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살인借刀殺人
춘추 시대의 일이다.
제齊나라가 노魯나라를 공격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이에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나섰다.
자공은 우선 제나라의 재상 전상田常을 찾아 노나라 대신 오吳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충동질했다.
충동질에 성공한 자공은 바로 오나라로 달려가 부차夫差에게 노나라를 삼킨 제나라가 오나라의 패주 자리를 위협할 거라고 이간질했다.
이간질에 성공한 자공은 멈추지 않고 진晉나라에 가서 제나라를 이긴 오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할 거라고 고자질했다.
얼마 후, 오나라가 제나라의 위협에 대항해 노나라를 도울 것을 천명했고, 구실이 생긴 제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했다. 오나라는 노나라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를 손쉽게 이기고 그 기세를 몰아 진나라로 군사를 돌렸다. 허나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던 진나라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피로한 오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다.
여기서 노나라는 오나라라는 칼로 제나라의 위협을 제거하고, 진나라라는 칼로 오나라의 위협을 제거했다. 전쟁에 참여한 네 나라 중에 가장 적은 인명 손실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차도살인의 계책이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무려 삼십육계의 세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상서대인尙書大人의 존안을 이리 뵙게 되니 삼생의 영광입니다. 제가 한 잔 따르겠습니다."
"허허. 담 영웅의 위명은 여기 순천부에도 쟁쟁한데 이리 만나서 내가 영광이오."
순천부에 가장 유명한 청루인 화월루花月樓의 최상층 귀빈 방은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일개 망부莽夫(자신을 낮추는 말로 멍청한 사내를 뜻함)일 뿐인데 대인께서 좋게 봐주시니 감격할 따름입니다."
"내가 비록 붓이나 잡는 서생이지만, 마음으론 늘 강호의 영웅들을 동경했소. 담 영웅은 맨손으로 시작해 용호표국의 거대한 사업을 일으켰으니 개중에서도 걸출한 분이 아니오."
"자자, 마십시다."
담진웅과 같은 태원부 출신인 병부시랑이 술잔을 들어 분위기를 띄웠다. 그에 셋 모두 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늘 마시던 술인데, 술친구가 좋아서 그런지 유독 잘 넘어가는 기분이오."
예부상서의 너스레로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솟던 그때.
밖에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연거푸 울렸다.
"웬 소란이냐!"
자리의 주선자인 병부시랑이 얼굴을 굳히고 호통쳤다.
잠시 후, 화월루의 총관이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송구합니다. 저희가 소란 피운 게 아니고, 길 건너 의원에서 서창이 범인을 나포하고 있습니다."
서창이란 말에 예부상서가 얼굴을 찌푸렸다.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라."
병부시랑의 말에 총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문을 닫고 나갔다.
"말하기 부끄러우나, 사실 내가 부인한테 꽉 잡혀 산다오. 더 늦으면 자칫 볼기를 맞을지도 모르오."
서창의 언급에 기분이 잡친 예부상서가 농을 던지며 자리를 뜰 의향을 비쳤다.
"오늘 담 영웅과 처음 보지만, 왠지 하나도 생경하지 않고 수십 년 된 지기知己 같소. 혹시 내게 청이 있다면 얼마든지 입을 여시오. 이 홍 모의 힘이 닿는 일이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겠소."
담진웅은 자신의 친우이자 중간에서 뇌물을 건네고 다리를 놔준 병부시랑의 눈치를 봤다. 담진웅의 눈길을 받은 병부시랑이 말해도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입밖으로 꺼내기 참람하나, 폐하의 건강이 위중하다고 들었습니다."
자식이나 손주의 과거 성적을 고쳐 급제하게 해달라는 정도의 청탁을 예상했던 예부상서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마침 제가 용한 의원을 압니다."
"서안부의 안물도 고개를 저었소."
"대동부에 안물보다 더 대단한 의원이 한 분 계시잖습니까."
잠깐 고민한 홍 상서가 고개를 저었다.
"신한천 얘기라면 늦었소. 앞을 제대로 못 보는 건 제치고, 수전증이 심하오."
홍 상서의 말에 담진웅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신한천의 침술을 배워 청출어람을 한 제자가 있다면 어떻습니까?"
"청출어람? 신한천의 침술은 이미 인간의 경지가 아닌데, 그걸 능가하는 자가 있다고?"
"홍엽산장의 장주 구후영입니다. 약 십 년 전에 대동부에 소명의로 명성이 자자했고, 태원부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작년엔 죽은 자를 일으킨 일도 있습니다."
홍 상서가 손가락으로 수염을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신한천이 죽은 자를 세 번이나 깨운 건 사실이니 그의 제자라면 저런 소문이 날 법도 하다. 소문이 진짜라면 청출어람은 몰라도 신한천의 반은 하겠지.'
"상서대인도 아실 겁니다. 의원과 점쟁이는 온갖 허황한 소문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나, 진짜 명의가 아니면 헛소문도 안 생긴다는 걸 말입니다."
"그자는 지금 어딨소?"
"호북의 홍엽산장에 있는 거로 압니다."
"홍엽산장이면 충량지후忠良之後(충신의 후손) 아닌가. 믿을 만한 사람이겠군. 내 돌아가서 심사숙고해 보겠소."
홍 상서는 유 시랑과 담진웅의 극진한 환송을 받으며 화월루 뒷문으로 떠났다.
"진웅. 너 진짜 돈 썩어나니?"
홍 상서가 떠나고 방으로 돌아오자 유 시랑이 담진웅을 질책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까지 받은 봉록을 다 합쳐도 천 냥이 겨우 되겠다."
"그만한 돈을 쓰지 않으면 예부상서가 내 말을 믿겠어?"
"하긴. 천 냥을 버리면서 허튼소리 할 사람은 세상에 없지. 근데, 그 의원과 무슨 사이길래 이리도 지극정성이냐?"
"그자를 도우려는 게 아니고, 차도살인으로 제거하려는 거다."
"뭐라고?"
"내가 말한 의원은 태원부 낙화문의 장문이기도 한데, 요새 믿기지 않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글쎄 아직 약관도 안 된 놈이 마교에서 무당의 대장로 현현자와 내공 대결을 벌이고도 무사하다는 거야."
담진웅의 말에 유 시랑도 깜짝 놀랐다.
"그거면 거의 병졸이 대장군 얼굴에 침을 뱉고 멀쩡한 거랑 같은 얘기 아니냐?"
"처음엔 나도 헛소문이려니 했는데, 작년 십이월에 신창이 그자를 찾았다는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그놈하고 사이가 대단히 안 좋은가 보구나."
천 냥은 적은 돈이 아니다.
"내 손녀사위가 원래 그자와 사형제지간이었는데, 척을 단단히 진 모양이더라고."
사실은 낙화문과 구후영의 명성이 산서에 진동하며 담진웅이 결성한 연맹이 흔들린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더불어 용호표국과 가깝게 지내던 자들 모두 낙화문과 선을 대려고 일지봉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 역시 우환이었다.
"근데 이게 어떻게 차도살인이 되지? 그자가 폐하를 고쳐내지 못하면 너도 멀쩡하기 힘들 텐데."
담진웅이 잔의 술을 시원하게 비웠다.
"그래서 홍 상서를 찾은 거 아니냐. 아마 이번 일에 내 이름이 아예 언급되지 않을 거야."
예부상서 홍권이라면 공을 독차지하려고 담진웅 얘기를 쏙 뺄 가능성이 구 할 이상이다.
"그러다 그자가 진짜 치료에 성공하기라도 하면, 넌 그냥 천 냥 날린 거잖아."
유 시랑은 여전히 담진웅의 생각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땐 낯짝을 두껍게 하고 홍 상서를 찾아가서 내 공을 잊지 말아 달라고 비벼대야지. 별수 있겠냐?"
"네놈이 주먹질에 정신 안 팔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지금쯤 나보다 더 높이 기어올랐을 텐데. 참 아쉽구나."
유 시랑의 말에 담진웅이 껄껄 크게 웃었다.
"어려운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오늘은 날이 밝을 때까지 마시는 거다."
그에 유 시랑이 신나게 외쳤다.
"여봐라. 시중들 아이들 들이고 풍악을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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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소리와 함께 금의위 무사가 이 장이나 날아갔다.
"야 이 고자 뒷구멍 빠는 새끼들아. 서창이면 다야? 서창이면 죄 없는 사람 마음대로 잡아가도 되냐? 순천부엔 황법도 없냐?"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고래고래 외쳤다. 싸우는 중에 머리를 묶은 끈이 끊어지며 산발이 된 사내는, 마치 들개들에게 둘러싸인 사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죄 없으면 순순히 우릴 따랐겠지. 반항하는 자체가 네놈이 유죄라는 뜻이다."
그에 멀찍이 둘러싸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침을 퉤 뱉었다. 영문도 모르고 서창에 끌려갔다가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은 자만 해도 구경꾼들 손가락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하라니까.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하면 군말 안 하고 따라가겠다."
그때, 뒤에서 몰래 접근한 무사 둘이 얇고 질긴 천으로 만든 포대를 사내 머리에 씌우려 했다.
퍽.
사내는 마치 등에 눈이라도 달린 듯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발길질로 두 무사를 이 장 밖으로 차버렸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작은 응원이 터졌다.
"끝까지 반항할 셈이냐?"
"내가 너희가 모시는 고자들한테 뭘 잘못했는지 말하라니까. 혹시 내가 어느 고자의 아내를 건드렸다고 모함할 거면 미리 말하는데, 나 총각이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닥쳐!"
얼굴이 시뻘게진 금의위 총기가 고함을 질렀다. 비록 정칠품으로 하위 관리에 속하지만, 금의위 소속으로서 이런 수모를 받아본 기억이 없기에 사내의 기고만장함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다.
'도대체 왜 안 말해주는 거지?'
금의위가 왜 자신을 체포하려는지 너무나 궁금한 사내도 사내지만, 잡아 오라는 명령 하나만 듣고 출발한 탓에 대답이 궁한 금의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독인가?'
갑자기 내공의 움직임이 원활치 않았다.
'아까 마신 탕약이겠지?'
치료 때문에 아침부터 굶었기에 반 각 전에 의원이 준 탕약을 마신 게 오늘 먹은 전부다.
'누구지? 그놈들이라면 금의위가 나서지 않았을 텐데.'
사내는 생각할수록 머리가 어지러웠다.
'튀고 보자.'
사내는 자신이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님을 알기에 일단 도망친 다음 천천히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금의위 총기를 향해 돌진했다.
그에 깜짝 놀란 총기가 황급히 칼을 뽑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사내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몸을 뉘어 총기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눈을 감고 칼을 휘두르던 총기는 가랑이를 지나며 휘두른 사내의 주먹에 고환을 맞고 천천히 쓰러졌다.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멍청이들아."
안타깝게도 사내가 마음먹고 제대로 휘두른 게 아니어서 총기는 환관이 되어 더 큰 위세를 부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아무래도 조상이 덕을 덜 쌓은 모양이었다.
"저 새끼 잡아."
범인을 쫓기보단 상관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던 금의위 무사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내의 뒤를 쫓았으나.
일반 병졸보다 강할 뿐 강호의 무인과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이어서 얼마 못 가 사내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사내한테 길을 쉽게 터준 구경꾼들이 은근히 다리를 걸고 물건을 던져 진로를 방해한 것도 핑계라면 핑계였다.
그러나.
"잡았다."
금의위를 떨구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내 앞에 열두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나타나 즐겁게 웃었다.
"너냐? 금의위를 움직인 사람이?"
사내가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질문했다.
"나한테 해코지할 땐 이런 날이 올 줄 예상도 못 했나 봐?"
순식간에 웃음을 지운 아이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쿵.
마지막 새끼손가락을 접자 멀쩡히 서 있던 사내가 천년 고목처럼 무겁게 넘어졌다.
- 작가의말
제나라가 노나라를 옥상으로 불렀다. 노나라는 오나라한테 도움을 청했다. 오나라는 노나라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제나라를 제압한 후, 기세등등해 진나라의 대기실에 쳐들어갔다가 된통 당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여배우 서열.
1위 - 진나라
2위 - 오나라
3위 - 제나라
4위 - 권나라
0위 - 장나라
동네북 - 노나라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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