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전확장丹田擴張
일보심단전一步尋丹田
우선은 단전을 느끼고,
이보축단전二步築丹田
다음은 단전에 기를 쌓고,
삼보연단전三步煉丹田
그다음엔 단전의 기를 단련하고,
사보운전신四步運全身
마지막엔 기운을 전신에 보낸다.
구후영이 깨어나자 낙화문은 일지봉을 비우고 태원부의 장원으로 옮겼다. 일지봉의 장원은 건축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구후영이 빨리 깨기를 바라 먼저 지은 집에서 일단 살았었다.
이젠 구후영이 털고 일어났으니 장원을 다 지을 때까지 태원부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긴 잠에서 깬 구후영은 활력이 넘쳤다.
매일 날도 안 밝은 새벽에 일찍 깨서 검법을 수련하고 낮엔 아픈 사람을 치료했다. 웬만한 병은 침으로 낫게 하고 어지간히 깊은 병도 약을 공짜로 지어주니 주변에 칭송이 자자했다.
환자가 없는 시간엔 사제들 검술 수련을 돕다가 밤이 오면 내공을 수련했다.
다른 일과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데, 내공 수련만큼은 아니었다.
낙화문의 심법 수련은 어렵지 않다.
먼저 심기로 단전을 느낀 후 축기 과정에 들어간다. 모든 의념을 단전에 집중하고 정해진 방식으로 호흡하면 외부의 기운이 단전에 차곡차곡 쌓인다.
축기를 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바로 연기로 넘어가 새로 모은 기운과 이미 품고 있던 기운을 함께 단전에서 꺼냈다 넣기를 반복하며 자기 것으로 만든다. 연기 역시 기운이 생각대로 안 움직이는 순간이 오면 수련을 마무리하거나 운기에 든다.
운기는 단전의 기운을 특정 순서에 따라 목표한 혈도까지 보내는 걸 말한다. 연기는 그저 단전의 기운을 꺼내 가까운 혈도들로 보냈다가 제때 회수하는 거지만, 운기는 거의 회수하지 못하고 대부분 기운을 소모만 한다.
어렵게 모은 기운을 그저 소모하는 게 일견 아까워 보이지만, 실전에서 내공이 생각대로 안 움직여 낭패를 보고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남는 장사다.
게다가 내공을 이미 품었던 수준까지 회복하는 건 쉬워서 대부분 무인은 내공 수련의 말미에 반드시 운기를 한다.
예전의 구후영은 축기로 많은 기운을 모으지 못하고 연기 과정도 오래 걸렸다. 그 탓에 단전에 많은 내공을 품은 적이 없고, 운기까지 하면 남는 내공이 거의 없었다. 운기를 자제하고 내공을 쌓으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듯한 효과는 없었다.
이렇듯 내공이 안 쌓여 마음고생이 심했던 구후영인데, 지금은 주화입마를 걱정할 정도로 진전이 빨랐다.
'진즉에 이러지.'
눈을 감는 순간 단전이 또렷하게 느껴지고, 외부의 기운이 단전으로 흐르는 게 느껴진다.
즉, 예전과 달리 심기와 동시에 축기가 절로 진행된다. 내공 수련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구후영으로선 평생 이룰지 싶게 요원하던 경지였다. 게다가 단전으로 모은 기운은 바로 주변 혈도로 방사했다가 돌아오며 연기도 함께 됐다.
심기, 축기, 연기, 운기를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하던 구후영에겐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소림이나 무당 같은 대문파에서도 일류의 경지에 이르러야 축기와 연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고급 심법에 입문하는데, 구후영은 몸에 쌓은 내공도 별로 없고 수련 경지도 낮은데 이 모든 게 절로 이뤄졌다.
덕분에 며칠 사이에 예전이었으면 일 년 내내 수련해야 겨우 쌓을 양의 내공을 얻은 구후영이다.
'잘하면 운기까지 되겠어.'
축기와 연기와 더불어 운기까지 되는 건 정말 대단한 성취다. 이는 싸우는 도중에도 축기와 연기를 통해 내공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이 경지에 이른 거로 확실히 알려진 건 신장 홍기영밖에 없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구후영의 생각이 운기에 미치자 단전에서 두 갈래 내공이 나와 양손으로 향했다. 구후영이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고, 원하던 바도 절대 아니었다.
운기가 진행됨에 따라 며칠 동안 착실히 모은 내공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이대로는 내공이 평생 안 쌓이겠다.'
구후영은 작은 성취에 들떠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린 자신을 호되게 책망했다.
물론, 그저 내공의 경지가 깊어졌다고 좋아할 수도 있다. 허나 심법에 입문하고부터 쌓이지 않는 내공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구후영이기에 허무맹랑한 경지보다는 실질적인 내공에 대한 갈음이 훨씬 컸다.
'내 몸은 저주를 받았나?'
내공 수련은 보통 잡념 하나 없이 정신을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 진행한다. 그러나 구후영은 온갖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면서도 경각심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이래도 문제없음을 아는 거다.
'근데 이걸 어떻게 멈추지?'
구후영은 현재 단전은 물론 몸의 수많은 혈도와 혈도를 지나는 내공이 확연히 느껴지고, 외부 기운을 단전에 차곡차곡 쌓고 있고, 쌓은 기운을 주변 혈도로 보냈다가 다시 회수하는 동시에, 두 갈래 기운을 뽑아 수삼음경手三陰經과 수삼양경手三陽經을 통해 손으로 보내고 있다.
심기부터 운기까지 심법 수련의 네 단계가 동시에 진행되는 정말 대단한 일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삼음경은 십이경맥 중 수태음폐경과 수궐음심포경과 수소음심경을 포함하고 수삼양경은 수양명대장경과 수소양삼초경과 수태양소장경을 망라한다.
즉, 현재 구후영은 얼마 없는 내공에도 십이경맥의 여섯으로 내공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포함된 혈도가 어림잡아 백 개는 넘으니, 다른 말로 바꾸면 쌓이는 내공이 전혀 없다.
단전에 내공을 두둑이 쌓아 검술 위력을 높이고 싶은 구후영이기에 실속 없는 수련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부터 제멋대로였던 운기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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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야. 무슨 걱정이 있느냐?"
어린 제자들 앞이라고 임초현이 짐짓 틀을 차렸다.
"적혈장에 맞았던 것으로 제 몸에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축기로 어렵게 모은 내공이 바로 운기로 소모되어 단전이 텅 비었습니다."
구후영이 뭘 말하는지 전혀 이해 못 한 어린 제자들이 '대사형 참 대단하지 않아' 이러면서 소곤거렸다.
"네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이냐?"
"운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방법을 아신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임초현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셋을 알고 별도로 다섯을 깨우치는 제자라서 가끔 섭섭했는데, 오랜만에 사부 노릇을 톡톡히 하게 생겼다.
"간단한 일 아니더냐."
"해법이 무엇입니까?"
구후영은 간절한 나머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축기와 연기를 더 잘하면 된다. 그러면 운기를 하더라도 남지 않겠느냐?"
초롱초롱 빛나던 구후영의 눈이 곧 실망으로 가득 찼다.
"우매한 제자가 축기와 연기에 재능이 없습니다."
"그럼 영약으로 기운을 얻으면 될 거 아니냐? 마침 두 호법이 자양단紫陽丹을 만들 줄 안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어린 제자들도 슬슬 내공 수련을 시작해야 할 나이다. 구후영의 예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자질이 출중하다고 내공이 잘 쌓이는 게 아니고, 초반부터 탄력이 붙지 않으면 자신감이 결여하여 수련에 공포를 느낀다.
임초현과 두전은 시작부터 제자들한테 영약을 먹여 달곰한 성과를 맛보이는 거로 자신감과 열의를 크게 키울 계획이었고, 대부분 약초는 약방에서 구했으나 일부는 두전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해서 지금까지 준비만 하던 중인데.
때마침 필요한 약초가 구비된 덕분에 임초현이 구후영에게 생색을 한껏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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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리될 수 있다.'
낙화문 제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양단을 먹고 내공을 얻는 데 성공했다. 낙화문의 심법이 간단하여 딱히 문제 생길 곳이 없기도 하고, 절정에 이른 임초현이 직접 진기를 도인하면서 도와준 덕분이 컸다.
내공을 얻은 어린 제자들이 알통을 만들어 뽐내는 모습을 보며 구후영도 자신감이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가 호법을 설 테니 걱정 다 털고 내공을 얻는 데 집중하여라."
임초현은 열한 명이나 되는 제자를 진기도인하느라 꽤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런 사부를 생각해서라도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구후영은 자양단을 입에 넣었다.
자양단이 뱃속에서 녹기 시작하자 구후영이 품어본 적 없는 막대한 양의 기운이 단전으로 몰려갔다.
이대로 성공하나 싶었는데, 단전에서 네 갈래 기운이 일어 수삼음경과 수삼양경, 족삼양경과 족삼음경을 따라 흘렀다.
족삼양경엔 족양명위경과 족소양담경과 족태양방광경이 있고 족삼음경엔 족태음비경과 족궐음간경과 족소음신경이 있는데, 십이경맥을 모두 합치면 총 삼백이십팔 개 혈도가 있다.
'아까운 내공이 다 달아난다.'
자양단이 품은 기운이 꽤 많다곤 하나, 운기로 소모되는 양이 어마어마해서 이대로는 단전이 여전히 텅텅 빌 것 같았다.
'내공을 단전에 잡아둬야 한다.'
단전은 모든 강의 종착지인 바다여야 한다. 그런데 구후영의 단전은 바다가 아닌 강이 잠깐 쉬는 호수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다.
이는 구후영의 운기 재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도 있고, 공청석유로 전신 혈도가 발달한 이유도 있다.
'지하도시!'
온갖 생각으로 어지럽던 구후영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더니 아무런 맥락도 없이 지하도시가 떠올랐다.
지하도시는 구궁 하나와 팔괘 두 개로 구성됐다. 산이 가라앉는 바람에 통로를 위로 파긴 했지만, 원래는 평평한 구궁이었다.
두 개의 팔괘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 만들었다. 둘은 수평으로 놓인 구궁과 수직인 동시에 서로 수직을 이뤘다.
둘을 구궁이라고 안 하고 팔괘로 치는 건, 건태이진손감간곤의 여덟이 구궁의 중궁中宮으로 치는 공동과 전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건축학상 그렇게 만들 수 없었던 거고, 구후영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런 확신도 없었지만, 구후영은 곧바로 단전에 의념을 보냈다.
'된다.'
어떠한 구체적인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데, 구후영의 시도는 구후영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이뤄냈다.
의념에 따라 단전을 중궁으로 삼은 세 개의 구궁이 생겼다.
세 구궁은 서로 수직 되어 단단한 구체를 이뤘다.
'단전이 커졌어.'
실제로 단전이 커진 건 아니지만, 세 구궁이 품은 범위까지 단전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단전이 무려 스물일곱 배로 확장했다.
확장한 부분이 실제 단전만큼 구속력이 강하지 않아 실효성만 볼 땐 여덟 배 커진 정도지만, 구후영에겐 어마어마한 선물이었다.
'된다. 이젠 된다.'
단전이 커지자 축기가 빨라지고, 연기도 효율이 몇 배나 높아졌다. 축기가 안 되고 연기 과정이 길어서 내공이 안 쌓이던 문제점이 단방에 해결된 셈이다.
축기로 쌓이는 기운이 많아지고 연기로 쓸 수 있는 기운이 늘며 운기도 더 많은 기운을 끌어다 썼다.
그러나 기운이 쌓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운기로 소모되는 내공보단 축기와 연기로 얻는 내공이 더 많았다.
흡!
어느새 무아지경에 이른 구후영의 가슴이 등에 닿을 것처럼 훅 들어갔다.
후!
그러나 숨을 내쉬자 개구리의 노래 주머니처럼 빵빵하게 부풀었다.
일반 호흡과 반대로, 구후영은 들이켤 때 가슴이 들어가고 내쉴 때 부풀었다. 이는 들숨으로 들어온 기를 최대한 압박해 단전에 보내려는 의도고, 내쉴 때 부푸는 건 쓸데없는 기운을 최대한 날숨에 섞어 배출하기 위함이었다.
구후영은 그간 내공이 부족해 받았던 설움을 한꺼번에 풀려는 듯이 탐스럽게 주변 기운을 빨아들였다.
- 작가의말
구후영이 내공이 안 쌓였던 건 복합적인 이유입니다. 축기와 연기에 재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심리적인 문제도 큽니다. 잘 안 되니까 주눅이 들었던 거죠. 단전이 작은 것도 하나의 이유고, 운기 재능이 너무 뛰어나 어렵게 모은 내용을 순식간에 소모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더욱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주인공답게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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