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행기시各行其是
장자庄子·서무귀徐無鬼의 이야기에 따르면 장자는.
사자비전기이중위지선사射者非前期而中謂之善射 천하개예야天下皆羿也 가호可乎.
천하비유공시야天下非有公是也 이각시기소시而各是其所是 천하개요야天下皆堯也 가호可乎.
라고 혜자惠子에게 질문했다.
표적을 정하지 않고 활을 쏜 다음 맞혔다고 우기면 천하에 예(명궁)가 아닌 사람이 없고, 세상 모두가 인정하는 옳음이 없이 각자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주장하면 천하에 요(명군)가 아닌 사람이 없는데, 이게 맞느냐는 의문이었다.
혜자는 장자의 질문에 맞는다고 대답했는데, 후세에선 장자는 이상을 말했고 혜자는 현실을 말했다고 평가했다.
'너무 안일했다.'
역근경과 세수경은 물론이고 칠십이절기까지 있음에도 소림은 강해지는 데 수백 년이 걸렸다. 현재 태극혜검의 명성이 강호를 진동하는 것과 별개로, 무당이 실질적으로 소림에 위협을 주려면 최소 백 년은 걸린다는 게 방장의 판단이었는데.
구후영이 나타나서 강력하게 부정했다.
'한 선생이 무당과 싸우는 대신 저자를 죽이는 걸 조건으로 걸었을 때 경각심을 세웠어야 했는데.'
무려 혜가의 주해가 달린 역근경과 세수경의 사본寫本이 걸린 일인데도 무당과 싸우는 조건을 구후영의 죽음으로 바꿨다. 당연히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주검을 조종하는 사술邪術에 놀라고 소림의 평판을 걱정하느라 의심할 궁리를 미처 못 떠올렸다.
'이번엔 확실히 한다.'
마음을 굳힌 방장이 우문현에게 신호를 보냈고.
"무림대회에 참석한 여러 영웅께 긴히 드릴 얘기가 있소."
우문현이 미리 정한 대로 행동을 개시했다.
"아까 최 포두의 말을 듣고 본인의 경솔함을 깊이 반성했소. 더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돼지 세 마리를 구했소."
말을 마친 우문현이 직접 수레를 덮은 천을 치웠다. 거기엔 끈으로 주둥이를 단단히 묶은 중돼지 세 마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왼쪽 돼지는 갑, 중간 돼지는 을, 오른쪽 돼지는 병이라고 부르겠소. 이중 갑은 죽은 돼지요."
우문현이 말을 하며 작대기로 돼지들을 쿡쿡 찔렀다. 과연, 갑으로 불린 돼지는 미동도 없었고 남은 두 돼지는 작대기가 닿을 때마다 발버둥 쳤다.
"우선, 구후 소협께 질문하겠소."
어느새 나타난 접객화상이 우문현에게 검 하나를 건넸다.
"이것이 구후 소협이 분실한 보검 맞으시오?"
우문현이 많은 사람한테 보이게 검을 높이 추켜든 채 질문했다.
"맞소."
"확실하오? 사안이 중대하니 신중하게 대답하시오."
"확실하오."
모양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으나, 검날의 색까지 똑같이 만드는 건 어렵다. 더구나 천공교검의 예기가 생생하게 느껴져 구후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구후 소협은 여기 최 포두를 믿으시오?"
"그렇소."
구후영은 이번에도 즉각 대답했다.
"이제부터 우린 천공교검으로 하나의 실험을 할 거요. 뭐냐면, 여기 병을 꼼짝도 못 하게 묶은 다음 검으로 갑과 을과 병을 찌를 거요."
우문현의 말에 몇몇 스님이 합장하며 나지막이 불호를 외쳤다.
"병을 묶는 건 최 포두가 하고, 검으로 찌르는 것도 최 포두가 할 거요."
말을 마친 우문현이 최종필을 지그시 바라봤다.
떨떠름한 얼굴로 눈치를 살피던 최종필이 무형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우문현이 내민 포승줄을 받아 오른쪽 돼지를 꼭꼭 묶었다.
"이제 찌르시오."
최종필은 우문현의 손에서 천공교검을 받은 다음 허공에 몇 번 휘둘러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속을 비우고 수은을 채워서 다루기 까다롭소. 그러나 찌르기는 어렵지 않을 거요."
'천공교검을 모른다더니.'
아까 방장과 대화할 때 우문현은 분명히 천공교검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천공교검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오판한 것 같구나.'
구후영은 소림에서 연금되어 지내던 사이에 수많은 가설을 세웠고, 무당을 보는 순간 누군지 모를 배후가 소림과 무당을 싸우게 해서 강호에 혼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확신했었다.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과 기세가 욱일승천인 무당이 싸우면 강호는 둘로 나뉠 게 뻔하고, 대유방이나 홍엽산장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무당 편이 된다.
그러면 혼란한 틈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누군가가 소림인 척하며 홍엽산장을 해코지하려 할지 모르고, 소림에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미련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에 구후영은 차라리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대유방은 황제가 직접 이름을 하사했고, 홍엽산장은 대부인 연추상이 후의 작위를 받았다.
구후영 본인은 황제를 살린 의원이다.
소림이 아무리 대단해도 구후영이나 홍엽산장은 건드리기 주저된다. 복장표국과 배월교가 대놓고 철혈방을 표물을 턴 배후로 지목했었듯이, 구후영이 나서서 소림과의 모순을 키우는 게 오히려 안전한 길이다.
이러한 판단으로 구후영은 자신이 나서기로 했고, 모든 대결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대결이 끝난 거냐는 질문에 소림 방장은 벙어리 행세를 했고, 뜬금없이 우문현이 나서서 뭔가를 하려고 하자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소림의 속을 모르니.'
시간이 촉박하고 정보도 적어 소림이 뭘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소림은 아무래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행하려 할 테니.
'내가 믿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구후영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상처를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소. 궁금한 분들은 가까이 오셔도 좋소."
구후영이 고민하는 사이, 최종필이 검으로 세 마리 돼지를 찔렀다.
'스님이란 작자들이.'
눈을 감고 합장한 채 불경을 읊는 스님이 채 열 명도 안 되었다. 일부는 고개를 숙이거나 돌렸지만, 대부분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뜬 채 여전히 피를 흘리는 돼지들을 직시했다.
"수작은 안 부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옥무영이 속삭였다.
"보는 눈이 수백인데 당연히 안 부렸겠죠."
구후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점잖은 사람이 화내니 진짜 무섭구나.'
왠지 구후영이 현재까지 벌인 것보다 더 큰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옥무영은 몸이 살짝 떨렸다.
"우리도 가서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냐?"
"결론은 이미 정해졌을 텐데, 과정을 살피는 게 의미 있을까요?"
그제야 옥무영도 비로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았다.'
구후영도 머리가 복잡했지만, 옥무영만큼은 아니었다.
옥무영은 무당 장문으로서 소림이 왜 무림대회를 소집했는지 고민했고, 이번 일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소림이 원하는 바를 추측할 수 없어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려는 구후영과 달리, 옥무영은 머리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소림이 뭘 원하는지 얼추 맞혀서 그것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판을 굴리는 건 여전히 소림이다.'
옥무영은 무당이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너무 상식선에서만 고민하고 있었음도 알아챘다.
'원철이 대결을 속개한 것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원철이 처음 나선 건 구후영의 말에 자극받아서일 수 있다. 그러나 최종필 때문에 소림의 명분이 약해진 후에도 아무 말 없이 대결을 이어간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머리를 비우자.'
옥무영은 그간 세운 가설을 깡그리 지운 다음 구후영처럼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많은 분이 보셨다시피 갑과 병의 상처가 동일하오."
검에 찔린 돼지의 상처를 확인한 사람들이 돌아가자 우문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최 포두가 한 말이 틀렸다는 거요?"
접객화상의 말에 최종필이 발끈했다.
"틀리다니. 가끔 예외가 있을 뿐이지."
"내가 설명하겠소."
우문현이 최종필을 제지하고 설명을 이었다.
"여기 천공교검은 절세의 보검이오. 제대로 휘두르면 바위도 뚫고 철검도 두부처럼 자르오."
말을 마친 우문현이 검을 휘둘러 돼지들을 실은 수레를 벴다.
"보셨소?"
단단한 나무로 만든 수레가 밀가루 반죽처럼 깔끔하게 잘리는 모습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을을 보면 상처가 크오. 이는 찔린 다음 발악하며 검에 더 많이 베였기 때문이오. 반면, 죽은 다음 찔린 갑과 꼭꼭 묶여서 찔린 병 모두 상처가 벌어졌소. 검이 너무 예리하여 몸이 전혀 저항하지 못한 거요. 즉."
우문현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공유 사조께서 사후에 찔린 게 아닌지도 모른다는 뜻이오."
우문현의 눈길을 받은 최종필이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최종필의 동의를 얻은 우문현이 말을 이었다.
"만약 생전에 찔린 거면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최 포두가 말한 것처럼 면식범의 소행이오."
우문현의 말에 연무장이 크게 술렁였고,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면식범이라면, 흉수가 소림 제자란 말이오?"
참을성이 부족한 누군가가 목청을 돋워 외쳤다.
그에 우문현이 고개를 저었다.
"공유 사조께선 불혹이 넘은 나이에 출가하셨소. 면식범이라고 꼭 소림 제자라는 섣부른 판단은 삼가기를 바라오."
"그런데, 아무리 기습이어도 공유 스님을 해할 수 있을까?"
최종필이 우문현에게 질문했다.
"최 포두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구후 소협께 묻겠소. 소협은 진정 소림과 아무런 인연도 없소?"
"소림과는 인연이 없소."
구후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구후 소협과 공유 사조의 제자인 원경 사숙이 의형제 사이라고 들었소."
"맞는 얘기요. 그러나 그건 개인적인 친분일 뿐, 소림과 무관하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히 배제하려고 질문하는 거니 괘념치 않았으면 하오. 혹시 구후 소협은 원경 사숙을 통해 공유 사조와 만난 적이 있소?"
구후영을 면식범으로 의심하는 질문에 연무장이 고요해졌다.
"없소."
수많은 시선의 압박 속에서도 구후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구후 소협은 확실히 보검을 분실했고, 분실한 보검을 되찾은 적 없으며, 공유 사조와도 만난 적 없음을 모든 걸 걸고 맹세할 수 있으시오?"
"맹세할 수 있소."
구후영의 대답에 긴장으로 막혔던 숨이 터지며 여기저기에 탄식이 울렸다.
"답변 고맙소. 이어서 방장 사숙께 묻겠습니다."
우문현은 구후영과의 대화를 마치고 방장한테 질문했다.
"사숙께선 공유 사조의 속세 인연 중에 구후 소협과 비견하는 고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우문현은 은연중에 구후영 정도의 고수면 공유 스님을 해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구후 소협 정도의 고수는 소림에도 몇 명 없네."
"개중에 공유 사조와 친분이 깊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문현의 질문에 방장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이 있소."
"있다고요?"
우문현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최종필이 앞서 말했다시피, 불가능한 걸 하나하나 지우다 보면 마지막 남은 게 진실이 된다. 그런데 방장이 사전의 약속을 깨고 딴소리하자 노강호인 우문현도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무공이 강하고 공유 사숙과 사이도 가까운 두 조건에 다 부합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소."
방장이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
"바로 공유 사숙의 유일한 제자인 원경 사제요."
- 작가의말
장자는 평생 도道와 덕德을 찾아 헤맸습니다. 세상 어디에 둬도 옳은 공통의 가치를 찾으려고 했던 거죠. 민주주의가 바로 공통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고, 진정한 덕을 찾으려면 국가와 민족과 인종의 구분이 완전히 사라져야 하니 결국 장자의 생각은 영원히 이상으로 남지 않을까 판단합니다.
만에 하나 전 세계가 하나가 된다고 쳐도 외계인이 남았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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