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상극相生相克
토생금土生金이라고, 쇠는 땅에서 캔다. 화극금火克金의 이치에 따라 쇠를 불로 달구면 금생수金生水에 의해 쇳물이 된다. 인간은 쇳물로 쟁기를 만들어 땅을 갈아 비옥하게 가꾼다.
목극토木克土라고, 수풀이 무성하면 땅이 쇠한다. 그러나 화극목火克木으로 숲을 태우면 땅이 도로 비옥해지니, 이를 일컫어 화생토火生土라고 한다.
수생목水生木에서 나무가 자라는 데 필수인 물은 수극화水克火로 숲을 태우는 불을 끈다.
인체 역시 하나의 세상과 같아, 의원들은 오장육부를 오행으로 구분하여 서로 연관 지었다.
"상생으로 기운을 북돋고, 상극으로 자극해 활력을 북돋우면 더 나은 효과를 볼 것 같습니다."
구후영이 말을 마쳤다.
"네 말도 맞긴 한데, 그걸 실제로 할 수 있겠느냐?"
신한천도 구후영의 치료가 더 나음을 인정하지만, 이론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제가 작년에 무당의 대장로 현현자와 내공 대결을 벌인 적 있습니다.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고 높은 경지를 이뤘습니다.]
금의위가 밖에서 몰래 듣고 있어서 구후영은 전음으로 말했다.
"난 침술로 어느 정도 치료하여 약 기운을 뺀 다음, 안물을 불러 함께 치료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본다."
안물이 치료를 거부한 건 황제의 몸에 너무 많은 약 기운이 있어 아예 손도 못 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안물에게 약으로 치료하라고 핍박하는 건 황제를 죽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안물을 비롯해 수많은 의원이 당당히 치료를 거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한천은 눈도 안 보이고 수전증도 심하나 무슨 속셈인지 황제를 치료하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너는 내가 시킨 대로 하고, 쓸모가 다하면 사라지거라."
그제야 구후영도 신한천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어르신의 뜻대로 하면 나는 산다.'
신한천은 고심 끝에 침술로 약 기운을 조금씩 뽑아 없앤 다음, 구후영을 배제하고 인맥이 튼튼한 안물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이대로면 치료가 실패해도 나랑 큰 상관이 없게 된다.'
안물의 약은 수많은 고관대작이 애용하여 치료에 실패하더라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쓸 사람이 허다하다.
최선의 경우 안물과 신한천 모두 무사할 수 있고, 구후영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 나쁜 상황은 안물만 무사하고 신한천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건데, 이 경우도 구후영은 무사하다. 안물을 용서한 마당에 훨씬 덜 중요한 인물인 구후영에게 책임을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최악의 경우는 안물과 신한천 모두 황제의 죽음에 책임지는 건데, 이 경우도 구후영은 무사할 가능성이 크다. 안물과 신한천에게 죄를 묻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클 테니 굳이 구후영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무리수다.
'솔직한 마음으론 모험하지 않고 어르신의 뜻에 따르고 싶다. 그런데 이게 옳은 선택이 맞는 걸까?'
구후영의 치료법은 성공하면 완치까지 이뤄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황제가 즉사하여 구후영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신한천의 방법을 쓰면 황제는 반년 정도 수명을 보장받고, 안물이 소문처럼 대단한 명의라면 좀 더 오래 살 가능성도 있다. 잘 풀리면 나중에 황제가 죽고 아무도 문책당하지 않을 수 있고, 잘 안 풀리더라도 구후영에게 화가 미칠 가능성이 희박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만 쉬고 싶구나."
신한천은 이만 죽어도 여한이 없음을 빗대 말했고.
"두 방안을 다 말씀드리고 황후 마마께 결정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구후영은 자신의 치료법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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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신한천과 구후영의 얘기를 들은 황후가 굳은 얼굴로 하명했다.
"태의太醫를 불러라."
태의는 대신과 환관 궁녀 등의 병을 보는 의원이고, 어의는 황족의 병만 보는 의원이다.
실력은 어의가 더 높지만, 다양한 사람의 병을 보는 태의가 견식은 더 넓은 경우가 많다.
'똥 밟았다.'
영문도 모르고 불려온 당직 태의는 신한천과 구후영의 말을 듣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 명의의 방법을 따르면 폐하는 일 년 사이에 반드시 붕어한다.'
일 년 뒤, 황제의 죽음에 관한 책임이 태의한테까지 전가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그런데 저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 말대로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구후영의 방법이 이론상 가능함을 알아챈 신한천과 달리, 태의는 구후영의 방법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의원이긴 하나 태의원에 속한 관리기도 한 태의는 쉽사리 자기 의중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간 태의원 생활에서 옳은 말도 가끔 화를 부른다는 걸 절실히 느낀 덕분이었다.
"황후 마마께선 어떤 부분이 궁금하신지요?"
"둘 중 누구의 방법이 더 나은지, 왜 그런지 알기 쉽게 설명하여라."
태의는 흠흠 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명의의 방법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신 명의의 방법이 낫다는 말이냐?"
"치료 과정에 탈이 생길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뜻입니다. 결과는 치료 과정을 지속하여 지켜보아야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태의도 신 명의의 방식대로 하는 건 완치 가능성이 적다고 여기는가?"
"참람하오나, 그리 생각됩니다."
"그럼 저 젊은 의원의 방법은 어떤가?"
태의는 잠깐 고민하고 신중하게 말했다.
"일단 방법 자체에선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위험한 치료법입니다. 치료 과정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감히 떠올리기조차 무엄한 일이 발생할 겁니다."
그때, 신한천이 입을 열었다.
"황후 마마께 아룁니다. 모든 책임을 제가 질 테니, 제 치료법을 따라주십시오. 사 년 정도 가르친 제자가 맞고 오십 년 넘게 의원을 한 제가 틀릴 리 없습니다."
"폐하의 목숨을 신 명의가 어찌 책임진다는 말이오? 결정은 마마께서 내리실 거니까 신 명의는 입을 다무시오."
공현이 호통으로 주제넘게 끼어든 신한천을 나무랐다.
"이목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구나."
고민하던 황후가 구후영에게 말했다.
"소신은 치료법을 고민할 때 상대가 누군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증상만 보고 최고의 치료법을 찾았습니다. 신 명의는 환자의 신분 때문에 생각이 많아 치료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나 감히 지적해 봅니다."
"치료를 그대에게 맡기면 얼마나 자신 있는가?"
"치료법 자체만 볼 땐 오 할도 안 됩니다. 하지만."
구후영이 고개를 들어 황후와 눈을 맞췄다.
"저는 구 할 정도로 자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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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인 거냐?"
"제 방법이 더 확실하니까요."
구후영은 이미 철혈방 방주, 홍엽산장 장주, 낙화문 장문 자리를 내놨다. 게다가 가족과 친분이 깊은 사람들에게도 의절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해 전달했다.
그렇다고 황제의 치료에 실패해도 괜찮은 건 아니다.
이게 담진웅의 짓인 줄 모르고 여전히 어마어마한 배후의 음모로 오해하고 있는 구후영이기에, 어떻게든 치료에 성공해 최상의 결과를 만들려는 결심이 확고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넌 이제 약관일 텐데. 더 살고 싶지 않으냐?"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겁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린 구후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르신의 방법엔 큰 결함이 있습니다."
"뭔데?"
"안물입니다."
잠깐 고민한 신한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구나. 이대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나한테 모두 뒤집어씌우고도 남을 놈이지."
신한천의 계획은 안물이 순순히 따라줄 때나 효과가 있다. 안물이 약 기운을 뺀 황제를 진맥하고 오장육부가 상해서 회생이 불가하다고 하면, 신한천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후영도 좋게 끝나기 힘들다.
"왜 내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어르신이 다른 방도를 구하려 했을 테니깐요."
구후영의 목표는 황제의 완치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함정을 팠든 간에, 구후영이 치료에 성공하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된다.
'옥 사형한테 배운 일격필살이지.'
구후영은 규찰대주를 떠올리며 일을 단순하게 바꿨고, 단아를 떠올리며 본질을 탐구했고, 옥무영을 떠올리며 해결책을 찾았다.
그 결과, 황제의 완치가 확실하면서도 유일한 길이었다.
"같잖은 의술 조금 가르친 거로 이 늙은이가 널 사지에 몰아넣었구나."
"어르신의 의술 덕분에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한 거나 다름없으니,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 진짜 자신 있습니다."
"네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신한천이 의낭醫囊을 열고 침통 하나를 꺼냈다.
"무덤에 갖고 가나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나타났구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 이 침은 이제부터 네 거다."
구후영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인 공손한 태도로 신한천의 침통을 받았다.
"피를 맑게 하는 공심침空心針이 일곱 개 있다."
공심침은 갈대나 대나무처럼 속이 빈 침을 말하는데, 혈도에 정확히 꽂으면 피에 섞인 나쁜 것만 밖으로 뽑아내는 효능이 있다.
"투기침透氣針은 다섯 자루 있을 거다."
투기침은 의원의 내공을 안으로 쉽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기운을 밖으로 빼는 데도 효과가 탁월하다.
"내가 너한테 전하지 않은 침술이 하나 있는데, 마저 가르쳐야겠구나."
"제게 안 가르친 침술이 있었다고요?"
"침투술針透術이다. 침과 기공 치료를 결합한 침술인데, 의원 중에 절정에 이르는 자가 없어서 거의 실전되기 직전이다."
침술을 익히는 의원은 많으나 기공 치료를 익히는 의원은 적다. 약이나 침은 효과가 빠르고 젊은 나이부터 행의行醫할 수 있는데 반해, 기공 치료를 익힌 자들은 경지에 못 이르면 평생 수련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 탓에 침과 기공 치료를 결합한 침투술은 거의 실전되다시피 했다.
"내가 단전을 다치기 전까지 몇 년을 해봐서 누굴 가르칠 정도는 된다."
"근데, 어르신은 왜 치료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까?"
"넌 몰라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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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당금 황제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당연히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구후영의 침투술은 점점 능숙해져 신한천도 못 따르겠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가 되었다.
"손 떨림은 어떻습니까?"
"정신만 집중하면 떨림을 멈출 수 있다. 이젠 나도 네 치료법이 성공할 것 같구나."
아쉽게도 눈이 안 보이는 건 구후영도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치료할 때 어르신이 침진針診을 하여 폐하의 상태를 알려주시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침진은 침을 혈도에 꽂아 진맥하는 걸 말하는데, 경맥이 막혔을 때 치료해야 할 혈도를 찾는 방법이다.
"내 마지막 숨까지 다해 널 보조하마."
"누가 옵니다."
다가오는 기척을 발견한 구후영이 신한천에게 말했다. 특별한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황궁에서 말조심해서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다.
"황후 마마의 명이오."
뭐가 그리 급한지, 공현이 문을 다 열기도 전에 외쳤다.
"이목 구후영을 종오품의 태의太醫로 임명하고, 내일부터 폐하의 치료를 전담케 한다."
"명을 받듭니다."
"태의가 된 것을 축하하오. 폐하의 치료에 성공하면 큰 치사가 있을 거고, 실패해도 죄를 묻지 않을 것임을 황후 마마께서 확실히 천명하셨소."
뜻밖의 희소식에 구후영과 신한천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 작가의말
“한천 오빠?”
“태후 마마?”
“흥. 내가 젊고 이쁠 적엔 귀요미라고 부르더니, 나이 들고 주름지니까 태후 마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오?”
“건드릴 용기는 있고, 인정할 용기는 없어요?”
“내 마음이 그게 아닌 걸 태후 마마도 잘 알잖소.”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인가요?”
“폐하께서 쓰러지셨다 들어서 한달음에 달려왔소.”
“그래도 새끼 귀한 줄은 아는군요.”
“폐하가 진짜 내 자식이오? 날짜가 들어맞긴 해서 그동안 긴가민가했는데.”
“선황이 몇 년 동안 못 해낸 일을 오빠가 1분도 안 걸려서 성공했습니다.”
“무, 무슨 소리. 분명히 1시간은 공들였는데.”
“세월이 기억을 미화하죠. 사실 1분도 반올림으로 올려치기 한 겁니다.”
“이 얘긴 그만하고, 내 우리 아이를 반드시 구하겠소.”
“알콜 중독으로 손이 떨리고, 야동 너무 봐서 눈도 침침하다면서요.”
“괜찮소. 내가 주인공을 데려왔소.”
이런 막장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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