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2
내가 조금 민망해서 머쓱하려는 순간 방에서 환성이 울려퍼졌다.
“바로 이거다아아아아!!!!!”
“히이이익!!! 황후 마마?”
“카밀라 네가 또 나를 구했구나. 그래, 바로 그것이다. 광고와 마케팅. 그리고 신비주의. 거기에 소비자의 은밀한 도발. 완벽하다. 바로 그것이 이번 상황에 대한 최선의 해법이다. 오오오··· 주여. 저에게 이런 지혜로운 아이를 보내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구나 카밀라. 네가 나와 제국을 구했다. 망설일 필요 없이 곧바로 그 방법을 실행하도록 해야겠다. 식량국장!!! 들었지?”
“오오오··· 공녀님의 지혜를 찬양하라. 잘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 곧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세워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공녀님···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의 공은 모두 공녀님의 몫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세부 계획을 세우러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뭔가 얼렁뚱땅 말한 것이 정말로 정책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획은 순식간에 구체적으로 세워졌다. 우선 오징어를 금지시키는 법안을 발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법안의 발의가 신속하게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사전에 요하네스 의원이 이끄는 의회파와의 법안 가결에 대한 합의도 마쳤다.
그런 법안 합의 요청에 대한 요하네스의 의견은 제국의 대국적인 관점의 오징어 장려를 위한 눈속임이라면 의회파도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오징어가 허락될 특권층은 제국 황실과 군부로 한정지었다. 원래는 귀족들로 규정을 하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어획량이 많은 오징어를 관심을 끌기 위해 잠시 유통을 중단시키는 상황에서, 귀족들만의 수요로는 진행 과정에 어마어마한 오징어가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독점 대상을 군으로 까지 넓혀서 책정하였다.
마침 명분도 좋았다. 청어의 품귀로 인해 부족한 영양보충 대체 수단을 최우선적으로 군이 확보해야 한다. 준전시 상황에서 군의 식량 비축은 필수 사항이니 말이 안된다고 할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법안에는 앞으로 오징어는 황실과 군부에서만 허락되고 나머지 일반 시민들은 금지한다는 것을 명시해서 작성되고 그 발의를 앞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황후 마마를 도왔다는 점에 뿌듯함을 느꼈을 뿐, 그 일련의 상황이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 눈앞에 오징어 금지 법안과 산더미같이 잔뜩 쌓인 오징어 튀짐 접시가 내밀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이게 뭔가요? 식량국장님?”
“보시다시피 오징어 튀김입니다.”
“그건 알죠. 근데 그걸 왜 저한테 주세요? 그것도 이렇게 산더미처럼 많이?”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가 공녀님이시니 그러시죠.”
“네에?!!!”
얀의 말은 이랬다. 나는 그저 아이디어를 낸 정도라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 황후 마마와 식량국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오징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에 최고 책임자를 나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발의를 내가 했고, 내 입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무리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인해서 이번 오징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오징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그것을 금지하는 세력의 주체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번 오징어 프로젝트의 악역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어째서요!!! 왜 제가 그런 악역을?!!!”
“공녀님이시지 않습니까? 공녀님이요. 다른 사람도 아닌 공녀님이시니깐요.”
이 돼지는 마치 공녀가 무슨 모든 일에 다 가져다 붙여도 되는 마법의 단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반응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이놈의 제국에서는 공녀가 무슨 나에 대한 고유명사냐?!!! 그리고 왜 그게 납득이 되는 건데? 그러한 나의 경악에 식량국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오징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오징어를 금지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존재의 압도적인 권위와 당위성과 타당성이 따라야 합니다. 저처럼 그냥 이름도 모르고 크게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이 오징어를 금지한다고 해봤자, 크게 이슈가 되지 않고 관심도 받기 어렵죠. 그냥, 복잡한 행정 규제가 하나 더 늘었나보다 하고 말겠죠. 그래서, 그런 법안의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거물급이 나서줘야 합니다. 사실, 그래서 제일 좋은 것은 황제 폐하께서 나서주시는 것이 좋기는 하죠. 근데,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아니, 왜요? 뭐로 봐도 황제 폐하가 최적임이신데? 사안이 황제께서 나서시기는 하찮다는 건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황제 폐하가 드신 술집 외상값이요. 그거, 은근히 액수가 큰데 조사해보니 다수의 술집 주인들이 가게에서 오징어 튀김을 취급하고, 황제께서 그걸 안주로 드셨더라구요. 황제께서 황궁 밖에 몰래 나가서 외상으로 술마시고 오징어 튀김 먹고 오시는 걸, 콘스탄틴노플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데, 그런 황제가 뜬금없이 오징어를 금지한다고 하면 뭔가 말이 앞뒤가 안맞지 않겠습니까?”
사안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 황제 자체가 하찮았다. 아아악!!! 이 망할 황제! 제발 좀 체통 좀 지키라고. 그리고 얀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좀더 진지한 이유로 오징어를 금지할 거물급이 필요합니다. 마침, 오징어를 독점할 대상이 군으로 규정된 시점에서 군의 상층부에 있고, 그러면서 시민들의 인지도도 높은 공녀가 최적임자라는 것이 최종적인 결론이었습니다. 황후께서도 공녀가 적임자라 말하시고 의논하여 진행하라 명하시기는 하셨지만, 그와 별개로 간청드립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모든 식량국 직원들이 고개 숙여 간청드리옵니다.”
“간청드리옵니다.”
나는 뚱땡이를 비롯하여 일제히 나를 보며 고개를 숙이는 식량국 관료들의 태도에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부할 수도 없었고. 아니, 대체 이게 뭔 일이야. 나는 그냥 아이디어를 던졌을 뿐인데. 왜 갑자기 이런 귀찮은 일에 말려들게 되는 거야? 하지만, 나는 도와주겠다고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결론은 나온 부탁이니깐. 망할 놈의 내 팔자야. 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데 내 앞에 내밀어진 것이 있었다. 방금 전 그들이 가져온 산더미 같은 오징어 튀김이었다.
“이··· 이건 뭔데요? 설마, 이걸 저보고 먹으라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드셔 주십시오. 장소는 시민들이 멀리서 볼 수 있는 부콜레온 궁전 외궁 테라스 테이블에서 드셔 주십시오. 가능하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을 수 있냐는 듯한 감동하신 표정으로 최고로 맛있게 드셔주십시오. 지나가던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보고선 침을 꿀꺽 삼킬 정도로요. 시민들의 욕구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광고가 필수입니다. 자, 분장이랑 연출 준비됐지? 조명도 서둘러. 광고 노출 들어간다. 서둘러!!! 60초 안에 마무리해야 해.”
“자··· 잠시만요!!! 저는 오징어 별로 안좋아한다고요!!! 아악!!! 저렇게 큰거··· 아니, 많은 거 다 안들어가!!!”
그렇게, 나는 뜬금없는 광고 모델이 되어서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오징어 튀김을 백주 대낮에 외궁 테라스에 앉아서 쉴새없이 어마어마하게 처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지나가던 시민들은 나를 보면서 수근거렸다.
“어? 저거 봐. 공녀잖아? 근데 지금 저기서 뭘 먹고 있는거지?”
“오징어 같은데? 키야. 되게 맛나게 먹네. 그러고 보니 요새 청어도 비싼데, 오늘은 오징어라도 먹을까?”
“우리집은 무리. 집사람이랑 친정 식구들 유대교도잖아.”
반응은 그냥저냥 오징어를 먹는구나 정도였다. 나는 그날 콘스탄틴노플 시민들이 다 볼 정도로 오랜 시간 어마어마한 양의 오징어를 먹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제국 의회에서 의장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황당한 법안을 발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점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의장은 나의 발의에 어이없어 하였지만, 나는 진지하게 전시 군대 식량으로 오징어를 군에서 독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토로하며 그 법안의 지지를 요구하였다.
몇몇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의원들이 반발하기는 했지만, 황제파 의원들과 요하네스의 사주를 받은 의회파 의원들은 법안에 타당성을 인정하고, 장시간의 법안 검토 기간을 두지 않고 졸속으로 법안을 가결하여 주었다. 그렇게 법안이 가결된 이후 나는 또 오징어를 먹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콘스탄틴노플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사건에 대해서 시민들이 느낀 첫 반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앞으로 오징어를 유통하거나 먹는 것을 금지한다고? 갑자기 왜?”
“우리야 생선을 잘 안먹는 카자크인이니 큰 상관은 없지만, 갑자기 그러니 뭔지 궁금하네? 오징어라는 생선이 대체 뭔데?”
“그걸 공녀가 발의했다고? 뭐지? 공녀가 왜 갑자기 그런 뜬금없는 법안을? 지금은 청어가 이슈인 것 아니었나?”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법안 통과에 저마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평소대로라면 황제파의 법안에 요리조리 트집을 잡던 의회파의 거두 요하네스가 순순히 법안을 통과시켜 준 것에도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요하네스에게 물어보자 요하네스가 말하길.
“에휴. 힘없는 야당이 뭐 어쩔 수 있나. 다들 알지 않소? 이번에 카자크인들의 제국 합류로 카자크 출신 황제파 의원들이 다수 의회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차기 의회 의장에 퉁기스 의원이 물망에 오를 정도로 황제파가 대세인 상황인데, 소수인 우리가 아무거나 마찰을 부리기 어렵지. 그래서, 이번 법안은 합의해주고 다른 중대한 일에는 양보 받을 심정으로 찬성해 줬소. 뭔가 문제라도? 의문점이 있다면 그건 공녀에게 물어보도록 하시오.”
시민들은 더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나한테까지 와서 그것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법안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탓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들 생각하기를···
“좀 뜬금없기는 하지만, 품귀 현상이 일어난 청어에 비하면 뭐 별일도 아니구만. 오징어 못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금지한다고 해도 실제로 뭘 어떻게 금지할건데? 그냥 형식적인 법안일 것이 뻔해.”
“맞아맞아. 우리기 오징어 먹겠다는 걸 와서 뺏어갈거야? 그러고 보니 오늘도 공녀는 황궁에서 오징어 먹던데, 되려 오징어, 오징어 하니깐 먹고 싶어지네. 그딴 법안은 무시하고 오징어 그냥 먹자고. 설마하니, 별일이야 있겠어?”
나는 오징어를 먹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여론을 듣고 기가 막혔다. 젠장할, 나도 좋아서 먹는 것 아니라고. 왜 이놈의 오징어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아. 그리고 사람들이 앞으로 겪게 될 오징어와 관련된 상황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야 겨우 바닥이 보이는 오징어 접시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라? 공녀님, 오징어 튀김 다 드셨다. 자, 다음은 오징어 순대를 가져와라.”
야! 이!!! 오징어 더 못먹겠다고!!! 이 망할 뚱땡이 자식아!!! 그렇게 내가 오징어에 질식하는 동안 시민들은 서서히 상황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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