· 상의는 무슨 놈의 상의. 그녀에 대해서 이 녀석에게도 비밀로 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요? 그래서, 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건지셨습니까?”
“아뇨, 그다지요. 하지만 다만 한가지 인상깊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더군요.”
“그게 뭔데요?”
“아, 별건 아니고··· 최근에 바실 경비관님이 표정이 많이 밝아지셨다고 하더군요.”
“쿨럭!!! 뭐, 뭐라고요?”
“친구 분이 기뻐하시더군요. 항상 우울해 하시던 경비관님이 요즘 들어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지, 얼굴에 미소를 띄시는 일이 많아지셨다고요. 좋은 친구분을 두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요즘, 걱정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무의식적으로는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그걸 감추지 못한 건가? 그리고 그것을 그 녀석은 여전히 사람좋게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식··· 틀림없어. 지금 날 의심하고 있어. 나는 흠칫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마리오가 나에게 어께동무를 하며 소리쳤다.
“그래, 임마! 좀 웃어. 그렇게 얼굴 펴니 좀 보기 좋으냐. 기죽지 말고 살자고, 친구야!!! 내 친구, 바실. 너 기죽을 필요 없어. 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데. 이봐, 제국의 수사관 양반. 내 친구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알아? 이 자식은 말이야, 정말로 용사라고. 위대한 용사. 당신, 미로크슈 알아? 아마, 이름만 들어봤겠지. 그 거대한 전투에서 이 녀석은 다른 사람도 아닌 혈태자의 진격에 홀로 맞선 용자라고. 다들 혈태자의 정예가 후방에 돌진하면서 꽁무니가 빠지게 도주하는 동안 이 녀석만 홀로 검붉은 갑옷과 투구를 쓰고 괴물 같은 말을 타고 돌진하는 마왕 혈태자에게 맞선 녀석이라고. 알아 모시란 말이야.”
“응? 정말이요? 그때 거기서, 그런 사람이?
이 자식은 왜 그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를 들은 바실 수사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까고 있네. 이 븅신들이. 뭐? 미로크슈에서 혈태자에게 맞서? 개가 웃을 노릇이다.”
“루··· 루카 두목!!!”
퍼브에 들어온 것은 루카였다. 그리고, 마리오는 갑자기 술에 깬 표정으로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루카는 그런 우리를 비웃으며 계속 말했다.
“미로크슈에서 네놈들이 대단하긴 했지. 다들 그 공격에 유린당하는 와중에 지들만 살겠다고, 해자에 몸을 숨기고 벌벌 떨던 겁쟁이들. 그게 너희 부대잖아? 그러니 혈태자의 정예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신만 가득했는데, 네놈들만 목숨 부지해서 도망친 거지. 목숨 아까운 줄만 아는 겁쟁이들이 어디서 구라야?”
그의 말에 나와 마리오는 다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깐. 지시받은 명령은 진격하는 적을 저지하라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 기세에 눌려 해자에 몸을 던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장 먼저 마리오가 몸을 던졌고, 그리고 그를 따라 부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피하며 혈태자의 진격을 방치했다. 그도 꽁무니를 빼는 우리 부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어버버 거리면서 서있기는 했지만, 이내 선봉에 선 혈태자가 쇄도해 들어오자, 마리오가 뛰쳐나와 나를 해자로 끌고 들어갔으니깐.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우리는 겁쟁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전투가 끝난 다음에 생존자가 많은 우리 부대는, 피해가 막심한 부대들에게 매도당하고 내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루카는 그 사실을 근거로 우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부대원들의 희생 덕분에 이 동네의 두목 자리를 차지한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자각하게 만드는 우리의 한심함에 대해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느꼈다. 저 자식에게도 이렇게 간단히 매도당하는 내가 과연, 아그네 아가씨를 구한다는 망발을 지껄일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때였다. 루카가 예상치 못한 곳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저 겁쟁이들이랑 같이 있는 네 녀석은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이냐?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가, 바실 수사관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면서 물었다.
“혹시, 제국 쪽에서 온 놈이냐?”
“아, 저는···”
순간,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닭았다. 얼마 전에 있던 일로 제국에 앙심을 품은 루카다. 그런 그가 저 친구가 제국군이라는 걸 알게 되면 보일 반응은 눈에 보지 않아도 선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지금··· 그녀의 행방을 추적해 오는 저 녀석을 루카가 처리해 주기만 한다면? 더는 고민할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제국군이라고는 하지만 순해보이는 얼굴에 칼이나 제대로 쥐어 봤을까 싶다. 그리고 루카는 패거리다. 아마도, 순식간에 홀로 파견된 수사관 정도는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저, 입만 다물고 있어도··· 그것은 가능하다. 그저, 조금만 비겁하면...
그리고 나는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하하하!!! 이 녀석, 저랑 마음이 맞아서 의기투합한 제 친구입니다. 제국은 무슨··· 이 녀석 인상 보세요. 이게 어디 제국이랑 엮일 면상입니까? 그냥, 도망친 하녀 잡아주는 삼류 현상금 사냥꾼이래요. 그리고, 이름도 마침 바실이래요. 하하하!!! 재밌는 우연이죠?”
“뭐야? 네 녀석도 그 소문 듣고 온 놈이냐? 쳇, 머저리들끼리 잘도 놀아나는군. 근데, 너 시건방지네. 지금 여기가 누구 구역이라고 생각하고선 그런 일을···”
루카가 혀를 찼다. 그러자, 그가 한걸음 나서며 루카에게 말했다.
“아이고, 이런.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이곳 안치오의 뒷세계를 지배하시는 두목님이시죠? 먼저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형님이 원래 그쪽에 계셔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미리 알아뵙지 못한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러자, 루카를 대신해서 그의 똘마니들이 한마디씩 했다.
“흥, 이제라도 굽신거리는 것을 보니, 예의를 아예 모르는 놈은 아닌 모양이구만.”
“너 이 자식, 운 좋은 줄 알아.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저 상처를 잘봐. 저게 어디서 얻은 상처라고 생각해? 바로, 얼마 전에 와해된 아드리아해 최고의 범죄조직 우스타샤와 한판 하고선 얻은 상처시라고. 다들 제국군에 우스타샤가 진압된 걸로만 알지만, 사실 그전에 이미 우스타샤를 박살내고 그 두목이랑 결투를 벌여서 쓰러뜨린 것이 우리 두목이라고.”
“어이쿠, 이런. 그 우스타샤를 쓰러뜨린 분을 뵙다니.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여기, 몇푼 안되지만 제가 여기서 일하는 것에 허락을 구할 겸 해서 한잔 사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품에서 제법 많은 은화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분위기는 전환되었다. 그걸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우스타샤는 무슨. 제국군에 뇌물 찔러주려다 박살나고 온 주제에. 하지만,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그걸 말하는 것은 자살 행위겠지. 그리고 조금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 속으로는 루카가 이 녀석을 처리해주길 바라면서도 그걸 못내 하지 못한 내 한심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자괴감을 느꼈다. 그리고 와인이 한번 돌고, 퍼브가 흥겨워질 무렵에 그가 나에게 말없이 미소지으며 잠시 나가자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따라 나갔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제국군에 악감정을 가진 분이신 모양이죠?”
“딱히. 말썽이 벌어지는 것을 보기 싫었을 뿐이요.”
그는 나의 말에 더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미소지었다. 밤이 깊은 시간이라 훤하게 뜬 달이 밝았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그리고 그가 조금 생각을 하더니 나를 보지 않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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