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풍호雲龍風虎
논어에서 이르길 공자는 일찍.
동성상응同聲相應 동기상구同氣相求 수유습水流濕 화취조火就燥 운종룡雲從龍 풍종호風從虎.
라고 하였다.
같은 소리는 어우러져 함께 울리고 같은 기운은 서로 합치려 한다. 물이 흐르는 곳은 습하고 불이 타는 곳은 건조하다. 용이 날면 구름이 좇고 범이 뛰면 바람이 따른다.
위종과 천마의 만남이 바로 이러한 게 아니지 싶다.
'이건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정해진 숙명인 건가?'
위종은 덩치가 작고 몰골이 꾀죄죄했다. 발 하나를 다친 바람에 지팡이를 짚었는데, 지팡이마저 길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나뭇가지였다.
천마는 기세가 헌앙한 헌헌대장부다.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에 누구여도 반할 매혹적인 미소가 머물렀다. 긴 팔다리가 시원하게 뻗었고 몸에 강인한 기운이 서려 있다.
그런데도 구후영의 눈엔 둘이 비슷한 사람으로 보였고, 둘의 만남은 하늘이 오래전에 이미 정해 세상 누구도 못 막았을 필연으로 여겨졌다.
'중원에 도착한 천마가 칠살문의 후예인 초명선이 몸담은 문파에 의탁한 것부터 하늘의 뜻이라고 여길 수밖에.'
서로 왕래가 없던 다섯 가문의 후계자가 친우가 된 건 위종이 수작을 부린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종이 시종 유심산무심有心算無心(모든 걸 아는 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자를 음해)으로 유리한 위치였던 걸 생각하면, 사태가 현재 상황이 된 건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명명 중에 개입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 위종이란 자가 이기면 다들 어찌할 생각이지?"
팽창회가 일행에게 질문했다.
"힘을 합쳐 놈을 죽여야지."
풍불지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서불의 기억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위종이 얻게 해선 절대 안 된다는 공감쯤은 어느새 형성되었다.
"만약 초무선이 이기면?"
이어진 질문엔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초무선은 서불이란 자의 모든 기억을 얻었다. 기억이란 게 책 같아서 아직 펼쳐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벌써 뭔가 대단한 걸 알았을지도 몰라."
조금씩 빨라지고 기세도 강해지는 천마를 바라보며 팽창회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초무선이 장생불로하면 어떻게 될까?"
천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강호의 안녕과 마교의 교도들을 위해 마교 교주라는 가시만 가득한 왕관을 묵묵히 감내한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러나 성품과 무관하게 천마처럼 강한 자가 영생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는 누구도 쉬이 판단할 수 없었다.
"난 세상에 욕심이 없다."
다들 침묵하는 가운데 천마가 입을 열었다. 아까 위종이 뒷짐을 진 채 환허밀공에 기대 수비하던 여유로움과 비교하면 조금 손색이 있으나, 헌앙한 외모 덕분인지 보는 사람에게 더없는 안정감을 선사했다.
"장삼풍은 경지의 끝을 봤고, 난 강함의 끝을 봤고, 공유는 균형의 끝을 봤다."
원경의 눈에서 희미한 빛이 명멸했다. 천마는 그저 던진 말이지만, 공유의 의발전인인 원경으로선 부처가 직접 세상의 진리를 귀에 속삭여주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불로장생한다면 장구한 세월을 경지의 끝과 균형의 끝을 보는 데 쓸 것이고, 둘을 이룬 후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것이다. 무도의 최고봉이 되어 세상에 무의 끝이 어디인지 똑똑히 알려줄 것이고, 만족하지 않고 또 높은 곳을 바라볼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요."
구후영이 천마의 말을 반박했다.
"당신이 세상에 뜻이 없다고 해도 당신을 추종하는 자들이 모여 세력을 일굴 것이고, 당신의 이름으로 뭔가를 행하려고 할 거요. 그런 자들은 아무리 숙청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결국 황실은 당신을 제거할 수밖에 없을 거요."
황실 입장에서 영원히 사는 무신武神이 달가울 리 없다. 천마가 아무리 세상에 뜻이 없다고 외쳐도 강호와 황실은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한다.
온 강호와 세상이 천마를 적대할 것이고, 이는 절대 세상에 이롭지 않다.
"내가 피하면 그만 아닌가?"
"진정한 도는 속세에서 닦는다고 했소. 당신이 진정 무의 끝을 깨달으려면 결국 인간과 부대껴야 하오."
구후영의 반박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도리가 있어. 내 생각이 짧았군. 젊은 친구가 보기엔 내가 어찌 행동하는 게 옳은 건가?"
거침없던 구후영의 말문이 턱 막혔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천마가 죽은 사람처럼 지내면 된다.
그러면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되어 천마의 이름 아래 세력이 뭉치는 일도 없고, 강호와 황실이 천마 때문에 불안에 떠는 일도 없고, 천마 때문에 천하에 혼란이 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천마가 왜 그래야지? 우리 손에 죽기 싫어서?'
위종보다 반 수 혹은 한 수 아래로 보이는 연 선생도 일행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했다. 지금 팽창회가 더 있긴 하나 천마를 이긴단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너희는 나를 도와 이자를 죽여야 한다."
공격을 멈추고 천마와 거리를 벌린 위종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강호가 사라진다. 세상에 더는 무인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영생하는 천마라니.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구나."
"날 도와 천마를 죽인다고 약속하면 내가 문을 열겠다."
"우릴 설득할 자신이 있는가 보지?"
풍불지의 비아냥에 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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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건이 화한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태자가 갑자기 기절해 쓰러졌다.
"전하! 전하! 어서, 어서 어의를 부르라!"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황제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장생불로는 사도이니라. 고된 수련으로 신선이 되어 승천하는 것만이 정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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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신선도 부처도 없다. 소위 말하는 신선이나 부처는 장삼풍이나 달마 같은 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상상해낸 것이지."
위종이 말했다.
"현실을 말하자면, 나나 천마가 무의 한계고 예전의 서불이 술의 한계였다."
그에 귀연이 눈을 반짝였다. 모산파의 장문으로서 현재 술법을 못 펼치는 이유가 늘 궁금했었다.
어쩌면 위종이 그걸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 눈두덩이를 짓누르는 잠을 쫓아냈다.
"서불의 시대엔 방사方士들이 흥했고 무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무가 흥하고 술은 진법 빼고 사라지기 직전일까? 그 진법마저 점점 효용을 잃어 익히려는 자가 없고."
진법은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효용이 없다.
이는 진법의 설치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적은 돈만 들여도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데 몇 배에서 수십 배의 돈을 쏟아 진법을 설치하는 사람은 없다.
멍청한 부자는 이야기에서나 나오고 현실에선 찾기 힘들다.
"이유가 뭔데요?"
귀연이 피곤이 가득한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질문했다.
"서불이 사라졌기 때문이지."
위종의 대답은 안 대답하기만도 못 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귀연은 잠기운이 깨끗이 달아났다.
"세상엔 일흔두 명의 수호자가 있다. 이중 서른여섯은 술의 진법을 수호하고 서른여섯은 무의 진법을 수호하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귀연은 마침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린 구후영과 눈길을 마주쳤다.
귀검동!
진법에 관해선 천재라고 자부하는 귀연조차 귀검동에 무슨 진법이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귀검동의 문을 여닫는 기관이 어떤 건지 파악하지 못했고.
"현재의 인간이 흥하기 전, 우리가 상고라고 부르는 시대에 세상을 지배한 자들이 있었다. 어떤 자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수만 년의 혹한과 수천 년의 가뭄 그리고 수백 년의 홍수로 모든 흔적이 사라졌으니까."
"흔적이 없는데 그런 자들이 있었는지는 어떻게 알지?"
"흔적은 없지만, 수호자를 남겼으니까. 이들은 세상에 일흔두 개의 진법을 남겼고, 일흔두 개의 기억을 남겼다."
'이걸 믿어야 하나?'
너무나 허황한 말에 이마를 찌푸린 채 고민하던 구후영은 무의식중에 천마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
'진짜라고?'
천마의 깊은 미간과 상념에 잠긴 듯한 눈은 위종의 말이 거짓보단 진실에 가까움을 제시했다.
"일흔두 개의 기억은 제각각 다른 시기에 인간에게 받아들여졌다. 너희가 아는 유소씨, 수인씨, 신농, 치우, 대우 등이 모두 수호자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호자의 기억을 받아들인 자들이지."
유소씨는 최초로 집을 지은 자다. 수인씨는 부싯돌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인간에게 전했고, 신농은 농사짓는 법과 약초와 독초를 구분하는 지식을 전했다.
치우는 최초로 금속을 다뤄 투구와 병장기를 만들었다고 해서 병주兵主로 불렸으나, 진정한 공헌은 청동으로 만든 농기구 덕분에 농업이 크게 발전했다는 부분에 있었다.
대우는 황하의 물길을 바꿔 반복되는 홍수를 해결한 자로 지금까지 높이 숭앙받는다.
"일흔두 수호자는 일흔두 진법에 해당하고, 진법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태어난다. 이들의 사명은 진법을 가동하는 것이다."
"무슨 진법?"
"술의 진법은 오행의 기운 중 하나 혹은 둘을 끌어당긴다. 그 결과 세상의 기운은 불균형을 이루며, 그러한 불균형이 지속하면 인간 중에 방사가 태어난다."
"저 말을 믿어도 돼?"
청빈이 고개를 돌려 구후영한테 질문했다. 그에 일행은 물론이고 천마와 위종마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구후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합리적입니다."
구후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든 기운은 균형을 향해 움직인다고 합니다. 진법으로 만든 인위적인 불균형에 대항해 세상은 변화할 것이고, 인간 역시 세상의 일부로서 저자가 말한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천재군."
천마가 감탄했다.
"질투가 날 정도야."
위종 역시 감탄했다.
'뭔 말이지?'
유독 질문한 청빈만 구후영의 대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서불이 서른여섯 번째, 즉 마지막 술의 진법 수호자야. 놈은 마지막 진법을 가동한 다음 영생을 욕심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고."
"당신은 누군데 이러한 비밀들을 모두 아는 거요?"
질문하는 구후영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유추하기 힘든가?"
"당신이 서른여섯 번째 수호자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럼 연 선생은 뭐고, 천강구절은 뭐지?"
"그것보다 먼저, 왜 지금은 술법이 안 되는 거예요?"
이야기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자 귀연이 조바심을 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의 질문에 동시에 대답하지."
"진법이란 게 한 번 가동하면 끝인 게 아니다. 특히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의 세월을 견딘 진법이라면 말이지. 먼저 활성화했던 술의 진법 대부분이 가동을 멈춘 지금, 더는 방사의 자질을 갖춘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내가 서른다섯 번째 수호자고, 사제가 서른여섯 번째 수호자다. 내가 사제를 죽임으로써 사제의 힘이 나한테 전해졌지."
말을 멈춘 위종이 고개를 돌려 천마를 노려봤다.
"저놈은 뭐랄까. 편작이나 노반 같은 천재야. 고작 수십 년을 살면서 누구보다 높은 성취를 이뤘던 자들이지."
그때, 풍불지가 갑자기 외쳤다.
"그럼 너도 기존 서른다섯 명의 기억을 모두 가진 건가?"
- 작가의말
설정을 너무 마지막으로 몰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종이 지속하여 거짓말을 한 탓에 읽으며 헷갈리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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