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전인옥抛塼引玉
포전인옥은 삼십육계의 열일곱 번째 계책이다.
여기서 전은 흔한 벽돌이고 옥은 귀한 보석이다. 이 계책은 벽돌을 미끼로 상대를 유인해 옥 같은 성과를 얻는다는 뜻이다.
"장로 두 분과 그간 격조했소."
세 사내가 항주부 보석산의 정자에서 간단한 술상을 차리고 마주 앉았다.
보석산은 높이가 이십 장이 조금 넘는 낮은 산인데, 산을 이룬 바위가 적갈색을 띈다. 강한 햇빛이 비칠 때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보석 같다고 하여 보석산이란 이름을 얻었고, 바로 남쪽에 항주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서호가 있어 여름과 가을에 한량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겨울인 지금은 사뭇 황량하지만.
"총타주總舵主를 뵙는 게 정말 오랜만이군요."
"내가 항주에 있을 땐 두 분이 없었고, 두 분이 항주로 오니 내가 또 바빴소."
세 사내는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으면서 그간 지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실 두 분께 부탁할 일이 있소."
어느 정도 술기운이 돌자 총타주가 용건을 꺼냈다.
"부탁이라뇨. 분부하십시오."
"두 분이 낙화문의 구후영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소."
"친분이라기보단 저희가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는 세 사내 중 둘은 구후영과 인연이 있는 길잡이 형제였다.
"사람이 공명정대하고 흐트러짐 없다고 들었소. 거기에 의술도 뛰어나다면서."
"친분이 깊은 건 아니지만, 잠깐 지내며 본 바로는 정확한 평가입니다."
"그런 분의 도움을 받는다면 하오문 형제들의 삶이 훨씬 나아지지 않겠소? 현재 총단이 전력으로 의원을 키우고 있지만, 재물은 잔뜩 들고 효과는 미미하오."
가난한 자들이 가장 서러울 때가 아픈데 의원한테 못 가는 경우다.
그에 하오문 총단은 자체로 의원을 키우려 했다. 문제는 대부분 지역의 하오문이 항주의 총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항주 총단과 마음이 맞는 일부 하오문들만 십시일반 돈을 모았으나, 의원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의원은 선비들도 모르는 옛날 글자까지 배워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의원이 되기보단 과거를 봐서 관리가 되는 길을 우선한다.
어렵게 후원을 약속하며 의원의 길을 걷도록 설득하더라도 난관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약초를 구분하고 손질하는 법에 숙달하는 것부터 쉬운 과정이 아니고, 이 최대의 난관을 넘었다고 쳐도 사부한테서 용한 처방 하나 알아내는 데 몇 년씩 걸린다.
게다가 의원이 생겼다고 끝이 아니다. 가난이 염치까지 잡아먹어서 치료비를 끝내 안 내는 자들이 많아 치료에 드는 약초 대부분을 하오문이 감당해야 한다.
"구후 장문한테 침술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자는 말씀입니까?"
길잡이 형제는 총타주가 구후영의 무력을 필요로 하는 줄 알고 걱정했었는데, 의술 얘기를 하자 시름이 푹 놓였다.
"당연한 얘기 아니오? 무력은 양날의 검이오. 어떨 때는 날 지켜주는 방패지만, 어떨 때는 내 심장을 찌르는 흉기가 되오."
"총타주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후 장문의 침술을 익힐 인재는 어떻게 구합니까? 신한천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저 지역에서 유명한 자가 몇 명 있고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의원이지 않습니까."
"난 그것보다 구후 장문이 우리 청을 거절할까 봐 걱정이오. 낙화문에 홍엽산장에 대유방에, 거기에 무당과 황궁과도 인연이 있어 여간 바쁜 게 아니잖소."
'이런.'
그제야 길잡이 형제는 자신들이 부탁하면 구후영이 들어줄 거라고 지레 확신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입을 떼 부탁하기가 정말 난감합니다."
"하하. 내가 뭐 총타주 자리에서 딱히 이룬 건 없지만, 그래도 아주 허울뿐이 아니잖소. 당연히 생각이 있어 두 분을 찾은 거 아니겠소?"
"어떤 묘책이 있습니까?"
총타주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핀 다음, 속삭여 말했다.
"구후 장문이 무당 해검지에서 보검을 분실했다는 정보가 있소."
놀라운 소식에 길잡이 형제가 눈을 커다랗게 부릅떴다.
보석을 얻고 돌아오는 길에 둘은 천공교검이 얼마나 예리하고 단단한지 직접 휘둘러 확인했었다.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애초에 욕심을 버리긴 했으나, 그 귀한 검을 분실했다고 하니 본인들이 더 분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죽개방竹匃幇 방주가 최근에 보검을 얻었다고 자랑하는 걸 하오문 형제가 들어 나한테 알려줬소."
현재 개방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는 부지기수나, 진정 방파 형태를 이룬 건 셋밖에 없다.
셋 중 규모가 가장 큰 건 개봉부의 청의방靑衣幇이다. 이들은 풀과 나뭇잎으로 옷을 파랗게 물들이는 게 특징인데, 그나마 예전 개방의 규칙을 최소한으로나마 지키는 자들이다.
가장 악명이 자자한 건 하남부의 낙양현에 있는 독개방毒匃幇이다. 개봉부와 오백 리 떨어진 낙양은 원래 주원장이 수도로 생각했을 정도로 큰 도시로 인구도 많고 부유한 지역인데, 독개방은 객잔 앞에 무리를 지어 영업을 방해하는 거로 음식을 강제로 얻어냈다.
낙양의 문파나 흑도 방파들도 독개방의 독기에 진저리를 친 바람에 거지치고는 잘 먹고 사는 편이다. 그러나 원한을 많이 쌓아 비명횡사하는 자도 그만큼 흔해서 규모는 청의방의 반에도 못 미쳤다.
죽개방은 위에 언급한 둘보다 무공이 강하다.
타구봉법의 정수는 이미 잊힌 지 오래지만, 초식만큼은 얼추 비슷하게 전해졌다. 정확한 초식을 모르고 봉법에 어울리는 운기법도 몰라 위력이 형편없지만, 그래도 마구 휘두르는 것보단 나아 술과 고기로 배에 기름이 잔뜩 낀 포졸을 일대일로 상대할 정도는 된다.
문제는 항주부가 하오문뿐이 아니라 흑도 방파들도 세력이 단단하고, 유명하진 않으나 혈족으로 이뤄진 가문 형태의 작은 문파가 많아 죽개방으로선 그저 황죽림 일대를 차지하는 거에 만족해야 했다.
"죽개방이 무당까지 가서 보검을 훔치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놈들도 보검을 분실한 사람이 없는지 도처에 묻고 다닌다고 하오. 그걸 봐선 해검지에서 얻은 건 절대 아니고, 항주에서 얻었는데 팔아도 뒤탈이 없는지 간을 보는 것 같소."
길잡이 형제는 서로 바라보며 눈빛으로 상의했다.
"총타주는 우리가 보검을 탈취해 구후 장문한테 돌려주자는 뜻입니까?"
"아니오. 솔직히 죽개방을 건드리고 싶지 않소."
세상에 가진 게 목숨밖에 없는 자보다 두려운 상대는 없다.
"하긴. 눈이 돌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르는 폭도들이죠."
"두 분은 구후 장문의 검이 어찌 생겼는지 알 거 아니오. 그러니 두 분이 죽개방 방주의 보검이 구후 장문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좋겠소. 아니면 말고, 맞는다면 구후 장문께 알려 직접 찾아가게 하는 게 뒤탈도 없고 좋지 않겠소?"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결과를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니요. 난 급히 갈 데가 있으니 두 분 장로께서 끝까지 수고해 주시오."
"믿고 맡겨주십시오."
말을 마친 길잡이 형제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내가 두 분을 못 믿는 건 아닌데, 구후 장문의 검이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시오."
총타주의 노파심에 길잡이 형제가 겸연쩍게 웃었다.
"저희도 이제 병장기에 그만 집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잡이 형제는 총타주에게 작별을 고한 후 바로 떠났다. 중요한 일을 어서 처리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격임을 알기에 총타주도 술 더 마시고 가라며 잡진 않았다.
"벽돌을 던졌으니 이젠 연 선생이 아닌 한 선생이 되어 소림이나 방문해 볼까?"
길잡이 형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총타주가 낮게 중얼거리곤 술과 안주를 버려둔 채 정자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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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필은 항주 관아의 포두다.
관의 세력이 강해 무공이 별로인 포졸도 턱을 치켜들고 활보하는 항주에서 포두에 무공마저 뛰어난 최종필은 흑도 방파들이 가장 마주하길 꺼리는 상대다.
완숙한 일류의 경지여서 혼자서도 소규모 흑도 방파를 상대할 수 있고, 집이 부자여서 웬만한 돈으론 '설득'이 어렵다.
그런 최종필도 만나길 꺼리는 상대가 있는데, 바로 길잡이 형제였다.
"최 포두. 오랜만이오."
"아니, 왜 또."
"부탁이 있어서 왔소."
최종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얼굴을 하고 앞장섰다. 길잡이 형제는 묵묵히 최종필을 따라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갔다.
"내 할아버지가 천산에서 죽었고 내 아버지가 백련교도였다는 걸 얼마나 더 우려먹을 작정이요? 사람이 참는 데 한계가 있소."
길잡이 형제가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최종필이 화냈다.
"우리도 백련교도요. 천산의 마교랑은 상관이 없지만, 그걸 관아에 고발하면 우린 죽은 목숨이요."
형제가 능글거리며 말했다.
"서로 약점을 잡았으니 협박이 아니라 협력이라고 좋게 생각하시오."
"내가 뭐 당신들이 무서워서 이러는 줄 아시오? 귀찮아서 그러지."
길잡이 형제는 무공이 평범하나 싸움은 잘한다. 모순 같지만, 어려운 초식을 익히지 못해 위력이 강하지 않은 약점이 있는가 하면, 내공이 깊고 체력이 강하며 몸놀림이 날렵해 쉽게 지지도 않는다.
"알지. 그래서 언제나 우릴 해치우는 것보다 덜 귀찮은 부탁만 하는 거 아니겠소?"
"그래. 무슨 일이오."
최종필이 의욕이 꼬물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 일을 도우면 당분간 귀찮게 안 하겠소. 그러니 거절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젠장. 벌써 귀찮아."
"개죽방의 왕거지가 보검을 얻었는데 살 사람을 찾는다고 들었소."
최종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얘길 듣긴 했소."
"그 보검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싶은데, 최 포두가 도와주시오."
"그 거지 새끼들은 내 말을 안 듣는 거 모르오?"
길잡이 형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보검을 뺏어달라고 했소? 우리가 돈 주고 사고 싶으니 중개인이 돼달란 말이오. 성사되면 중개비로 일 할 드리겠소."
"웃기지도 않는군."
최종필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공부만 잘했어도 포두 말고 지부대인 쯤은 했을 거란 걸 모르오?"
최종필은 집이 부자고, 친척도 대부분이 부자다. 과거 말고 향시 정도만 합격했어도 관리를 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최종필의 머리가 주먹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것이다.
"그럼 중개비는 없던 일로 하고, 최 포두의 소원 하나 들어드리겠소."
"소원? 할아버지를 살아 돌아오게 해줄 수 있소?"
최종필이 심술을 부렸다.
"그건 어렵고, 권법 고수 한 분을 만나게 해주겠소."
"고수? 항주에 나보다 주먹이 단단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인구가 태원부의 두 배는 넘는 항주에 절정의 고수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권법을 쓰는 자 중에선 확실히 최종필이 최고수다.
"형, 그만하자. 꼭 최 포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장선 대협한테 어려운 부탁까지 하면서 이럴 필욘 없잖아."
동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종필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형제한테 접근한 다음, 둘의 멱살을 동시에 콱 잡았다.
'평소 실력을 숨겼구나.'
멱살을 잡힌 형제는 놀란 나머지 반격할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장선 대협을 만나게 해주면 적당히 귀찮은 부탁을 평생 들어주겠소."
최종필이 둘의 멱살을 거칠게 흔들며 간절한 얼굴로 부탁했다.
- 작가의말
연 선생의 정체가 조금은 밝혀졌습니다.
포전인옥은 본래 자신의 부족한 의견을 말해 토론을 일으켜 다른 사람의 고명한 의견을 듣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삼십육계에선 본문에 서술한 의미로 쓰입니다.
이대도강 역시 원래는 오얏과 복숭아가 친한 나머지 오얏이 복숭아 대신 죽는 형제애를 강조한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삼십육계에선 그나마 쓸모가 적은 오얏을 대가로 던져주는 것을 뜻하는 냉혹한 의미죠.
혹시 포전인옥의 자주 쓰이는 뜻을 아는 분들이 곤혹을 느끼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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