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
‘퉁!’
순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응? 이게 뭐야? 당장이라도 칼날이 내 목에 파고들어 몸통에서 분리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퉁? 원래 사람 몸에 칼이 이렇게 안드는 거였나? 그런데 그때,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부와···”
‘퉁!’
연이어 왼쪽 어께에 다시 칼이 툭 내리쳐졌다. 그리고 황제의 말도 이어졌다.
“성자와···”
‘퉁!’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위에 칼날이 살짝 내리쳐졌다. 뭐··· 뭐야? 이건? 그리고 다시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를 서임하노라. 이제 그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니··· 오직, 주님과 황실과 약자의 검으로 존재할지니라.”
뭐··· 뭐야? 이게?!!! 나는 당황하여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뜬 내 앞 바닥에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떨어졌다. 방금 전에 내 어께와 머리를 툭 친 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얼떨결에 들어올리자, 황제가 겨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네 아비보다는 차라리 네가 죽는 것이 더 괜찮은 일이지. 그리고 그런, 너의 각오는 확실하게 들었다. 네가 말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전부 다 네가 받아라. 네가 떠나면 조금 쓸쓸해지겠구나. 앞으로 누가 나한테 와인을 몰래 까주려나? 하지만, 내가 아쉽다고 멀리 날아갈 새를 붙잡아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벌써부터 네가 그리워질 것 같구나.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 카밀라.”
뭐? 뭐라고?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황제가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보다는 죽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영문도 모르고 살아났다는 사실에 넋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런 말과 칼을 툭 던지고 황제가 어전에서 물러나자, 그제서야 황급하게 달려온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의무실로 옮겨져도 이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실신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깐. 그렇게, 나는 거의 기절하듯이 나가 떨어졌고, 내가 겪은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뭐, 뭐라고요? 다시 말해보세요.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사형이 아니었다고요?”
“응? 황제 폐하와 사전에 협의하고 연극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호오라··· 이번 건은 그렇다면, 소수 의견이 맞아버렸군요.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렸죠. 대부분은 공녀님이 황제와 사전 합의를 하고 한 짓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그 결과의 파격성 때문에 소수 의견으로 이번 사안만은 사전 합의가 아닌 공녀의 돌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는데··· 후자가 맞았을 줄이야. 이제, 공녀를 단순히 황제의 챔피언이 아닌 동업자 수주으로 격상시켜서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감탄하는 요하네스를 보면서, 그가 가지고 온 병문안 선물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딴 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엉뚱한 소리는 그만 집어치우시고, 물어본 것에 대해서나 설명을 해주세요. 그게 사형이 아니었다니? 대체 무슨 소리에요? 틀림없이 황제 폐하는 제 아버지에게 죽음을 명한다고 하셨다고요. 근데, 그게 사형이 아니라니, 그게 대체 뭔 소리냐고요?”
“공녀, 황제는 틀림없이 책임을 지고 죽음을 명한다고 했지, 사형을 선고한다거나 처형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다른 말입니다. 사형은 피의 사실에 대한 근거로 피의 대상을 소멸시키는 행위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책임이고 뭐고 없죠. 그냥 죽으면 다 끝인걸요. 그래서, 그 말은 처형을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어떤 형벌의 선고에 따르는 관용구에 가까운 말입니다. 그리고, 그 형벌은 바로··· 충군형입니다.”
“뭐··· 뭐라고요? 충군형? 죗값을 군복무로 대체하는 그 충군형 말하는 거에요?”
나는 요하네스의 설명에 어이가 터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아니, 그게 대체 뭐야!!! 있는 대로 죽일 것처럼 분위기 잡아 놓구선, 정작 선고한 형이 겨우 충군형이라니? 그게 왜 목숨으로 갚으라는 말이 나와!!! 나는 그 어이없는 요하네스의 설명에 격분하여 질문했다. 그리고, 요하네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회적인 관점으로는 그거 처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충군형이라는 것이 단순히 죗값을 대신 치르려고 군복무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군복무를 함에 있어, 그런 죄인들만 복무하는 형벌부대에 소속되게 되고,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권리는 모두 말소된 상태로 복무하게 되죠. 그래서, 광의의 의미로서 충군형은 집행 기간 중에 사회적으로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죄인의 가족들도 죄인을 암묵적으로 죽은 것으로 여기고, 장례를 치르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형벌부대의 복무가 열악해서 정말로 사망하고 형기가 만료되는 사람도 많고.”
이 썩을 놈의 제국은 대체 왜 이런 쓰레기 같은 관용구가 넘쳐나!!! 여기 사는 인간들은 죄다 단순한 것이 도를 지나쳐서, 비정상적인 수준에 다다르면서 말이야!!! 애초에 그런 거지 같은 관용구 덕분에 오게 된 것도 빡치는데, 이번에도 또 이 빌어먹을 관용구가 속을 뒤집네. 그냥,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충군형이라고 했으면 이런 삽질도 없잖아!!! 근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뭐? 충군형?
“아니, 저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충군형이라니요? 행여나 제국 시민이라면 납득이 갈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그것을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저희 아버지에게 선고하는데요? 제국 시민도 아닌 헝가리의 공작인 저희 아버지에게 지금 제국군에서 신분과 지위를 떼고 복무하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선고입니까? 이건, 저희 조국이 아니라 제국 측이 도리어 선을 넘은 경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공녀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제국 시민이 아닌 템즈 공작에게 충군형을 내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선고죠. 애초에 외국인인 그를 제국군에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격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깐요. 그런데 왜 말도 안되는 충군형을···”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사건은 황제가 언급하였다시피 단순히 개인 간의 폭행과 모욕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미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국가와 국가의 관점에서 따져보아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시야를 조금 더 넓혀 보면, 평소라면 존재할 수 없는데, 생각치도 못하게 그가 충군형을 살아야 하는 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생 헝가리군 입니다.”
“······!!!!!!”
뭐··· 뭐라고? 신생 헝가리군? 내가 머리 속에 사고가 정지된 상황에서 요하네스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사건의 계기는 우리 제국의 우방인 헝가리에게, 지금까지의 종속국의 지위를 격상시켜서 동등한 수준의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협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로크슈에서 십자군과 같이 제국에 참패하여 군사력이 와해된 헝가리는, 이전까지는 제국에서 파견된 군대가 주둔하면서 그 무력을 통해서 사실상 제국의 종속국으로서 관리하고 있었죠. 하지만, 공녀가 제국에 온 이래 공녀의 노력과 진심을 통해 제국은 점차 헝가리에 대한 관용에 동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인해 그런 생각은 더 가속화되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제국군이 파견되어, 비하하는 표현으로 일각에서는 마자르 테마라고 까지 부르던 헝가리에게 제국은 군의 파견을 해제하고, 그 대신에 헝가리로 하여금 스스로 자국을 수호하고 제국의 동맹국으로서 방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군의 재편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지원을 제국군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하기로 약속하였죠. 그래서, 예전에는 제국의 주도하에 헝가리가 끌려나오는 식으로 현지 병력이 배치되었다면, 앞으로는 헝가리의 주도하에 군사령관과 군정관을 헝가리인으로 선발하고, 제국군이 보조하는 형식의 헝가리군을 재편하여 제국과의 연합군을 형성한다는 것이··· 이번 회담의 요지였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요하네스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제국 측에서는 이번에 새로 구성할 헝가리군에 선임할 사령관을 선임할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자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동시에 대단히 위험하기도 한 자리죠. 아직 헝가리 내부에서는 반 제국 성향의 영주들이 신성동맹의 사주를 받아 제국에 대항할 생각이 가득하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국군과 달리 봉건제로 운영되어 지금까지 제대로 국가의 상비군을 운영해본 경험이 부족한 헝가리의 입장을 고려할 때 그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 한가지 더, 제국에 대해 우호적이고 결코 배신하지 않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아마도 제국 군부에서는 오랜 심사숙고 끝에 그 과제를 맡아줄 사람으로, 공녀님의 부친인 템즈 공작을 물망에 올린 모양입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 봐도 최적임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더군요. 공녀를 보낸 헝가리 내의 친 제국파이며, 아르파드 왕실의 책사로 불리는 유능하신 분이고, 반 제국 성향의 북부의 영주들과도 대립각을 세우는 입장이시라면서요? 뭐, 과거 비텔스바흐 바이에른과의 혼담을 논한 사실이 다소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요구 사항에 적합하신 분이 공녀님의 아버님이십니다.”
와··· 우리 공작님 신뢰받고 있구나. 제국의 친절한 이웃, 템즈 공작. 물론, 본인이 들으면 환장할 일이겠지만. 내가 멍하니 농담이나 떠올리는 동안 요하네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제국의 입장에서는 공녀님의 아버님을 선임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국의 지원 하에 헝가리군을 재편하는 일입니다. 검증을 마친 인물이라고 하지만, 행여나 그분이 제국에 반하는 반응을 하실 경우, 제국군이 기량을 끌어올린 우방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적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것도 제국군에 대해서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맡아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된 바가 없구요. 행여나, 그분이 그 자리를 정색하고 거절한다면, 헝가리군은 시작부터 꼬이는 상황에 직면하였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황제는 아마도 그분에게 확고하게 배신하지 못할 입장과 그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상황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침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건이 터졌죠. 황제는 그것을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였을 겁니다. 폭행 당하신 공녀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저도 공분하기는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우기자면 그 사건은 집안에 일로 치부되도 할말이 없는 일이죠. 그것을 황제는 공녀의 소속을 근거 삼아, 국가와 국가의 일로 비약시켰습니다. 그래서, 공작으로 하여금 제국 측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으로 몰아갔죠.
그래서, 그 죄의 대가로 재편할 헝가리군에서 제국의 입장에 가장 알맞은 수장이 되라는 것이 황제가 공작에게 건넨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입니다. 공작은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는 죗값이라는 족쇄로 단단히 연결된 제국군의 신용할 수 있는 동맹군 사령관이 되는 것이었죠. 그것으로 모든 것은 순조로운 예정이었습니다. 공녀가 돌발 상황을 벌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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