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불루疎而不漏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
"우리 귀검이 있지 않았나?"
풍불지가 질문했다.
"위종이 죽은 자리에 몇 자루 있었던 기억이 나긴 해."
악불형이 대답했다.
"아무도 안 챙겼나?"
팽창회가 중얼거렸다.
"그거, 꼬마 도사가 수습한 거 같은데."
홍기영이 커다란 대문에 난 귀검을 넣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세 개의 구멍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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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귀검이 있지 않습니까?"
금의위 지휘사가 위 태감한테 속삭였다.
품계로 따지면 금의위 지휘사는 정삼품의 고관이고 태감은 사품이다. 그것도 후궁처럼 품계만 있고 실권은 없는 허울뿐인 관직이다.
그러나 지휘사는 엔젠가 장인태감이 될지도 모르는 위 태감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걸 전혀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우린 저놈을 생포해야 하오."
기관 사내의 몸은 비록 그간 최대한 회복하긴 했으나 누가 봐도 주검이다.
황 태감한테 빈집 털릴 것을 알면서도 모험을 선택한 위 태감으로선 어떻게든 양무원을 산채로 황태자 앞에 진상해야 한다.
"생포하지 못하면 큰 해악을 끼칠 놈입니다."
지휘사의 거듭된 간언에 위 태감이 얼굴을 찌푸렸다.
뒷배가 있어 정삼품 지휘사가 된 놈과 달리 위 태감은 딱히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 유근이야 양부 덕분에 스무 살 때부터 큰 권력을 휘둘렀다지만, 위 태감은 양부가 없을뿐더러 황 태감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부귀험중구富貴險中求
부귀영화를 위해선 아무리 큰 위험이라도 감수해야 한다.
"누가 와서 이놈의 목을 자르시오."
귀검이 있다고 나서는 자가 아무도 없자 구후영이 차선책을 꺼냈다.
이대로 계속 제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머리를 자르는 거로 놈이 죽는다면 그건 그대로 좋고, 아니어도 머리와 사지를 잘라 여유를 얻은 후 귀검을 찾아 놈을 진정한 죽음으로 인도하는 수가 있다.
"그놈은 금강불괴요."
누군가가 외쳤다.
"지금 놈의 힘을 소모하고 있소. 곧 금강불괴가 사라질 것이오."
"금강불괴가 사라진다. 금강불괴가 사라진다. 지금 사라지는 게 금강불괴의 힘이구나."
다급히 중얼거리던 양무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괴이한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놈이 회복한다!"
양무원의 가슴에 난 상처가 천천히 회복하고 있고, 대신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그에 위 태감은 심정이 오묘했다.
양무원이 안 죽을 것 같다는 안도감과 저런 괴물을 황궁으로 들이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구심이 동시에 생겨 이제라도 귀검을 꺼내는 게 아닌지 더없이 갈등했다.
반면, 양무원은 더없이 의기양양한 마음이었다.
'끊임없이 생기를 흡수해 몸을 유지하고 한편으로 정신을 단련하면 영생한다.'
양무원은 어느새 마교의 교주가 되어 강호를 일통하고 세상을 호령하는 꿈을 버렸다.
고작 수십 년의 부귀영화보단 영생을 이루는 게 훨씬 낫다.
'금강불괴가 깨지지 않는다.'
최근 생긴 주검도 반 시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무려 이백 구나 되지만, 양무원에게 많은 '힘'을 주진 못했다.
그러나 그 조금의 차이로 양무원의 금강불괴가 깨지지 않았다.
'더구나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계속 힘을 흡입할 것이다.'
문제는 귀검 빼고 양무원을 죽일 방법이 없다.
양무원의 금강불괴는 원경의 금강불괴와 이름만 같을 뿐 모든 게 다르다.
사대신협이 힘을 합치면 원경의 금강불괴를 깰 수 있지만, 양무원의 금강불괴는 천마가 와도 소용없다.
"한 자루에 은자 천 냥이요. 혹시 귀검이 있으면 어서 내놓으시오."
양무원은 아까보다 약해졌다. 게다가 밧줄에 묶였다.
다시 제압하는 건 구후영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후영은 황태자가 불로장생의 비밀을 알아내는 걸 원치 않았다.
비밀을 알아낸 황태자가 공청석유를 찾는다며 국력을 허비할 것이고, 국고가 거덜 나면 당연히 백성을 더 수탈할 것이다.
천하에 혼란이 오고 왕조가 바뀔 것이며,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다.
그렇기에 구후영은 어떻게든 양무원을 이 자리에서 죽이고 싶었다. 반쯤 미친 황태자가 온갖 수단으로 방해하기 전에.
모두가 침묵하는 사이.
천공교검은 어느새 손잡이까지 양무원의 가슴 안으로 사라졌다.
"애석하구나."
전대모검이 완전히 사라진 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회복하는 양무원의 상처를 보며 옥무영이 작게 한탄했다.
반절도로 전해지는 반탄력은 놈의 금강불괴가 깨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때.
강렬한 말발굽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소영횡사수청천疎影橫斜水淸淺
얕고 맑은 물에 앙상한 가지가 가로 세로로 비껴 있고,
암향부동월황혼暗香浮動月黃昏
황혼의 달빛 속에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떠도누나.
거대한 푸른 말을 타고 나타난 야윈 듯한 한 여인의 모습이 구후영의 눈에 흐릿하게 비쳤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몸에 나는 은은한 향은 어느새 구후영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공자!"
단아의 손에서 몇 자루의 귀검이 날아왔다.
"귀연 도사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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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는 구후영이 자신을 위해 어렵게 이룬 경지를 망가뜨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구후영의 결정을 듣자마자 편지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
지난 삼 년여.
단아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꾹 참고 중원은 물론 약초로 유명한 곳은 다 돌아다녔다.
그러나 꼭 필요한 약재 십여 종은 시종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백두산을 찾았다.
백두산엔 청로옥서환에 들어가는 약재 대부분이 있다고 기록됐다.
문제는 그때랑 지금이랑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는 백두산이 폭발하며 대부분 풀과 나무가 죽었다. 오로지 강한 힘을 품은 약초들만 살아남았고, 덕분에 귀한 약초를 쉽게 발견하고 캐냈다.
지금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여 약초를 구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온갖 맹수들이 목숨을 위협하고 온갖 풀 짐승들이 약초가 자라기도 전에 먹어 치운다.
그림이 있다고는 하나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단아가 청로옥서환에 들어가는 귀한 약초를 찾아낼 리 만무했다.
"혹시 단아 도우道友 맞습니까?"
약초가 있을 법한 곳들을 찾아다니는 단아한테 어린 도사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도사는 누구십니까?"
상대의 몸에 무공을 익힌 흔적이 전혀 없었지만, 단아는 오히려 경각심을 크게 키웠다.
"소도는 모산파 장문 귀연입니다. 구후 도우와는 형제와 같은 막역한 사이죠."
"그래서요?"
단아가 여전히 경각심을 버리지 않자 귀연이 손을 들어 옆머리를 긁었다.
"구후 도우께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할 건데 힘이 모자랍니다. 단 도우께서 소도를 대신해 구후 도우를 도왔으면 합니다."
말을 마친 귀연이 귀검 몇 자루를 꺼내 단아한테 건넸다. 그러곤 봇짐에서 괴이한 문양을 그린 뼈를 잔뜩 꺼내 허공에 뿌렸다.
"이대로 북쪽으로 쭉 달리면 청총과 만날 겁니다. 그러면 청총이 당신을 구후 도우한테 안내할 겁니다."
"말이 날 안내한다고요?"
"청총은 공청석유를 마시고 변이한 말입니다. 구후 도우 역시 공청석유의 힘을 몸에 받아들였죠. 그래서 청총은 말이 아닌 구후 도우를 동족으로 생각하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상대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느끼죠."
'청총이 수컷이었지.'
난데없는 안도감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단아는 더는 의심하지 않고 귀연이 말한 대로 북쪽으로 쭉 달렸고, 이틀 만에 청총을 만나 구후영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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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후영은 단아가 던진 귀검을 받아 양무원의 가슴에 박았다. 심장이 녹는 고통에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던 양무원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처절한 악다구니와 함께 양무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에 심한 탈력감을 느낀 구후영 등은 제압을 포기하고 황급히 양무원한테서 떨어졌다.
다행히 이게 양무원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귀검이 가슴에 파고들자 양무원도 더는 '힘'을 강탈하지 못했다.
"으악!"
양무원이 악을 쓰며 귀검의 힘에 저항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양무원의 금강불괴가 절대적이었던 것처럼, 귀검이 심장을 녹이는 힘 역시 절대적이었다.
양무원의 가슴에 박힌 귀검들이 열흘 굶은 맹수처럼 탐욕스럽게 심장을 먹어 치웠다.
그러는 사이, 구후영은 단아한테서 귀연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들었다.
덕분에 그간 제멋대로 굴러다니던 몇몇 조각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
청총은 공청석유를 마시고도 안 죽은 말이다.
덕분에 털 색이 변하고 수명이 길어지고 힘이 세지고 머리도 총명해졌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말을 구분했다.
그래서 같은 공청석유의 힘을 품은 구후영을 만나자 만 마리가 넘은 커다란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를 쉽게 버렸다.
모용건은 아마 청총의 유래에 관해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청총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급히 출발했고, 결국엔 공청석유를 찾긴 했으나 깊이 잠들어 위종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떠나기 전에 모용연한테 소공자를 부탁한 거로 봐선 본인도 음모의 가능성을 모르진 않은 듯했으나, 불로장생 혹은 절대 고수의 유혹을 못 참은 모양이다.
'이러려고 날 길치로 만든 것인가?'
그날 구후영이 길을 잃지 않았다면, 양무원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구후영이 길을 잃지 않았다면, 진짜 동생을 납치한 네 대주 대신 도굴꾼 일행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구후영이 길을 헤매지 않았다면, 악불형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돌잔치에 참석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얼핏 성긴 듯하나 어떤 죄악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촘촘했다.
"크큭."
고통에 몸부림치던 양무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본인이 느끼기엔 이번엔 틀림없이 죽을 것 같았는데, 용케도 귀검이 다 사라질 때까지 심장이 완전히 마멸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이은 시련 덕분인지 생기를 흡수하는 능력이 강해졌다.
오늘 고비만 넘기면 영생을 이뤄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더는 허황한 꿈이 아니다.
"낭자. 내 마음은 그댈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소."
갑작스러운 구후영의 고백에 단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래서 말인데."
구후영이 잠깐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비수를 내가 좀 써도 되겠소?"
"아!"
귀연의 말대로 청총을 타고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단아는 일의 자초지종을 미처 몰랐다.
그러나 구후영이 비수를 언급하자 순식간에 모든 걸 깨달았다.
"그 마음이 평생토록 변치 않을 자신이 있다면 가져가세요."
단아가 귀검 세 자루를 합쳐 만든 비수를 꺼내 구후영한테 건넸다. 구후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비수를 받아 든 후,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양무원의 곁에 나타난 구후영은 상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비수를 가슴에 꽂았다.
그간 칠십 자루가 넘는 귀검에 시달리며 겨우 허울만 남았던 심장이 끝내 녹아 사라졌고, 양무원의 몸은 그대로 재가 되어 차가운 북방 초원의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이군."
끝이 사라져 이상한 모습이 되긴 했으나, 비수는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유지했다.
"낭자. 이 비수는 왕 야장한테 부탁해 모양을 다듬은 다음 정식으로 선물하겠소."
그에 단아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대로도 좋습니다. 아니, 이대로가 더 좋습니다."
- 작가의말
내일 마지막 화입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당분간 푹 쉴 생각입니다.
글 때문에 무리한 건 없지만, 코로나에 걸린 후 쭉 탈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무리를 앞두고 심정이 다소 복잡합니다. 이만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훨씬 더 재밌게 쓸 수도 있지 않았냐는 후회도 듭니다.
차라리 황궁, 마교, 소림, 무당 등이 비밀을 알고 각자 다른 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다면 더 큰 스케일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하기도 합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니, 이 글에서 느낀 아쉬움은 다음 글에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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